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취임에 '독재 트라우마' 떠오르는 내막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3.03.04 13: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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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길 수 없는 '독재DNA' "역시 피는 못 속여?"

[일요시사=정치팀]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7만여 명의 국민들과 해외 축하사절이 참석한 가운데 제18대 대통령으로 공식 취임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취임사를 통해 '국민'이라는 단어를 57번이나 반복하며 국정운영의 중심이 국민임을 거듭 강조했지만, 일각에선 박근혜 정부의 출범과 함께 독재정권 시절의 공포가 떠오른다며 우려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일요시사>가 그 때 그 시절을 떠올리는 국민들의 '독재 트라우마'를 추적해봤다.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식 사흘 전인 지난달 21일. 박 대통령에 대한 각종 폭로를 담아 인터넷상에 동영상을 유포한 혐의로 조웅 목사가 체포됐다. 조 목사는 이날 혜화동의 한 찻집에서 인터넷방송으로 생중계 인터뷰를 하던 도중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남자 3명에게 붙잡혔다. 체포 당시 상황은 그대로 생중계 됐다.

흉악범도 아닌데
욕했다고 긴급체포

사실 조 목사의 폭로내용들은 다소 황당한 것들이었다. 박 대통령이 평양 방문 시 정부의 허가를 받지 않은 한화 500억을 북측에 건넸다거나, 김정일과 만찬에서 마약이 섞인 백두산 삼독주를 마셨고, 김정일과 동침(잠자리)했다는 등의 주장은 근거도 없고 신빙성도 없었다. 명예훼손 혐의는 충분했지만 문제는 그 방식에 있었다.

이날 현장에 들이닥친 남자들은 자신들이 어디 소속인지, 누가 신고를 했는지 전혀 설명하지 않았으며, 흉악범도 아닌 일흔이 넘은 노인을 수갑을 채워 연행해 갔다. 마치 박정희 시대의 긴급체포를 연상케 하는 장면이었다.

또 검찰은 고발 당일 사건을 배당하고, 법원에 체포영장을 청구해 발부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고발 당일 사건 배당과 체포영장 청구가 이뤄진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조 목사 체포과정에 박 대통령 측의 입김이 작용한 것은 아닌지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박근혜 정부의 출범과 함께 독재정권 시절의 공포가 떠오르고 있다. 불과 10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당시 반대세력의 온갖 비방과 공격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을 욕하는 것은 민주사회에서 주권을 가진 시민의 당연한 권리다. 대통령을 욕함으로써 주권자가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다면 전 기쁜 마음으로 들을 수 있다"고 말했었다.

대통합 외치더니 결국 친박으로 끝난 인선
주변에 쓴소리 할 인물 없어, 독선 빠지나?

불과 10년 사이 거꾸로 돌아간 시계에 국민들은 적응하기가 힘들다.박근혜 정부를 바라보며 국민들이 독재 공포를 느끼는 이유는 이 밖에도 다양하다.

박 대통령은 대통령실을 비서실로 환원하고 경호처를 경호실로 개편하면서 경호실장을 장관급으로 격상했다. 경호실의 격상은 박 대통령의 '단독작품'으로 인수위와도 의견이 엇갈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은 경호실장 내정자로 박흥렬 전 육군참모총장을 지명했다. 4성 장군으로는 2008~2011년 경호처장을 맡은 김인종 전 2군사령관이 있었지만 참모총장 출신은 처음이다.

경호실장은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과거 군사정권 시절에는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권력의 실세로 통했다. 때문에 지난 1993년 김영삼 전 대통령은 공채 경호요원이던 박상범 경호실장을 발탁해 군 출신이 경호실장을 독차지해온 관행을 처음으로 끊었다.

군의 정치개입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권위주의적 경호방식에서 탈피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었다. 실제로 이때를 시작으로 경호실장은 비정치적인 자리로 서서히 탈바꿈했다.

경호실 강화
제2의 차지철?


그러나 박 대통령이 경호실장을 장관급으로 격상하고 참모총장 출신의 경호실장을 내정함으로써 과거 군사정권 시절의 행태가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당장 경호실의 실질적 권한도 강화됐다. 이명박 정부에서 경호공무원 임용 시 제청권이 청와대 대통령실장에게 있었지만 이제는 경호실장이 직접 제청권을 행사하고, 경호실 직원에 대한 징계권도 대통령실에서 경호실로 옮겨졌다. 또 경호처장이 경호구역을 지정하려면 대통령실장의 승인을 받아야 했지만 앞으로는 경호실장이 독자적으로 할 수 있게 됐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국민을 보호하는 경찰청장은 차관급인데 자신을 보호하는 대통령 경호실장은 장관급으로 승격한다는 게 말이 되냐"며 "이것이 국민을 섬기는 자세인지 의심스럽다"는 비판여론이 일기도 했다. 또 일각에선 "박 대통령이 '제2의 차지철'을 키우겠다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는 반응도 있었다.

박 대통령을 둘러싼 주변 측근들의 과잉충성도 과거 독재정권을 떠올리게 한다. 대선기간에도 새누리당 의원들은 '박근혜 심기경호'라는 신조어까지 등장시킬 정도로 충성경쟁을 벌였었다. 당연히 대선 승리 이후에는 충성경쟁이 더 심해졌다. 

부동산 편법증여 사실을 숨기기 위해 허위로 고위공직자 재산신고를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자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사진이 담긴 휴대전화 고리를 달고 다닌 사진이 보도되며 과잉충성 논란에 휩싸였다. 그러나 김 후보자는 논란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평소 두 분을 존경해서 사진을 달고 다닌다"고 말했다.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 역시 인수위 시절 <월간 박정희>라고 적힌 종이봉투를 들고 나타나 과잉충성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또 인수위 고용노동분과에서는 일자리 창출 방안으로 '두 번째 새마을운동'이라는 언급이 나와 박근혜 정부의 목표가 유신시대로 회귀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까지 일었다.

지난해 12월에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KBS 2TV <개그콘서트> '용감한 녀석들' 코너에 대해 징계를 내려 과잉충성 논란이 있었다. 방송통신심의위에 따르면 개그맨 정태호가 박 대통령을 대상으로 "잘 들어, 개그는 절대 하지 마라"고 말한 것 등이 반말에 해당된다며 이는 시청자에 대한 예의와 방송의 품위 유지에 위배되는 부적절한 내용으로 판단해 KBS에 행정지도 처분을 내렸다.

헛기침만 해도
알아서 긴다

또 지난달 22일에는 취임식을 앞두고 취임식장 제설작업에 소방관들이 투입돼 역시 논란을 일으켰다. 행정안전부는 이날 영등포소방서에 공문을 보내 대통령 취임식 행사가 열리는 국회 잔디밭에 놓인 4만5000여 개의 의자에 쌓인 눈을 치우도록 했다. 이 공문을 받은 영등포소방서 소속 100여 명의 소방관은 취임식 행사장에 동원돼 제설작업을 했다. 이 역시 공무원 조직의 과잉충성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많다.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 내정자는 최근 열린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취임식 소방관 동원은 적절치 못했다"고 인정하기도 했다. 유 후보자는 제18대인수위원회 대통령취임준비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취임식 준비를 진두지휘했다.

또 박 대통령은 대선기간 내내 대통합을 외쳤지만 지금까지의 인선은 철저히 '친박'으로 점철되고 있어 이에 대한 우려도 크다. 박 대통령 주변을 친박계가 둘러싸고 반대목소리를 차단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역시 과거 독재정권 시절의 공포를 떠올리게 한다.

너도나도 과잉충성 경쟁, 관제 동원 부활?
박근혜 욕하면 긴급체포? 여론 입막기 의혹

지난달 18일 박 대통령은 새 정부의 조각을 완료했다. 박 대통령의 인선에 대해 전문성을 보강했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민주당은 "박 대통령이 사실상 혼자서 국정을 통할하겠다는 친정체제를 구축했다"고 평가했다. 이번에 발탁된 장관후보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박 대통령과 인연을 맺으면서 보좌역할을 했던 인사들이다. 새누리당 내에서도 "부처를 제대로 장악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장관후보자도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또 대통령 비서실장에는 친박 중진인 허태열 전 의원을 임명함으로써 결국 행정부에 대한 청와대의 장악력을 높이는 데 중점을 뒀다는 평가를 받았다.

박 대통령의 인선에 대해 정치전문가들은 한 가지 공통된 의견을 내놓고 있다. 주변에 쓴소리를 할 인물이 없다는 것이다. 측근들에 둘러싸인 박 대통령이 자칫 독선에 빠지지 않을지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길게 드리워진
박정희의 그림자

박 대통령의 취임식이 있던 날 외신들은 박 대통령이 하루 빨리 아버지의 독재정권 이미지를 떨쳐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임기 초임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의 현재 지지율이 50%대에 불과한 것도 이 같은 독재 이미지가 크게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날 보도에서 "박 대통령의 성공은 18년간 장기독재를 한 부친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있느냐 여부가 관건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한 언론인은 "박근혜 정부가 무엇보다 소통에 성공하기 바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경부고속도로 지을 때는 국민과 야당이 반대해도 우선 추진하고 역사의 판단을 기다릴 수 있었지만 지금은 소통 없이는 역사를 기다릴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과거 박정희 시대의 일방통행 리더십을 추구한다면 그 선택의 옳고 그름과 상관없이 반드시 실패 할 것이라는 뼈 있는 조언이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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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