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정리> 물러난 MB의 '변명을 위한' 변명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3.02.26 14: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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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창대'하였으나 끝은 '미약'하였노라?

[일요시사=정치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 19일 퇴임연설을 끝으로 사실상 모든 국정활동을 마무리했다. 이 전 대통령은 퇴임연설에서 이 정부 5년의 공과에 대한 평가는 모두 역사에 맡기자고 했다. 지난 5년간 끊임없는 비판에 시달려온 이 전 대통령의 고단함이 느껴지는 듯 했다. 그렇다면 이 전 대통령은 정말 실패한 대통령일까? <일요시사>가 MB정부의 지난 5년을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해봤다.



"이명박 대통령은 폭군이었을까 성군이었을까?"

임기를 마치고 물러난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세간의 평가가 냉혹하다. 혹자는 이 전 대통령에 대해 "언론의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을 후퇴시킨 대통령"이라고 말했고, 또 다른 이는 "대기업 위주 정책으로 서민경제를 붕괴시킨 주범"이라고도 말한다.

임기 중 잇따라 발생한 측근비리와 퇴임을 앞두고 강행한 측근사면으로 도덕성에 대한 평가도 바닥을 치고 있다.

냉혹한 평가
도덕성 바닥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임기 중 맞이한 유례없는 두 차례의 글로벌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나아가 국민소득 2만달러 달성, 무역 1조달러 돌파, 국가신용등급 상승 등을 이끌어낸 대통령이기도 하다.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세간의 평가가 인색하게만 느껴지는 이유다.


김문수 경기지사는 전직 대통령들에 대한 평가가 유독 인색한 우리나라의 풍토에 대해 "우리는 전쟁의 잿더미에서 잘사는 대한민국을 이룩한 것에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며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지키고, 발전시킨 모든 대통령이 강아지보다 대접을 못 받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5년이란 세월동안 나라를 위해 오롯이 매진해 온 이 전 대통령. 그는 과연 5년 동안 치적을 남기기 위해 무리수를 둬가며 사고만 쳤던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국민들의 기대를 잔뜩 안고 출범했지만 첫 단추부터 잘못 꿰었다.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가 그것이다. 촛불시위는 이 전 대통령을 탄핵 위기로까지 몰아넣었다.

이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5월, 정권 출범 두 달 만에 미국산 소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로 위기를 맞았었다. 소고기 재협상 요구로 시작된 시위는 이후 이명박 정부 퇴진 등 반정부 시위로까지 번졌다. 촛불시위는 당시 MBC <PD수첩>이 '미국산 소고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하면서 촉발됐다.

MB정부 5년 대단원의 막…평가는 '극과 극'
2차례 세계경제위기 극복, 국격 상승 '호평'

그러나 보도내용은 대법원 판결 결과 대부분 허위사실로 판명이 났다. 또 소고기 재협상 논란의 원인이 됐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역시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지난해 3월 발효 이후 대미 수출의 버팀목 역할을 한 것으로 분석됐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한미FTA 발효 후 글로벌 경기침체 여파로 주요 수출시장인 중국·유럽연합(EU) 수출은 줄어든 반면 대미 수출은 2.9% 증가하기도 했다. 이후 이 전 대통령은 임기 중 야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EU FTA를 강력하게 밀어붙여 세계에서 세 번째로 넓은 경제영토를 개척했다. FTA 체결·타결국은 2004년 1건(1개국)에서 2012년 10건(47개국)으로 늘었다.

이 전 대통령은 임기 내내 비판을 받았던 인선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대통령 취임 후 인선 때마다 고소영(고려대ㆍ소망교회ㆍ영남), 강부자(강남부자) 인사라며 비판을 받았고 많은 고위공직자 후보자가 인사청문회를 넘지 못하고 낙마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최근 발간한 국정백서를 통해 이 같은 비판은 근거가 없다고 반박했다.


고소영은 오해
광우뻥에 울다

백서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가 임명한 전체 정무직 392명 중의 고려대 출신 분포비율은 16.1%로 김대중 정부 14.5%, 노무현 정부 11.3%와 비교해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아니다.

소망교회 출신은 이경숙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장과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장관을 포함해 모두 4명 내외로 대통령이 5년간 임명한 고위공직자 총 3300여 명의 0.1%에 불과했다.

또 이명박 정부에서 영남 출신 인사의 비율은 35.7%로 김대중 정부 때의 22.4%보다는 높지만 노무현 정부 때의 39.3%보다는 낮다. 고소영 인사가 아니었다는 항변이다.

이 대통령은 강부자 인사 또한 오해라고 주장한다. 초기 임명된 국무위원 등의 평균재산액은 33억7000만원인데, 유인촌 장관의 140억2000만원을 제외하면 26억1000만원이다.

노무현 정부 초기 장관의 평균재산은 11억원이었는데, 2008년을 기준으로 5년간 강남 소재 아파트의 명목 가격이 10억원 가량 증가한 것과 1인당 국민소득이 1만3000달러에서 2만달러로 오른 것을 고려하면 지나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지만 그가 취임 후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는 사실은 수치가 증명하고 있다. 대통령실 경호처에 따르면 이 전 대통령이 지난 5년 동안 참석한 공식 행사는 총 3842회다.

이는 하루 평균 2.1회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2.5배, 김대중 전 대통령의 2배, 김영삼 전 대통령의 3.1배, 노태우 전 대통령의 3배, 전두환 전 대통령의 1.7배 많은 규모다.

특히 49차례에 걸쳐 84개국 110개 지역을 방문, 역대 정부 중 가장 많은 해외 순방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 전 대통령이 5년 동안 이동한 총 거리는 지구 22바퀴에 해당하는 88만2508㎞. 하루 평균 483㎞를 이동한 셈이다. 이 전 대통령은 이 과정에서 아랍에미리트(UAE)에 한국형 원전을 수출하는 등 수많은 사업을 직접 따냈다.

특히 이 전 대통령은 '경제대통령'이라는 자신의 대선 캐치프레이즈답게 글로벌 경제위기 가운데에서도 지난 2010년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선을 회복시켰고, 2011년에는 세계에서 9번째로 무역 1조달러를 달성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세계 7대 무역강국으로 우뚝 섰다. 세계 주요국가의 신용등급이 모두 하락하는 가운데서도 우리나라의 국가신용등급은 지난 5년간 OECD 34개국 중 가장 높이 상승하기도 했다.

글로벌 위기 극복
국가신용도 상승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의 국격과 위상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이 전 대통령은 임기 중 주요 20개국(G20) 서울정상회의와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등을 잇달아 치러내면서 중견국가로서의 확고한 위상을 확립했다.


또 이처럼 외교부분에서 물꼬가 트이자 우리나라는 3수 끝에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에 성공하는 성과를 얻어내는가 하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에 진출하기도 했다. 이 같은 성과는 이 전 대통령의 뛰어난 외교술 덕분이라는 평가다.

올해로 60주년을 맞는 한미동맹은 이명박 정부 5년간 그 어느 때보다 공고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미FTA 비준 등으로 경제분야 협력이 강화된 데다, 대북 위협에 맞서는 카드로 대미 외교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지난해 개정된 한미 미사일지침은 이 전 대통령이 펼친 대미외교의 대표적인 결과물이다. 이 지침으로 우리나라는 북한 전역을 사정권에 둘 수 있는 미사일 개발이 가능해졌다.

반면 남북관계는 이 전 대통령의 임기 내내 극단으로 치달았다. 천안함 사태와 연평도 포격 사태를 경험하며 전 국민이 안보불안감에 떨기도 했다.

MB, 역사 속 '성공한 전직 대통령' 롤모델 될까?
지금은 '과'이지만 나중엔 '공'이 될 수도 있어

하지만 이 전 대통령 측은 "남북관계가 순탄치 않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대북정책 성과를 평가해선 안 된다"고 항변한다.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북한의 '갈취근성'과 햇볕정책에 대한 금단현상을 치유하고 남북관계의 근본적 틀을 바꿔놓았다"고 자평했다.

천 전 수석의 말처럼 이 전 대통령의 대북 강경정책은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지난 정권에서의 저자세 대북외교에 분통을 터뜨리던 보수층으로부터는 적극적인 지지를 얻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펴본 그 무엇보다도 이 전 대통령이 억울하게 생각하는 것은 '4대강 살리기 사업'에 대한 비판이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들은 이 전 대통령이 임기 중 가장 잘못한 일로 4대강 사업을 꼽기도 했다. 4대강 사업과정에서 크고 작은 사고들이 발생했고 부실공사 문제가 지적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사업의 본질적인 문제는 아니었다.

4대강 살리기 사업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4대강이 감당할 수 있는 강우빈도를 100년에서 200년으로 늘려 자연재해를 최소화하자는 것이었다. 선진국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기 때문에 이미 500년에서 1000년 강우빈도까지 대비를 하고 있다. 우리는 4대강 사업을 했어도 선진국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다. 이처럼 4대강 사업은 선진국에서는 이미 수백년 전부터 해온 치수사업을 이제야 우리도 실시한 것 뿐이다.

억울한 비판
후세가 평가하길

게다가 지난 참여정부에서는 <신국가방재시스템백서>를 통해 2007년부터 2016년까지 총 87조4천억원의 예산을 투입할 계획을 수립했었는데 4대강 사업은 이 계획에 따라 매년 지출됐던 수해복구 2조4천억원, 치수사업 1조2천억원, 수질관리 2조2천억원, 농업용수 3천억원, 가뭄피해 3천억원 등 6조4천억원에 1조원을 추가해 3년 동안 총 22조2천억원의 예산으로 실시된 것이다.

이를 감안하면 4대강 사업에 투입된 예산이 과도하다고 볼 수 없고 과거 정부에서 수립한 사업계획에 비해 얼마나 경제적인 사업이었는가를 쉽게 알 수 있다.

이 전 대통령은 취임 초 "임기 말까지 끝까지 일하는 대통령으로 남겠다"는 다짐을 했었다. 그 다짐대로 이 전 대통령은 지난 5년간 새벽 4시에 일어나 자정이 넘어서야 잠자리에 드는 강행군을 계속 해왔다.

물론 이 전 대통령의 '공'과 함께 '과'도 분명히 존재하겠지만 지난 5년간 우리는 이 전 대통령의 '과'만 너무 부각해서 들여다 본 것은 아닌지 냉철하게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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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