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버린 탈북 브로커 '국가기밀' 폭로

  • 강현석 angeli@ilyosisa.co.kr
  • 등록 2013.05.06 15:5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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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집단송환 돕다 피박만 썼다"

[일요시사=사회팀] 베트남에서 탈북자 송환을 돕다가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이 있다. 류모(73)씨와 이모(63·여)씨 부부는 노무현정부와 이명박정부에 보상을 요구했으나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 박근혜정부가 출범한 올해, 이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대한민국 전역이 '붉은 악마'의 함성으로 뒤덮였던 2002년. 류씨 부부는 베트남 호치민에서 미니호텔을 운영하고 있었다. 한반도로부터 3500여km나 떨어진 이역만리. 그곳에서 류씨 부부는 '국가'란 이름으로 뜻하지 않은 사건에 휘말렸다.
 
정부·교회 권유로
'보호시설3' 운영

사건으로부터 10여년이 흐른 2013년. 경기도 화성의 한 횟집에서 만난 류씨 부부는 한 통의 진정서를 내밀었다. 진정서 첫 머리에는 류씨의 부인인 이씨의 이름과 함께 "저는 보호시설3 관리인 류00의 처 되는 사람입니다"란 글이 적혀 있었다. '보호시설3'은 류씨 부부가 북한을 탈출해 온 난민들을 수용했던 미니호텔의 비공식 명칭이었다. 류씨 부부는 10여년 전 탈북자를 베트남 국경 밖으로 이송하는 역할을 맡았던 이른바 '운반책'이었다.

류씨는 "(탈북자 보호 및 이송과 관련한) 자세한 얘기는 (국정원 직원이) 밖으로 말하지 못하게 했었다"며 어렵게 입을 열었다. 류씨는 지난 2004년 7월, 베트남에서 체류 중이던 탈북자 468명을 국내로 송환할 당시 베트남 내 '5인의 활동가'로 소개된 인물이다.

노무현정부가 주도한 이 '송환 작전'에서 류씨는 베트남으로 급파된 국정원 직원들과 함께 일했다. 그리고 이 사건에 연루, 베트남에서 추방됐다.

그간 외부로 알려진 것과 달리 류씨는 이른바 '활동가의 얼굴'을 하고 있진 않았다. 그저 베트남에 남아 평범한 교민으로 살고자 했던 류씨. 그런 그가 처음 탈북자 보호를 맡게 된 건 교회와 정부의 권유 때문이었다.


2004년 베트남서 468명 극비리 송환작전 참여
출국 돕다 체포후 강제추방…가족들과 생이별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 베트남으로 이민을 떠났던 류씨 부부는 현지에서 생업을 이어가던 중 호치민의 한 한인교회 목사와 인연을 맺게 됐다. 당시 이 목사는 "탈북자를 다 감당할 수 없으니 (국내 입국 전까지) 보호해 달라"는 요청을 류씨 부부에게 했다. 이는 류씨 부부가 탈북자 보호에 용이한 미니호텔을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류씨 부부는 경제적으로 도움이 될뿐더러 좋은 일을 한다는 생각에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 무렵 류씨 부부에게 도움을 요청한 목사는 베트남 주재 총영사관에도 협조를 요청했다. 류씨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탈북자들 사이에서는 "일단 (중국) 국경을 넘어 베트남에 도착하면 남한에 갈 수 있다"는 소문이 퍼졌던 것으로 전해졌다. 또 "몰려드는 탈북자 수가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자 영사관 측도 곤혹스러워하는 눈치였다"고 류씨는 전했다.

당시 영사관 측은 북한 및 베트남과의 외교 마찰을 우려하고 있었다. 하지만 인도적 차원에서 결국 교회의 요청을 승낙할 수 밖에 없었다. 베트남 내 탈북자 송환 작업을 총영사관이 직접 관리하기로 한 것이다. 이 같은 소식은 즉각 중국 내로 퍼졌고, 소문을 듣고 국경으로 밀려드는 탈북자 수는 나날이 증가했다.

생업인 호텔에
난민들 보호

탈북자들은 중국 내 브로커들과 접선, 제3국을 경유해 남한으로의 망명을 시도했다. 제1경유지는 베트남. 중국 내 브로커들은 통상 100만∼300만원 정도의 보수를 받고 이들을 베트남 호치민역으로 이송했다. 베트남으로 입국한 브로커들은 "탈북자를 데려왔다"며 영사관에 전화를 걸었다. 그럼 영사관은 다시 류씨 등에게 전화를 걸어 탈북자들을 보호하도록 지시했다.

류씨는 "(호치민역 광장에서) 서로 눈빛을 주고받은 뒤 탈북자를 미니호텔로 데려오는 게 일이었다"며 "베트남 공안 당국에 적발되면 현장에서 체포되기 때문에 이송 과정에서 신중을 기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류씨와 같이 탈북자를 관리한 인물은 모두 4명. Y씨와 S씨, L씨, 그리고 또 다른 Y씨였다. 이들은 각각 100여명의 탈북자를 보호하며 매주 20여명을 제2경유지인 라오스, 캄보디아 등지로 넘겼다.

류씨의 증언에 따르면 '보호시설3'에는 늘 80∼100여명의 탈북자가 상주했다. 준비된 방은 모두 10개. 각 방마다 8∼10여명의 탈북자가 있었던 셈이다. 이들이 머무르는 방에는 TV와 컴퓨터가 놓였다. 탈북자들을 교육하기 위한 시청각 시설이었다. 탈북자들은 그곳에서 <대장금>, <허준> 등과 같은 한국 드라마를 시청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도착한 순서에 맞춰 제2경유지로 이동했다.

하지만 워낙 많은 인원이 함께 생활하다보니 그 안에서 크고 작은 문제들이 발생했다. 이씨는 "탈북자 중 임산부가 있었을 때 굉장히 난처했다"며 "한 번은 출산이 임박한 임산부가 있어 몰래 출산할 수 있는 병원을 수소문 하느라 애를 먹었다"고 말했다. 또 류씨는 "남자들 간에 칼부림이 일어날 뻔해 '이렇게 가다간 우리 다 죽는다'고 큰 소동이 났던 적이 있다"고 거들었다.

이 같은 문제는 보호시설이 수용해야 할 인원이 많아질수록 격화됐다. 한 여성 탈북자는 보호시설에서 임신을 하기도 했으며, 또 다른 탈북자는 우울증으로 자살을 기도했다. 5개의 보호시설에서 매일같이 사건이 터져 나왔다. 류씨는 "하루 10여명의 탈북자가 미니호텔로 왔는데 라오스나 캄보디아로 넘길 수 있는 탈북자는 1주일에 많아야 30명이었다"며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순번이 밀려 베트남에 장기 체류하는 탈북자가 많아졌고, 어느 틈엔가부터는 도저히 탈북자들을 감당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문제의 심각성이 대두되자 류씨 등은 영사관 측과 협의, 되도록 많은 탈북자를 단기간에 이송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됐다. 이 과정에서 베트남 법무성으로 로비가 들어갔다. 탈북자 468명을 한꺼번에 출국시키는 조건으로 류씨 등이 로비활동을 벌인 것이다. 로비에 사용된 돈은 류씨 등이 영사관으로부터 지원받고 있던 금액의 일부로 충당했다. 류씨에 따르면 당시 로비 명목으로 명품시계가 오고 갔다. 그리고 이들의 노력은 결실을 맺었다. 베트남 출입국관리소가 탈북자들의 출국을 조건부로 허용한 것이다.

당시 베트남이 내건 조건은 "탈북자들의 집단 송환을 비밀리에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국 정부는 베트남의 요구를 수용하고, 전세기 2대를 준비하는 한편 국정원 직원들을 현지로 파견해 탈북자들의 신원 파악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류씨 등은 간첩으로 의심 되는 인물들을 국정원 직원에게 넘겼다. 송환과 관련한 모든 작업은 계획대로 준비되고 있었고, 총영사는 류씨 등 5명과 만나 "이번 일이 끝나면 모두 생업으로 돌아가자"는 약속을 했다.

그러나 비밀리에 추진되던 이 프로젝트는 작전을 불과 하루 앞두고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정부 주도의 탈북자 송환 사실이 국내 언론을 통해 공개된 것이다. 류씨 부부는 "그때 정부가 (비밀리에 추진한다는) 약속만 지켰어도 베트남에서 추방될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80∼100명 상주
한주 30명 출국

베트남에 체류 중이던 468명의 탈북자는 2004년 7월27일과 28일 양일에 걸쳐 전세기편으로 한국에 입국했다. 그리고 탈북자들이 떠나자 그 후폭풍은 류씨 부부에게 닥쳤다. 불법체류자(탈북자)를 비호·은닉해 온 혐의로 류씨 등 5명이 전원 체포된 것이다.

류씨는 "전세기가 이륙한 후 베트남 공안 수십 명이 들이닥쳐 우리 부부가 갖고 있던 모든 재산을 압수했다"며 "영사관의 면회 신청마저 거부할 정도로 분위기가 심각했다"고 증언했다.

3주간의 수감 생활 동안 류씨는 외부로 연락을 취하기 위해 부인 이씨에게 부탁, 핸드폰을 사식에 몰래 숨겨 넣는 등의 공작을 시도했지만 모두 무위에 그쳤다. 뒤늦게 만난 총영사는 류씨 등 5명에게 "사건을 원만히 해결할 수 있다"며 "일단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보호소 내부 직원을 통해 건네 들은 실상은 충격적이었다. 류씨 등 5명 모두 베트남에서 강제 추방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이들은 송환 작전을 앞두고 총영사에게 신변 안전을 약속받은 상태였다.


출소 후 이들에게 기다린 현실은 가혹했다. 강제출국 조치된 류씨 등은 베트남에 남아있는 가족들과 생이별을 겪어야 했다. 류씨가 한국으로 추방되던 그날. 마중 나온 총영사는 류씨에게 "미안하다"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하지만 류씨의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한국 공항에 입국한 류씨 등은 가장 먼저 외교부로 달려가 담당자 면담을 요청했다. 하지만 탈북자 송환 작전을 담당한 직원은 그 자리에 없었다. 다른 직원 2명은 이들에게 "수고했다"며 "언론과 접촉하지 말고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얘기했다. 류씨의 주장에 따르면 이 같은 패턴은 3개월 내내 반복됐다. 류씨 등이 외교부를 찾으면 통일부로 소관을 넘기고, 통일부는 다시 국정원으로 책임을 떠넘기는 식이었다.

보상 약속 정부 안면 바꿔 모르쇠
외교부-통일부-국정원 책임 넘기기
훈포장 수여도 말 바꿔 없던 일로

이 과정에서 한 외교부 관계자는 류씨 등 5인에게 '훈장 수여'를 약속했다. 또 국정원 관계자는 보상금을 빌미로 이들을 설득했다. 하지만 "훈장은 커녕 보상금마저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다"고 류씨 부부는 주장했다. 보상금의 경우 1인당 1만6000달러라는 다소 적은 액수가 지급됐다는 것.

류씨는 "베트남에서 추방될 때 입은 재산 손실만 3만달러가 넘는데 제대로 된 보상이 이뤄진 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씨 역시 "남편이 추방된 후 혼자서 사업을 꾸리다보니 힘든 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며 "특히 베트남 경찰은 늘 우리 미니호텔을 감시하는 등 (사건 이후) 정상적인 영업이 불가능한 상태였다"고 억울함으로 호소했다. 이씨는 베트남 당국의 감찰이 심해지자 사업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귀국했다.

현재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은 류씨와 S씨, L씨다. 지난해 베트남 당국에 체포된 Y씨는 입국 금지가 해제된 후 리오스로 들어가 '탈북자 브로커'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다른 Y씨는 베트남 현지인과 결혼해 베트남에 재정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경제 사정은 그리 좋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류씨는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당시 탈북자를 관리했던 5명 모두가 생활고를 겪고 있다"며 "정부를 믿고 누군가는 해야할 일을 한 건데 이렇게 다들 어렵게 사는 건 아니지 않냐"고 반문했다. 

"국정원 직원들은
다들 승진했는데…"

이씨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캄보디아를 방문했을 때 탄원서를 전달했고,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도 인수위 시절 탄원서를 제출했지만 아무도 우리 얘기를 듣지 않았다"며 "구출 작업 당시 함께 일했던 국정원 직원 A씨는 간첩을 잡아 승진도 하고 대학교 총장으로 부임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우리만 힘들 게 사는 게 조금은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수소문 끝에 만난 S씨는 "당시 모든 방법을 동원했지만 해결이 안 됐고, 지금에 와서 언론 인터뷰에 응할 마음이 전혀 없다"며 "북한 측에서 입국시킨 탈북자들을 다시 북으로 송환하라는 말에 한국 정부는 (알면서도) 뒷짐을 질 수 밖에 없었던 상황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일요시사>는 리오스 현지에서 브로커로 활동 중인 Y씨와 통화를 시도했으나 연결이 되지 않았다.

Y씨는 최근 지인에게 '200달러를 빌려달라'고 호소하는 등 극심한 생활고를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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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표 계승?’ 이재명정부 태양광 로드맵

‘문재인표 계승?’ 이재명정부 태양광 로드맵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전 세계적으로 기후 위기가 가시화되면서 에너지 정책은 범국가 차원에서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최근 환경부 장관 후보자의 발언으로 이재명정부의 에너지 정책 방향이 윤곽을 드러내는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문재인정부의 태양광 사업이 어른거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3일 대통령실은 “국회 기후위기특위에서 활동하는 등 미래 환경문제를 지속적으로 고민해온 3선 국회의원”이라고 소개하면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성환 의원을 환경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김 후보자는 22대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위원장 한정애, 민주당) 위원으로 활동하며 탈원전·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노력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 대선공약 대통령실은 그가 “‘기후 위기는 모두의 생존 위기’라는 대통령의 문제의식을 잘 이해하고 그동안의 입법 경험을 바탕으로 환경문제에 적극 대응할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실제 김 후보자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안’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개발 및 보급 촉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 등을 발의한 바 있다. 이번 김 후보자의 지명으로 이재명정부의 환경 정책이 구체화되고 있는 모양새다. 김 후보자는 지난 24일 오전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기자들을 만나 “재생에너지 기반으로 모든 에너지 체계를 바꾸고 화석연료에 의존하지 않는 재생에너지 중심의 체계를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원전은 보조 에너지원으로 활용하겠다는 뜻도 비쳤다. 그는 ‘재생에너지를 늘리면 전기료가 오른다’는 우려에 대해 “전 세계적으로 균등화발전비용(같은 양의 전력을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가장 싼 전원은 이미 풍력과 태양광”이라며 “다만 아직 한국에선 여러 기회 비용, 시간 비용, 금융 비용이 쌓여 상대적으로 비쌀 뿐이다. 실제 요금이 오를 일은 없다. 오히려 그런 식의 접근이 대한민국의 에너지 전환을 가로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탈원전에 대해서는 “각 나라 특성에 따라 원전을 쓰는 나라가 있는데 한국도 탈원전을 바로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주 에너지원으로 재생에너지를 쓰고 원전을 보조 에너지원으로 쓰는 것이 (이재명정부의) 탈탄소 정책 기조”라고 말했다. 김 후보자는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으로 신설 예정인 기후에너지부 장관으로도 거론되고 있다. 기후에너지부는 분리돼있는 기후와 에너지 관련 부처 업무를 통합한 조직이다. 그는 “기후에너지 문제를 어떻게 하는 게 가장 효과적인지 빠른 시일 내로 큰 방향을 잡겠다”며 “국정기획위원회에서 조직개편안을 검토하고 있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신재생에너지로 전환 필요” “원전은 보조 에너지원으로” 환경부 장관 후보자가 에너지 ‘전환’을 예고하면서 일각에서는 문재인정부의 태양광 사업이 떠오른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대선공약으로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내세운 바 있다. 이를 세부적으로 진행하는 과정에서 태양광 사업이 크게 대두돼 국가 예산이 투입됐다. 문정부는 출범하면서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20%까지 높이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늘리기 위해 설비를 확충하기로 했다. 태양광, 풍력발전소 등이다. 당시 내용대로면 총 110조원에 이르는 돈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정부는 국가 예산과 공기업, 민간 등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문정부 임기 내내 전국 단위로 태양광 사업을 위한 지원금이 뿌려졌다. 당시 문정부는 신재생에너지 확대와 함께 탈원전 로드맵을 동시에 진행했다. 일부 원전이 영구적으로 정지됐고 짓고 있던 원전 공사가 중단됐다. 단계적 원전 감축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하겠다는 취지였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나온 잡음이다. 특히 태양광 사업을 둘러싼 각종 비리 의혹은 정권이 교체된 이후에도 문정부를 오랫동안 괴롭혔다. 국가 주력 사업이었던 만큼 정권이 바뀐 이후 새 정부의 표적이 된 상황에서 실제 문제가 드러난 것이다. 천문학적 예산 투입 윤석열정부는 신재생에너지 지원 사업에 대한 대대적인 점검을 진행했다. 윤정부 국무조정실은 일부 표본만 조사했는데도 불구하고 2000억원이 넘는 돈이 불법으로 사용된 정황이 드러났다고 발표했다. 당시 국무조정실 정부합동 부패예방추진단은 전국 12개 지자체와 한국전력, 한국에너지공단을 대상으로 ‘전력산업 기반기금 사업’ 운영 실태에 대한 합동 점검을 벌인 결과 총 2267건(2616억원)의 위법·부당 사례를 적발했다고 밝혔다. 해당 기금은 산업자원통상부(이하 산업부)가 전기 요금의 3.7%를 징수해 조성한 돈으로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지원과 보급에 주로 사용됐다. 5년간 투입된 금액은 12조원에 이른다. 1차 조사에 따르면 신재생에너지 지원 사업에서 부적절한 대출과 보조금 부당 집행, 회계 부실 등이 적발됐다. 태양광 사업의 경우 점검 대상의 17%인 1129건에서 1847억원의 위법 대출 등이 확인됐다. 2차 점검에서는 적발 금액이 2배로 늘었다. 국무조정실은 2019~2021년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에 쓰인 금융지원사업(1조1325억원) 내역과 2017~2021년 보조금 지원 규모가 컸던 25개 지자체의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사업 등을 조사했다. 그 결과 금융지원 사업에서 4898억원,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 보조금 사업에서 574억원, 전력 분야 연구개발 지원사업에서 266억원, 기타 전력기금 사업에서 86억원의 부정 집행 사례가 나타났다. 당시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신재생에너지 지원금 대부분은 태양광 사업에 쓰였다”며 “가장 규모가 컸던 부정 금융지원 사업 사례 중 99%는 태양광 사업”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태양광 업자들은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행해 불법 대출을 받았고 가짜 세금계산서로 공사비를 부풀려 지원금을 타냈다. 감사원 조사로 검찰 수사까지 대출을 받은 뒤 세금계산서를 취소, 축소하는 등 탈루가 의심되는 정황도 드러났다. 가짜로 버섯 재배 시설이나 곤충 사육 시설, 축사 등 농림축산업 시설을 만들어 놓고 신재생 시설을 짓겠다고 대출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농지에 신재생 시설을 지을 때는 용도변경 등 인허가 절차가 필요하지 않고 생산한 전력을 팔 때 받을 수 있는 보조금 한도도 커진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한 마을회는 마을 창고를 짓겠다며 전력기금에서 돈을 받아 부지를 사들였지만 실제 창고는 짓지 않았고 부지는 마을회장이 6촌에게 되팔았다. 지방자치단체의 문제도 드러났다. 한 군은 타낸 보조금을 다 쓰지 못하고 약 24억원이 남자 이를 다른 계좌로 빼돌렸다가 적발됐다. 한 시는 보조금을 빼돌려 관용차를 사기도 했다. 감사원 조사도 이뤄졌다. 감사원은 2023년 11월 ‘신재생에너지 사업 추진 실태’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신재생에너지 사업의 목표와 이행, 인프라 구축, 관리 등 3개 분야로 나눠 추진 과정과 집행 전반을 들여다봤다. 감사원에 따르면 산업부는 2017년 신재생 발전 목표를 상향하면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검토했지만 막상 후속 조치 이행에는 소홀했다. 감사원은 “톱다운(하향식) 방식으로 내려온 목표에 따라 무리한 계획이라도 수립해야 했다는 이유로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는데도 면밀한 검토 없이 강행되고 짧은 기간 내 일관성 없이 변경됨으로써 정책 혼선과 신뢰성 저하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윤석열정부서 전반적 점검 8000억 넘는 예산 줄줄 샜다 대통령의 대표 공약이었던 만큼 정부 부처가 이를 맞추기 위해 과도하게 정책을 추진했다는 것이다. 문정부가 신재생에너지 확대로 야기될 수 있는 전기요금 인상 가능성을 감췄다는 지적도 나왔다.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르면 산업부는 문정부의 국정 과제대로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늘릴 경우 2030년까지 전기요금을 40% 가까이 올려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시 청와대의 압박에 12년 동안 10.9%만 오를 것이라고 국민 부담을 축소했다. 태양광 사업의 여파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새만금 태양광 발전사업 비리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은 지난 1월 군산시청에 대한 추가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감사원 감사 결과 군산시 태양광 발전사업 수주 과정에서 뒷돈이 오간 정황이 포착됐고 이를 검찰에 수사 의뢰를 하면서 시작된 일이다. 당시 군산시장은 군산시가 1000억원 규모의 태양광 사업을 추진할 때 자신의 고교 동문이 대표로 있는 업체에 특혜를 준 혐의를 받고 있다. 해당 업체가 사업자금을 조달하는 금융사가 제시한 연대보증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는데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해 계약 체결을 지시했다는 게 감사원의 판단이다. 앞서 검찰은 새만금 태양광 사업을 주도한 회사 대표를 알선수재 혐의로 기소했다. 그는 태양광 발전사업 과정에서 정·관계 인사에게 로비를 해주겠다며 뒷돈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그의 진술로 비리 의혹은 정치권으로까지 번졌다. 핵심 수사 대상에 올랐던 건설사 대표가 실종됐다가 시신으로 발견되는 일도 일어났다. 관련 시장은 반응 오는 중 이 대통령이 기후, 에너지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김 후보자가 재생에너지를 언급하면서 관련 시장이 다시 들썩이는 모양새다. 실제 태양광 관련 주가가 오르는 등 주식시장에는 벌써부터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 윤정부는 문정부의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통째로 부정하다시피 했다. 반대로 문정부의 정책을 다시 끄집어낸 이정부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