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박의 남자’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3.01.28 15:2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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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력이 국력인데…‘노구 총리’ 잘 해낼까

[일요시사=정치1팀]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24일 새 정부의 초대 국무총리 후보자로 김용준 인수위원장을 지명했다. 김 위원장은 정치권과 언론의 흔한 하마평에도 거론되지 않을 정도로 ‘깜짝 등용’이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박 당선인이 김 위원장을 차기 정부 첫 총리로 낙점한 배경은 무엇일까.

새 정부 조각(組閣)의 첫 단추로 꼽히는 초대 총리에는 김용준(75) 대통령 인수위원장이 지명됐다. ‘소아마비 장애인 출신 첫 대법관’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는 김 총리 지명자는 국회 인사청문회 절차를 통과하면 장애인 출신 첫 국무총리가 된다.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이 총리로 직행하는 이례적인 기록도 세웠다.

김용준 카드
빼낸 배경은?

‘김 총리 지명자 카드’를 꺼낸 배경엔 박 당선인이 수 차례 강조해온 ‘법질서 확립’에 대한 의지가 작용됐다는 게 일반적인 해석이다.

박 당선인 역시 총리 지명 배경에 대해 “김용준 지명자는 헌재소장을 역임하면서 평생 법관으로서 국가의 법과 질서를 바로 세우고 확고한 소신과 원칙에 앞장서온 분”이라며 “김 지명자가 법치와 원칙을 바로 세우고 무너져 내린 사회 안전과 불안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을 해소하고, 사회적 약자가 보호받는 시대를 열어갈 적임자”라고 기대감을 나타낸 바 있다.

김 총리 지명자도 ‘우리 사회의 최우선 과제가 뭐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지금 우리나라가 여러 가지 면에서 질서가 제대로 잡혀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법과 질서가 지배하는 사회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김 총리 지명자는 지난 대선 기간 정치권에 발을 들인 후 누누이 ‘법 질서 바로 세우기’를 최대 국정 과제로 강조해 온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해 10월 박 당선인의 선거대책위원회 공동선대위원장으로 합류할 당시에도 그는 “박근혜 후보가 법치주의가 뿌리 깊게 자리잡게 하겠다고 약속해 (선대위에) 참여했다”고 밝혔고, 박 당선인 역시 “새누리당이 지향하는 소중한 가치, 법치와 원칙, 헌법의 가치를 잘 구현해나갈 것”이라고 발탁 배경을 설명했다.

선대본부장서 인수위원장, 그리고 초대총리까지
한화 전신 조선총화 대표 김봉수씨 5남 중 장남

김 총리 지명자는 이후 인수위원장에 임명될 때도 “박 당선인이 국정 운영을 하는데 법치주의, 법에 의한 지배에 중점을 두려고 (나를 임명)한 것 아니겠느냐”고 말한 바 있다.

박 당선인은 또 김 총리 지명자가 살아온 발자취를 고려해 ‘사회적 약자 배려’에 적합한 인사라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총리 지명자는 겸손하고 성실한 성품으로 법조계의 신망을 받아온 인물이다. 박 당선인은 이를 고려해 자신이 공약한 ‘국민행복시대’를 열어가는 데 조언을 아끼지 않을 적임자로 김 총리 지명자를 기용한 것으로 보인다.

서울 출신의 김 총리 지명자는 한화그룹의 전신인 조선총포화약주식회사 대표를 지낸 김봉수씨의 5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러나 6·25 당시 부친이 납북되는 바람에 편모 슬하에서 성장했다. 친가와 외가가 모두 부유한 편이어서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은 없이 성장했다.

김 총리 지명자는 3살 때 소아마미를 앓아 지체장애 2급 판정을 받았고, 이 때문에 어머니 등에 업혀 등교할 정도로 어려운 학창시절을 보냈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희망하던 경기고 진학이 좌절되는 설움도 겪었다.

그럼에도 학업의 끈을 놓지 않아 서울고 2학년 재학 중 검정고시를 거쳐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다. 대학 3학년 때인 만 19세엔 고등고시(현 사법고시)에 수석합격, 1960년 최연소 판사로 법조계에 발을 내딛으며 ‘최연소’, ‘수석’ 타이틀을 동시에 달았다.


장애인들의
‘살아있는 신화’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만약 법관이 된다면 독점기업 등 강자의 횡포로부터 보다 많은 약자를 돕는데 애쓰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판사 시절 박 당선인의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과는 껄끄러운 관계였다. 그는 1963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 권한대행의 대선 출마에 반대하는 글을 썼다는 이유로 구속된 송요찬 전 육군참모총장을 구속적부심에서 석방하는 소신 판결로 인정 받았다.

이후 그는 서울가정법원, 광주고법, 서울고법 등에서의 부장판사 생활과 서울가정법원장을 거쳐 지체장애인으로서는 최초로 1988년 대법관에 임명됐고 1994년 제2대 헌법재판소 소장에 올랐다.

법관 시절 그는 후배 법관들에게 “법조문에 얽매이지 말고 구체적 타당성에 입각해 판결하라”며 실정법과 현실 간 괴리를 메울 현실적 합리성을 갖출 것을 주문했다고 한다.

헌법재판소장 재임 중에는 과외금지 사건, 군제대자 가산점제, 택시소유상한제, 동성동본 금혼 조항에 대한 위헌 결정을 내리는 등 국민 기본권 침해에 대한 각종 제한을 철폐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김 총리 지명자는 헌법재판소장에서 물러난 후에도 법무법인 율촌 상임고문, 헌법재판소 자문위원장, 대검찰청 공안자문위원장, 사회복지공동모금회장 등을 지내는 등 왕성한 사회활동을 해왔다. 법무법인 넥서스에 ‘고문’으로 적을 두고 있다.

박 인사 스타일
능력보다 신뢰?

그동안 정치권과는 거리를 둬왔으나 지난해 대선 때 ‘박근혜 대선후보 중앙선대위의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으며 정치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가족으로는 아내 서채원씨와 2남 2녀의 자녀가 있다. 두 사위와 장남이 김 총리 지명자와 마찬가지로 법조인의 길을 걷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김용준 총리 인선’을 두고 ‘의외’는 맞지만 박 당선인의 인사 스타일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한번 일하면서 신뢰가 쌓인 사람에 대해 자퇴는 있어도 퇴출은 없다’는 박 당선인의 인사 원칙이 결국 총리 인사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박 당선인은 과거 여러 인터뷰에서 자신의 인사 스타일에 대해 “실력이 있다 하더라도 이해  관계에 따라서 쉽게 마음이 변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신뢰할 수 있는 성품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인사에서 ‘능력’보다 중요한 것은 ‘신뢰’라는 것이다.


이 같은 박 당선인의 인사스타일을 볼 때, 김 총리 지명자는 이에 부합하는 인물이다. 박 당선인은 지난해 대선 후보 시절 중앙선대위를 꾸리면서 공동선대위원장으로 김 총리 지명자를 영입한데 이어 인수위원장까지 맡기면서 점점 두터워진 신뢰를 바탕으로 이번 인선을 단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법·원칙 따른 국정운영·사회적 약자 배려 일석이조
고령에 국정경험 전무 등…부처 장악능력 보일지 의문

일각에서는 이번 인선에 최근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자질 논란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이동흡 헌재소장 후보자 논란으로 박 당선인도 간접적으로 피해를 입은 만큼 새 정부의 안정적인 출범을 위해서는 흠결과 자질 시비가 붙기 어려운 원로급 인사를 첫 총리로 인선해야 된다는 필요성이 제기됐다는 시각이다.

향후 차기 정부 조각 과정에서 인수위 멤버의 입각 및 청와대행을 위한 신호탄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번 인선으로 인수위에 발탁된 인사들이 유력한 장관급 후보군 하마평에 오르내릴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 총리 지명자 기용에 ‘2% 아쉬움’이 남는다는 반응도 나온다. 합리적 보수주의자로 평가받는 그가 ‘무난한 스타일로는 보이지만, 새 정부 초대 총리로서 존재감이 부족하다는 평도 많다.

김 총리 지명자가 올해 75세로 고령에다 건강상 문제까지 있어 국정운영을 주도적으로 해 나갈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는 것이다. 새 정부 출범 뒤 첫 총리는 국정 2인자로서의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하지만, 이 점에서 김 총리 지명자는 박 당선인이 수차례 공언해 온 ‘책임형 총리’ 보다는 ‘관리형 총리’ 스타일에 가깝다는 평이다.


민주당 역시 “김용준 지명자는 훌륭한 법조인이자 장애를 극복하고 사회적 활동을 해온 사회통합적 인물”이라고 평가하면서도 “그동안 김 지명자가 여러 역할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박 당선인이 공약한 책임총리로서의 능력과 자질을 보여주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무난한 인사
‘2% 아쉬움’

특히 실제 김 총리 지명자가 대선 기간 최고 수장인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었고 대선 이후에는 인수위원장으로 임명됐지만 주도적이고 ‘리더십’ 있는 역할은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것도 이러한 의구심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평생을 법관으로 살아왔고, 국정 경험도 없는 그가 풍부한 행정경험을 통해 부처 장악능력을 보여야 하는 총리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지에도 물음표가 찍힌다.

김설아 기자 <sasa708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김용준 총리 후보자는?

 

▲1938년 서울 출생 ▲1959년 서울대 법대 졸업 ▲1967년 서울대 법과대학원 졸업 ▲1957년 고등고시 합격(9회) ▲1960년 대구지법 판사 ▲1961년 서울지법 판사 ▲1966년 서울고법 판사 ▲1969년 대법원 재판연구관 ▲1970년 서울고법 판사 ▲1973년 서울민사지법 부장판사 겸 사법연수원 교수 ▲1975년 서울민사지법 부장판사 ▲1977년 서울지법 남부지원 부장판사 ▲1979년 서울가정법원 부장판사 ▲1980년 광주고법 부장판사 ▲1981년 서울고법 부장판사 ▲1984년 서울가정법원장 ▲1988년 대법관 ▲1994년 헌법재판소 소장(2대) ▲2012년 새누리당 제18대 대통령중앙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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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