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세 먹는 하마' 역대 정부조직개편 풀스토리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3.03.11 14:4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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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바뀔 때마다 '새 술은 꼭 새 부대에?'

[일요시사=정치팀] 정부 조직개편은 우리나라에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가장 먼저 하는 하나의 ‘통과의례’다. 지난 1993년 문민정부 출범 이후 현 박근혜 정부까지 무려 8차례나 조직의 틀이 바뀌었다. 반면 미국의 경우는 1988년 이후 국토안보부가 신설된 것을 제외하면 현 행정조직이 25년째 유지되고 있다. 왜 우리나라는 유독 정권이 바뀔 때마다 조직개편에 목을 매는 것일까? <일요시사>가 혈세가 줄줄 샜던 역대 정권의 조직개편 풀스토리를 살펴봤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한창 숙성 중인 새 술을 낡은 부대에 부으면 술이 팽창하면서 가죽부대가 터지기 때문에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새 부대만 고집하다 아예 술을 쏟아버릴 위기에 처했다.

새 부대 고집하다
새 술 엎지를라!

지난 1월30일 발의된 정부조직개편안이 한 달 넘게 표류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제시한 개편안을 놓고 여야는 첨예하게 대치중이다. 핵심쟁점은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를 둘러싼 이견이다. 새누리당은 SO부문을 미래창조과학부로 넘겨야 한다는 것이고, 민주통합당은 SO부문을 방송통신위에 남겨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조직개편안의 통과가 미뤄지며 국정공백은 점점 커져가고 있지만 민주당은 정부조직과는 상관없는 생뚱맞은 지상파방송 사장 선임 문제를 협상카드로 제시했고, 새누리당과 청와대는 한 발짝도 물러설 수 없다며 고집을 피우고 있다.

일관성 없는 조직개편에 줄줄 새는 혈세
고민 없는 조직개편 "임기 중 세 번이나?"


정부조직개편을 둘러싼 갈등은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금은 대통령으로서 정부조직개편안을 두고 야당과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박근혜 대통령은 8년 전엔 자신이 야당의 대표로서 정부조직개편안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정부조직법개정안의 수정안을 강행처리하려고 하자, 박 대통령이 대표로 있던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의원들은 단상을 점거하는 등 물리적 저지에 나섰을 정도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시행되는 정부조직개편은 마치 연말만 되면 멀쩡한 보도블록을 갈아엎는 기이한 풍경과도 비슷하다. 1987년 직선제 이후 역대 정권은 예외 없이 부처 통폐합을 단행했다. 새 대통령의 의중에 따라 별다른 기능도 없는 부처가 신설되기도 했고, 전과 동일한 업무를 하면서도 간판만 바꿔다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이 과정에서의 혈세 낭비는 필연적이었고, 각 정부 부처들이 5년 주기로 대변화를 겪다보니 업무 연속성이 깨지며 효율성도 떨어졌다. 역대 정권의 조직개편을 살펴보면 그 심각성을 더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역대 조직개편
효율성은 '꽝'

지난 1993년 2월 탄생한 김영삼 정권에서는 5년간 3차례에 걸쳐 정부조직을 개편했다. 김영삼 정권은 효율성과 민주성이라는 원칙 아래 '작고 효율적인 정부'를 전면에 제시했다.

김영삼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에 이뤄진 1차 개편은 정부 부처 축소에 초점이 맞춰졌다. 문화부와 체육청소년부, 상공부와 동력자원부를 각각 통합해 문화체육부와 상공자원부로 개편한 것이다. 그런데 불과 1년여 만인 1994년 김영삼 정권은 다시 대대적인 정부조직개편을 한다. 상공부와 동력자원부를 통합해 만든 상공자원부는 통상정책기능 강화에 초점을 맞춰 다시 통상산업부로 개편됐다.

체신부는 정보통신부로 변경됐고, 환경처는 환경부로 격상됐다. 게다가 또 1년여가 흐른 1996년 2월에는 중소기업청을 설치했고, 같은 해 8월 해양수산부 및 해양경찰청을 신설한다. 작은 정부를 외쳤던 초기와는 전혀 다른 행보였다.

김대중 정권도 전 정권과 마찬가지로 3차례에 걸쳐 정부조직을 개편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인 1998년 2월 김영삼 정권의 '2원14부5처14청'의 정부체제를 '17부2처16청'으로 개편했다. 재정경제원을 재정경제부로 이름만 바꾸고 외무부에 통상교섭본부를 신설해 외교통상부로 변경했으며, 내무부와 총무처를 통합해 행정자치부를 만들었다. 통상기능을 담당하던 통상산업부는 산업자원부로 탈바꿈했다.




1999년 2월 2차 정부조직개편에서는 기획예산위원회와 예산처를 통합해 기획예산처를 신설했다. 김대중 정권은 또 경제부총리 및 교육부총리를 신설했다. 부총리겸 재정경제부 장관으로 하여금 경제부처를 총괄 조정하도록 하고, 부총리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이 인적자원 개발정책에 관해 관계부처를 총괄하도록 한 것이다. 이와 함께 여성부도 신설, 17부2처16청으로 출범한 김대중 정권은 '18부4처16청'으로 막을 내렸다.

노무현 정권에서는 정부조직개편이라는 하드웨어 변경보다는 기능조정이라는 소프트웨어 변경에 초점을 맞췄다. 이 같은 차원에서 보건복지부의 보육서비스 기능이 여성부로, 기획예산처의 행정개혁 기능이 행정자치부로 각각 이양됐다.

동시에 특정 정부조직이 전담하기 어려운 정부혁신, 지방분권 등 굵직한 대통령 어젠다를 수행하는 기구로 각종 위원회를 신설, 전담토록 했다. 하지만 노무현 정권이 신설한 위원회들은 각종 문제를 야기했고 별다른 효용성 없이 공무원수만 늘렸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밖에도 노무현 정권은 소방방재청과 방위사업청,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을 신설하고 철도청을 공사화했다. 이로써 노무현 정권에서의 정부조직은 '18부4처18청'으로 개편됐다.

오락가락 개편
늘렸다 줄였다

이명박 정권은 10년만의 정권교체라는 상징성 때문인지 정부조직을 대대적으로 수술했다. 인수위 시절부터 점령군 논란을 겪었던 이명박 정권이기에 어쩌면 예상된 결과였다. '작고 유능한 실용정부'를 목표로 추진된 이명박 정권의 정부조직 개편안은 통일부 및 여성부 존폐 논란 등으로 지금과 같은 극심한 진통을 겪었다. 조직 규모는 노무현 정권 때보다 대폭 축소돼 '15부2처18청'이 됐다.

이명박 정권은 우선 경제ㆍ교육ㆍ과학기술 부총리제를 폐지했고 기획예산처와 재정경제부를 기획재정부로 통합했으며 과학기술부와 정보통신부, 해양수산부를 각각 폐지했다. 이명박 정권은 이처럼 기존 18부의 조직을 15부로 무리하게 줄이면서 해당 부처 공무원들과 해당 부처와 관련된 각계 인사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결국 이명박 정권의 정부조직개편안은 정부 출범 직후인 2008년 2월29일에서야 실행에 옮겨질 수 있었다. 이명박 정권은 대신 정보기술 산업정책 및 산업기술연구개발정책을 통합해 지식경제부를 신설하고 과학기술정책을 교육에 결합해 교육과학기술부로 개편하는 동시에 특임장관을 신설했다. 또한 정보통신부의 통신서비스 정책ㆍ규제 기능과 방송위원회의 방송 정책ㆍ규제 기능을 통합해 방송통신위원회를 만들었다.

새롭게 출범한 박근혜 정부 역시 이전 정권들의 조직개편 구태를 답습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에서 15부2처18청이었던 조직을 '17부3처17청'으로 바꾸기로 결정했다. 행정안전부는 안전을 우선한다는 취지에서 안전행정부로,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식품의약품안전처로 이름만 바꿨다.

안전행정부가 행정안전부보다 안전할까?
조직개편이 정부혁신이라는 착각 버려야

이 과정에서 불필요한 예산 낭비는 필연적이다. 부처의 명칭이 바뀌면 전국의 현판과 부처가 쓰던 서류, 명함 등을 모두 바꿔야 한다. 행정안전부에서 안전행정부로 명칭만 앞뒤로 바뀌는 데 무려 6000여만원의 예산이 투입된다고 한다.

정부 측은 명칭 변경을 계기로 국민 안전에 더욱 만전을 기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실상 업무면에서 달라지는 것은 별로 없다. 과연 안전행정부가 행정안전부보다 더 안전할지는 의문이다. 박근혜 정부의 조직개편으로 소속 부처를 옮기는 공무원과 산하기관 종사자들은 4만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이 많은 예산이 투입되는 조직 개편이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너무 잦다는 점이다. 미국의 경우는 지난 2001년 9·11 테러 이후 국토안보부가 신설된 것을 제외하곤 1988년 이후 현 행정조직을 25년째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일본 역시 2001년 관료주의의 상징이던 대장성을 없애고 부처수를 절반으로 줄인 뒤 지금까지 12개 성청을 그대로 이어오고 있다.

일본은 이 같은 조직 개편을 위해 10년이 넘는 준비 기간을 거쳤던 것으로 알려진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별다른 준비 없이 즉흥적으로 조직개편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았다. 겨우 5년간의 임기 중에 세 번씩이나 조직개편을 거쳤던 지난 정권들의 사례는 지난 정권들이 조직개편을 함에 있어 그만큼 고민이 부족했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고민없는 개편
반복되는 폐해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토록 조직개편에 목을 매는 것일까? 우선 표면적인 이유는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새로운 국정 철학을 지닐 수밖에 없고 이를 구현하기 위해 정부조직개편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특정 분야를 육성하고 집중적으로 자원을 쏟아붓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정부조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조직개편은 실상 '전 정권 지우기'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한 정치 전문가는 "우리나라의 정치인들은 조직개편을 정부혁신으로 착각하고 있는 듯하다"며 "무작정 덩치를 키우거나 공무원수를 줄인다고 해서 일 잘하는 정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정부 혁신을 이루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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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