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국대 서예가 이상명

조문 온 전두환 "축 명복을…"

[일요시사=사회팀] 컴퓨터가 없던 시절, 한석봉은 '글 잘 쓰는 재주'로 천하가 알아주는 명인이 됐다. 하지만 16세기의 한석봉이 지금 이 시대에 태어난다면 한석봉은 아마 어머니와 함께 떡집을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학천 이상명 선생은 21세기인 지금도 학생들에게 서예를 가르치고 있다. 그에게 서예는 아버지가 남긴 유산이자 후세에 남겨야 할 보물이다.



흔히 양반(兩班)이라 하면 책상 앞에 앉아 '공자왈 맹자왈'하는 문약한 선비를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만난 학천(鶴天) 이상명 선생은 문인(文人)보다는 무인(武人)에 가까운 풍모를 갖고 있었다. "소싯적엔 맨손으로 흉악범을 제압해 경찰로부터 표창장을 받기도 했다"는 그는 태권도와 관련한 일화로 먼저 말문을 열었다.

문무 겸비

"제가 지금은 체격이 좀 있지만 어릴 때는 몸도 약하고 체구도 작아서 친구들에게 맞기도 많이 맞았어요. 그런데 우리 형님 중에서 태권도를 하신 분이 있었어요. 그 형님께 태권도를 처음 배운 게 지금으로 치면 초등학교 4학년 정도 됐을 거예요. 그때 배우기 시작해서 3년 뒤에는 단증을 땄고요."

"중학교 때부터는 시골에서 사범 노릇을 하면서 운동을 했지요. 아버님께는 붓글씨를 배우고, 형님께는 태권도를 배우고. 운동 마치고 도복을 짜면 매일 땀이 흥건하게 나올 정도로 운동을 열심히 했습니다. 서울에 올라 와서도 단련을 계속 했고요. 하지만 붓을 멀리 한 적은 없습니다. 말하자면 문무를 함께 단련했던 게지요."

이상명 선생은 방영 중인 MBC 드라마 <구가의 서>에서 자신의 서예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앞서 KBS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 SBS 드라마 <야인시대> 등 많은 드라마를 통해 글 솜씨를 알렸던 이상명 선생은 현재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서예가로 활동 중이다.


"벌써 55년이 흘렀습니다. 6·25 이후 아버님이 다 타버린 책을 붙잡고 통곡하시던 게…. 북한군을 피해 피난 온 곳에서 아버님은 서당을 열고 글씨를 가르쳤어요. 그때부터 저도 매일 아버님을 따라 글씨를 배웠고 어느덧 여기까지 왔지요. 그런데 제가 한창 작품 활동을 하던 80년대에는 인사동에만 80개가 넘는 서예원이 있었죠. 그때는 붓글씨가 쓰이는 곳이 많았습니다."

"학교 선생님들은 물론이고 거의 모든 관공서 직원들이 서예원을 찾아 글씨를 배웠죠. 하지만 컴퓨터가 나온 이후로는 서예원이 쇠락기를 맞았어요. 그래서 지금은 인사동에 서예원이 8개 밖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서예는요. '글 잘 쓰는 재주'기도 하지만 '인간의 도(道)를 배우는 것'이기도 하거든요. 이런 서예가 우리 주변에서 사라진 게 많이 아쉽죠."

'붓글씨 55년' 서예 대가…TV 통해 대중과 호흡
컴퓨터 보급후 문인 도외 "정책으로 보존해야"

글씨가 곧 자신의 얼굴이나 다름없던 70∼80년대. 학부모는 어린 자녀에게 '올바로 글 쓰는 법'을 가르쳤고, 서예원 교육을 통해 '인의예지'를 배우도록 했다. '정의'나 '청렴' '염치'와도 같은 사회 기본 규범은 '사서삼경'과 같은 고문(古文)을 쓰고 익히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습득됐다. 이렇듯 누구나 배워야 했던 서예는 학습 경쟁이 심해지면서 교과 과정에서 배제됐다. 2000년대 들어서는 많은 서예원이 폐업 수순을 밟았다.

"박근혜정부 교육 정책에서 서예는 경시받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아이들의 인성교육 측면에서 재고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공부에 앞서 인간이 되라'는 말도 있잖아요. 또 아무리 정보화 시대라고 하지만 컴퓨터만으로 할 수 없는 것들이 있어요."

"한 번은 제가 금호그룹 고 박인천 회장의 부인인 이순정 여사의 장례식 방명록을 본 일이 있습니다. 그때 조문을 왔던 전두환 전 대통령이 방명록에 뭐라고 적었는지 아십니까? '축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렇게 써놓은 거예요. 참 얼굴이 화끈거려서…. 또 얼마 전 봤지만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사인만 봐도 참 멋있게 하잖아요. 이렇듯 글씨 하나에도 사람의 품격이 드러나는 거예요."

글씨는 품격


서예 교육 외에도 틈틈이 지인들의 작명 상담을 받고 있는 이상명 선생은 "사람들이 예쁘고 고운 이름만 쓴다"며 "그런 이름은 오래 못 간다"고 설명했다.

"아롱·다롱이란 이름을 지었던 한 사람이 제게 와서 하는 말이 '그때 선생님 말씀을 들을 걸 그랬어요'라며 후회하더군요. 아이들이 놀림 받아서 개명신청을 했다는 거예요. 이렇듯 결국 어긋났던 길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밖에 없어요. '신언서판'이란 말이 지금도 쓰이는 것처럼 서예도 언젠가는 우리 삶 속에 돌아오지 않을까요?"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이상명은 화백은?]

▲1974년 학여서예원 개원
▲1981년 한일친선협회전 출품
▲1982년 전국서예대전 동상
▲1983년 현대미술전 대상
▲1984년 현대미술 초대작가
▲1991년 역동 수묵예술협회 회장
▲1997년 영국 런던박물관 초청출품
▲2003년 한국 서예대상 수상
▲2010년 한국 서가협회전 특선
▲現 유림서도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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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