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어설픈 '방송장악' 꼼수 대해부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3.04.01 14:3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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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조르면서 해치지 않겠다 "그걸 믿으라고?"

[일요시사=정치팀] 박근혜 정부가 발의한 정부조직개편안이 여야의 첨예한 대립 끝에 지난달 22일 통과됐다. 지난 1월 말 법안이 제출된 이후 무려 52일만이다. 핵심쟁점은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를 둘러싼 이견이었다. 야권은 박근혜 정부의 조직개편안대로라면 방송공정성을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며 끝까지 버텼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방송장악 의도는 추호도 없다며 발끈했다. 야권의 방송장악 우려는 정말 기우였을까? <일요시사>가 박근혜 정부의 어설픈 방송장악 음모를 분석해봤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4일 청와대에서 기습적으로 정부조직개편안과 관련한 대국민담화를 발표했다. 정부조직개편안이 국회에서 한 달 넘게 발목이 잡혀있었기 때문이었다.

박 대통령은 담화에서 민주통합당(이하 민주당)의 정치공세에 국가에 대한 자신의 충정이 위협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이 주장하는 방송산업을 미래창조과학부로 이관하는 것은 정부가 방송산업을 장악하려는 것이라는 의혹에 대해서도 박 대통령은 적극적으로 해명했다.

착한 대통령
나쁜 야당?

박 대통령은 "방송의 공정성, 공익성의 핵심인 지상파, 종편, 보도채널 주제를 모두 방통위에 남겨두기로 했고 뉴미디어 방송사업자가 보도방송을 하는 것은 법적으로 금지돼 있다. 뉴미디어 방송사업자가 직접 보도방송을 하는 것을 보다 더 엄격히 금지하는 방안도 제시했다"며 "소셜미디어들과 인터넷언론이 넘치는 세상에 정부가 방송을 장악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 과거의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본질에서 벗어난 정치적 논쟁으로 이 문제를 묶어 놓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대국민 읍소 끝에 민주당은 '착한 대통령'의 발목을 잡는 '나쁜 야당'으로 전락했다. 여론의 압박을 느낀 민주당은 많은 논란을 낳았던 정부조직개편안을 결국 거의 원안 그대로 통과시키고 말았다. 하지만 야권이 박 대통령의 정부조직개편안에 대해 발목잡기라는 비판을 받아가며 끝까지 반대한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정부조직 개편 완료, 커지는 방송공정성 우려
"방송장악 의도 없다?" 착착 진행되는 방송장악

당초 박 대통령이 처음 제안한 정부조직개편안에는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의 기능 대부분을 신설될 핵심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이하 미래부)로 넘기는 내용이 담겼었다. 지상파방송 허가 추천권과 종합편성·보도전문채널 승인권 등만 방통위에 남기고, 전반적인 방송진흥정책과 아이피티브이(IPTV)·종합유선방송(케이블)·위성방송에 관한 정책 권한을 미래부로 넘기도록 한 것이다. 방송 광고 정책, 8000억원의 방송통신발전기금 운용권, 방송 관련 법령 입법권도 미래부가 가져갈 예정이었다.

방송장악 착착
무조건 믿어라?

이명박 정부에서 방통위와 관련한 잡음이 많긴 했지만 방통위는 그나마 합의제 기구다. 방통위는 상임위원 5명 중 야당 추천 인사 2명이 포함돼 어느 정도 견제의 원리가 작동한다. 그런데 방통위가 맡던 방송 정책 대부분을 미래부로 귀속시킨다는 것은 장관이 혼자 전권을 쥐고 방송정책을 좌지우지 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게다가 장관은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은 그럴 생각이 없다지만 조직개편안이 원안대로 처리된다면 박 대통령이 얼마든지 방송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야권이 방송장악을 우려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실제로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대 때에는 독임제 부처인 공보처가 방송 정책을 전담했는데, 김대중 정부 때인 지난 2000년부터 합의제 독립기구인 방송위원회에서 방송 정책을 맡았다. 방송위원회는 이명박 정부 들어 정보통신부와 통합돼 방통위가 됐다. 그런데 방송 정책권 대부분을 장관이 지휘하는 독임제 부처에 다시 귀속시키자는 것은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대로 회귀하자는 이야기나 마찬가지였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에서는 보도채널은 계속 방통위가 규제할 것이라면서 방송장악 의도가 없음을 거듭 주장했지만 비보도채널 역시 사회적 영향력을 지니고 여론을 형성한다. 비보도채널에서 방송하는 시사프로그램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를 미래부라는 독임제 부처에서 관리하겠다는 것은 언제든지 방송장악을 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었다.


때문에 야권은 정부조직개편안과 관련 새정부 발목잡기라는 비판 속에서도 무려 52일간이나 버티기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여야 협상에 따르면 정부조직 개편안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의 변경 및 허가와 지상파방송 재허가 문제는 민주당의 입장이 대부분 반영됐다. 여야는 방통위가 전파법상 방송국의 무선국 개설 등에 대한 허가·재허가 여부를 결정하도록 했으며 SO 등의 변경 및 허가에 대해서도 방통위의 사전 동의를 받도록 했다.

이들 쟁점은 당초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강력히 반발했던 내용이지만 원내대표 협상을 통해 전격 선회한 것으로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별장 성접대 의혹으로 사퇴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등 박 대통령의 인사 난맥상을 희석시키기 위한 조치가 아니었냐는 지적들도 나왔다. 그러나 방송장악 의도가 없다며 국민들에게 읍소하던 박 대통령은 정부조직개편안이 통과되자 돌변했다.

돌변한 새정부
순진한 민주당?

정부조직법 통과 뒤 이어진 박 대통령의 방송통신위원장과 미래창조과학부 차관 인선 결과를 본 야권 관계자들은 "방송장악 의도가 없다던 말은 모두 새빨간 거짓말이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방통위원장에 이경재 전 새누리당 의원을 내정했다. 이경재 방통위원장 내정자는 대표적인 친박계 인사다. 이 내정자는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비주류로 칩거하던 2009~2011년에는 친박계 중진으로 무게중심 역할을 했다. 개헌론, 세종시 수정론 등을 놓고 당내 친이계와 친박계가 충돌할 당시에는 박 대통령의 입장을 적극 옹호했다.

정치인 출신 비전문가인 이 내정자를 박근혜 정부 초대 방통위원장에 내정한 데 대해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은 "국정철학을 공유하고 있다"는 황당한 이유를 댔다. 52일을 끈 정부조직개편안 협상에서 '방송 중립성 확보'를 명분으로 방통위에 상당한 권한을 부여하도록 했던 민주당은 그야말로 뒤통수를 맞았다.

박 대통령은 방송통신융합을 기반으로 한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을 우리나라의 신성장 동력으로 육성하겠다고 말했었다. 그러나 정작 방통위원장은 정치인 출신 비전문가를 임명한 것이다. 박 대통령이 정부조직개편안의 원안을 고수한 이유가 정말 신성장 동력 육성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방송장악을 위한 것인지는 더욱 헷갈리게 됐다. 

또 지난달 23일 공포한 '미래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에 따르면 여야 합의에 의해 방통위의 소관업무로 존치하기로 한 방송광고, 방송프로그램 편성, 방송채널, 이용자 보호 정책 등이 미래부 관할 업무로 교묘히 둔갑했다.

여야 합의는 어디로 "새정부 발목 잡는 나쁜 야당?"
방통위원장에는 전례 없는 정치인 출신 측근 임명

특히 이 과정에서 미래부는 방송광고와 관련해 '방송통신광고'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면서까지 광고업무를 미래부의 소관사무로 정했다. 광고시장은 지상파, 뉴미디어 구분이 없이 같은 시장을 공유하며 현실적으로 방송의 공공성과 독립성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방송광고정책은 일관되고도 균형 잡힌 정책이 필수다. 기존에는 방통위가 '방송광고균형발전위원회 운영'을 업무로 지정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미래부는 여야 합의사항을 무시한 채 방송광고 업무와 거의 동일한 방송통신광고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며 방송광고 업무를 미래부의 업무로 지정해놓은 것이다. 이는 사실상 미래부가 편법을 써서라도 방송광고에 어떻게든 영향을 미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방송프로그램 편성 정책과 채널정책, 개인정보보호정책에 대해서도 미래부의 양다리 걸치기는 심각했다. 이러한 정책은 여야가 지난달 22일 정부조직법 개편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할 때 방통위 존치업무로 합의했던 사항이다.


미래부는 그러나 이번에 공포한 직제에서 ▲방송광고 및 방송프로그램 편성비율과 관련된 ‘방송법’ 위반에 관한 업무 ▲방송국의 채널배치 및 허가제원 조정 ▲개인정보 침해관련(접수된 사항에 한정한다)에 대한 자료 제출요구 및 검사를 소관 업무로 정해놓았다.

이와 같은 내용은 필연적으로 방통위 업무와 충돌할 수밖에 없고 정부가 방송을 입맛대로 주무르는데 큰 무기가 된다. 민주당의 신경민 의원은 이에 대해 "여야 합의를 뒤엎는 명백한 위약이며 독임제 부처가 방송정책을 관할하려는 꼼수"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여야 합의 무시
이어지는 꼼수

야권의 한 관계자는 "누군가가 절대 해치지 않을 거라면서도 서서히 목을 조이면 무조건 믿고 기다려야 하는가? 제도는 방송장악을 위한 플랜대로 착착 진행해나가면서도 방송장악 의도는 없고 야당만 나쁘다고 한다"며 "실제로 본인은 방송장악을 할 생각이 없다고 하더라도 제도 자체를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방송장악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는 것은 나중에라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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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