<아트&아트인> 서양화가 서용선

"6·25의 맨살 화폭에 고스란히"

[일요시사=사회팀] 서용선 작가의 그림에는 지식인의 고뇌가 담겨있다. 분단의 이념을 넘고자 하는 그의 그림에는 전쟁 직후의 자욱한 먼지와 화약 내음이 가득하다. 인천상륙작전부터 거창민간인학살까지 당시를 살았던 보통사람들의 역사가 전시장을 휘감고 있었다. 서 작가 인터뷰는 이번 전시를 기획한 서울대 정영목 교수와 공동으로 진행했다.



소리꾼 장사익의 '봄날은 간다'가 고려대박물관에 울려 퍼졌다. 해방 전후 우리 민족에 '봄날'은 있었을까. 한국 근현대사에서 가장 큰 사건을 고르라면 주저 없이 6·25 또는 한국전쟁이 떠오른다. 하지만 한국전쟁을 주제로 한 작품은 끊임없는 자기검열에 시달렸다.

'봄날'은 있었나

우리가 겪은 역사지만 늘 이념갈등에 휘말려 우리 스스로 들여다보기를 포기했던 현대사의 비극. 서용선 작가는 지난 6월25일 <한국전쟁 정전 60주년 특별전-기억·재현: 서용선과 6.25>를 통해 우리 민족이 겪은 전쟁의 맨살을 드러냈다.

앞서 서 작가는 1980년대 말부터 한국전쟁을 모티브로 한 작품을 꾸준히 발표해왔다. 그의 손을 거친 전쟁의 조각은 하나하나 그의 작업실을 채웠다.

이번 전시를 앞두고 서 작가는 정영목 서울대 교수와 머리를 맞댔다. 그 결과 서 작가의 강렬한 이미지들은 정 교수의 탁월한 기획과 맞물려 단일의 거대한 서사로 탄생했다.


정 교수는 "서 작가만큼 한국전쟁을 비중 있게 다뤄 온 작가는 없다"면서 "우리는 이번 전시를 통해 (독자들이) 전쟁과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과 '관점'을 생각했으면 좋겠다는 기획 의도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서 작가는 "지난 20여 년간 직접적 사실과 주관적 표현 사이의 고민이 많았다"며 "이전의 그림들이 주관(표현)에 무게를 뒀다면, 최근의 그림들은 사실(재현)에 중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시대를 막론하고 한국전쟁이란 소재가 논쟁적인 만큼 서 작가는 역사의 고증에도 큰 힘을 기울였다. 한국전쟁과 관련한 영화포스터는 물론이고, 피카소의 유화 <한국에서의 학살>을 다룬 문건 등을 미국에서 직접 가져왔다. 우리가 모르는 한국전쟁의 다각적 이미지를 전시관에 있는 그대로 재현하겠다는 목적이다.

화가 개인이 한국전쟁을 소재로 대규모 전시를 여는 건 우리 미술사에 처음 있는 일이다. 정 교수는 "그간 6·25 전쟁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보는 시각이 달라졌다"며 서 작가의 작업이 쉽지 않았음을 털어놨다.

또 정 교수는 "오히려 미국에서는 최근 전쟁과 관련한 개인의 기억을 들춰내는 작업이 활발한데 한국에서는 아직도 정치적 혹은 이데올로기적 관점을 견지하고 있다"면서 "그런 면에서 서 작가의 작업은 우리가 전쟁을 바라보는 왜곡된 ‘시선’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라고 기대했다.

국내 최초 한국전쟁 소재로 대규모 전시회
과감한 색상·강렬한 필선 '표현주의 거장'

서 작가는 "적과 아군을 분명히 구분하지 못하면 편을 가르고 대화를 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소설가 최인훈의 <광장>처럼 어느 편에도 속할 수 없는 이들이 있다"고 견해를 드러냈다. 그가 그림으로써 표현하고자 했던 상징이 어떤 '정치적 주장'과는 거리가 있음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서 작가가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한 건 1990년대 초반, 그때부터 서 작가는 매년 6·25 전쟁과 관련한 뉴스나 소식이 나올 때면 스스로 "자극을 받았다"고 말했다. 최인훈의 소설 전집을 비롯한 다양한 작품들을 탐독한 서 작가는 "미술계에도 이런 작품들이 당연히 있을 법한데 왜 없을까라는 고민에 빠졌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후 서 작가가 작업한 작품은 최인훈의 소설 전집 표지에 실렸다.

서 작가는 나이가 들면서 전쟁 전후의 기억을 되살렸다. 간접적으로나마 전쟁을 겪은 세대인 서 작가는 자신이 그린 '피난'(2013)이란 그림을 예로 들었다. 서 작가를 낳기 위해 한강의 쪽배를 타고 서울로 올라 간 어머니의 사연. 서 작가의 어머니가 서 작가에게 직접 들려준 이 얘기는 하나의 작품이 됐다. 전쟁을 경험한 이들의 구술은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텍스트다.

정 교수는 "저는 1953년생인데 그럼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저를 전쟁시절에 낳았다는 얘기"라며 "이런 개개인의 소소한 사연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회자됐고, 결국은 전쟁 피해자들의 상처도 그림에서 보듯 하나둘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라고 소개했다.

서 작가의 작품은 구술을 함축한 상징성을 담고 있으면서도 과감한 색상과 강렬한 필선으로 보는 이들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는다. 달리 보면 사실을 왜곡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미지를 극대화하기 위한 서 작가 특유의 문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불과 10년 전 서 작가는 "당신은 왜 '왼손'만 보느냐”는 섬뜩한 메일을 받기도 했다. 한 독자가 서 작가의 표현주의 기법을 정치적으로 해석하면서 생긴 촌극이었다. 이처럼 그동안 한국전쟁은 늘 '반공'이라는 좁은 시각에서 해석됐다.

민족의 아픔 담아

그러나 한국전쟁을 둘러싼 여러 역사적 기록들이 국제 사회에 등장하면서 우리가 몰랐던 새로운 사실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런 면에서 서 작가는 "더 이상 역사는 숨길 수 없다"고 강조한다. 이번 전시는 전쟁의 실체에 접근하기 위한 작가의 집요한 연구물이기도 하다. 

현재 고려대박물관에는 가로세로 5m에 이르는 대작을 비롯해 회화 45점과 드로잉 30여 점, 비디오 아트 등 전쟁의 기억을 담은 작품들이 독자를 기다리고 있다. 서 작가의 작품에서 전후를 살아간 우리 민족의 아픔을 읽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서용선 작가는?]

▲1951년 서울 출생
▲1979년 서울대 미술대학 회화과 졸업
▲1982년 서울대 대학원 서양화과 졸업
▲신세계미술관(91년) 갤러리고도(06년) 외 개인전 다수
▲국립현대미술관(95년∼) 서울시립미술관(99년∼) 외 기획전 다수
▲서울대 서양화과 교수(1986∼2008년)
▲함부르크 국제미술아카데미 초대교수(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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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