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계 러시’ 레이싱걸 빛과 그림자

새파란 걸그룹 가라…농익은 레걸테이너가 뜬다!

[일요시사=연예팀] 지난 2005년 레이싱걸계의 전설 오윤아가 KBS2TV 드라마 <올드미스 다이어리>를 통해 연기자로 전향했다. 수년 동안 그는 드라마, 방송 등 종횡무진 활약하며 가장 성공한 레이싱걸 출신 연예인으로 등극하기에 이르렀다. 오윤아처럼 연예계 진출에 성공한 레이싱걸이 있는 반면에 이렇다 할 성과도 내지 못한 채 연예계를 떠나야만 했던 이들도 있었다. 레이싱걸의 연예계 진출 빛과 그림자를 살펴봤다. 



바야흐로 레이싱걸 전성시대가 왔다. 해마다 개최하는 모터쇼에서 섹시한 의상을 입고 포즈를 취하는 레이싱걸들의 인기는 해가 갈수록 하늘을 치솟고 있다. 이는 브라운관에서 화려한 입담과 아름다운 몸매를 한껏 뽐내는 아이돌보다 더 높은 수치다.

승승장구하는 인기 덕분에 수많은 레이싱걸들은 단지 노출의상을 입고 자동차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직종에서 벗어나 연기자, 가수, MC 등 다방면으로의 연예계 진출을 꾀하고 있다. 레이싱걸은 스타로 발돋움하기 위해 거쳐야 할 일명 ‘스타 등용문’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노래, 연기, MC…
레걸 전성시대! 

첫 레이싱걸의 연예계 진출은 약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2002년 서울모터쇼에서 레이싱걸 중에서도 특급 레이싱걸만 가능했던 미래형 자동차 메인 도우미를 맡아 세간의 화제가 된 오윤아가 2005년에 KBS 시트콤 <올드미스 다이어리>를 통해 ‘레이싱걸 출신 연예인 1호’로 등극했다. 이후 오윤아는 영화 <연애술사> <올드미스 다이어리>, SBS드라마 <그 여자> <연애시대> <외과의사 봉달희> 등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넘나들며 연기력과 재능을 공식으로 인정받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굵직굵직한 다수의 광고에 출연함은 물론, MBC <섹션TV연예통신> 리포터로도 활약해 가장 잘 나가는 스타 못지않게 맹활약을 선보인 바 있다. 최근에는 김수현 작가 집필의 JTBC <무자식 상팔자>와 SBS <돈의 화신> 등에서 극의 흐름을 연결해주는 주요한 역할을 맡으며 결혼 후에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그는 <돈의 화신>에서 결혼과 득남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빼어난 몸매를 과시해 건재함을 알렸다. 이처럼 오윤아를 기점으로 레이싱걸의 연예계 등용문은 활짝 열렸다. 사실상 오윤아가 연예계 진출로를 터준 것이나 다름없다.


1세대 레걸 오윤아, 드라마 조주연급 종횡무진 활약
김시향, 볼륨감 넘치는 몸매로 지상파 게스트 낙점

레이싱걸 출신 중 가장 성공한 케이스로 꼽히고 있는 오윤아지만 그 역시 연예계 진출에 따른 남모를 고충이 숨겨져 있었다. 2006년 각종 드라마 출연으로 종횡무진 연기활동 할 당시 그는 KBS 드라마 <미스터 굿바이> 제작발표회에서 “주위 사람들이 일컫는 레이싱걸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속상했다”고 발언했다. 이밖에도 “몸매가 훤히 드러나는 노출의상 혹은 비키니를 입고 나오는 신이 매 작품에 포함돼 있었다”며 연기보다 몸매를 더 부각시키는 점에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다. 연기 욕심의 끝을 모르는 오윤아는 자신을 “천상 배우 팔자”라고 지칭하면서도 “아직 만족할 만한 연기는 멀었다. 40대쯤 내 매력과 연기력을 모두 발산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단언했다.

‘제2의 오윤아’를 꿈꿨던 레이싱걸 출신 방송인 김시향은 그토록 바랐던 연기자로 자리매김 할 찰나에 누드화보집이 유출돼 곤욕을 치른 케이스다. 2004년 대구모터쇼를 통해 레이싱걸로 데뷔한 김시향은 같은 해 지누션의 ‘전화번호’ 뮤직비디오를 통해 연예계와 연을 맺었다. 이후 그는 케이블방송 <나는 펫> 공개 모집을 통해 총 1천여 명의 지원자 중에 300:1의 경쟁률을 뚫고 나온 실력파로 인정받으며 <나는 펫 시즌3>에 출연해 인기를 끌었다. 이밖에도 김시향은 KBS <스타골든벨>과 MBC <섹션TV 연예통신>의 리포터로 활약하는 등 공중파로도 영역을 확장했다. <김시향의 놈놈놈>으로 자신의 이름을 내건 쇼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등 MC로의 자질도 맘껏 표출했다. 이윽고 지난 2009년 SBS드라마 <스타일>에서 황보갑주 역을 맡아 신인답지 않은 탄탄한 연기력을 선보이며 지상파 드라마 조주연급 역할에도 가능성이 열리기 시작했다.

한시적인 인기
연예인 전향 한계

그러나 인생은 한 치 앞도 못 본다고 했던가. 별 탈 없이 승승장구 할 것만 같던 그의 연예계 삶은 단 한 번의 사건으로 활동을 중단해야하는 사태까지 이르게 했다. 사건의 시작은 2011년 그의 누드사진이 온라인상에 무차별 유출되면서부터다. 앞서 김시향은 훤히 드러난 등라인과 가슴이 깊게 팬 의상을 기본으로 한 과감한 섹시화보를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공개하지 않기로 했던 가슴이 전부 드러난 김시향의 누드사진을 전 소속사 관계자가 무단유출하면서 두 사람의 갈등은 진흙탕싸움으로 번졌다. 이에 김시향은 전 소속사 관계자를 명예훼손혐의로 고소했을 뿐만 아니라 누드사진의 저작권을 주장하는 업체 관계자는 물론 모바일 서비스 업체 대표 등도 함께 고소했다.



당시 그는 레이싱모델 오윤아 만큼의 인지도를 얻는 것이 다소 힘겨웠었고, 이에 파격적인 섹시 화보를 공개하며 인기몰이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하지만 이도 대중들의 마음을 돌리기엔 역부족이었고 화보는 반짝 이슈로 떠올랐지만 결국 본인에게 상처만 새 아쉬움만 남겼다.

‘시구여신’이라 불리는 레이싱걸 출신 방송인 이수정은 8등신 콜라병 몸매와 명품 시구폼 하나로 단숨에 연예계 진출에 성공했다. 그는 유명한 레이싱모델 이수진의 친동생으로, 175cm의 장신에 육감적 몸매를 소유한 당대 최고 인기의 레이싱걸이었다. 그러다 2011년 그에게 우연히 시구기회가 주어졌고, 단 1번의 시구를 위해 이수정은 무려 400회에 걸쳐 피칭연습에 몰두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했던가. 프로선수 못지 않은 그의 시구장면은 방송되자마자 모든 야구팬들을 홀렸고, 각종 언론은 ‘시구여신’ ‘화제의 시구녀’ 등 이수정의 시구폼을 연일 거론하며 ‘가장 개념있는 시구자’로 선정해 기사화했다. 


방송계도 예외는 아니었다. 특히 스포츠계에서는 이수정을 섭외하기 위해 입질을 멈추지 않았다. 결국 그는 시구여신으로 떠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아 MBC <스포츠매거진>의 리포터로 발탁됐고, 스포츠 프로그램 뿐 아니라 지상파와 케이블을 넘나들며 드라마, 시트콤, 쇼프로그램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다.

빛 보지 못해
자살 시도도

반면 레이싱걸의 연예계 진출에 따른 부작용도 있었다. 대표적 인물이 바로 가수 이혜린이다. 2005년~2008년까지 ‘얼짱 레이싱걸’로 불리며 잘나가던 레이싱 모델이었던 이혜린은 섹시 모바일 화보를 통해 다수의 남성팬도 확보했으며 같은 해 ‘부산국제모터쇼’에서 메인 모델로 활동하며 모터쇼 기간 내내 주인공인 자동차보다 더 주목받기도 했다. 입소문을 통해 유명해진 그는 많은 소속사들로부터 러브콜을 받으면서 모델계를 은퇴하고 본격 연예계에 발을 들였다.

그가 선택한 직업은 바로 가수. 이혜린은 타 동료 2명과 함께 ‘쎈(SSEN)’이라는 이름으로 걸그룹을 결성한 뒤 예명 ‘유주’로 활동했으나 인기는커녕 그녀가 누군지도 모를 만큼 사람들에게서 잊혀져갔다. 재작년 초 두 번째 앨범을 발매한다던 이혜린은 대중의 무관심과 일이 생각대로 풀리지 않아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던 중 우울증까지 동반돼왔다. 당시 이예린은 레이싱걸 시절보다 더 인지도 낮은 연예인 지망생이나 별반 다를 게 없는 상황이었다. 

이수정, 언니 수진과 방송인으로 활동
섹시화보·영상…우울증·자살 부작용도

연예인은 대중의 사랑과 인기를 한몸에 받지 못 하면 쉽게 우울증에 걸린다고 한다. 이예린도 우울증이라는 무시무시한 병을 이겨내지 못 하고 2010년 10월, 자택에서 목숨을 끊었다. 이에 네티즌들은 “얼짱 레이싱걸이 우울증 자살이라니…. 안타깝다” “역시 레이싱걸 출신의 한계인가” “레이싱걸 시절엔 누구보다 잘 나갔는데 연예계로 빠지자마자 이런 참담한 결과가…” 등 다양한 의견으로 조의를 표했지만,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이목을 끌어 씁쓸함만 남겼다.

선정성 논란으로 곤욕을 치른 레이싱걸도 있다. 트로트 가수로 전향한 정은주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지난 2007년 서울 모터쇼에서 ‘지프(Jeep)’ 메인모델로 주목받은 정은주는 175cm의 휜칠한 키, 글래머러스한 몸매, 강렬한 눈빛, 도도한 섹시함으로 현재 각종 패션 화보와 모터쇼의 모델 캐스팅 1순위에 랭크되며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이후 케이블방송 VJ로 왕성히 활동하면서 자연스럽게 연예계로 발을 담갔고, 어려서부터 꿈이었던 가수데뷔를 준비했다. 그는 걸그룹이 아닌 섹시 트로트가수를 선택하며 ‘누디티 가수’로 데뷔를 알렸다. 누디티란 노출 또는 벌거숭이, 나체라는 의미다. 이윽고 음원과 티저 영상을 온라인에 공개했지만, 이는 곧 선정성 논란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해당 영상은 그가 표방하는 누디티(Nudity)의 의미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자신의 신체적 장점을 적극 활용해 여타 섹시 가수와는 차별화하겠다는 전략이다.

과다노출은
독약 되기도

공개된 티저 홍보영상은 정은주가 데뷔곡 ‘짜릿짜릿’을 부르는 모습이 담긴 1분51초의 짧은 동영상이다. 영상에서 그는 재킷 안에 속옷만 입고 있거나 아예 반라의 상태로 등장한다. 또한 누운 상태로 성적인 행위를 암시하는 듯한 야릇한 표정을 짓고 망사 스타킹을 찢는 등 자극적인 장면도 다수 포함돼 있었다.

해당 영상은 각종 포털과 게시판에 옮겨져 폭발적인 조회수를 기록하고 정은주 관련 검색어도 인터넷 포털 검색 순위 1위에 오르며 화제를 모았지만 세인의 비난도 뒤따랐다.

영상을 접한 네티즌들의 의견은 “야하게 입고 옷만 벗으면 가수냐”, “10대들이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하느냐”, “노래 홍보 영상이라기 보다는 포르노에 가깝다”며 비난성 댓글이 폭발하는 등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현재는 다른 앨범을 발표하며 재기를 노리고 있지만, 이 또한 선정적 홍보가 주를 이루고 있어 재논란이 가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지선 기자 jisun86@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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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12·3 계엄 당일 내란 주동자들은 정치인과 판사 등 자신들이 반국가 세력으로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위해 서둘렀다. 하지만 준비가 된 것은 각 군의 사령관들뿐이었다. 계엄사령부와 합동수사본부의 설치는 훈련 상황서도 24시간가량 걸리는데 이를 간과한 것이다. 미리 계엄을 준비했다는 증거가 계속해서 나오는 상황에 실무진에게 준비시키지 않은 점이 의문점으로 남아있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내란 주도자들이 정치인과 판사 등 ‘좌파세력’이라고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그 내막에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본)의 미설치가 있다. 진술 나오자 다른 전략 <일요시사>가 검찰 진술 조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계엄이 시작된 계기와 14명의 체포 미수 및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불법 점거의 실패 이유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를 꼽았다.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 국회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대립은 심각했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야당은 자기들끼리 뭉쳐서 법안을 통과시켰고 윤 전 대통령은 재의요구권을 사용했다. 또 야당은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를 수사한 검찰들에 대한 탄핵을 시도하고 김건희씨와 관련한 특검법을 계속 발의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27일경, 윤 전 대통령이 관저 식사 자리서 “수사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검사를 탄핵하고, 재판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판사를 탄핵하고, 헌법재판소가 마음에 안 들면 정족수를 자르고, 이게 나라냐.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국가 세력의 준동에 관해 청주간첩단 및 창원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수사 과정서 잡은 인원들을 판사 기피 신청이 들어오면 단기간에 결정하는 것이 상식인데 6개월이나 결정을 하지 않아 간첩들의 구속 기간이 끝나 다 풀려나 돌아다니는데도 이런 것을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니 나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미래 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비상계엄)이 필요하겠다”고 강조했다. 일주일이 지난 후 윤 전 대통령은 김 전 장관에게 “야당의 패악질로 나라의 미래가 없다. 국가 비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들은 비상계엄 관련 논의를 했다. 이때 체포 명단인 이른바 ‘좌파 세력’ 14명의 명단과 군대를 어떻게 투입할지 등을 확정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들은 체포 명단의 사람들의 신병을 확보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게다가 내란 주동자들은 검찰 진술과 형사 법정 등에서도 체포하려 하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합수부 미설치로 체포 불가” “합수부 없어 시작부터 위법” 김 전 장관은 검찰에 “주요 정치인 등에 대한 검거를 시도한 바 없다. 혐의가 있어야 검거를 시도하지 않겠냐”며 “언론에 나오는 위치 추적 등은 포고령에 따라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있는 상황이니 주요 정치인 몇 분과 부정선거 등과 관련해 사회서 의혹이 제기되는 사람들의 위치를 미리 파악하라고 이야기한 것일 뿐”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과 작전에 투입된 군인들의 진술로 체포 명단이 실제로 존재했으며 체포를 지시하고 시도했다는 것마저 모두 드러났다. 체포 시도가 있었다는 진술이 계속해서 나오자 내란 주동자들은 다른 전략을 세우게 된다. 바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다. 김 전 장관은 검찰 진술서 합수본이 미설치돼 체포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계엄사령부와 합수본이 설치되는 과정이라 검거가 불가능하다”며 “합수본이 설치되려면 검찰과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데 아무런 대비도 없이 체포부터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진술했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은 계엄 직후 선관위에 국군 정보사령부 부대원들을 보내 선거인 명부 관리 서버를 장악하고 선관위 당직자들에 대한 통신 제한(휴대전화 압수)과 감금이 위법한 수사 활동임을 나타내고 있다. 계엄이 터지면 통상적으로 합수본 역할을 맡는 국군 방첩사령부 관계자도 검찰 진술 당시 선관위 투입은 잘못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영희 방첩사 비서실 1과장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방첩사 소속 군인들로 하여금 중앙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도록 지시하거나 계엄 해제 이후 관련 증거를 제거하도록 시킨 것은 자신들의 정당한 권한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성 미리 알고? 박성하 방첩사 기획조정실장은 “현장에 나가 있던 소위 체포조에 대해서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면서도 “하지만 전시에도 방첩사가 일부 범죄에만 수사권이 있기 때문에 전시나 계엄 상황이라도 관할권이 없는 선관위나 정치인 등 체포나 점거는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게다가 합수본(방첩사)은 직접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역 합수단서 해야 할 일을 방첩사 인원으로 진행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한 군검찰 출신 변호사는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임명하는 군사경찰 관리, 경찰공무원, 국가정보원 직원 중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 그 밖에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로 구성된다”며 “또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지정한 사건의 수사와 정보기관 및 수사기관의 조정·통제업무를 관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선관위로 투입된 인원들은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지도, 임무를 하달받지도 않았다”며 “게다가 합수본까지 설치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시작부터 위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보사와 방첩사 모두 계엄사령군(군사경찰)이 아니기에 정당한 절차가 없었다면 반란군이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점은 계엄 업무를 해본 김 전 장관이 왜 무리수를 뒀는지다. 김 전 장관은 대한민국 합동참모부서 작전본부장을 역임한 바 있다. 합참 작전본부에는 계엄과가 편제돼있기 때문에 김 전 장관이 계엄군과 합수본 지정 및 운용 등을 몰랐다고 보기 힘들다. 합참 계엄과서 편찬하는 계엄실무편람에도 잘 나와있기 때문이다. 김 전 장관은 논란을 줄이기 위해 계엄이 선포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화상으로 개최하면서 박안수 전 육국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일부 사령관 등에게만 공유됐던 12·3 계엄 작전은 계엄사령부가 설치되기도 전에, 합수본이 설치되기도 전에 끝났다. 사령부만 알았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 조서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부 사령관에게 국회와 선관위 출동을 하면서 방첩사에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해서 임무 수행을 하라고 지시했다. 김 전 장관이 방첩사에 지시한 임무는 경찰과 국방부 조사본부에 100명씩 인원을 요청하고 선관위로 먼저 투입된 국군 정보사령부가 접수한 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라는 지시였다. 국방부 조사본부와 경찰에 인원 요청을 한 것은 정치인, 판사, 등 민간인 체포를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조사본부는 방첩사가 요청한 수사관 지원 요청을 4차례 거절했다. 조사본부 한 관계자는 검찰 조사 당시 “지난 3일 계엄령 선포 이후 방첩사로부터 수사관 100명 지원을 네 차례 요청받았지만, 근거가 없다고 판단해 응하지 않았다”며 “이후 합수본 실무자 요청에 따라 시행 계획상 편성돼있는 수사관 10명을 지난해 12월4일 오전1시8분 출발시켰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의 수사관 파견 요청에는 불응했고, 계엄 시행 이후 방첩사를 중심으로 꾸려지는 합수본 요청에는 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사관이 파견된 시간은 이미 계엄 해제 의결이 이뤄진 뒤였다. 합수본이 계엄 해제와 비슷한 시기에 모양새라도 갖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 전 장관이 계엄 직후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여 전 사령관에게 합수본 설치를 지시했지만 설치가 늦어진 이유가 있다. 방첩사에 내려진 지시는 좌파세력 체포와 합수본 설치, 검찰과 경찰 및 국방부 조사본부 등에 협조 요청 등으로 내란 주동자들에게는 어느 것 하나 미룰 수 없는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 기획조정실장은 “부대에 도착해보니 OOO회의실에 여 전 사령관이 이경민 참모장, 이창엽 비서실장과 같이 있었다”며 “합수본 설치 지시를 받으려 사령관에 물어봤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여 전 사령관이 다른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합수본부장으로 임명됐다. 우리 대원들은 다 나가 있다’고 말하며 통화에만 집중했을 뿐 합수본 설치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계엄 6개월 전부터 준비 실무진만 ‘닭 쫓던 개’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국가적으로 엄중한 상황이 될 텐데 방첩사는 계엄 선포 예정 사실을 알고 준비하지 않았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계엄이 선포되면 합수본을 설치해야 하는 사람이 나다. 하지만 나는 해당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체포조를 운영한 수사단장도 해당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그는 “방첩사 비상소집이 완료된 시간이 지난해 12월4일 오전 1시4분”이라며 “합수본은 기본 시설도 갖추지 못한 상태서 계엄이 해제됐다”고 말했다. 방첩사 인원들이 전원 소집되는 시간에 이미 계엄은 해제된 것이다. 방첩사의 작전 계획상에는 상황실 설치에 8시간, 합수본 설치에 24시간을 예정하고 있는데 비상계엄이 3시간 만에 해제됐다. 본부 설치에만 24시간이 걸리며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아 합수본을 완전히 구성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한 군사학과 교수는 “계엄 선포에 대해 사령관과 참모진 외에 실무자에게도 공유가 됐다면 미리 합수본 설치를 준비하고 있다가 계엄이 선포된 후 바로 체포를 진행했을 것”이라며 “이번 계엄의 패착은 이전 계엄과 달리 빠르게 대처한 국회를 막지 못한 것과 계엄사령부부터 합수본까지의 실무자들이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방첩사 사령부에서는 미리 계엄 준비를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방첩사 소속 간부 A씨는 검찰 조사에서 “방첩사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체결한 MOU에 언급된 ‘합동수사본부’는 계엄 시 설치되는 합수부가 맞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와 국수본은 지난해 6월28일 ‘안보범죄 수사 협력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합동수사본부 설치 시 편성에 부합하는 수사관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방첩사가 계엄을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지휘부에서 최초에는 지난해 5월 초순경 3주안에 체결하라는 지시를 했다”며 “보통 미국 국방정보국(DIA) 등 해외정보수사기관과 이런 MOU를 맺고, 국내 기관은 관련 법령이 있어 MOU를 맺지는 않는다. 국내 기관과 MOU를 맺은 건 이번이 처음이고, 굳이 이런 MOU를 맺는 게 의아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다만 조지호 경찰청장은 해당 MOU에도 불구하고 계엄 당일 수사관 지원 요청을 이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조 청장은 지난 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 나와 “방첩사 주관으로 수사본부가 꾸려질 수 있으니 경찰서 필요한 인력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준비하겠다고 했다”고 밝혔으며 계엄 당일 수사관 81명이 방첩사 요청으로 대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두환과 구상 흡사 내란 주동자들은 경찰력을 대거 방첩사로 파견해 합동수사본부를 꾸리고 정치인 체포 작전을 벌일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79년 비상계엄하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만든 합수본과 흡사한 구상이다. 당시 합수본은 정권에 반대하는 정치인에 대한 정보 기능을 도맡아 12·12 군사 반란의 수괴인 전두환씨가 권력을 장악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됐다. <kcj512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계엄 사령부 구성도 완전 실패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계엄사령부는 구성조차 못했다. 권영환 전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계엄과장은 계엄이 선포된 후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으로부터 ‘계엄사령부 설치를 도와라’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그는 육군 본부 참모진들이 올라올 때까지 계엄사 상황실 구성 준비를 했다. 계엄이 선포되면 계엄사에는 2실(비서실, 기획조정실) 8처(정보처, 작전처, 치안처, 법무처, 보도처, 동원처, 구호처, 행정처)를 구성하도록 돼있으나. 권 전 과장이 계엄사 상황실을 구성하고 있을 당시 국회에서는 ‘비상계엄해제 요구결의안’이 가결됐다. 당시 권 전 과장이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에게 “(계엄해제 요구안이 가결됐으니) 법률상 지체 없이 계엄을 해제하도록 돼있다”고 말하자 박 전 총장은 “그런 것을 조언할 것이 아니라 일이 되게끔 만들어야지 일머리가 없다”며 “올해 연습을 두 번이나 했다고 하면서 구성을 왜 빨리 못하냐”고 꾸짖었다고 한다. 이는 내란 주동자들이 2차 계엄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계엄사 구성의 역할이 합참에 있었다는 것을 내포하는 대목이다.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