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친이계 '필생전략' 세 가지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3.05.28 09: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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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항할까? 뱀 머리 될까? '최후의 선택'

[일요시사=정치팀] 친이계의 서러움이 극에 달했다. 최근 마무리 된 새누리당의 당직 인선에서 당 사무총장 등 핵심요직을 모두 친박계가 꿰찼기 때문이다. 이번 인선에서 철저하게 배제된 친이계는 겉으로는 '계파 구분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속내는 서러울 수밖에 없다. 격세지감이다. 친박계가 모두 장악한 새누리당에서 친이계가 반드시 살아남기 위한 필생전략은 무엇일까? <일요시사>가 살펴봤다.



새누리당이 지난 22일 큰 틀에서의 당직 인선을 마무리 했다. 이번에 새롭게 출범한 새누리당의 황우여 대표 2기 체제는 한눈에 봐도 친박계 색채가 더욱 짙어졌다는 평가다. 지난 20일 사무총장으로 임명된 홍문종 의원은 지난 대선 기간 중 매일 박근혜 대통령과 통화했다고 알려졌을 정도로 친박계의 핵심 중 핵심이다.

원조 친박
원조 친이

집권당의 사무총장은 당의 살림살이와 실무적인 공천 작업을 주도하는 요직 중의 요직이다. 당초 황 대표는 사무총장 후보로 다른 의원을 지원했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홍 의원이 임명됐다. 사무총장 인선은 최고위 의결사항이지만 지금까지는 당 대표가 강하게 밀어붙이면 최고위원들도 못 이기는 척 손을 들어주던 것이 관례였다.
뿐만 아니다.

이번에 당 대변인으로 임명된 유일호 의원은 박 대통령의 비서실장 출신이고, 전략기획본부장으로 임명된 김재원 의원 역시 지난 2007년 대선 경선 때부터 박 대통령과 함께해온 '원조 친박'이다. 새누리당의 1차 당직 인선이 '친박일색'이라는 논란이 일자 정치권에서는 남은 당직에는 비박계가 중용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다.

하지만 이 같은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지난 22일 발표된 2차 인선에서도 새누리당은 박근혜 대선후보 수행단장 출신인 윤상현 의원을 원내수석부대표로 임명했고, 제1사무부총장에는 역시 친박계인 김세연 의원이 낙점됐다. 김 의원은 박 대통령의 사촌 홍소자씨(육영수 여사의 조카)의 남편인 한승수 전 국무총리의 사위이기도 하다.


겉으로 계파구분 의미 없다지만…
친박 몰아준 인선에 서운한 친이

이미 새누리당 최고위원 7명 중 6명이 친박계고, 친박계의 좌장인 최경환 의원이 원내대표로 선출된 상황이다. 향후 남은 당직에 비박계 몇 명이 인선된다 해도 큰 의미를 갖기는 힘들다. 새누리당이 친박계에 완전히 장악된 셈이다.

이번 새누리당의 당직 인선을 지켜본 친이계 의원들은 일단 애써 담담한 모습이다. 수도권 지역 친이계 한 재선의원은 "이 전 대통령이 퇴임한 마당에 친이계, 친박계가 무슨 소용이냐. 다 같은 새누리당일 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속내는 서운할 수밖에 없다. 지난 대선에서 함께 힘을 합쳐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지만 친이계는 철저히 소외당하고 있는 모양새다. 게다가 지난 정부에서 친박과 친이 사이에 패인 갈등의 골을 생각해보면 친이계는  등골이 서늘해지기도 한다. 아무리 '다 같은 새누리당'이라고 외쳐도 속으로는 정치보복이나 당하지는 않을지 전전긍긍하는 신세다.

지난 이명박 정부에서 친박계는 '공천 학살'로 대표되는 치욕적인 정치적 핍박을 받았다. 이 때문에 정가에선 공공연히 "박근혜가 집권하면 문재인보다 더 세게 친이계 보복에 나설 것"이란 추측들이 오갔다. 이제 친이계가 친박일색인 새누리당 내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최후의 선택을 해야만 한다. 과연 친이계가 살아남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전략들은 무엇이 있을까?

친박 받아 줄까?
유리천장 우려

첫 번째는 '친박으로의 전향'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이다. 조 장관은 지난 18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친이계다. 그러나 조 장관은 지난해 총선에서 선대위 대변인을 맡아 당시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을 성공적으로 보좌하며 인정을 받았다. 이후 조 장관은 대선기간 박근혜 대선후보의 대변인으로서 활약하며 존재감을 키웠고, 결국 박 대통령과 오랫동안 함께 해온 여성정치인들을 모두 제치고 여성가족부 장관에 임명됐다.


이외에도 최경환 원내대표의 러닝메이트로 정책위의장에 선출된 친이계 김기현 의원과 대선 기간 새누리당 대변인을 맡았으며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후임으로 거론되고 있는 박선규 전 의원 등, 당초 친이계였음에도 불구하고 박근혜정부에서 입지를 넓혀가고 있는 사례는 많다.

게다가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친박일색 당 지도부와 청와대 인사에 대한 비난 여론을 의식해 앞으로의 인선에서는 계파 분배를 최우선으로 고려할 수도 있다. 전향한 친이계는 언제든지 이에 대한 수혜자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지금 당장은 현 정부와 친박계에 섣불리 각을 세우기보다는 유화제스처를 보내며 협력하는 모양새를 취하는 것이 친이계가 살아남는 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이 전 대통령이 퇴임한 마당에 친이계라는 명찰은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다만 문제는 아무리 친박계로 전향하려 해도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에 막히는 경우다.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같은 친박이라도 지난 2007년 대선경선 때부터 박 대통령과 함께 했느냐 아니냐에 따라 '진골'이니 '성골'이니 따지는 마당에 친이계가 아무리 친박으로 돌아선다 해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하물며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이 한때 탈박이었다는 이유로 김무성 의원을 깊이 신뢰하지는 않는다는 이야기가 돌 정도다. 이처럼 자신에게 충성하는 인사들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진 박 대통령이 친이계 출신들을 믿고 중용하겠느냐. 친이계가 중용된다고 해도 보여주기식 인선 몇 명으로 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뭉치면 산다
소수정예 친이

두 번째 전략은 현 정부 및 당과 거리를 두며 친이계가 '독자세력화' 하는 것이다. 현 정부와의 거리두기는 현재 가장 많은 친이계 의원들이 활용하고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박근혜정부 들어 상당수의 친이계 의원들은 '미스터 쓴소리'를 자처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키고 있다. 용의 꼬리가 되느니 뱀의 머리가 되겠다는 전략이다.

현재 새누리당 내에서 자칭 타칭으로 친이계로 분류되는 이들은 이재오, 이병석, 정의화, 심재철, 김기현, 김영우, 김재경, 이군현, 권성동, 주호영, 정병국, 김용태, 조해진, 원유철, 김성태, 정문헌, 이철우, 신성범, 김학용 의원 등이다. 이외에도 비박계로 분류되는 황영철, 남경필, 정몽준 의원 등과 중도성향의 의원 몇 명만 더 합류한다면 원내 교섭단체를 구성하고도 남을 정도다. 이들이 당내에서 독자세력을 형성한다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신권력이 된다.

특히 친이계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살아있는 권력인 지난 18대 국회에서 실세로 군림했던 이들로 당연히 모두 재선 이상이다. 현재 상임위에서 위원장이나 간사 등을 맡고 있는 이들도 많다. 소수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이유다.

이명박 정부 정조준한 박 대통령
정치보복 당할까 전전긍긍 친이

반면 친박계 중 78명은 이른바 '박근혜 키드'로 불리는 초선의원들이다. 현재 친박계가 친이계보다 세력은 훨씬 크지만 막상 전면적으로 대립하게 된다면 오히려 친이계한테 친박계가 끌려 다닐 수도 있다는 예상이 나오는 이유다.

괜한 계파싸움으로 이들을 적으로 돌린다면 박 대통령과 친박계 모두에게 부담이다. 친이계가 독자세력화에 성공한다면 친박계로 전향하는 것보다 향후 정국 운영과정에서 훨씬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아이러니하게도 지난 18대 국회에서의 친박계다. 당시 친박계는 당내 소수 계파 임에도 불구하고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사항들에 대한 캐스팅보트를 쥐게 되면서 "진짜 실세는 친박계"라는 평가를 받았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친이계가 당내에서 독자세력화 하는 것을 넘어서 아예 탈당해 신당창당 작업에 나설 것이라는 이야기도 꾸준히 돌고 있다. 친이계의 탈당 시나리오는 안철수 무소속 신당과 힘을 합치는 것부터 독자적 창당, 이른바 친박 중심에서 밀려난 원박 및 중도성향 의원들과 힘을 합치는 방향 등 여러 가지 시나리오가 이미 회자되고 있는 상황이다.

미래권력은 누구?
친이계의 선택은?

세 번째 전략은 '당내 미래 권력에 줄을 서는 것'이다. 다음 총선은 오는 2016년 치러진다. 박근혜정부의 임기 말이다. 지난 19대 총선에서도 확인했듯이 임기 말 실시되는 총선은 대통령의 영향력이 미치기 어렵다. 오히려 지난 총선에서 친이계가 대거 탈락했던 것처럼 친박계라는 이유로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다.

또 다음 총선 때에는 공천을 받는다고 해도 역대 정권 임기 말 예외없이 불어 닥쳤던 정권 심판론에 자칫 발목이 잡힐 수도 있다. 다음 총선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섣불리 친박계로 이동하기보단 현재의 위치에서 당내 권력의 이동을 관망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는 것이다. 다음 총선의 공천권은 분명 미래권력이 쥐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친이계로서는 지금 당장 친박계와 친하게 지내며 무게중심을 이동한다 해도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한편 친이계가 절체절명의 선택을 해야 할 시기는 점점 다가오고 있다. 박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이명박정부의 핵심 사업인 4대강 사업과 한식세계화 사업을 국회에서 감사 청구한 것이 그 신호탄이다. 새 정부 장관 후보자들이 인사청문회에서 줄줄이 전 정부 정책에 대해 부정적 언급을 한 것도 친이계를 더욱 조급하게 하고 있다. 국정원 사건 등은 이미 이 전 대통령을 정조준하고 있다.


이 같은 혹독한 시련 속에서 친이계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과연 위기를 극복하고 옛 영광을 다시 누릴 수 있을까? 정치권의 이목의 집중되는 요즘이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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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