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수의 달인?" 국회의원 '묻지마 법안발의' 실태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3.04.17 16:40:06
  • 댓글 0개

법안이 보약인줄 아십니까? 재탕 삼탕 하시게!

[일요시사=정치팀] '놀고먹기 좋아하는'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이 드디어 정신을 차린 걸까? 최근 국회의원들의 법안발의 건수가 크게 늘어나고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하지만 그 속사정을 들여다보니 재탕은 기본이고 삼탕, 사탕까지 우려먹은 '실적 쌓기용'이 대부분이다. 정치인들에 대한 작은 기대마저 더 큰 실망으로 바꿔놓는 제19대 국회의원들의 '묻지마 법안발의' 실태를 살펴봤다.



최근 국회의원들의 법안발의 건수가 크게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지난 16대 국회의 법안발의 건수는 1912건이었으나 지난 18대 국회에서는 1만2220건으로 무려 6배가량이나 늘어났다. 이번 19대 국회에서는 임기가 시작된 후 채 1년이 지나지 않았지만 지난 4월 초까지 발의된 법안만 4140건이나 된다.

19대 국회는 지난해 5월30일 임기가 시작됐다. 이 같은 속도라면 18대 국회의 법안발의 기록을 깨는 건 시간문제다. 국회의원들이 드디어 정신을 차리고 열심히 일을 하기 시작한 걸까?

법안 발의 폭증

하지만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한숨부터 나온다. 이들 법안 중 일부는 본문 전체가 한 줄밖에 안 되는 법안도 있었고, 똑같은 법을 여러 의원이 돌려가며 내는 중복 발의와 구태의연한 민원성 법안도 있었다. 이미 폐기된 법안을 아무런 고민 없이 재탕하는 나쁜 관행은 더욱 심각해졌다.

시간을 되돌려 보면 이번 19대 국회는 시작부터 재탕 투성이였다. 19대 국회의원들은 임기 시작 한달 만에 무려 404건의 법안을 쏟아냈다. 이전 국회들과 비교할 때 압도적인 수치다. 하지만 당시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들을 살펴보니 3건 중 2건은 재탕 법안인 것으로 드러나 실망감을 안겼다.


전체 발의된 법안 중 242건(66%)은 이미 지난 18대국회에 제출됐던 법안이었다. 모 의원은 자신이 제출했다가 자동폐기된 법안 14건을 무더기로 재탕하기도 했다. 그러나 법안을 재탕한 의원들은 오히려 당당했다. 법안을 재탕하는 것이 무조건 나쁜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법안임에도 지난 국회에서 아쉽게 폐기된 법안을 다시 살려내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라는 항변이었다.

물론 이러한 항변은 일리가 있다. 하지만 이 같은 항변과는 달리 일부 의원들이 재탕 발의한 법안 중에는 이미 달라진 과거의 통계수치마저 그대로 베껴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법안 재탕과 함께 묻지마 중복발의도 문제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19대 국회 들어 북한인권법을 벌써 5건이나 발의했는데 똑같은 내용의 법안을 5명의 의원들이 각각 발의하는 황당한 행태를 보였다. 게다가 북한인권법은 이미 지난 17대와 18대 국회에서도 발의됐다가 임기만료로 폐기된 바 있는 법안이다.

운전 중 DMB 시청을 금지하는 내용의 도로교통법 개정안도 3건이나 발의됐고, 군복무 기간 중 학자금 대출 이자를 면제하는 법안도 3건 등장했다.

재탕은 기본, 달랑 한 문장 법안발의까지
통과 안 될거 알면서도 실적 올리기 급급

의원들이 법안을 발의하면서 이미 발의된 법안인지 검토조차 하지 않았거나 알면서도 건수를 올리기 위해 강행한 입법이라는 지적이다. 이들 법안은 국회에서 처리된다 하더라도 하나의 법안으로 합쳐져 대안폐기된다.

자기 지역구만을 위한 이기적인 민원성 법안 발의 관행도 문제다. 최근 경기 용인 지역구 모 의원은 국제관광중심도시 조성 특별법안을 발의했는데, 이 법안은 지역구가 속한 경기 용인시를 국제관광중심도시로 개발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일부 법안은 내용이 너무 부실해 지적을 받았다. 일례로 민주통합당의 한 의원은 지난 3월26일 '흙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발의했는데 이 법안은 '흙의 소중함을 알리기 위하여 11월9일을 흙의 날로 하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이날에 적합한 기념행사 등을 할 수 있다'는 한 문장이 법안내용의 전부였다.

몇몇 의원들은 이 같은  묻지마 법안발의를 위해 친한 동료의원끼리 묻지마 서명을 해준 정황도 포착된다. 묻지마 서명은 법안발의 최소요건인 의원 10명의 서명을 채우려고 친한 동료의원들끼리 한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에 서로 공동발의자로 서명해주는 것을 말한다.



무조건 법안발의 숫자를 늘리기 위해 서로 상대 의원 법안의 타당성은 따져보지도 않고 서명부터 해주고 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A의원이 대표발의할 때 B, C, D 등 의원 9명이 서명해주면 B, C, D의원이 대표발의할 때 A의원이 서명해주는 식이다.

때문에 이번 19대 국회에서 처리된 법안은 겨우 625건으로 법안처리율이 14.2%에 불과하다. 이같이 낮은 법안처리율은 묻지마 법안발의 탓이 크다. 또 이러한 묻지마 법안이 수 천 건씩 쌓이면서 오히려 진짜 중요한 법안들의 신속한 처리를 어렵게 하고 있다는 비판도 거세지고 있다. 그렇다면 의원들은 왜 묻지마 법안발의에 집착하고 있는 것일까?

정치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다음 선거를 겨냥한 자기 홍보와 치적 과시용'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최근 정치쇄신 바람과 더불어 크게 변화된 각 정당의 공천심사제도가 큰 영향을 미쳤다. 작년에 치러진 19대 총선을 앞두고 여야 정당은 시스템공천을 선언하며 현역의원을 대상으로 한 공천심사에 의정활동 항목을 대거 포함시켰다. 본회의와 상임위원회 출석률, 법안발의 건수 등이 주요 평가항목이었다. 법안발의 건수가 적었던 의원들은 공천심사 과정에서 낭패를 봤다.

입법 성공률은 꽝

19대 국회가 시작되자마자 의원들이 앞 다퉈 법안 발의에 나선 것은 이러한 경험 때문이라는 것이다. 모 의원의 보좌관은 "요즘에는 시민들의 권리의식이 높아지면서 자기 지역구 의원의 의정활동 사항을 꼼꼼히 챙겨보는 분들도 많아졌다"며 "법안발의 건수가 적으면 당장 지역구 시민단체들에서 이를 문제 삼고 비판하니 법안발의 건수를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 정치평론가는 "가치 있는 중요 법안을 되살려내는 것이라면 괜찮지만 의원들이 상황 변화도 반영하지 않은 채 폐기 법안을 재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무더기 법안발의와 임기만료 폐기라는 악순환 구조를 깨려면 의정활동 평가기준을 법안발의 건수가 아닌 입법 성공률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