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위 50일간의 기록 '키워드' 넷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3.02.21 17: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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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인수위'라더니 역대 가장 '시끄러운 인수위'

[일요시사=정치팀] 지난달 6일 출범한 제18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활동이 드디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오는 25일이면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당선인 꼬리표를 떼고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대통령으로서 당당히 취임하게 된다. '조용한 인수위'를 표방하며 출범한 제18대 대통령직 인수위. 하지만 역대 그 어느 인수위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제18대 인수위의 지난 50일을 네 가지 키워드를 통해 되짚어 봤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역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점령군 논란을 일으켰던 전례들을 답습하지 않겠다며 '조용한 인수위'를 표방하고 제18대 대통령직 인수위를 출범시켰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제18대 인수위는 역대 가장 '시끄러웠던 인수위' 중 하나로 기억될 듯하다.

역대 최다득표
역대 최저지지도

지난 50일간 인수위에서는 크고 작은 잡음들이 끊이질 않았다. 박 당선인의 지지도는 어느새 48% 대까지 밀렸다. 당선인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과 시종일관 대립각을 세우며 논란을 일으켰던 이명박 대통령도 취임 전엔 지지도 70~80% 대를 유지했었다. 박 당선인의 지지도는 역대 최저치다.

박 당선인은 지난 대선에서 역대 최다득표로 승리했었다. 그런데 두 달도 지나지 않아 여론이 이토록 차갑게 돌변한 것은 인수위의 실패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인수위는 향후 박근혜 정권 5년의 밑그림을 그리는 단계다.

인수위 단계에서부터 문제가 있었다면 반드시 되짚어보고 해결책을 마련해야만 한다. 따라서 <일요시사>는 네 가지 키워드를 통해 역대 그 어느 인수위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제18대 인수위의 지난 50일을 되짚어 봤다.


제18대 인수위의 첫 번째 키워드는 '철통보안'이다. 겨우 두 달 남짓에 불과했던 기간, 인수위가 파국으로 치닫게 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박 당선인의 철저한 '비밀주의'였다.

철통보안 중시하다 언론탄압 오명 쓰고 '망신창이'
인선마다 잡음·낙마…나 홀로 인선 역풍에 휘청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은 인수위 출범 당일 공동기자회견장에서 브리핑을 갖고 "(이번 인수위에서는) 특종도 없고 낙종도 없다. 언론이 특종을 하기 위해 상상력을 발휘하면 결국은 오보로 끝난다"고 말했다. 윤 대변인은 이후 스스로를 "인수위 안의 단독기자"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인수위에 대한 언론의 취재경쟁이 과열된 상황에서 관련보도를 신중하게 해달라는 당부였겠지만 기자들 사이에선 "인수위에서 말하는 대로 받아쓰기나 하라는 거냐"며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인수위의 험로를 예고하는 장면이었다.

인수위는 특히 각 부처의 업무보고 참석자들에게도 "부처로 돌아가서 업무보고와 관련한 브리핑을 절대 하지 말라" "친한 기자들에게 보고내용을 흘리면 해당자를 징계하겠다"는 등의 경고를 수차례 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박 당선인의 철통보안에는 명분이 있었다. 확정되지 않은 사실이 알려져 국민들에게 혼선을 주는 일을 막겠다는 것이었다.

혼선 막으려다
소통 막았다


제18대 인수위에 출입하는 언론사는 모두 193개. 출입 등록을 한 기자 수만 해도 1000여명에 달했다. 그런데 기사거리가 나오지 않자 취재경쟁은 더욱 치열해졌고, 결국 그 화살은 박 당선인과 인수위에게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언론들은 박 당선인과 인수위에 연일 융단폭격을 가했다.

또 철통보안 속에서도 인수위발 특종은 매일같이 쏟아져 나왔다. 결과적으로 박 당선인과 인수위는 욕만 먹고 실리도 챙기지 못한 셈이었다. <문화일보> 출신인 윤 대변인은 직속후배 격인 한 <문화일보> 기자에게 "너희들은 내가 그렇게 싫으냐?"라며 이 같은 언론들의 융단폭격에 섭섭한 마음을 내비치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두 번째 키워드는 '인선실패'다. 윤 대변인 임명부터 김용준 총리후보자 지명까지 박 당선인의 인선은 연일 입방아에 올랐다. 우선 박 당선인이 대통령 당선 후 첫 번째로 시행한 인선인 윤 대변인의 경우 야권은 물론이고 여당 내부에서도 "국민 대통합과 탕평인사의 걸림돌"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윤 대변인은 대변인 임명 전 언론 기고와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카지노 정치판' '떳다방 세력들'이라는 표현으로 정치판 자체를 부정하기도 했고, 야당인사들에게는 '바닥 양아치' '저질들'이라고 말했다.

또 정운찬 전 총리와 김덕룡, 김현철 등 문재인 전 민주통합당 대선후보를 지지했던 정치권 인사들에 대해서는 '정치적 창녀'라는 입에 담지 못할 말까지 서슴지 않았었다. 이 같은 전력으로 논란이 거세지자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대변인으로서 공과를 지켜보고 평가해 달라"고 당부했지만 인수위 활동이 막바지에 이른 지금까지도 윤 대변인에 대한 평가는 좋지 않다.

윤 대변인은 인수위 기간 기자들의 질문에는 '모른다'는 답변으로 일관하기 일쑤였고, 신경질적인 태도로 기자들과 여러 차례 언쟁을 벌이기도 했다. 오죽하면 인수위의 한 핵심 인사도 윤 대변인의 브리핑 태도와 방식을 강하게 비판했다고 한다.

반면 기자회견에서 깔끔한 브리핑 실력을 보여준 유민봉 인수위 국정기획조정분과 간사의 경우는 '깜짝스타'로 떠오르기도 했다. 기자들 사이에선 "도대체 왜 윤 대변인이 대변인 역할을 맡는 건지 모르겠다"며 "차라리 대변인 역할을 유 간사에게 맡겨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박 당선인이 첫 번째 인선부터 단추를 잘못 끼웠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으니 박근혜식 인선은 이후에도 실패의 연속이었다. 최대석 외교국방통일분과 인수위원이 역대 인수위원 중 처음으로 중도사퇴하는가 하면, 박 당선인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알려진 이동흡 전 헌법재판소장후보자 역시 각종 의혹에 휘말린 끝에 '생계형 권력주의자'라는 불명예만 안고 자진사퇴했다.

게다가 박 당선인이 공동선대위원장에서 인수위원장, 총리후보자로 연달아 발탁하면서 무한신뢰를 보내던 김용준 전 총리후보자마저 각종 의혹에 시달리다 인선 닷새 만에 자진사퇴했다.

연이은 인선의 실패는 박 당선인의 '보안제일주의' 때문이었다는 지적이다. 이전 정권들은 사전에 언론 등을 통해 후보군을 알려 자연스레 검증이 되도록 했지만 박 당선인은 발표 직전까지도 인선 내용을 철저히 보안에 부쳤다. 제대로 검증할 수 있는 장치도 마련하지 않고 박 당선인의 의중에 따라 일방적으로 인선이 진행되면서 잇따라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박 당선인은 김 전 총리 후보자의 낙마 이후 부랴부랴 인선 대상자들에 대한 검증을 강화하는 등 변화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인선 실패의 근본원인으로 지적돼온 '나홀로' '깜깜이' 인선 스타일만큼은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박 당선인의 인선 실패로 차기 정부 내각 구성 계획은 완전히 꼬여버렸다. 이대로라면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후 첫 국무회의를 전 정부 장관들과 했던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재현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노예 인수위
혜바라기 인수위

세 번째 키워드는 '공약 수정'이다. 역대 인수위에서는 국민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여러 가지 핑크빛 정책들을 제시하곤 했다. 인수위 시절 당선인들의 지지율이 높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박 당선인은 인수위 기간 핑크빛 정책들을 새롭게 내놓기는커녕 그나마 자신이 대선기간 제시했던 공약들마저 대폭 수정하겠다고 나섰다.

대선이 끝난 후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아 새누리당 안팎에서 공약 수정론이 거론됐다. 처음엔 공약 수정론에 경고를 보내던 박 당선인도 최근에는 사실상 백기를 들고 기초노령연금 지급, 4대 중증 질환 무료 진료 등 주요 복지 공약 수정론에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는 분위기다.

당장 야권에선 박 당선인의 대선기간 선거 캐치프레이즈를 빗대 "박근혜가 바꾸겠다더니 박근혜가 말을 바꾸겠다는 것이었냐"며 공약 수정론을 비판하고 나섰다. 전무후무한 인수위 기간 주요 공약의 수정은 제18대 인수위의 침몰을 가속화시켰다.

인수위 기간 주요공약 수정 "박근혜가 말 바꾸네?"
있는 둥 마는 둥 시키는 일만 한다 "식물 인수위?"


네 번째 키워드는 '식물 인수위'다. 제18대 인수위에는 무척 다양한 별명들이 있었다. 있는 둥 마는 둥 하다고 해서 '식물 인수위'라고 불리는가 하면, 시키는 대로만 한다고 해서 '노예 인수위', 박근혜의 입만 바라본다고 해서 '혜바라기 인수위'라고도 불렸다.

특히 18대 인수위는 그저 대통령을 무난히 잘 보필할 '예스맨'들로만 채워졌다는 비판이 거세다. 인수위 기간 각종 정치·사회 현안들이 부각됐지만 인수위는 거의 대부분의 사안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했다. '취임식 전까진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이명박'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5년 전 너무나 요란했던 이명박 정부의 인수위도 문제였지만 있는 듯 없는 듯 너무 조용한 인수위도 문제였다. 일각에선 "이 대통령 챙기기에만 몰두하느라 정작 국민들을 챙기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다.

인수위 실패
취임 후 달라져야

한 정치전문가는 "얼마 전 한 새누리당 관계자가 '처음에 지지율이 높았다 곤두박질치는 것보단 처음에는 지지율이 낮아도 나중에 오르는 것이 더 좋은 것 아니냐'는 궤변을 늘어놓는 것을 봤다"며 "처음에 지지율이 낮다고 해서 나중에 지지율이 오른다는 보장은 없다. 인수위 때부터 지지율이 하락하는 것은 분명히 뼈아픈 일이고 심각한 일이다. 박 당선인의 두 달 간의 예비 국정운영은 사실상 실패로 끝난 것이다. 박 당선인과 인수위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취임 후에는 반드시 달라진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명일 기자<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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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