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고백'으로 본 국정원사건 실체 '재구성'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3.05.01 15:4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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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사건, 윗선의 은폐지시 있었다"

[일요시사=정치팀] 지난해 대선기간 여야는 국정원이 야권 대통령후보에게 불리한 댓글을 작성하며 선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놓고 치열하게 대립했었다. 이른바 '국정원녀 사건'이다. 그런데 이 사건을 수사했던 권은희 당시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이 최근 수사과정에서 수사를 축소?은폐하라는 윗선의 지시가 있었다고 폭로해 또 한 번 파문이 일고 있다. 국정원사건을 둘러싸고 당시 경찰내부에선 무슨 일들이 벌어졌던 걸까? <일요시사>가 권 과장의 폭로를 토대로 국정원 사건을 재구성해봤다.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현 송파경찰서 수사과장)이 지난 19일 국정원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수사를 축소·은폐하라는 경찰 수뇌부의 압력을 받았다고 폭로했다. 이 사건을 담당한 수서경찰서가 국정원 사건과 관련해 국정원이 정치개입을 금지한 국정원법을 위반한 것이라면서도 대선개입은 아니라는 다소 황당한 수사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이었다.

정치개입?
대선개입?

권 과장은 당초 이 사건을 맡아 수사해왔으나 지난 2월4일 알 수 없는 이유로 송파경찰서로 전보처리 됐다. 권 과장은 수사 도중 과로로 병원에 몇 차례 드나들면서도 수사 의지를 불태워 왔기 때문에 그의 전보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경찰 주변에서는 권 과장이 수사방향을 놓고 경찰 지도부와 갈등을 겪다 전보조치 된 것이라는 뒷말이 무성했지만 경찰 측은 규정에 따른 인사였을 뿐이라며 선을 그었다.

권 과장은 이날 작심한 듯 언론들과 연이어 인터뷰를 갖고 "서울지방경찰청뿐 아니라 경찰청으로부터도 (압력)전화를 받았다"며 "경찰 고위관계자가 수차례 전화를 걸어와 '(국정원 직원) 김모씨의 불법 선거운동 혐의를 떠올리게 하는 용어를 언론에 흘리지 말라'는 취지로 지침을 줬다"고 말했다.

'국정원사건' 수사 발표 때 무슨 일 있었나?
"수사개입" VS "사실무근"…양보 없는 진실공방


권 과장은 "김씨와 함께 댓글을 단 '참고인 이모씨'의 존재가 처음으로 드러났을 때도 경찰 상부로부터 주의를 받았다"며 "민주통합당이 국정원 여직원에 대한 고발장을 제출한 지난해 12월12일부터 송파경찰서로 전보된 2월4일까지 경찰 윗선에서 지속적으로 부당하게 수사에 개입해 우리 실무진들이 수사에만 집중하기가 힘들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권 과장의 폭로를 토대로 지난해 대선정국을 집어삼킨 국정원사건을 복기해보면 그동안 미스터리로 남았던 의문점들이 하나 둘씩 풀리는 듯하다.

지난해 12월16일은 대선후보들의 마지막 3차 TV토론이 열린 날이었다. 대선을 불과 3일 앞두고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오차범위 내에서 접전을 벌이던 민감한 시기였다. 이날 토론의 최대 화제는 바로 국정원 여직원의 대선개입 논란. 양 후보는 이를 두고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치열한 설전을 벌였다.

오차범위 내 경합
한순간에 뒤집혀

그런데 토론회가 끝난 직후 황당한 일이 벌어진다. 이른바 국정원녀 사건을 수사 중이던  수서경찰서가 오후 11시경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하겠다고 기자들에게 알려온 것이다. 당초 다음 날인 17일 공식브리핑을 하겠다고 이미 공지한 상태에서 돌연 오후 11시라는 늦은 시간에 브리핑을 앞당겨 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수서경찰서는 이날 오후 11시20분경 보도자료를 통해 "국정원 직원이 댓글을 단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국정원녀 사건을 두고 박근혜 후보와 치열한 설전을 벌였던 문재인 후보 측으로서는 한 순간에 모든 것이 뒤집히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당시 수서경찰서 관계자들은 "갑자기 서울경찰청에서 지시가 내려왔다"며 당황스런 표정을 지었고, 이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진 김용판 당시 서울경찰청장은 "언론에 최대한 빨리 알리는 게 도리라고 생각했다"며 당당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이날 발표는 경찰이 수사를 시작한 후 불과 3일 만에 이뤄진 것이었다. 경찰은 12월13일 김모씨 컴퓨터 2대를 제출받아 분석을 시작했다.


하지만 댓글은 집에서만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김씨가 경찰에 제출하기 전 하드디스크의 저장내용을 이미 삭제했거나 아예 하드디스크를 교체했을 가능성까지 있었지만 경찰은 이러한 조사는 전혀 진행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서둘러 발표를 강행한 것이었다.



또 서울지방경찰청은 이날 보도자료를 직접 만들어 발표 30분 전에야 수서경찰서 수사팀에 보냈는데 보도자료가 지방청에서 만들어져 수사팀으로 하달되는 것은 무척 드문 경우다. 정작 수사의 주체인 수서경찰서 수사팀은 서울청의 발표가 있은 후 이틀 후에야 컴퓨터 분석결과를 받아볼 수 있었다.

대선기간 보여준 경찰의 이 같은 행태는 일반 상식으로는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러나 권 과장의 폭로대로라면 이 모든 것이 설명이 된다. 권 과장의 폭로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하지만 권 과장이 언급한 ‘윗선’으로 지목되고 있는 서울경찰청은 권 과장의 폭로에 대해 사실무근이라며 적극 반박하고 있다.

서울청 측은 "대선 이후까지 수사를 미적댄다는 비판이 있는 상황에서 신속히 수사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커 발표를 서두르게 됐다"며 "권 과장이 수사 초기 단계에서 '국정원에 혐의가 있다'는 식의 얘기를 언론에 흘려 수사 공정성을 해칠 우려가 있어 지휘부에서 자제를 요구한 것을 축소·은폐라고 주장하니 어이가 없다"고 주장했다

"공정성 당부한 것"
"은폐 지시한 것"

특히 양측이 반박과 재반박을 이어가며 진실공방이 치열해지면서 전혀 새로운 논란도 불거지고 있다. 오히려 권 과장이 수사과정에서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쪽으로 유리한 수사결과를 얻어내기 위해 편파적인 수사를 진행했다는 주장이다.

권 과장은 수사 당시 국정원 직원 김모씨의 컴퓨터 2대를 서울청에 맡기면서 혐의 관련 키워드 100여개를 분석 의뢰했다. 하지만 서울청은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는 이유로 키워드를 박근혜, 문재인, 새누리당, 민주통합당 등 4개로 대폭 축소해 감식한 뒤 댓글이 없다는 발표를 했다. 권 과장은 이를 두고 윗선의 수사개입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서울청은 이에 대해 대선과 직접 관련성이 없는 단어가 대다수여서 핵심 키워드만 검색했다고 반박하고 있다.

당장 보수진영에서는 대선관련성을 수사하는 것 치고는 너무 많은 키워드를 제시했다며 권 과장이 수사지연을 노리고 이 같은 일을 벌인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수서경찰서는 당시 '가식' '호구' '네이버' 등 대선과는 별 관련이 없어 보이는 단어들도 검색 키워드로 의뢰한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당초 수서경찰서의 요청대로 100여개의 키워드를 일일이 분석했다면 수사는 크게 지연됐을 것이고 자칫 수사결과가 대선 이후에나 발표될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수사결과가 대선 이후에나 발표됐다면 국정원의 선거개입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선거판세는 박근혜 당시 후보에게 무척 불리해졌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권 과장의 정치편향성을 의심하며 양측 모두 수사의'결과'보다는 수사의 '속도'가 중요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폭로 배경은? "진실 밝혀지길 바라는 마음"
정치편향성 논란 제2라운드 '엉뚱한 불똥'

그러나 권 과장은 "당시는 증거 수집 단계였는데, 혐의와의 연관성을 운운하며 키워드를 빼는 것은 적절치 않았다"며 정당한 요청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일선 경찰들에 따르면 "지방청에 증거물 분석을 의뢰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지방청이 상위기관이라도 일선 서의 요구대로 분석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증언하고 있다.


하지만 권 과장은 수사과정에서 국정원 측으로부터 정치편향성을 의심받은 것은 사실이다. 국정원 측은 권 과장에 대해 "본질에서 벗어난 사소한 부분까지 뒤지면서 무리한 수사를 하고 있다"며 "(권 과장이) 언론에 수사내용을 흘리는 것 같다. 우리 측이 고발한 주거침입, 감금,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등의 항의를 수차례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권 과장은 광주 출신으로 제43회 사법고시에 합격해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인 지난 2005년 여성 최초로 경정으로 경찰에 특채됐다.

이외에도 권 과장은 "서울경찰청이 중간수사 경과를 발표한 뒤 국정원 직원 김씨의 컴퓨터 하드디스크 최종 분석자료를 우리에게 안 주려고 했다"며 "우리(수서경찰서 수사팀)가 '당신들, 법 위반이다'라는 말까지 하며 격렬히 항의하고 나서야 뒤늦게 컴퓨터를 돌려받을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서울청은 컴퓨터 반환이 늦어진 건 방대한 검색자료 정리 때문이었다며 수사 축소나 은폐 의혹은 사실무근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엉뚱한 진실게임
'정치입문 한다?'

한편 일각에선 권 과장의 폭로가 정치권 입문을 위한 포석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보수논객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지난번 검찰의 백혜련도 그러던데 권은희도 양심선언 비슷(하게) 한 뒤 민주당에 입당하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면서 "공직자 양심선언 뒤 정계진출 포기 선언도 함께 하도록 여론을 조성해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국정원 사건을 둘러싼 한 치 양보도 없는 진실게임이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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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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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