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령900호 특집①> 일요시사 선정 '9인의 잠룡' 대해부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3.04.08 13:5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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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후 승천 노리는 이무기들 "지금은 낮게 더 낮게"

[일요시사=정치팀] 시시각각 변하는 정치권의 권력지형도는 언제나 국민들의 큰 관심사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지 고작 한 달여가 지났지만 지난 대선에서 아쉽게 꿈을 접었던 잠룡들의 움직임은 벌써부터 분주하다. 멀게만 보이는 5년 후 대선은 실제론 눈 깜빡하는 사이 돌아오기 때문이다. 과연 그들은 누구일까? 지령 900호를 맞은 <일요시사>가 5년 후 대한민국의 정치권을 뒤흔들 잠룡 9인을 선정해 해부했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지도 어느새 한 달을 훌쩍 넘겼다. 그러나 정국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정부조직법 개정안의 협상 난항과 연이은 인사실패 등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수직 하락했고, 대외적으론 북한의 도를 넘은 강경한 안보위협으로 위기에 처해있다. 그러나 영웅은 난세에 태어난다고 했던가? 지난 대선에서 아쉽게 꿈을 접었던 잠룡들의 움직임은 벌써부터 분주해진 모양새다. 때론 소신있는 발언으로 때론 파격적인 행동으로 자신들의 존재감을 서서히 드러내고 있는 그들은 과연 누구일까?

문재인(민주통합당 국회의원)
대선 패배 이후 정치적 잠행을 이어오던 문재인 민주통합당 의원이 4·24 재보선을 계기로 활짝 기지개를 펴려하고 있다. 문 의원은 3곳의 의석이 걸린 이번 재보선에서 구원투수를 자처한 모양새다. 특히 관심이 집중되는 곳은 부산 영도지역이다. 이 지역은 박근혜 정부 탄생에 핵심역할을 했던 김무성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출마를 선언한 곳이다. 문 의원이 이곳을 집중 지원한다면 박근혜-문재인 대리전 구도가 형성된다.

문 의원은 지난 대선에서 패배하긴 했지만 무려 48%의 지지를 얻어내면서 정치거물로 성장했다. 당 안팎에선 여전히 문 의원을 향해 대선 패배 책임론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적잖다. 하지만 이번 재보선을 계기로 문 의원이 화려하게 부활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선거판세는 만만치 않다. 아직까진 김무성 후보의 압도적인 우세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설령 패배하더라도 문 의원이 당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보이는 그 자체로만으로도 대선 패배 책임론을 일정부분 희석하고 정치적 입지를 넓힐 좋은 기회라고 분석하고 있다.

김무성(부산 영도 보궐선거 새누리당 후보)
김무성 후보는 박근혜 대통령의 든든한 정치적 동지다. 지난 18대 국회 때 세종시 이전 문제로 박 대통령과 대립하면서 사이가 멀어지기도 했지만 대선에서 박근혜 캠프의 총괄선대본부장으로 긴급 투입돼 삐걱대던 대선캠프를 다잡고 대선승리에 크게 기여했다.


그는 대선기간 야전침대를 가져다놓고 선거운동을 지휘할 정도로 열정을 보였고, 이번 재보선에서 승리해 국회 재입성에 성공한다면 이미 새누리당 차기 당대표 0순위로 거론되고 있다.

현재 당내에서 그와 맞붙을 정치인은 별로 없다는 평이다. 선거판세도 유리하다. 일단 현재까지 각종 여론조사를 종합해보면 김 후보가 타 후보들을 크게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만약 김 후보가 국회로 돌아와 당권을 거머쥔다면 당과 청와대와의 관계도 지금과는 크게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새누리당을 비롯한 현 집권세력 주변에 유력한 대권주자가 없는 상황에서 김 후보는 순식간에 '차기 대권주자' 반열에도 오를 수 있다는 분석이다.

벌써부터? 조심스레 기지개 켜는 잠룡들
시시각각 변하는 정치권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안철수(서울 노원병 보궐선거 무소속 후보)
자칫 밋밋해질 뻔했던 4·24재보선은 안철수 후보의 출마선언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안 후보는 지난해 12월19일 미국으로 떠난 뒤 두 달여 만에 한국으로 돌아와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특히 안 후보가 이처럼 비교적 빠른 시일 안에 정치복귀를 선언하게 된 것은 대선 이후 박근혜 정부와 민주당의 지지율이 모두 추락하는 등 여야 모두 혁신과 정치력 부재의 난맥상을 보인 것이 큰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안 후보가 이번 선거에서 승리한 후 원내에서 정치력을 보여준다면 다가오는 10월 재보선과 내년 6월 지방선거 등을 거치면서 신당 창당도 가시화될 것으로 보인다. 김영환 민주통합당 의원은 이에 대해 "(민주당은) 안철수 신당과 피 말리는 개혁전쟁을 하게 될 것"이라며 우려하기도 했다.

안 후보와 관련해서는 대선기간 보여줬던 애매모호한 태도와 삼성X파일 공개로 의원직을 상실한 노회찬 전 의원의 지역구에 출마하면서 겪은 논란 등으로 이미 '안철수 현상'은 끝났다는 비관적인 전망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지난 대선에서 한때 박근혜 대통령을 여론조사에서 크게 앞지르는 등 무서운 돌풍을 일으켰던 안 후보는 언제든지 정치권을 집어삼킬 저력이 있는 태풍이다.

김문수(경기도지사)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지난 새누리당 대선경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에 이어 2위를 차지한 실력자다. 물론 박 대통령과 큰 격차를 보인데다 이재오,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 등이 경선룰 갈등을 이유로 불참해 큰 의미가 없었던 2위라는 지적도 있지만 대선경선을 완주함으로써 김 지사가 향후 차기 대권주자로서의 이미지를 확고하게 다진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한편 김 지사는 대선과정에서 대선 출마여부 말 바꾸기 논란과 도지사직 유지 논란으로 정치적으로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기도 했다. 김 지사 주변에서도 경선 참여를 반대하는 의견이 무척 팽배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럼에도 김 지사가 당의 요청에 따라 대선경선 출마를 강행하면서 당내 입지는 오히려 탄탄해졌다는 평가다.

탄탄해진 당내 입지는 향후 대권도전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1200만의 인구를 자랑하는 경기도정을 이끌어본 경험은 김 지사만의 가장 큰 장점이다.

박원순(서울시장)
박원순 서울시장은 한때 지지율 5%의 초라한 서울시장후보였다. 만약 당시 지지율이 50%에 육박하던 안철수 후보의 파격적인 양보가 없었다면 이미 정치권에서 사라졌을 인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박 시장의 위상이 달라졌다. 달라진 위상은 5·4 전당대회를 앞두고 너나할 것 없이 박 시장을 찾고 있는 민주통합당의 당권 주자들을 보면 알 수 있다. 대선 패배 이후 리더십 공백 상태에 빠진 민주당 의원들의 관심이 박 시장에게 쏠리기 시작한 것이다.

박 시장은 취임 후 그동안 비교적 무난하게 서울시정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박 시장은 이미 향후 서울시장 재선 도전을 기정사실화 했지만 잠재적인 대선후보군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지금까지 시정운영에 대한 평가가 좋은 편인 데다 인지도도 높기 때문이다. 박 시장은 정치신인에 속하지만 정치적 잠재력은 그 어느 중진들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정몽준(새누리당 국회의원)
7선(13~19대)인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은 제19대 국회 최다선의원이다. 비록 박근혜 대통령과의 경선룰 갈등 끝에 지난 대선에선 제대로 뛰어보지도 못했지만 정 의원은 분명히 저력있는 정치거물임에 틀림없다.

사실 정 의원은 지난 2002년 이전까지만 해도 울산에서 내리 5선에 성공했음에도 대권주자로까지 분류되던 인물은 아니었다. 그러던 중 대한축구협회장과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으로 2002년 한일월드컵을 성공리에 개최하면서 순식간에 그해 여론조사에서 대선후보 1위로 떠올랐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경선대결에서 패하면서 본선에 오르지는 못했다.

정 의원은 이번 대선에서도 비록 본선에는 진출하지 못했지만 공동선대위원장으로서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선 이후에도 당내 중진의원으로서 중량감 있는 행보로 주목을 받고 있다.

손학규(민주통합당 상임고문)
손학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지난 민주당 대선경선에서 문재인 후보에 이어 2위를 차지한 유력 대권주자였다. 비록 대선경선에서 패배하긴 했지만 손 고문의 대선 당시 슬로건이었던 ‘저녁이 있는 삶’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때문에 손 고문은 대선이 끝나고 난 후 지난 1월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으로 유학을 떠나기 전 저녁이 있는 삶을 구체화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손 고문은 현재 2개월째 독일 유학 중이다. 귀국 예정일은 오는 7월10일이다. 당초 손 고문은 큰딸의 출산을 지켜보고 김비오 부산 영도지역위원장의 보선 지원을 위해 4월에 일시 귀국할 예정이었지만 부득이 계획을 취소하기도 했다. 손 고문과 안철수 후보 간의 연대설과 신당 창당설 등이 불거져 나왔기 때문이다. 이는 손 고문의 정치적 영향력이 여전히 크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멀게만 보이는 5년, 실제론 눈 깜빡할 새 간다
여야 잠룡 9인, 거품 빠질까? 새바람 일으킬까?

이재오(새누리당 국회의원)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은 현재 당내 비박계의 핵심이다. 이 의원은 청와대와 당 지도부를 향해 하고 싶은 말은 하는 사람이다.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청와대의 눈치만 살피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러한 이 의원의 행보에 대해 아이러니하게도 전임 이명박 정부에서 친박계가 했던 행동들을 비박계가 벤치마킹한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당시 친박계는 당내에서 소수였지만 '여당 내 야당'의 역할로 세종시 수정안·미디어법 논란 등 주요 정국현안들의 성패를 결정짓곤 했다.

현재 중립 성향을 제외하고 확실한 비박계로 분류되는 의원은 15명 정도로 과거 친박계보다는 훨씬 적은 숫자다. 하지만 새누리당이 원내 과반의석을 겨우 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주요현안마다 비박계의 결정이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김두관(전 경남도지사)
김두관 전 경남도지사의 별명은 '리틀 노무현'이다. 김 전 지사는 동네 이장에서부터 시작해 37세로 최연소 남해군수 당선과 행정자치부 장관으로 발탁되기까지의 드라마틱한 인생역정 자체가 가장 큰 자산이다.

지난 대선에서 야권 단일화로 어렵게 이뤄낸 경남도지사직을 포기하고 나오면서 역풍을 맞기도 했지만 지역주의를 타파하기 위한 그의 끊임없는 노력은 '바보 노무현'을 떠올리게 한다.

김 전 지사도 손학규 고문과 마찬가지로 대선 패배 후 독일 유학길에 올랐다. 김 전 지사는 독일 사회민주당의 싱크탱크인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의 후원을 받아 6개월간 독일 베를린자유대학에 머물며 독일 연방제를 비롯해 통일 이후 독일의 사회통합 과정, 유럽형 자본주의 모델 등을 연구하고 9월에 있을 독일 총선까지 지켜본 뒤 귀국할 예정이다.

김 전 지사의 독일 거주지는 손학규 고문이 머물고 있는 게스트하우스 내 바로 옆집이다. 이에 따라 두 사람이 귀국한 뒤 함께 야권 정계개편에 힘을 모을 것이라는 예측도 있어 김 전 지사의 행보는 앞으로도 주목을 받을 전망이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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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