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운아' 안철수 '정계개편 뇌관' 급부상 내막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3.04.29 17: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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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권 포기하더니 금배지 달고 여의도 회오리 중심에 서다

[일요시사=정치팀] '풍운아' 안철수가 돌아왔다. 가슴에 금배지를 달고서 말이다. 지난해 대선에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에게 ‘양보 아닌 양보’를 하고 미국으로 떠났던 그는 80여 일 만에 돌아와 다시 대한민국 정계개편의 핵뇌관으로 급부상했다. 대권을 꿈꾸다 국회의원의 길을 선택한 안철수 의원은 지난 24일 서울 노원병 보궐선거에서 60.46%의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선됐다. 안 의원의 승리는 민주당의 재보선 전패 속에 이뤄낸 성과라 더욱 빛났다. 때문에 정치권의 눈과 귀는 모두 안 의원에게 쏠렸고, 야권은 향후 안 의원의 행보에 따라 커다란 지각변동이 불가피하게 됐다. 과연 안 의원은 앞으로 어떠한 행보를 걷게 될까? 또 안 의원의 선택에 따라 야권은 어떠한 지각변동을 겪게 될까? <일요시사>가 예측해봤다.



4·24 서울 노원병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60.46%의 지지를 얻은 안철수 무소속 의원이 허준영 새누리당 후보(32.8%)를 누르고 여의도에 입성했다. 당초 노원병 선거는 안철수 의원의 승리가 예상되기는 했었지만 새누리당이 비교적 거물급인 허 후보를 공천한데다 허 후보를 제외한 나머지 4명이 모두 야권후보라는 점, 또 역대 재보선이 대체로 낮은 투표율을 보여 새누리당의 조직표가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 등의 이유로 판세를 쉽사리 예측할 수 없었다.

압도적 승리
화려한 복귀

하지만 안 의원은 이번 선거에서 예상 밖으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면서 화려하게 정치권으로 복귀하게 됐다. 반면 민주통합당은 참담한 패배를 맛봤다. 민주당은 이번 4·24재보선 12곳에서 전패했다. 국회의원 3곳과 군수 2곳, 광역의원 4곳, 기초의원 3곳 중 어느 한 곳에서도 승리하지 못한 것이다.

그동안 재보선 선거는 집권여당의 무덤이라고 불려왔다. 그러나 민주당이 이번 재보선에서 전패하면서 민주당은 정치역사를 아예 새로 쓰게 됐다. 특히 민주당은 이번 선거에서 지난 대선공약이었던 '기초자치단체장ㆍ기초의원 후보 무공천' 약속까지 스스로 파기해가며 전력을 쏟아 부었다.

일부 민주당 관계자들은 새누리당이 대선공약대로 재보선 무공천을 결정하자 "깨져봐야 정신을 차린다"며 비웃기까지 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국민들과의 약속까지 어겨가며 전력투구하고도 이번 선거에서 전패했고, 명분과 실리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친 셈이 됐다.


안철수의 부활…급변하는 정치지형에 관심집중
"적인가 동지인가?" 민주당 관계설정 애매모호

이제 야권의 무게 중심은 안 의원에게로 급격히 쏠리고 있다. 안 의원에 대해 "국회에 입성한다고 해도 국회의원 300명 중의 1명일 뿐"이라며 평가절하하던 민주당은 어느새 안 의원 1명의 입만 바라보며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향후 안 의원의 선택에 따라 야권의 커다란 지각변동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우선 정치권의 가장 큰 관심사는 안 의원의 민주당 입당 또는 신당창당 여부다. 지난해 대선과정에서 안 의원을 상대로 끊임없이 단일화를 요구했던 민주당은 이젠 끊임없이 안 의원의 입당을 구걸(?)하는 신세가 됐다. 안 의원이 신당을 창당할 경우 못해도 원내 제2당의 위치는 지켜왔던 민주당이 안철수 신당과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여야 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동지인가?
적군인가?

특히 민주당은 텃밭인 호남에서 안철수 신당의 지지율이 민주당의 지지율을 앞지르기 시작한 것을 놓고 당내 위기감이 팽배하다. 안 의원이 신당을 창당한다면 당장 10월에 있을 재보선에서 민주당 인사들이 대거 안철수 신당으로 옮겨갈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이러한 가운데 안철수 신당이 10월 재보선에서 좋은 성적표를 받아든다면 야권은 안 의원을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될 수밖에 없다.

다가오는 10월 재보선의 중요성은 매우 크다. 이번 4월 재보선은 3곳에 불과했지만 10월 재보선의 경우는 10곳이 훨씬 넘는 곳에서 선거가 치러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자칫 새누리당의 과반 의석이 무너져 여소야대의 정국이 될 수도 있다. 이번 4월 재보선을 통해 민주당의 무력함을 뼈저리게 느낀 야권은 오는 10월 안 의원에게 그 어느 때보다 큰 기대를 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안 의원이 신당을 창당한다면 10월 재보선은 어디까지나 '몸 풀기'에 불과하다. 진짜 야권 정계개편의 신호탄은 내년에 치러질 6.4지방선거가 될 전망이다. 전국적으로 치러질 6.4지방선거에서 안철수 신당의 후보가 호남에서 민주당 후보를 꺾는 '이변(?)'이 벌어진다면 민주당은 그야말로 뿌리째 흔들리게 된다. 민주당에 있어 호남은 가장 강력한 지지기반이자 뿌리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호남에서조차 지지를 받지 못하게 된다면 민주당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게 된다.


물론 안철수 신당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가진 이들도 많다. 안 의원이 신당을 창당한다 해도 원내 제3당에 불과해 별다른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란 주장이다.

그렇다면 안 의원이 민주당에 입당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일단 전문가들은 안 의원의 신당창당 가능성에 더 무게를 두면서도 다가오는 민주당의 5.4전당대회의 결과에 따라 민주당에 입당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고 보고 있다. 이번 5.4전대에서 비주류인 김한길 의원의 승리가 점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만약 이번 전대에서 주류 측이 승리하게 된다면 안 의원이 신당을 창당했을 때 비주류 진영의 의원들이 대거 안철수 신당으로 옮겨와 엄청난 정계개편의 동력을 얻을 수 있다. 따라서 안 의원도 신당창당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하지만 반대로 비주류인 김한길 의원이 당권을 거머쥐게 되면 안 의원이 신당을 창당한다고 해도 민주당을 탈당할 인사는 별로 많지 않아 보인다. 비주류가 당권을 쥐면 안 의원은 당장 신당창당을 서두르기 보단 민주당과의 관계설정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특히 김한길 의원은 평소 당을 혁신해 안철수 세력을 끌어안겠다는 등 안 의원에 대해 러브콜을 보내온 인물이다. 물론 비주류 측이 당권을 잡는다 해도 '새정치'를 외쳐온 안 의원이 곧바로 민주당에 입당할 리는 없지만 최소한 그 가능성은 더 커진다는 것이다.

신당 창당?
민주당 입당?

특히 일각에서는 "안 의원이 이번 선거에서 보여준 리더십으로는 당장 신당을 창당하고 운영하기에는 벅차 보인다"며 "차라리 민주당에 입당해 정당의 시스템과 생리를 직접 보고 겪으며 정치수업을 쌓는 게 안 의원 본인에게도 더 도움이 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때문에 안 의원은 당분간 민주당의 상황을 지켜보며 독자노선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안 의원 측은 싱크탱크 성격의 '새정치연구소(가칭)'를 설립할 예정인데, 전문가들은 새정치연구소가 사실상 신당과 같은 역할을 할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한 정치전문가는 "당장 신당을 창당하게 되면 민주당과 경쟁관계에 놓이게 돼 부담스럽다. 따라서 일단 싱크탱크 성격의 조직을 설립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하지만 안 의원이 설립하고자 하는 새정치연구소는 사실상 신당 조직과 다를 게 없다. 이를 통해 10월 재보선까지 세력을 규합하다 민주당의 상황에 따라 연구소 조직을 얼마든지 신당 조직으로 변환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만약 안 의원이 민주당 입당을 결정한다고 해도 민주당은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당장 10월 재보선과 내년 지방선거에서 안 의원 측 인사들을 공천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치열한 내부갈등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민주당 내에서 세력을 넓혀가며 다음 대권을 준비하고 있는 대권주자들과 안 의원과의 갈등도 필연적이다. 민주당의 차기 대권주자 중엔 박원순 서울시장도 있다. 안 의원은 지난 2011년 50%의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당시 5%의 지지율을 얻고 있던 박 시장에게 서울시장 후보직을 전격 양보해 당선을 도운 인연이 있다.

민주당 참패에 더욱 힘 실린 안철수
'새정치' 실험 성공할까? 실패할까?

안 의원이 민주당에 입당한다면 차기 대권주자 자리를 놓고 박 시장과 경쟁을 벌일 가능성이 크다. 얄궂은 운명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주목할 것은 중앙정치에 입성한 안 의원이 그동안 부르짖어 왔던 새정치 실험에 성공하느냐 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정치권에 불어닥친 안풍은 태풍이 될 수도, 미풍으로 그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안 의원은 지금까지 새정치를 끊임없이 부르짖어 왔지만 그 실체는 애매모호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제 안 의원은 현실정치에 뛰어든 이상 추상적인 구호보다는 확실한 성과를 내야만 한다. 만약 정치권에 입문하고도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새정치가 구호로 그친다면 안 의원을 향해 모아졌던 기대는 빠르게 식어갈 수도 있다.

때문에 안 의원에 대해 평가절하 하는 정치권 인사들도 적지 않다. 박지원 민주당 전 원내대표의 경우는 "안 의원이 제2의 문국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국현 전 의원은 안 의원처럼 정치권 밖의 인물이었음에도 지난 17대 대선에서 돌풍을 일으켰지만 이후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은 뒤 별다른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다 잊혀져 갔다.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도 "문재인 의원도 대선 때 엄청난 지지를 얻었지만 막상 국회의원으로 돌아오니 역할이 거의 없지 않나? 국회에 입성했다고 해서 안 의원이 당장 새정치를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은 꿈이다. 현실정치의 벽에 부딪혀 큰 두각을 나타내기는 힘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새정치 성공할까?
구호로 끝날까?

민주당은 안 의원의 당선에 대해 "안 의원의 당선으로 전개될 야권의 정계개편이 분열이 아닌 야권의 확대와 연대로 귀결되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결과를 얻어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안 의원의 새정치 실험이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국회에 당당히 입성한 안 의원이 새정치를 구현하고 대한민국을 발전시킬 메시아가 될지  현실정치에 벽에 부딪혀 그저 그런 정치인으로 잊혀지고 말지는 전적으로 안철수 본인에게 달렸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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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