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 만연한 '갑의 횡포' 내막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3.06.04 11:5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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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의 횡포 근절하자더니 안에선 비서 노예 부리듯"

[일요시사=정치팀] 남양유업 사태 이후 정치권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불합리한 '갑을(甲乙)관계'를 개선하겠다고 나섰지만, 국회 내엔 여전히 갑의 횡포가 상존한다. 갑도 그냥 갑이 아닌 슈퍼갑 국회의원들이다. 갑의 횡포를 근절하겠다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국회 내에서 온갖 횡포를 자행하고 있는 의원들의 이중성을 <일요시사>가 살펴봤다.



이른바 불합리한 갑을관계를 사회적 이슈로 떠올리게 한 남양유업 사태 이후 국회사무처는 앞으로 계약서 등에서 '갑' '을'의 표현을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국회사무처는 지난달 22일부터 계약서와 계약서에 첨부되는 과업지시서, 시방서 등 모든 계약 관련 문서에서 갑을 문구의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국회는 "우월적 지위나 상하관계를 연상시키는 갑을관계를 대등한 동반자관계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며 이같이 결정했다. 이처럼 국회 내 계약서에서는 갑을관계가 사라졌지만 국회 내에는 여전히 갑을관계자 존재한다.

갑 중의 갑 ‘슈퍼갑’

가장 대표적인 갑을관계는 국회의원과 보좌진과의 관계다.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은 입법활동을 지원받기 위해 4급 보좌관 2인과 5급 비서관 2인, 6·7·9급 비서 각 1인, 그리고 2인의 인턴을 채용할 수 있다. 총 9명으로 구성된 이들 보좌진은 여의도 정치의 숨은 주역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늘 고용불안에 시달리며 한편으론 거의 매일 사직을 꿈꾸기도 한다. 밖에서는 늘 온화한 모습이지만 보좌진들한테는 180도 돌변해 한없이 까칠한 일부 의원들 때문이다.

일부 의원들은 툭하면 사소한 이유로 보좌진들에게 화를 낸다. 특히 지역구가 여의도에서 먼 의원들은 차량이동이 잦은데 차량에 탈 때마다 뒤에 앉아서 수행비서들의 운전에 대해 온갖 지적을 하고 때로는 욕설도 서슴지 않는다고 한다.


국감 때 보좌진들이 밤새 작성한 질의서를 본인이 제대로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 실수해놓고는 오히려 보좌진들에게 화를 내는 의원도 있다. 이러한 수모와 함께 국회 보좌진들은 늘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한 보좌진은 "정말 바쁠 때는 퇴근이 아니라 집에 잠깐 들렀다 오는 수준"이라고 하소연한다.

하지만 이들은 이 같은 불만을 제대로 표출할 수도 없다. 그들은 의원의 한 마디에 언제든지 해고될 수 있는 별정직 공무원 파리 목숨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모 의원실은 한 달 동안 3~4명의 보좌진을 갈아치우기도 해 악명이 높았다.

하루아침에 해고된 보좌진들은 당장 생계가 걱정되지만 의원들은 냉정하다. 한 비서관은 "일반기업에서 이같이 해고를 했다간 당장 노조가 반발하고 노동부 조사를 받고 난리가 날텐데 국회에는 그런 게 없다. 진정한 갑 중의 갑은 국회의원 아닌가"라며 "그런 의원들이 쌍용차 사태 해결하라고 하는 걸 보면 쓴웃음이 지어진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국회 보좌진 중에서도 '슈퍼을'이 있다. 바로 국회 인턴들이다. 국회 인턴제도에 대해 인턴들은 "적은 돈으로 사람을 부려먹기 위한 제도"라고 호소하고 있다.

물론 의원실마다 다르지만 일부 의원실에서는 가장 어리고 막내라는 이유로 인턴들에게 온갖 잡무를 모두 전담시키고 있으며, 이 때문에 오히려 인턴이 다른 직원들보다 더 오랜시간 노동에 시달리기도 한다. 현재 국회 인턴들이 받는 월급은 120만원 가량. 급여와 비교하면 가히 노동착취라 할 만하다. 우리나라의 노동조건에 대해 각종 문제를 제기하는 의원들이 정작 자신들의 직원들에 대해서는 노동착취를 하고 있는 셈이다.

밖에선 갑 비판, 안에선 본인이 슈퍼갑
갑의 횡포 근절, 국회부터 발 벗고 나서야

게다가 일반적으로 의원실에서는 인턴과 11개월씩 계약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두고 퇴직금을 아끼기 위한 꼼수가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1년의 계약기간을 채우지 못하는 경우 퇴직금은 지급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인턴 다수가 버티는 이유는 지금은 적은 돈을 받더라도 나중엔 정식 보좌진이 될 수 있을 것이란 희망 때문이다.


국회의원과 공무원들도 명확한 갑을관계다. 대정부질문 기간이나 국정감사 기간 각 부처의 공무원들은 시도 때도 없이 국회로 불려나간다. 그러나 몇 시간을 기다리고도 질문 한마디 받지 못하고 되돌아가는 경우도 많다. 업무가 잔뜩 쌓여 있는 와중에 지방에서 올라온 공무원들도 있지만 그들은 감히 한 마디 항의도 못하고 속으로 삭힐 뿐이다.

특히 국정감사 기간 국회는 철저한 갑이다. 한 공무원은 "전문성이 떨어지는 의원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정말 답답한 마음이 들지만 무조건 '물론 의원님이 말씀하신 부분도 맞지만'이라며 상대방을 높인 후 내 주장을 펼쳐야 한다"며 하소연하기도 했다. 자칫 국회의원들의 눈 밖에 났다간 해당 지자체 관련 예산이 깎일지도 모르는 노릇이다.

법안 하나가 통과되느냐 마느냐에 따라 명운이 좌우되는 기업들도 국회의원들을 슈퍼갑으로 모시는 것은 마찬가지다. 특히 최근에는 경제민주화 이슈가 떠오르면서 각 기업 직원들이 문턱이 닳도록 의원실을 드나들고 있다고 한다. 일부 기업들은 국회의원들의 배우자까지 밀착으로 전담하며 국회의원 마음 사기에 나섰다는 후문도 들린다.

하지만 슈퍼갑으로 불리는 국회의원들도 때에 따라선 슈퍼을로 전락한다. 바로 4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선거다. 선거 때만 되면 의원들의 머리는 자동으로 조아려진다. 특히 공천권을 행사할 수 있는 거물들 앞에만 서면 의원들은 한없이 작아진다. 의원들이 이른바 실세에 대해 각종 아부성 발언을 쏟아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달 3일 새누리당 김희정 의원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인사청탁을 받는 것으로 의심되는 사진이 촬영된 것을 놓고는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는 의원들이 많았다. 다음 선거를 준비해야 하는 의원들 입장으로서는 지역유지의 청탁을 거절하기가 쉽진 않다는 것이다. 실제 인사청탁을 들어줄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알아보는 척이라도 해야 다음 선거에서 표를 잃지 않는다는 것이다.

선거에서 100표 얻기는 어려워도 1000표 잃기는 순식간이다. 표를 얻고 잃는 데서 지역유지들의 영향력은 그 만큼 대단하다. 지난달 6일에는 새누리당 이운룡 의원이 어린이집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는 내용이 담긴 어린이집 법안을 발의했다가 어린이집 원장들의 항의를 받고 철회하는 일도 있었다. 특히 항의과정에서 욕설, 협박 등도 난무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 역시 국회의원들이 항상 갑일 수만은 없다는 대표적인 사례다.

때론 슈퍼 을

한 비서관은 "국회의원도 때에 따라선 분명한 을이 아니냐. 옆에서 지켜보면 지역주민들에게 이리 저리 치이고 당 내에서도 복잡한 역학관계에 의해 스트레스를 받는다"며 "하지만 국회의원 본인도 을의 서러움을 잘 아는 만큼 현재 국회 내에서 벌어지는 갑을 관계의 부당함을 빨리 개선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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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