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부 첫 내각 둘러싼 논란 총정리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3.03.18 11:3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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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내각 구성해놓고 어찌 국정운영을?"

[일요시사=정치팀] 박근혜 대통령이 드디어 지난 11일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친 13개 부처 장관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하지만 이날 임명장을 받은 장관들 중 인사청문회를 무난히 통과한 사람은 고작 7명. 절반 가까이는 도덕성 등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지적됐지만 임명이 강행됐다. 박 대통령은 이런 내각을 이끌고 성공적인 국정운영을 해낼 수 있을까? <일요시사>가 청문회 과정에서 밝혀진 새 정부 첫 장관 임명자들과 관련한 논란을 총정리 해봤다.



지난 11일 박근혜 정부의 첫 국무회의가 열렸다. 대통령 취임 14일 만이었다. 헌정사 이후 최장의 국정공백이었다. 그나마 이번 국무회의는 정부조직개편안이 통과되기 전까진 장관 임명을 미루겠다며 고집을 피우던 박근혜 대통령이 한발 물러섰기 때문에 가능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첫 국무회의에 앞서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친 13개 부처 장관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부적격?
발목잡기?

하지만 임명장을 받은 장관들 중 인사청문회를 무난히 통과하고 '적격' 판정을 받은 사람은 겨우 7명. 나머지 6명 중 2명은 '미흡' 판정을 받았고, 4명은 야당이 아예 반대한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첫 장관 임명자 중 절반 가까이가 도덕성 등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지적된 것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이들에 대한 임명을 강행했다. 장관 후보자의 경우 국무총리나 헌법재판소장과는 달리 국회의 인준 없이도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다.

박 대통령 측은 일부 장관 임명과 관련, 야당의 부적격 판단에 대해 '국민 눈높이에는 다소 못 미치지만 업무수행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부동산투기·전관예우·병역기피는 장관의 3대 의무?
13개부처 장관 임명장 받았지만 절반은 '문제아'

그러나 도덕성 의혹을 벗지 못한 장관 후보자들이 그대로 임명된 진짜 이유는 청와대와 여야가 정치논리만 앞세운 탓으로 보인다. 청와대와 여당은 '집권 초부터 인사문제를 놓고 더 이상 밀려선 곤란하다'는 위기감을 갖고 있었고, 야당 역시 자칫 발목잡기란 오해에 따른 역풍을 우려했다는 분석이다.

이러한 정치논리 앞에서 국민들의 여론과 상식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만 것이다. 때문에 박근혜 정부의 첫 내각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한편 이번 인사청문회에서 가장 거센 반발을 불러온 장관은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었다. 법사위 청문보고서에는 여당의 '적격', 야당의 '부적격' 의견이 함께 적혔다. 황 장관은 청문회 당시 각종 의혹으로 새누리당 내에서도 자진사퇴 요구가 나왔었다.

새누리당도 반대
대통령은 강행

황 장관은 '골수 공안검사'로 평가되는 인물이다. 지난 2005년엔 삼성 X파일 사건 특별수사팀의 지휘를 맡기도 했다. 당시 사건은 이상호 MBC 기자가 옛 국가안전기획부(현 국정원)의 도청자료를 폭로하면서 불거진 사건이다.

이 기자가 공개한 도청자료에는 삼성 측이 정치권 및 검찰 고위직에게 수십억원을 추석 떡값으로 제공하기로 했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하지만 황 장관이 수사를 지휘한 검찰은 이건희 회장과 삼성 관련자는 물론, '떡값 검사' 전원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증거 불충분이 이유였다.


반면 도청자료를 폭로한 이상호 기자와 떡값 검사들의 실명을 공개한 노회찬 전 의원을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기소했다.

수사과정에서 검찰은 당시 사건 당사자인 이학수 삼성그룹 비서실장과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조차 조사하지 않은 사실이 알려져 여론의 뭇매를 맞았지만 황 장관은 "부끄러운 것 없는 수사를 했다"며 오히려 담당검사들을 격려했다.

황 장관은 또 지난 2011년 퇴임 뒤 17개월 동안 법무법인 태평양에 고문변호사로 재직하면서 무려 16억원을 받은 점이 문제가 됐다. 새누리당의 김학용 의원조차 "고위공직자 경력을 활용해 큰 수입을 얻고 공직에 되돌아오는 점을 국민은 납득하지 못한다"며 "전관예우에 대한 국민적 비판여론이 팽배하다"고 다그쳤다.

게다가 황 장관은 병역면제자다. 병역면제사유도 꺼림칙하다. 황 장관의 병역면제사유는 담마진. 일종의 두드러기 증상이다. 지난 10년 동안 신체검사를 받은 365만여 명 가운데 단 4명만이 담마진으로 면제됐을 정도로 희귀병이다. 군 면제를 받을 정도로 심각한 병을 앓고 있다던 황 장관은 군 면제 이후 곧바로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황 장관이 지난해 8월 장남에게 차용증을 받고 전세금 3억원을 빌려준 점에 대해서는 증여세 회피 의혹이 불거졌다. 황 장관은 공직에 지명된 후 뒤늦게 증여세를 납부했다.

황 장관은 부동산 투기 의혹까지 받았다. 황 장관의 부인이 지난 1999년 은행 대출까지 받으면서 투기열풍이 거셌던 경기 용인시 수지지역의 대형 아파트를 분양받은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황 장관 부부는 용인 아파트를 분양받은 후에도 이사하지 않고 지금까지 서울 서초구 잠원동에 위치한 아파트에서 거주해 왔다. 용인 아파트는 전세를 준 상황이다.

또 부산지검 동부지청 차장검사 재직시절 교도소 재소자들을 기독교로 교화해야 한다고 말한 사실이 드러나 종교편향 논란까지 일었다.

청문회 무용론
국민여론 무시

황 장관과 함께 부적격 판정을 받은 서남수 교육부 장관 역시 청문회 과정에서 전관예우, 양도세 탈루, 장녀 채용특혜 의혹 등이 잇따라 불거지면서 곤혹을 치렀다.

교육부 차관으로 재직했던 서 장관은 퇴직 후 경인교대 초빙교수로 4800만원, 홍익대 초빙교수로 420만원, 관정 이종환 교육재단 고문료 1200여만원, 서울장학재단 이사 400만원, 한국연구재단국비지원사업 9000만원, 기타 강의료 및 연구비 등 4600만원, 위덕대학교 총장 급여 3600만원 등의 소득을 올렸다. 차관 재직 때보다 연봉은 오히려 23%나 증가했다. 사실상 전관예우의 혜택을 누린 것이란 지적이다.

서 장관은 또 1989년 가족들과 함께 서울에서 과천으로 이사하면서 본인의 주소지를 기존 서울 아파트에 남겨둔 것에 대해 양도소득세를 내지 않기 위한 것이라는 의심도 받았다. 서 장관은 양도소득세 과세 대상자였지만 전입신고를 하지 않아 세금을 내지 않았다. 주민등록법과 소득세법 위반에 해당한다.

이와 함께 서 장관의 장녀가 고등학교 인턴교사에 채용되는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서 장관의 장녀는 지난 2010년 교원자격증을 소지하지 않은 상태에서 경기도 과천 A고등학교의 과학실험교육 인턴교사로 채용돼 4개월간 근무한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규정에 따르면 교원자격증 소지자의 채용을 원칙으로 하지만 미소지자의 경우는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를 거치도록 하고 있었다. A고등학교는 2010년 8월29일 운영위원회를 개최해 해당 채용안건을 통과시켰지만 학교는 이미 이틀 전인 8월27일 계약서를 작성하고 채용결정을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학교 측은 "절차적으로 문제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국회 '부적격' 판단에도 대통령은 임명 강행
하나마나 한 인사청문회 "국민여론 무시하나?"

박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실세장관'인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 역시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조 장관은 청문회 과정에서 보유 주식 신고 누락 및 증여세 회피, 부동산 투기 의혹과 역사인식 문제 등으로 난타 당했다.

특히 친정어머니에게 빌렸던 2억원에 대해 증여세를 내야 하는 규정을 알지 못했다는 조 장관의 당시 해명에 대해 야권은 "변호사이고 국회의원 시절 인사청문회를 두 번이나 했는데 (규정을) 몰랐다는 것은 이해가 안 된다"며 반발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부적격 판정을 받은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은 도덕성이나 준법성과 관련해 중대한 흠결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으나 야당 의원들은 고용노동정책을 총괄하는 부처의 수장으로서 갖추어야 할 정책철학이나 소신, 전문성과 주요 현안에 대한 문제해결능력 등에 대해서는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야당 의원들은 방 장관에 대한 보고서 채택에는 원만하게 합의했다.

이외에도 역시 실세장관인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은 의원 겸직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특정기업과 관련한 사건을 계속해서 수임한 점과 고액 후원금, 부인 관련 의혹에 시달리다 미흡판정을 받았고,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상속농지 보유의 농지법 위반 여부, 한전 주식 보유의 위법성 여부, 자녀 예금에 대한 증여세 지연납부 의혹 등으로 미흡 판정을 받았다.

청문회 과정에서 적격판정을 받았다고 해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의 경우는 법무법인에서 고액연봉을 받던 시절 대학생이던 딸이 가계곤란 장학금을 다섯 차례나 받은 사실에 병역기피 의혹, 위장전입, 투기, 신전관예우, 거짓해명 등의 의혹이 불거졌지만 청문회에서 적격판정을 받았다.


법보단 돈
피해는 국민에게

한 정치전문가는 "이번 장관 청문회의 경우는 박 대통령이 일정에 쫓기다 17개 부처의 장관을 거의 동시에 임명한데다 조직개편안 통과 난항, 북한 안보 위협 등의 국내외 정치상황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사실상 날치기로 통과된 면이 없지 않아 있다"며 "이처럼 부적격 인사로 꾸린 내각이 국정운영을 하게 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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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