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폭사정바람' CJ가 죽어야 사는 사람들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3.06.12 10: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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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무원' CJ…누가 왜 이토록 탈탈 터는가?

[일요시사=정치팀] CJ그룹이 사면초가에 빠졌다. 검찰은 CJ를 그야말로 탈탈 털고 있다. 불과 5년 전 같은 사안에 대해 '봐주기 수사'라는 비판을 받았던 것과는 영 딴판이다. 또 재계 총수들에 대한 수사가 진행될 때마다 노골적으로 재계의 편을 들어주던 보수언론들은 오히려 CJ그룹을 앞장서서 공격하고 있다. '검찰보다 언론수사대가 무섭다'는 재계 관계자의 말이 의미심장하게 들리는 요즘이다. 도대체 어찌된 일일까? CJ그룹과 이재현 회장을 고립무원의 처지로 몰아넣어 반드시 죽여야만 사는 사람들은 과연 누굴까? 



CJ그룹을 향한 검찰 수사가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다. 지난달 21일 시작된 수사는 불과 2주 만에 CJ그룹의 비자금 조성 의혹부터 주가조작 의혹, 편법 증여 의혹, 계열사 부당지원 의혹까지 수사범위를 광폭으로 넓혀가고 있다. 실로 예상치 못했던 이례적인 일이다.

봐주기수사?
표적수사?

검찰은 이미 이재현 CJ그룹 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을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CJ그룹에 대한 이번 수사는 그야말로 속도전이었다. 수사 개시 후 불과 이틀 만에 이 회장을 출국금지 시키는가 하면, 이례적으로 이 회장의 자택까지 압수수색을 펼쳤다. 불과 5년 전 CJ 비자금 수사와 관련해 이 회장이 상속세 1700억원을 자진납부하자 관련수사를 모두 종결했던 것과는 완전히 딴판이다.

차명재산이 발견될 경우 과세표준과 세액을 결정하기 위해 재조사하는 것이 관례였음에도 당시 국세청은 재조사를 벌이지 않았다. 또 거액의 세금을 추징하면서 당연히 취해야 할 검찰 고발조치도 생략했었다. 5년 전 수사가 사실상 '봐주기수사'였다면 최근 수사는 '표적수사'에 가깝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CJ그룹의 처지는 그렇게 불과 5년 만에 180도 달라졌다. 이를 두고 정·재계에서는 "CJ가 이번에는 된통 걸린 것"이라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아무리 재계순위 14위의 대기업 CJ라도 이번 사건에서 빠져나오기는 힘들 것이란 전망이다. 현재 정·재계에는 CJ가 죽어야 사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CJ가 죽어야 사는 사람들. 그들의 실체는 무엇일까?


우선 CJ 수사와 관련해 언제나 가장 먼저 거론되는 것은 삼성이다. CJ와 삼성의 악연은 이미 유명하다. CJ 측도 이번 수사의 배후로 공공연히 삼성을 의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이재현 회장은 삼성가의 장남 이맹희 전 제일비료회장의 아들이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이맹희 전 회장의 친동생이다. 삼성과 CJ의 갈등은 지난 1967년 한국비료의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쉴 새 없이 털리는 CJ "배후는 누구?"
MB와 친하게 지낸 게 오히려 '독'
 

삼성의 창업주 고 이병철 전 회장은 이 사건의 책임을 지고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이병철 전 회장의 뒤를 이어 장남 이맹희 전 회장이 경영일선에 나섰지만 불과 6개월 만에 아버지로부터 신뢰를 잃고 동생 이건희 회장에게 경영권을 뺏기게 된다.

이후 이맹희 전 회장은 공공연히 동생인 이건희 회장이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려 아버지와 자신을 갈라놨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과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삼성과 CJ의 사이는 그리 나쁜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난해 이맹희 전 회장과 이건희 회장이 상속 소송을 벌이면서 양측 간 갈등이 극에 달했다. 지난해 2월에는 이재현 회장에 대한 삼성 직원의 미행 사건이 터졌고, 같은 해 11월에는 고 이병철 회장의 선영 참배를 놓고 삼성 측이 CJ일가가 정문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조치하면서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결국 삼성과 CJ와의 상속전은 삼성의 승소로 끝났지만 이맹희 전 회장 측이 항소하며 소송을 장기전으로 끌어가려 하자 삼성이 CJ그룹 비리와 관련한 핵심 단서들을 수사기관에 제보했다는 억측성 의혹이 불거져 나왔다.
물론 삼성으로선 CJ의 비자금을 직접 공략함으로써 CJ가 장기 소송전을 이끌 동력을 소진시킬 수 있다. 만약 이맹희 전 회장 측이 소송에서 이기게 된다면 삼성의 후계구도가 송두리째 흔들릴 공산이 크다. 삼성으로서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문제임에 틀림없다.

삼성 vs CJ
CJ vs 종편

두 번째로 거론되는 세력은 '종편채널'들이다. 최근 보수로 분류되는 종편채널들이 CJ에 대한 의혹제기 전면에 나서고 있어 눈길을 끈다. 그동안 보수언론들은 재계 총수에 대한 비판보도에 무척 소극적이었다. 심지어 보수언론들은 재계에 대한 수사가 경제에 악영향을 준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왔다.


재계 총수에 대한 수사와 관련해서는 재계 총수가 그동안 경제발전에 기여했던 점들을 나열하며 동정여론을 형성시키기도 했다. 이 같은 그동안의 보도 행태와 비교하면 CJ 관련보도는 무척 공격적이다. CJ 관계자들도 검찰 수사보다 종편채널들의 연이은 보도 때문에 더 곤혹을 치르고 있다고 하소연 할 정도다.

일부 사건의 경우는 종편의 보도가 검찰의 수사로 이어진 경우도 있었다. 이를 두고 '종편의 CJ 죽이기'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CJ와는 별 관련이 없어 보이는 종편들이 CJ가 죽기를 바라는 이유는 간단하다. 종편 입장에서 CJ는 광고 경쟁을 벌여야 하는 껄끄러운 경쟁자이기 때문이다. CJ는 현재 tvN, Mnet, OCN, CGV, SUPER Action, 캐치온, 올리브, 온스타일, 스토리온, XTM, 투니버스, 온게임넷, 바둑TV, KM TV, 내셔널지오그래픽 코리아, 중화TV 등 다양한 콘텐츠의 케이블 방송국을 소유하고 있다. 종편 입장에서 CJ는 자신들과 공생관계인 대기업이 아니라 경쟁자로만 보이는 이유다.

게다가 CJ는 종편사들의 채널 배정권을 가진 우위 사업자이기도 하다. 종편사들은 현재 CJ가 배분해주는 송출수수료를 받아들여야 하고, 채널 배정에 있어 CJ의 눈치를 봐야하는 위치다. 이 때문에 이번 CJ수사가 진행되기 전 이른바 조중동이 앞장서서 제기했던 '유사보도' 문제도 결국은 CJ를 겨냥한 것이라는 뒷말이 무성했었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이 CJ에 대한 수사를 시작하자 종편들이 기다렸다는 듯 CJ와 관련된 온갖 의혹을 쏟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언론계에서도 "삼성과 관련한 수사 때에는 침묵하던 언론들이 CJ와 관련한 수사에서는 단순한 피의사실까지도 앞 다퉈 보도하는 것은 어떠한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혹을 가질 수밖에 없다"며 "종편들이 사실상 CJ에게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보복성에 가까운 보도행태"라고 평가하고 있다.

밉보인 CJ
절대권력의 힘

세 번째로 거론되는 대상은 바로 박근혜 대통령이다. 정·재계에서는 지난 방미 경제수행단에 CJ그룹이 제외된 것을 놓고 이미 뒷말이 무성했다. 이를 두고 정·재계에서는 CJ그룹이 이명박정부 시절 정권 핵심인사들과의 친분을 이용해 승승장구했던 것이 박 대통령에게 밉보여 사정대상 1호가 됐다는 설이 나돌았다. 실제로 이재현 회장은 이 전 대통령의 '양아들'이라고까지 불렸던 곽승준 전 미래기획위원장과 35년 지기이며, 이 전 대통령의 50년 지기 친구로 유명한 천신일 전 세중나모 회장과도 역시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함께 CJ는 특히 그동안 CJ E&M의 tvN 채널을 통해 정치풍자를 강화하면서 보수진영의 심기를 거슬러 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 대선기간 국정감사에서는 새누리당 홍지만 의원이 tvN 채널에서 방영하는 <여의도텔레토비>에 대해 특정후보, 즉 박근혜 후보를 비하하고 욕설이 난무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 방송에서는 민주당 문재인 의원으로 분장한 인물이 박 대통령으로 분장한 인물에게 "너 같은 오만과 불통하고는 밥 안 먹어"라고 하는가 하면, 박 대통령의 취임식을 소개하면서 "첫 번째 뉴스입니다. 박근혜 당선인의 취임식이, 아니 잠깐만요. 이게 왜 첫 번째 뉴스입니까? 혹시 여기 제작진 중에 '일베'하는 사람 있습니까?"라며 비꼬는 장면을 내보내기도 했다. 이 같은 행보가 박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것이다.

박근혜에 "오만, 불통" 막말 퍼붓더니
잘 나가던 CJ 창립 후 최대위기 직면

우연의 일치인지 검찰이 CJ그룹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에 착수하자 <글로벌텔레토비(구 여의도텔레토비)>가 결방됐고, CJ가 영입한 MBC 출신 최일구 앵커가 진행할 예정이던 tvN <최일구의 끝장토론>이 이례적으로 첫 방송 바로 전날 방영이 취소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 입장에서 말 안듣는 정·재계에 대한 군기를 잡기 위해 CJ만큼 좋은 타깃도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러한 와중에 수사가 흐지부지 되어버린다면 박 대통령의 정·재계 군기잡기는 수포로 돌아가게 된다. CJ가 이번 수사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윤창중 사태 이후 국면전환을 간절히 원하고 있던 박 대통령으로서는 CJ수사를 통해 국면전환과 동시에 경제민주화 및 지하 경제양성화에 대한 의지를 국민들에게 확인 시키는 효과까지 덤으로 얻게 됐다.

검찰도 사생결단
'죽여야 산다'

네 번째로 거론되는 세력은 바로 검찰이다. 검찰은 그동안 일선 검사들이 각종 성추문과 부정비리로 논란을 겪으면서 궁지에 몰렸었다. 결국 지난해 검찰개혁이 화두로 떠오르더니  올해 중수부가 폐지되는 아픔까지 겪었다. 이처럼 위기상황에 몰린 검찰이 이를 돌파할 카드로 CJ를 택했다는 것이다. 채동욱 검찰총장의 취임일성이 '위기에 빠진 검찰의 신뢰 회복'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더욱 이해가 쉽다.


실제로 검찰은 이번 CJ에 대한 수사로 조직의 위상이 크게 강화됐다는 평가다. 이번 CJ 수사는 검찰에게 큰 의미가 있다. 채 총장의 취임 후 진행되는 첫 기업수사인데다 중수부 폐지 후 강화된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의 첫 번째 수사이기도 하다.

이번 수사에서 강한 인상을 남기지 못한다면 검찰에 대한 신뢰회복은 요원해진다. 이를 의식한 듯 검찰도 이번 수사에 수사력을 집중하며 유례없이 강도 높은 수사를 벌이고 있다. 검찰이 수사과정에서 CJ의 각종 범법행위를 추가로 밝혀낼 경우 수사의 정당성과 상징성은 배가된다.

반대로 제대로 혐의를 입증해내지 못한다면 검찰은 또 한 번 역풍에 직면할 수도 있다. 검찰로선 CJ를 기필코 죽여야 사는 처지인 것이다. 이처럼 CJ의 현재 상황은 대통령과 삼성, 검찰, 보수언론의 틈바구니에 완벽하게 포위된 상황이다.

CJ 사건을 바라보는 한 정치평론가는 "물론 CJ가 받고 있는 혐의는 결코 가볍지 않다. 굴지의 재벌그룹 오너일가의 비자금과 탈세 문제는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하지만 문제는 CJ에 대한 수사와 언론 보도가 너무나 일방적이고 광범위하다는 데 있다"며 "이쯤에서 우리는 '왜'라는 궁금증을 가져야 한다. CJ가 권력 최상층의 이해관계에 얽혀 희생양이 된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게, 그리고 면밀히 살펴봐야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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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