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위기 고조에도 박근혜 웃는 내막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3.02.19 13:3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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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살다 내가 핵 덕을 볼 줄이야"

[일요시사=정치팀] 국제사회의 잇따른 경고와 압박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지난 12일 제3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특히 북한은 이번 핵실험을 통해 핵탄두를 탄도미사일에 탑재할 수 있을 정도로 소형화하는 능력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져 전 세계가 경악하고 있다. 하지만 정치권 일각에서는 북핵 사태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겐 오히려 천금 같은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이색적 지적이 나온다. 북핵 사태에도 박 당선인이 극도로 표정관리를 하고 있는 내막은 무엇일까? <일?요시사>가 살펴봤다.

 

 

미국의 제35대 대통령인 존 F. 케네디는 "내치에서의 실수는 선거에서 지면 그만이지만, 외교에서의 실수는 우리 모두에게 죽음을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공식 취임도 하기 전에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이했다. 북한이 지난 12일 국제사회의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제3차 핵실험을 강행했기 때문이다.

북한은 특히 이번 핵실험을 통해 핵탄두를 탄도미사일에 탑재할 수 있을 정도로 소형화하는 기술을 완성한 것으로 추정돼 국제사회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게다가 국정원은 북한이 추가 핵실험을 할 가능성도 있다고 밝힌 상태다.

절체절명 위기가
천금 같은 기회?

국방부는 대북정보 감시태세인 '워치콘'을 3단계에서 2단계로 격상했고 정부는 한발 더 나아가 성명을 통해 북한 전역을 사정권으로 하는 미사일을 조기에 배치하겠다며 강력 대응 방침을 밝혔다. 심지어 정치권 내부에서는 우리나라의 핵무장론까지 거론되는 상황이다. 이로써 한반도는 한 순간에 일촉즉발의 초긴장 국면으로 진입했다.

박 당선인으로서는 무척 난감한 상황이다. 박 당선인은 대선기간 이명박 정부 5년간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기 위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통한 남북관계 정상화를 약속했었다. 필요하다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과 직접 대화에 나설 수 있다는 전향적인 입장까지 밝혔었다. 북핵사태로 박 당선인의 이러한 구상은 시작도 해보기 전에 차질을 빚게 됐다.


그런데 정치권 일각에선 북핵사태가 박 당선인에게 불리한 것만은 아니라는 이색적인 분석이 나온다. 오히려 천금 같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일까?

?불편했던 사람들과 단숨에 '의기투합'
위기서 또 빛난 박근혜식 '불통리더십'

우선 박 당선인의 지지도는 북핵사태가 발생하기 전까진 급격한 하락세였다. 지난 1월 이후부터 하락세가 이어지더니 2월에 접어들면서는 급기야 50% 밑으로 빠지는 참담한 조사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역대 최저치다.

한국갤럽이 설 직전인 지난 4일부터 7일까지 전국 성인 남녀 1218명을 대상으로 벌인 여론조사에서 박 당선인의 직무수행에 대해 '잘하고 있다'고 답한 비율은 48%에 그쳤다.

반면 '잘 못하고 있다'는 응답은 29%였고, 의견 유보는 17%였다. 박 당선인으로서는 인선실패 등 여러 가지 악재로 궁지에 몰린 상태였다.

그런데 북핵사태가 터지면서 국면은 단숨에 전환됐다. 실제로 인선 및 정부조직개편 과정에서 박 당선인과 연일 대립각을 세웠던 야권은 북핵사태 이후 여권과의 공조에 무척 신경을 쓰는 모양새다. 박 당선인은 북핵사태로 단번에 야권과 대화의 물꼬를 틀수 있었다.

물론 민주통합당을 비롯한 야권에도 속사정은 있다. 야권은 지난 대선 패배 원인 중 하나로 좌클릭 노선을 꼽고 있다. 때문에 북핵사태 이후 자칫 정부여당과 대립각을 세울 경우 북한 편들기로 비춰질 수 있음을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그 중 민주당의 경우는 북핵사태를 전후로 안보 행보를 강화함으로써 확실한 중도 이미지를 심겠다는 포석이다.


궁지몰린 박
국면 대전환

여권 내부의 갈등도 급격히 봉합되는 추세다. 전날까지 통상조직개편 문제로 심각하게 대립했던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과 진영 인수위원회 부위원장 간의 갈등은 눈 녹듯 사라졌고, 측근 특별사면 문제 등으로 불편한 관계를 유지했던 이명박 대통령과 박 당선인은 북핵사태 당일 회담을 갖고 긴밀히 공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박 당선인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던 복잡하고 골치 아픈 문제들은 일거에 해결된 것이다.

박 당선인을 옥죄어 오던 각종 의혹들도 당분간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듯하다. 북핵사태가 터지기 전까지 박 당선인은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과 윤정훈 목사가 지난 대선 당시 불법댓글 아르바이트 팀을 운영한 이른바 '십알단 사건'에 관련된 것으로 의심을 받으면서 난감한 상황에 처했었다. 하지만 북핵사태 이후 이 같은 이슈에 대한 관심도는 뚝 떨어졌다.

또 일부 진보언론의 경우는 북핵사태에도 박 당선인과 관련한 의혹을 취재했다는 이유만으로 네티즌들로부터 '종북언론'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당연히 기자들의 취재활동도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야권 정치인들이 북핵사태를 놓고 더욱 분통을 터뜨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 박 당선인이 북핵사태 다음 날인 지난 13일 발표한 6개 부처 인선의 경우 야권이 문제 삼기 어려워진 측면이 있다. 이번 인선에선 안전행정부 장관에 유정복 새누리당 의원, 교육부 장관에는 서남수 위덕대 총장, 외교부 장관에는 윤병세 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 수석, 법무부 장관에 황교안 전 부산고검장, 국방부 장관에 김병관 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 유진룡 전 문화관광부 차관이 각각 내정됐다.

이중 김병관 국방부 장관 내정자는 벌써부터 배우자와 장남 명의로 경북 예천군 용문면 임야를 매입한 것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증여세가 탈루 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이 같은 의혹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북핵사태로 안보라인의 공백을 용납할 수 없는 긴박한 시점에서 국방부 장관 내정자를 낙마시키기란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다.

때문에 이번 6개 부처 인선의 경우는 별 다른 어려움 없이 야권의 동의를 얻을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인수위 출범 이후 인선 때마다 후보자들의 각종 의혹으로 큰 곤혹을 치러온 박 당선인으로서는 무척 반가운 일일 것이다.

또 박 당선인은 북핵사태와 관련 취임 후 안정적인 위기관리 역량을 보여주게 되면 오히려 지지율이 반등할 가능성도 높다.

안보 대통령
여성 대통령

박 당선인은 대선 기간 안보대통령이 되겠다고 스스로 공언했지만 상대 후보들은 여성대통령은 안보에 취약할 것이라는 논리로 박 당선인을 집요하게 공격했었다. 이제 박 당선인은 취임 전부터 안보 대응능력을 시험받게 된 것이다.

물론 박 당선인 진영은 자신만만한 모습이다.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박 당선인의 리더십은 사실 위기상황에서 더욱 빛나는 리더십"이라며 "불통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위기 상황에선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모으느라 우왕좌왕하는 것보다 조직을 일사분란하게 통솔할 수 있는 카리스마가 필요하다. 박 당선인은 그러한 카리스마를 가진 지도자"라고 평가했다. 북핵사태를 전후해 박 당선인의 지지도가 크게 오를 것이라는 낙관이었다.

실제로 박 당선인을 정점으로 한 집권세력은 북핵사태가 터지자 긴박하게 움직였다. 박 당선인은 인수위 외교국방통일분과 위원들과 긴급회의를 열고 대책을 논의하는 한편, 곧바로 조윤선 당선인 대변인을 통해 북한을 강력 규탄하는 입장을 발표했다.


이어 청와대로 달려가 이 대통령으로부터 국가안전보장회의 결과를 설명받고 대응방안을 숙의했다. 상대가 북한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할 때 당장 실질적인 해결책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발 빠른 대응이었다는 평가다.

국면전환에 안보만큼 좋은 것은 없다
북핵 악재라고? 임기 초 정국 돌파구

북핵사태로 보수층을 물론이고 대다수의 중도층에서도 우리 정부가 북한에 강경한 대응을 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이 또한 박 당선인과 새누리당으로서는 호재일 수밖에 없다. 박 당선인은 지난 대선 기간 대북문제와 관련 지나친 좌클릭으로 일부 보수층의 반발을 샀었다. 북핵사태를 계기로 박 당선인은 이 같은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수위 기간 역대 최저치의 지지도를 기록하며 출범과 동시에 '식물정권'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낳았던 박근혜 정부는 북핵사태로 인해 정국 초반 강력한 국정 장악력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이 같은 호재는 곧 다가올 4월 재보선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박 당선인의 잇따른 인선 실패, 불통 논란과 이명박 정부의 실책, 측근 특사 논란 등으로 4월 재보선의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던 여당으로서는 북핵사태가 내심 반가웠을 것이다.

게다가 박 당선인으로서는 북핵사태로 실질적으로 잃을 것이 없다는 점도 중요하다. 자칫 북핵사태로 우리나라의 국가신용도나 코스피 등이 하락해 경제 상황이 어려워졌다면 박 당선인으로서도 부담이 컸을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의 학습효과 때문인지 북핵사태에도 우리나라의 경제상황은 굳건한 모습이다. 이러한 상황은 박 당선인이 북핵사태에도 더욱 마음 놓고 웃을 수 있게 하고 있다.


잃은 것 없고
얻은 것만 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북핵은 정치적 이해관계보다 훨씬 중요시 되는 국가적인 중대사안"이라며 "다른 정치 갈등요소들은 당연히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다. 박 당선인은 당분간은 정치 갈등에서 벗어나 강력한 국정 운영을 펼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통진당, 북핵 규탄 결의안 표결 불참

 

'종북' 논란 더욱 가속화 될 듯

 

통합진보당은 지난 14일 국회 본회의에 앞서 의원총회를 열고 '북한 제3차 핵실험 규탄 결의안'에 대한 표결 불참을 결정했다.

김재연 통진당 원내대변인은 표결 불참 이유에 대해 "당론은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인데, 결의안에는 그 내용이 빠져서 표결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통진당이 북한 정권을 추종하는 '종복' 논란의 중심에 있는 만큼 이번 북한 핵실험 규탄 결의안에 불참한 것에 대한 비판 여론이 비등할 것으로 보인다.

국회는 이날 결의안에서 "금번 북한의 핵실험을 용납할 수 없으며, 핵실험 강행을 대한민국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심각한 도발행위로 규정하고 강력히 규탄한다"고 명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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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