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악재에 박근혜 떠는 이유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3.01.29 09:5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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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은 동색, 가재는 게편?

[일요시사=정치팀] 최근 불거진 이명박 대통령의 동시다발 '4대 악재'에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동안 두 사람의 불편한 관계를 생각한다면 박 당선인으로서는 이 대통령 비난에 앞장서며 자신의 지지율을 끌어올릴 호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박 당선인은 오히려 바짝 엎드린 채 여론의 추이만 살피고 있는 모양새다. 이른바 MB악재에 박 당선인이 떨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요시사>가 추적해봤다.

이명박 대통령을 둘러싼 4대 악재가 동시다발로 터져 나오며 연초 정치권을 뒤흔들고 있다. 감사원의 4대강 사업 부실 지적,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논란, 택시법 거부, 대통령 측근 특별사면 논란이 바로 그것이다.

국민들의 시선은 당사자인 이 대통령보단 미래권력인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을 향해 쏠려있다. 이 대통령의 임기가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까닭이다. 하지만 박 당선인은 일언반구 입을 열지 않고 있다. 덕분에 이 대통령은 물론 박 당선인의 지지율까지 동반 하락하는 추세다.

과거권력
미래권력

두 사람의 악연은 이미 유명하다. 두 사람은 새누리당의 양대 계파인 친이계와 친박계의 수장이다. 2007년 이 대통령의 대선 승리와 함께 당권을 잡은 친이계는 2008년 18대 총선에서 친박계 공천학살을 자행했다.

이에 보란 듯이 박 당선인은 4년 뒤 19대 총선에서 역으로 친이계 공천학살을 주도했다. 박 당선인의 대선 승리는 이 대통령과의 거리두기 전략의 성공 때문이라는 것은 정치권의 공공연한 평가다.


그렇다면 박 당선인은 왜 유독 최근 불거진 이 대통령의 악재들과는 거리두기에 실패하고 있는 것일까?
감사원은 지난 17일 MB정부가 지난 4년간 22조원을 들여 추진한 4대강 살리기 사업이 총체적 부실로 드러났다고 발표했다.

4대강 사업은 현정부 최대 국책사업으로 이 대통령이 정권의 명운을 걸고 추진해왔다. 감사원은 4대강 살리기 사업에 대한 감사결과 설계 잘못으로 16개의 보에서 결함이 발견됐고, 수질악화 우려가 제기되고 있으며, 홍수를 막기 위한 준설계획 역시 비현실적이라는 결과를 내놓았다.

이명박 '4대 악재'에 발목 잡힌 박근혜
이명박-박근혜 지지율 동반 하락 '당혹'

감사원 감사결과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16개 보 가운데 11군데에 잘못된 설계기준 적용으로 인해 대형보 대신 소형보가 설치됐다고 한다. 이는 안전성이 생명인 보의 내구성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됐다는 지적이다. 또 15개 보에서는 세굴현상을 막기 위한 바닥 보호공이 유실되거나 침하됐다.

4대강 사업의 결과로 수질이 개선됐다는 환경부의 종전 주장도 감사원에 의해 정면으로 부정됐다. 흐름이 막혀 보 안에 장시간 갇혀있게 되는 4대강의 물에 일반 하천과 동일한 수질관리지표인 생화학적 산소요구량(BOD)을 적용해 사실관계를 호도했다는 지적이다.

때문에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4대강 사업에 대한 전면 재조사와 책임자 문책을 단행하라는 야권의 목소리는 더욱 힘을 얻게 됐다. 박 당선인의 입장은 난처하다. 4대강 사업은 사실상 친이계와 친박계의 '공동작품'이기 때문이다.

선긋기 실패
'이명박근혜'


비록 박 당선인은 4대강 사업에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지는 않았지만 일단 사업의 진행을 지켜보자는 관망적 태도를 취해왔다. 야권의 절대적인 반대에 부딪쳤던 4대강 사업이 추진될 수 있었던 것은 최소한 박 당선인과 친박계의 '암묵적 동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일부 친박계 의원들은 4대강 사업에 적극적 지지를 보내기도 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김무성 전 선대위총괄본부장은 지난 2010년 6월 국회교섭단체 연설에서 "4대강 사업을 우려와 의심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이는 사업의 실상과 진실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결과"라고 4대강 사업을 적극 옹호했다.

박 당선인의 문고리 권력이라고 불렸던 최경환 의원도 평소 "재해를 예방하고 수량을 늘리기 위해 4대강 정비는 불가피하다"며 적극적인 찬성론을 폈다. 이처럼 박 당선인과 주변인물들의 4대강 옹호는 공공연한 사실이다. 감사원의 지적 사항이 모두 사실이라고 해도 박 당선인으로서는 이 대통령을 공격하며 쉽게 선 긋기에 나서기가 힘든 이유다.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문제도 박 당선인으로서는 피해가기 어려운 문제다. 이 후보자 지명은 이 대통령의 마지막 인사다. 표면적으로는 이 대통령이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청와대는 이 후보자 지명을 발표하면서 박 당선인과 협의했다고 분명히 밝힌 바 있다.

박 당선인은 현재 선긋기는 고사하고 이 대통령보다 더한 책임론에 직면해 있다. 이 후보자는 실질적으로 박 당선인과 손발을 맞춰야 하는 인물인 만큼 이 대통령보다는 박 당선인의 의중이 더 실린 인사가 아니겠냐는 추측 때문이다.

이 후보자의 경우 지명 당시부터 지나친 보수편향성으로 논란이 됐던 인물이다. 또 청문회 과정에서 터져 나온 의혹만 해도 특정업무경비 횡령, 항공권깡 등 무려 31가지에 달한다. 이 후보자는 이중 대부분의 사안에 대해 명확한 답변을 하지 못했다. 일부 의혹의 경우 야권의 집요한 추궁 끝에 결국 인정하고 사과하기도 했다.

MB 잘못도
근혜 잘못

특히 모 일간지가 전국 성인 남녀 700명을 대상으로 벌인 긴급 여론조사에서도 이 후보자에 대한 의혹이 문제가 있다는 응답이 62%에 달했다. 야권은 이 후보자를 절대 인정할 수 없다며 이 후보자에 대한 지명 철회를 요구하고 나섰다. 반면 새누리당은 결정적인 하자는 없다며 예정대로 임명동의안을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이 후보자와 관련해서는 새누리당 내에서도 반발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이대로라면 임명동의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돼도 부결될 가능성이 크다. 또 야당이 강하게 반대하는 사안을 새누리당이 밀어붙일 경우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야당 주장대로 임명 동의절차조차 밟지 않는다면 박근혜 정부 출범부터 여당이 야당에 끌려 다닌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이 대통령의 택시법 거부권 행사도 박 당선인으로서는 골치 아픈 일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22일 택시를 대중교통으로 인정하는 내용의 '대중교통 육성 및 이용 촉진법' 개정안, 이른바 택시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5년 임기 동안 단 한 번도 행사하지 않았던 거부권을 잔여 임기를 불과 한 달여 앞두고 전격 행사한 것이다. 택시법은 여야가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시킨 법안이다. 이에 대한 거부권 행사는 자칫 국회에 대한 정면도전으로 받아들여져 임기 말 이 대통령을 더욱 궁지에 몰아넣을 악재일수도 있다.

최악의 경우 과거 세종시 수정안 정국 때와 마찬가지로 청와대와 정치권이 정면충돌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다. 하지만 당시와 달리 현재 여론은 택시법에 거부권을 행사한 이 대통령에게 오히려 우호적이다. KBS가 지난 22일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긴급여론조사에서는 거부권 행사에 찬성한다는 응답이 65.2%이나 됐다.


얽히고설킨 '이명박근혜', 의혹도 함께?
침묵의 인수위, MB보호 아닌 자기보호

이대로라면 오히려 택시법 통과를 주도한 박 당선인의 책임론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국가재정에 큰 부담이 되는 정책을 제대로 된 검토도 없이 통과시켰다는 책임론이다.

이 대통령이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진 임기 말 특사문제도 박 당선인의 입장을 난처하게 하고 있다. 청와대는 설날 연휴인 2월10일을 전후로 특사를 단행하는 것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명분은 새 정부 출범에 따른 국민대통합이다.

문제는 특사 대상에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 천신일 전 세중나모 회장 등 이 대통령의 최측근이 포함될 경우다. 청와대는 특사 단행 가능성에 대해 함구하고 있지만 가능성 자체는 닫지 않고 있다. 언뜻 생각하기엔 특사문제 만큼은 이 대통령과 박 당선인과의 관련성이 적어 보인다. 하지만 여기에도 복잡한 역학관계가 존재한다.

박 당선인은 이 대통령의 측근 사면 가능성에 대해서도 현재까지 전혀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때문에 이 대통령이 특사를 단행한다면 박 당선인도 공동책임론에 직면할 수 있다.

박 당선인이 좀처럼 입을 열지 못하는 데에도 이유는 있다. 이 대통령이 임기 내 특사를 단행하지 못한다면 공은 박 당선인에게 넘어온다. 이렇게 되면 박 당선인이 특사 압박에 시달릴 수 있다. 만약 박 당선인이 이 대통령 측근들에 대한 특사를 단행한다면 지난 대선 기간 권력형 비리, 친인척 비리에 대해 단호하게 대처하겠다는 본인의 약속을 스스로 깨트리는 격이 된다.


묵시적 동의
본질적 협력

마지막으로 한 정치전문가는 "이 대통령의 악재에 박 당선인이 긴장하는 것은 당연하다. 겉보기엔 지난 5년간 박 당선인이 이 대통령을 끊임없이 견제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본질적으로는 협력관계였기 때문"이라며 "이 대통령에 대한 책임론이 제기되면 박 당선인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전 정권을 존중하겠다며 극도로 조용한 인수위를 꾸리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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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