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특별기획] MB정부 출범, 그 이후…①10대 역점사업 현주소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3.02.07 18: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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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불 안 가린 불도저 정책 "결과는 참담"

[일요시사=정치팀] 이명박 대통령의 대표적인 별명은 바로 ‘불도저’다. 이 대통령은 그의 별명처럼 취임 후 지난 5년간 여러 역점사업들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그 과정에서 온갖 반대와 이견도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결과로 평가받겠다고 했다. 이제 드디어 그 결과를 평가 받는 일만 남았다. 얼마 후면 청와대를 떠나는 이 대통령 10대 역점사업의 현주소는 어디쯤일까. <일요시사>가 살펴봤다.


다사다난했던 이명박 정부의 5년이 저물어 간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후 지금까지 늘 바쁜 나날을 보냈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는 속담은 그의 좌우명이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과연 이명박 정부는 성공적인 5년을 보낸 것일까? <일요시사>가 이 대통령의 10대 역점사업 현주소를 살펴봤다.

성실 근면
단순 무식

이 대통령의 첫 번째 역점사업은 누가 뭐래도 4대강 정비 사업이다. 당초 이 대통령은 대선 후보시절 한반도 대운하 공약을 제시했으나 반대 여론이 많아지자 포기했다. 이를 대신해 시행된 것이 바로 4대강 사업이다. 지난 2008년 하반기부터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에 하천 생태계 복원, 중소 규모 댐 및 홍수 조절지 건설, 하천 주변 자전거길 조성 등을 추진한다는 내용으로 시작돼 무려 22조원이 투입됐다.

하지만 그 결과는 실망스럽다. 감사원은 지난달 17일 4대강 사업이 총체적 부실로 드러났다고 발표했다. 감사원은 4대강 사업에 대한 감사결과 설계 잘못으로 16개의 보에서 결함이 발견됐고, 수질악화 우려가 제기되고 있으며, 홍수를 막기 위한 준설계획 역시 비현실적이라는 결과를 내놓았다.

4대강 총체적 부실…경인운하 애물단지로 전락
방위산업 수출 확 늘어…자원외교는 실패 많아


4대강 사업이 앞으로 순기능을 낼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설계와 공사 과정만큼은 분명히 문제가 있었다는 평가다.

두 번째 역점사업으로 사실상 4대강 사업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평가받는 경인아라뱃길(이하 경인운하) 사업도 논란이 되고 있다. 경인운하는 경제적 타당성이 없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한국수자원공사가 2조 2500억원을 들여 2009년 5월6일 공사를 시작해 2011년 10월29일 개통했다. 이명박 정부는 착공에 앞서 경인운하 건설로 일자리 2만 5000개를 창출하고 생산유발효과가 3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아울러 2030년을 기준으로 경인운하를 이용하는 물동량이 컨테이너 93만 티이유, 철강 57만톤, 자동차 6만대, 해사 1001만톤, 여객 63만명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작년 경인운하를 이용한 선박수는 하루 평균 4척 수준에 불과했다. 이미 경인운하는 애물단지로 전락한 신세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이 대통령은 "경인 아라뱃길 사업은 본래 침수방지를 위해 시작된 것"이라며 말 바꾸기를 시도하기도 했다.

경인운하?

경인제방?

세 번째 역점사업인 방위 산업은 그나마 이명박 정부 하에서 크게 성장했다. 이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방위산업을 신성장동력의 하나로 삼겠다는 강력한 정책적 의지를 피력해왔다. 지난 2008년 우리나라 방산수출 규모는 10억3000만달러였지만 지난 2012년에는 23억5000만달러로 늘어났다. 그 이전 시기까지 살펴보면 수출 실적 증가율은 더욱 가파르다.

지난 2006년만 해도 방산 수출액은 2억5000만달러 수준이었다. 불과 5∼6년 만에 방산 수출 규모가 거의 10배나 늘어난 것이다. 이 같은 방산 수출 확대에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방위사업청을 비롯한 범정부적 수출 지원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평가다.


이 대통령의 네 번째 역점사업은 자원외교다. 이 대통령은 자원빈국인 우리나라는 자원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이른바 '코리안 루트'를 개척하겠다고 천명했다. 이 대통령은 취임 후 자원 부국인 덴마크령 그린란드, 노르웨이, 카자흐스탄 등을 방문해 쉴새없는 자원외교를 펼쳤다. 이 대통령은 자원외교를 현 정권 최대 치적이라 자평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드러난 자원외교의 실체는 또 한번 국민들에게 실망을 안겼다. 이명박 정부 자원외교 1호로 자랑하던 쿠르드 유전개발은 최소 1880만달러의 순손실을 입을 것으로 지난해 4월 감사원 감사 결과 지적됐다.

또 2011년 국감 자료에 따르면 2008년 4월부터 2011년 7월까지 외국과 체결한 자원개발 양해각서 30건 중 경제성 미흡, 협상 결렬 등의 이유로 종료된 사업은 9건이나 됐다.

2010년 해외광물자원투자사업 270건 중 성공은 17건인 반면 실패로 확인된 것은 100건으로 드러났다. 'CNK 주가조작 사건'으로 불리는 '카메룬 다이아몬드 개발사업'은 정권 실세들이 연루된 대국민 사기극으로 끝났다.


공기업 개혁 용두사미
종편 망하기 일보직전

다섯 번째 역점사업은 보금자리주택 사업이다. 이명박 정부의 주요 부동산 정책 중 하나인 '보금자리주택'은 정부가 공급하는 '반값 아파트'로 알려지면서 집값 하락에 일조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일각에선 부동산 경기 침체로 인한 부작용도 지적된다. 특히 보금자리주택에 당첨된 일부 입주자들은 시세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내 집 마련을 하게 됨으로써 큰 혜택을 보게 됐지만 이런 혜택을 받는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했다.

때문에 정말 서민을 위한다면 차라리 국민임대주택 보급을 늘리는 것이 좋았다는 비판도 있다. 게다가 LH는 보금자리주택 사업으로 엄청난 적자를 떠안게 되면서 전문가들 사이에선 실패한 정책이란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여섯 번째 역점사업은 세종시 건설이다. 사실 이 대통령은 세종시 건설을 강력하게 반대했었다. 세종시 건설을 두고 이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날선 대립각을 세웠던 일화는 이미 유명하다. 어찌됐든 아이러니하게도 세종시는 이명박 정부하에서 지난 2012년 7월1일부로 공식 출범했다.

수도권의 과도한 집중에 따른 부작용을 시정하고 국가균형발전 및 국가경쟁력 강화에 이바지 하는 것을 목적으로 건설된 세종시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정부기관의 업무효율성 저하 우려다. 이 대통령이 세종시 건설을 반대했던 가장 큰 이유도 바로 이것이었다.

세종시를 강력히 반대했던 이 대통령으로서는 세종시가 잘 되도, 잘 안 되도 문제다. 그나마 최근에는 세종시를 직접 방문해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등 부쩍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후문이다. 세종시가 진정한 행정중심도시로 발돋움 할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장밋빛 미래
용두사미


일곱 번째 역점사업은 일자리 창출 사업이다. 이명박 정부의 일자리 정책 핵심은 '300만개 일자리 창출'과 '청년실업률 절반으로 줄이기'였다. 지난 5년간 만들어진 일자리는 125만개 정도다. 당초 목표했던 300만개의 41%를 달성하는 데 그쳤다.

또 청년 실업률은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7.5%를 기록했다. 이 대통령의 취임 당시와 비교해 거의 변화가 없다. 그나마 이명박 정권 기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했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낙제점은 겨우 벗어났으나 후한 점수를 주긴 어렵다.

여덟 번째 역점사업은 서민금융지원 사업이다. 서민금융도 역시 이명박 정부의 대표적인 치적으로 꼽힌다. 정부는 은행 문턱을 낮추고 서민들도 1금융권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햇살론, 새희망홀씨, 미소금융 등의 이른바 서민금융 상품을 은행들이 취급하도록 유도했다.

저소득층과 저신용층을 대상으로 한 무담보 대출인 서민금융사업은 자금마련에 어려움을 겪으며 사채에까지 손을 댔던 서민들에겐 구원과도 같았다. 하지만 이로 인해 연체율이 높아진 은행들은 건전성 관리에 비상이 걸리면서 대출채권을 아예 대부업체에 매각해버리고 있는 실정이다. 사실 이 사업은 처음부터 우량·저위험군에 비해서는 연체율이 높을 수밖에 없었고 때문에 부실에 대한 우려가 높았다.

보금자리 소수만 혜택…세종시 '이랬다 저랬다'
일자리 목표 40% 그쳐…서민금융지원 슬슬 자리

은행 입장에선 연체율이 급등하거나 신용등급이 하락하면 금리를 높일 수밖에 없고 이대로라면 최악의 경우 금융소비자 입장에선 처음부터 2금융권에서 대출받는 것보다 불리해질 수도 있다.


아홉 번째는 공기업 개혁이다. 공기업 개혁은 역대 정부마다 집권 초기 강력한 의지로 추진했던 과제다. 이명박 정부도 정권 출범 초부터 '철밥통' '신의 직장'으로 불리며 국민들의 질타를 받아온 공기업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을 공언했었다.

방만과 비효율의 상징인 공기업을 개혁하지 않고는 국가의 지속적인 성장은 불가능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역시 공기업 개혁은 용두사미로 끝나고 말았다는게 대체적인 평가다.

정권 출범 초만 해도 청와대는 공기업 50여 개를 민영화하고, 50여 개를 통폐합하는 등 305개 공기업 중 3분의 1에 달하는 100개 기관에 손을 대는 전방위 개혁안을 발표했었다. 하지만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와 민영화에 대한 국민들의 반발을 넘어서진 못했다. 결국 '공기업 민영화방안'은 '공기업 선진화 방안'으로 은근슬쩍 명칭을 바꾸고 흐지부지 돼버렸다.

마지막으로 열 번째 역점 사업은 종합편성채널 사업이다. 정부가 내세운 목표는 종편을 통해 글로벌 미디어 기업을 키우고, 지상파 방송의 독과점을 완화해 콘텐츠 산업을 발전시킨다는 것이었다. 또 이명박 정부는 종편 출범으로 전체 방송 시장 규모가 1조6천억원 증가하며 생산 유발 효과가 2조9000억원, 취업 유발 효과가 2만1000명에 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명박 5년
박근혜 5년

그러나 종편 출범 후 지난 1년간의 성적표는 초라했다. 평균 시청률은 0.5%대에 머물렀으며 콘텐츠는 대부분 제작비가 저렴한 시사교양 위주였다. 기존의 보도전문채널들과 다를 게 없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누적된 적자로 장밋빛 미래를 꿈꾸던 기업들은 절망에 빠졌다. 종편 개국으로 늘어난 일자리 수는 4사를 모두 합쳐 1300여 명에 불과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이명박 정부의 임기 말 성적표는 국민들의 기대에는 크게 못미치는 것이 현실이다. 5년 후 박근혜 정부의 임기 말 성적표는 국민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줄 수 있을까. 귀추가 주목된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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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