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인물> ‘사고친’ 윤창중, 누구냐 넌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3.05.22 17:11:58
  • 댓글 0개

아군 없는 외톨이 ‘사방이 적’

[일요시사=경제1팀]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 그는 시한폭탄과도 같은 인물이다. 그간 정가 안팎에서 크고 작은 사고를 치며 악명을 떨쳐왔다. 자신과 반하는 세력에겐 거침없이 막말을 쏟아내는 버릇이 있을뿐더러 상대와는 전혀 소통하지 않는 불통 문제를 노출하곤 했다. 그는 결국 새 정부 출범 후 73일만에 ‘성추문 스캔들’에 휘말려 퇴장 당하면서 청와대에 찬물을 끼얹었다.



“청와대 대변인이 대통령의 ‘입’이라는 비유는 포괄적이지 못하다. 대통령의 말을 단순히 옮기는 입이 아니라 대통령과 정권의 수준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얼굴이고, 분신이기 때문이다.”

언론인→정치인
“변신의 귀재”

‘성추행 의혹’을 받고 있는 윤창중 전 청와대 수석대변인이 2006년 <문화일보> 논설위원 재직 당시 ‘청와대 대변인’이란 칼럼에서 쓴 글이다.

윤 전 대변인은 과거 세 차례에 걸쳐 언론에서 정치권으로 오갔다. 충남 논산 출신으로 고려대를 졸업한 그는 1981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코리아타임스> 정치부기자로 언론계에 첫 받을 내디뎠다. 이후 KBS 국제부 기자를 거쳐 <세계일보> 정치부에 있던 그는 1992년 노태우 정권에서 청와대 정무수석실 행정관을 지냈다.

‘노태우 정권’이 끝난 후 다시 <세계일보> 정치부로 복귀해 정치부장까지 지낸 뒤, 1997년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 후보 보좌역으로 다시 정치권에 뛰어들었다. 한나라당 대선 패배 이후 일본 연수를 갔던 그는 1999년 <문화일보> 논설위원으로 언론계로 돌아왔다.


반복적으로 언론계와 정치권을 들락거린 경력 탓에 ‘폴리널리스트’라는 꼬리표가 항상 그를 따라다녔다. 폴리널리스트는 ‘정치’를 뜻하는 폴리틱스(politics)와 언론인을 뜻하는 저널리스트(journalist)의 합성어로, 편향된 정치관에 젖어 정치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언론인을 부정적으로 지칭하는 말이다.

노태우 정부서 청 행정관…이회창 보좌역 맡아
정권 바뀌면 언론계 복귀…권력 따라 ‘이삿짐’

2011년 말 <문화일보> 논설위원을 끝으로 현직에서 물러난 뒤에는 ‘윤창중 칼럼세상’이라는 블로그를 만들어 정치 분야의 칼럼을 썼다. 주로 야권에 대한 극단적, 원색적 비난을 쏟아내는 ‘보수 논객’으로 활동했다.

칼럼 뿐 아니라 종합편성채널 등 방송에서도 야권을 향해 폭언을 퍼부으며 무차별적으로 ‘종북’딱지를 붙이는 것으로 유명했다. 특히 지난 대선 과정에서 그가 쏟아낸 ‘막말’은 극에 달했다.

당시 여권에서 진영을 옮겨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를 지지하고 나선 정운찬 전 총리와 윤여준 전 장관, 김덕룡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상임의장, 김현철 전 여의도연구소 부소장 등에 대해, 윤 대변인은 “정치적 창녀”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정치적 창녀?
‘막말’대명사

그는 18대 대선 하루 전날인 지난해 12월 18일 한 보수언론에 게재한 ‘문재인의 나라? 정치적 창녀가 활개치는 나라!’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박근혜의 일급 정치참모였던 윤여준, 박근혜가 당 대표할 때 원내대표 지냈던 김덕룡, 상도동 YS의 차남으로 YS 덕에 새누리당 여의도연구소 부소장 자리까지 지냈던 김현철…(중략)…수많은 ‘정치적 창녀’들이 나요, 나요 정치적 지분을 요구할 게 뻔하다”고 맹비난했다.


그는 또 “(문 후보가 당선되면) 김정은이 보낸 축하 사절단이 대통령 취임식장에 앉아 ‘종북시대’의 거대한 서막을 전 세계에 고지하게 될 것”, “종북세력의 창궐 시대가 도래 할 것”, “굽실굽실 대서라도 정권 잡아야 하나”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는 안철수 전 무소속 대선 후보(현 무소속 의원)와 박원순 서울시장에 대해서도 인신공격성 비난을 쏟아냈다.

그는 지난해 8월 자신이 고정출연하는 한 종편 시사프로그램에서 “<안철수의 생각>이란 책을 보면 한마디로 젖비린내 난다. 입에서 어린아이, 젖냄새가 풀풀 난다”고 말했다.

안철수 전 후보가 대선에서 사퇴한 직후에는 ‘더러운 안철수! 분노를 금할 수 없다’라는 긴급기고문에서 “백방으로 머리 굴리고 굴려도 문재인을 꺾을 수 없게 되니 돌연 ‘정권교체를 위해 백의종군하겠다’고 후보 사퇴하는 안철수! ‘순교자’ 연출하는 안철수!”라며 “뭐? 문재인이 단일후보다? 정말 인간의 위선과 가증스러움에 구역질을 참을 수 없다. 더러운 술책에!”라고 썼다.

지난 2011년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직전에 쓴 <문화일보> 칼럼에선 “(박원순이 시장 되면) 종북세력들이 점령군 완장 차고 몰려가 서울시청 요직은 물론 17개 산하단체 모두 꿰찰 겁니다.

법정에서만 김정일 장군 만세 외치는 게 아니라 종북 시위꾼들이 광화문광장에 모여 김정일 장군님 만세! 함성을 터뜨리고야 말 것”이라고 주장했다.

‘감동의 근혜님~’
연일 ‘박근혜 찬가’

반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서는 “가슴 속 저 깊은 곳에서 뭉클뭉클 넘쳐 나오는 감동을 주체할 수 없었다”며 칭송했다. 지난해 <월간조선> 1월호에 쓴 ‘대통령 박근혜를 말한다’라는 글에서는 “(박 대통령은) 단언하건대 권력의 심장인 청와대에 들어가면 국민들에게 ‘박정희+육영수의 합성사진’을 연상시키고도 남을 만큼 대쪽 같은 원칙과 책임의 정치를 펼칠 것!”이라고 했다.

이런 그가 지난해 말 대선 직후 청와대 수석 대변인으로 임명되자마자 박 대통령이 주장해 온 ‘국민대통합’과 거리가 먼 인사라는 지적이 쏟아졌다. 박 대통령은 18대 대선에서 당선된 후 5일만에 윤 전 대변인을 당선인 수석대변인으로 ‘깜짝 임명’했다. 야당은 물론 여당에서도 윤 전 대변인 임명에 대해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자신이 썼던 글들에 대한 ‘집중 포화’가 이어지자 윤 전 대변인은 블로그를 폐쇄하기도 했다. 또 막말 논란을 일단락 짓기 위해 기자회견을 열고 “제가 쓴 글과 방송에 의해 마음에 상처를 입은 많은 분들께 송구한 마음”이라고 공식 사과했다.

이에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 전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은 트위터를 통해 “윤창중... 깃털 같은 권력 나부랑이 잡았다고 함부로 주둥아리를 놀리는데...정치창녀? ‘창녀보다도 못난 놈’...”이라는 글을 올려 논란이 확대되기도 했다.

‘보수논객’야당에 원색적 비난 쏟기로 유명
새정부 출범 73일만에 ‘성스캔들’로 경질

수석대변인에 이어 인수위 대변인을 지내면서도 그를 둘러싼 구설수는 끊이지 않았다. 공식 브리핑 외에 인수위와 관련된 내용을 전혀 전하지 않는 등 ‘불통 인수위’의 상징적인 인사로 부각되기도 했다.


그는 주요 인선을 발표할 때 밀봉된 봉투를 뜯어 인선 내용 문서를 꺼내는 장면을 연출해 ‘밀봉인사’라는 비판을 받았다. 특히 대언론 창구를 본인으로만 한정, 자신이 정치부 기자였던 점을 강조하며 인수위 기자들에게 취재를 제한하려는 모습을 보여 눈총을 받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그러나 인수위 업무와의 연속성 등을 들어 윤 대변인을 청와대 대변인으로 발탁했다. 이후 윤 전 대변인은 브리핑에 심혈을 기울이며 큰 논란을 잠재웠지만 김행 대변인과의 갈등성 등 내부 잡음은 끊이지 않고 새나왔다. 이런 와중에 윤 전 대변인은 박 대통령의 취임 후 첫 미국 방문길에 함께 올랐다.

역사상 ‘초유’
외교 성스캔들

박 대통령 방미를 수행하던 윤 전 대변인은 지난 8일 술을 마신 뒤 한국문화원 인턴 여성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현지 경찰은 주미대사관에 윤 대변인에 대한 신병 확보를 요청했다고 알려졌으나, 그는 당일 낮 숙소에 있던 짐도 챙기지 못한 채 서둘러 귀국했다.

이후 온라인을 중심으로 ‘성추문 이야기’가 급속도로 확산되기 시작했고, 청와대는 24시간이 지난 뒤에야 LA에서 긴급 브리핑을 갖고 윤 대변인의 경질을 발표했다. 윤 전 대변인은 귀국 후 청와대 민정수석실로부터 성추행 의혹과 관련해 조사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의 경질은 새 정부 출범 후 73일 만이다. 청와대 대변인을 ‘대통령과 정권의 수준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얼굴’이라고 표현하던 그는 대한민국 역사상 ‘초유’라는 수식어가 붙은 ‘외교 성 스캔들’의 주인공이 되어 청와대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됐다.
 
김설아 기자 <sasa7088@ilyosisa.co.kr>



윤창중은?

▲충남 논산 출생 ▲경동고·고려대 화학과·고려대 정책대학원 정치학과·중앙대 정치외교학 박사과정 수료 ▲한국일보 ▲코리아타임즈 정치부 기자 ▲KBS 보도본부 국제부 기자 ▲세계일보 정치부 차장·부장 ▲문화일보 논설위원 ▲불교방송 객원논평위원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통일연구원 고문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자문위원 ▲윤창중 칼럼세상 대표 ▲제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대변인 ▲청와대 대변인

 

윤창중 후임은?
‘썼던 사람’다시 쓰나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 ‘성추문 의혹’으로 전격 경질된 가운데 후임 대변인에 누구를 임명할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윤 전 대변인은 그동안 김행 대변인과 함께 공동 대변인을 맡고 있었다. 

청와대 안에서 아직 ‘투톱’ 대변인 체제를 유지할지 여부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언론접촉 빈도가 높은 정권 초반임을 감안할 때 현 체제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특히 이번과 같은 사태의 재발을 피하기 위해 다각적으로 검증된 인물들이 거론되고 있다. 

MB 정부에서 공동 대변인을 맡은 바 있던 박선규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안형환 전 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 최형두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 등이다. 

박 전 차관은 KBS 기자 출신으로 언론 경험이 풍부하고 공동 대변인 체제에도 익숙한 인물이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으로 활동했으며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는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과 함께 당선인 공동 대변인으로도 활동했다. 전북 익산 출신으로 남강고와 고려대 교육학과를 나왔으며 이명박 정부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을 지냈다. 

안 전 대변인 역시 KBS 기자 출신으로 18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지난 대선에서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대변인으로 활약했다. 전남 무안 출신으로 영흥중학교, 목포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대 서양사학과와 하버드대 행정대학원인 케네디스쿨을 졸업했다. 

최 비서관은 문화일보 기자 출신으로 김황식 전 국무총리 시절 국무총리실 공보실장으로 일했다. 경남 고성 출신으로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뒤 문화일보에 입사해 외교부 출입기자, 워싱턴 특파원과 논설위원, AM7 편집장 등을 지냈다.

최 비서관은 기자 시절 외교통으로 통했으며 부드럽고 신사적인 스타일로 정평이 나 있는 인물이다. 지난해 2월 국무총리실 공보실장으로 임명 돼 활동하다 박근혜 정부 출범에 맞춰 청와대로 입성했다. <아>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