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민주 '국정원 치킨게임' 막전막후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3.06.25 09:2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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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다 죽거나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죽는다

[일요시사=정치팀] 국정원 정치개입 의혹을 수사해 온 검찰이 지난 14일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등 관련자들을 기소했다. 그러나 국정원 의혹은 잦아들기는커녕 여야의 폭로전까지 이어지면서 더욱 뜨겁게 달아오르는 양상이다. 양측 모두 물러설 수 없는 국정원 치킨게임의 승자는 누가 될까?



검찰이 지난 14일 지난 대선기간 불거졌던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의 정치개입 의혹에 대한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그 결과 검찰은 국정원 직원들이 올린 게시물 1970여 건 중 73건이 선거에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검찰이 지목한 인터넷 글 중 69건은 민주당과 통합진보당 등 야당을 반대하는 글이고, 안철수 후보를 비방하는 글도 4건 확인했다. 수사결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직원들에게 인터넷 댓글 작업 등의 불법적인 행위를 수시로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선거개입 했지만
불구속 기소

비록 검찰은 원 전 원장을 불구속하고 관련 국정원 직원들을 기소유예 처분함으로써 논란의 여지를 남겼지만 국정원이 대선에 개입한 사실만큼은 분명해진 것이다. 그러나 수사가 끝난 뒤에 논란은 오히려 증폭되는 분위기다.

새누리당은 국정원사건과 선 긋기에 나섰고, 민주당 내에서는 박근혜정부의 정통성까지 부정하며 장외투쟁을 요구하는 목소리까지 들려온다. 양쪽 모두 결코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다. 이른바 여야의 '국정원 치킨게임'이 시작된 것이다. (※치킨게임이란 어느 한 쪽이 양보하지 않을 경우 양쪽이 모두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극단적인 게임이론이다. 2명의 경쟁자가 자신의 차를 몰고 정면으로 돌진하다가 충돌 직전에 핸들을 꺾는 사람이 지는 경기에서 비롯됐다. 핸들을 꺾은 사람은 겁쟁이, 즉 치킨으로 불렀다.)

'국정원사건 국정조사' 여야 전면전 돌입
국정조사 수용하기도 거절하기도 '애매'


민주당은 검찰의 수사발표 직후 새누리당에 '검찰 수사 완료 후 국정조사 즉각 실시'라는 지난 3월 여야 원내대표 간의 합의를 이행하라고 촉구하고 나섰다. 지난 18일 여의도의 한 콩나물국밥 식당에서 열린 여야 당대표 간 회동에서도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여야 합의대로 국정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허니문이라고 얘기하는 집권 초기 여야 협력관계의 마감을 선언할 수밖에 없다"며 새누리당을 압박했다.

그러나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는 "당내에서 논의를 해보겠다"고만 답했다. 민주당의 요구에 대한 새누리당의 진짜 속내는 잠시 뒤 밝혀졌다.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는 여야 당대표 간 회동이 있은 직후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민주당이 무책임한 정치공세를 하고 있다"면서 "직접 관계도 없는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까지 요구하는 것은 정권 흔들기용 공세"라고 비난했다.

사실상 민주당의 국정조사 요구를 수용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게다가 국정원 의혹은 연일 여야 의원들의 폭로전이 이어지며 전선이 점점 확대되고 있다.

몸통 공방
색깔론 공방

지난 17일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는 황교안 법무부 장관을 출석시킨 가운데 여야 의원들이 검찰의 국정원 정치개입 의혹 수사결과를 두고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 박범계 의원은 지난해 대선 당시 새누리당 선거대책본부 종합상황실장이었던 권영세 주중국대사를 사건의 '몸통'으로 지목하고 나서 눈길을 끌었다.

그는 "(경찰이 국정원의 대선 개입이 없었다는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한) 지난해 12월16일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을 중심으로 권영세 당시 실장과 박원동 당시 국정원 국익정보국장이 여러 차례 통화했다는 제보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지난해 12월11일에도 (국정원 여직원 댓글 사건과 관련된) 문제의 오피스텔 앞에서 수차례 김 전 청장과 권 당시 실장, 박 국장 사이에 통화가 있었다"고 했다.

그러자 새누리당 권성동 의원은 "민주당에 해당 사건을 제보한 국정원 직원이 공천을 제의받았다는데, 이 같은 공작정치의 몸통이 (민주당 문재인 대선후보 캠프) 김부겸 선대본부장이라는 제보를 받았다"며 '민주당 매관매직' 의혹으로 맞불을 놨다.


여야가 제기한 몸통론 의혹에 대해 권 대사는 주중국대사관 공보관을 통해 "사실이 아니다"고 반박하면서 "대사로서 일일이 대응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김 전 의원 역시 "내가 대선 때 정치공작을 벌였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새누리당의 전형적인 물 타기 시도"라고 불쾌해했다.

또 이날 회의에서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이 "사건의 주임인 진모 검사는 민중민주(PD) 계열 운동권 인사로, 1996년 4월에는 충북대신문에 '김영삼 정부를 타도하자'는 글을 썼다. 중요 사건에 왜 운동권 출신을 주임 검사로 맡겼나. 자유민주주의 근본을 위협하는 사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박영선 법사위 위원장은 "운동권 출신은 전부 빨갱이냐? 출신성분 분석은 공산당에나 있는 일"이라고 비난해 난데없는 색깔론 논쟁이 불거지기도 했다. 

검찰이 발표한 수사결과에 관해서도 여야는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검찰은 국정원 직원들이 올린 게시물 1970여 건 중 73건이 선거에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새누리당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는 "국정원 측이 작성한 대선 관련 댓글 73건은 하루 1건 활동한 것으로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대선 활동을 했다고 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새누리당 권성동 의원도 "(국정원) 밑에 직원이 약간 오버한 것 가지고 선거개입이라고 하는 것은 지나친 논리 비약"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민주당 측은 "현재까지 발견된 글은 73건이지만 트위터 같은 경우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면 일반인 관점에서 보더라도 광범위하게 선거에 영향을 끼쳤다는 결과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댓글 73개?
진실은?

한편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은 여야 모두 한 발자국도 물러설 수 없는 문제다. 새누리당의 경우는 자칫 이번 사건이 박근혜정부의 정통성 시비로 번질까 우려하고 있다. 또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지지율이 연일 상승세를 타고 있는 가운데 국정조사 수용으로 민주당에 주도권을 뺏기게 될 우려도 있다.

국정조사가 실시되면 여론의 이목이 집중된 상태에서 사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야권의 폭로전이 이어져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정치적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10월 재보선이 다가오고 있는 민감한 시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새누리당으로서는 더더욱 물러설 수 없는 문제인 것이다.

만에 하나 국정조사 과정에서 박근혜정부에 치명타가 될 사실이 확인된다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하지만 민주당의 국정조사 요구를 마냥 묵살하는 것도 새누리당으로서는 큰 부담이다. 새누리당은 지난 3월 정부조직개편안과 관련, 국정원사건에 대한 국정조사를 약속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 강은희 원내대변인은 지난 18일 "지금은 지도부가 바뀌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논의를 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국조 합의를 공식적으로 파기했다. 이 같은 말 바꾸기에 대한 국민들의 곱지 않은 시선과 정말로 숨기는 것이 있는 것 아니냐는 여론은 새누리당을 서서히 압박하고 있다.

국정원사건 몸통은 누구? 폭로전도 치열    
6월 국회 '국정원사건'에 발목 잡히나?

새누리당은 또 야권의 공세에 맞서 민주당 '매관매직' 의혹, 국정원 여직원에 대한 민주당의 인권침해 부분을 부각시키려하고 있지만 전형적인 물타기라는 비판에 가로막혔으며, 검찰이 이미 수사를 통해 국정원의 대선개입 혐의를 적용한 가운데 이를 일방적으로 옹호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내부 비판에 직면해 있다.


민주당의 경우는 더욱 절박하다. 이미 대선직후 불거진 수개표 논란 당시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이유로 지지층으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았던 민주당이다. 만약 민주당이 이번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에 대해서도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며 지지층의 이탈현상은 더욱 가속화 될 전망이다.

게다가 국정원의 대선개입 정황은 검찰 수사로 이미 어느 정도 사실로 밝혀진 상태다. 민주당으로서는 결코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또 최근 지지율이 10%대까지 폭락하며 위기에 몰린 민주당으로서는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이야 말로 대반전을 도모할 최상의 카드이기도 하다.

하지만 민주당으로서도 고민은 있다. 검찰이 발표한 수사결과에 따르면 대선개입으로 의심되는 댓글은 고작 73개다. 민주당에서는 "국정원수사를 제대로 했다면 문재인이 대통령 됐을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오지만 이같은 소수의 댓글이 과연 대선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가에 대해 여론의 반응은 냉담하다. 국정원 차원의 대선 개입이라고 부르기에는 민망한 댓글 숫자 때문에 벌써부터 보수진영에선 민주당의 발목 잡기, 대선 패배 분풀이라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민주당에서는 트위터 등을 추가로 분석하면 더 많은 대선개입 댓글을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주장을 뒷받침 할 증거를 찾아내지 못할 경우 민주당이 역풍을 맞을 개연성도 크다. 양쪽 모두 물러설 수도, 그렇다고 마냥 밀어붙이기도 부담스러운 치킨게임인 것이다.

치킨게임 시작
누가 죽을까?

현재 국회에는 여러 가지 현안이 산적해 있는 상태다. 여야는 국정원과 관련한 대립에도 불구하고 대선 공통공약과 경제민주화 입법, 갑을관계 관련법 등 시급한 민생법안에 대한 심의는 별도로 이어나간다는 방침이지만 국정원사건을 둘러싼 여야 갈등이 격화될 경우 이들 법안 심의가 뒷전으로 밀려날 가능성이 크다. 어느 한쪽이 물러서지 않을 경우 국정운영에 차질이 생기고 마는 것이다. 둘 다 죽거나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죽고 마는 국정원 치킨게임의 최후승자는 과연 누가 될까? 한여름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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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