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키지 못할 '박근혜 약속' 총정리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3.01.21 12: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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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때는 '공약(公約)' 선거 끝나면 '공약(空約)'

[일요시사=김명일 기자]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평소 "국민과의 약속은 반드시 지키겠다"며 무엇보다 신뢰를 강조해왔다. 그런데 대선이 끝난 후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아 새누리당 안팎에선 지킬 수 없는 공약은 수정해야 한다는 현실론이 대두되고 있다. 기대가 컸던 만큼 국민들의 실망감 역시 클 수밖에 없다. 국민들은 이제부터 마음의 준비가 필요할 듯하다. <일요시사>가 박 당선인이 지키지 못할 공약들을 미리 정리해봤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7% 경제성장, 국민소득 4만불, 7대 경제대국 달성이라는 이른바 '747경제공약'을 제시했었다.

5년이 흐른 지금, 당시 이명박 대통령 후보의 경제공약을 만드는 데 직접 참여했고 정부 출범 당시 초대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낸 강만수 산은금융지주회장 겸 산업은행장은 "747공약은 '공약'이라기보다는 '선거 캐치프레이즈'로 봐야 한다"는 황당한 변을 늘어놨다.

공약(公約)
공약(空約)

이외에도 이 대통령은 선거 당시 제시했던 반값 등록금, 반값 아파트, 충청권 과학비즈니스벨트, 동남권 신공항 등 수많은 공약들을 지키지 못한 채 퇴임을 앞두고 있다.

이처럼 역대 선거에서 공약(公約)은 공약(空約)으로 그친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경우는 약간 특이하다. 취임도 하기 전부터 당 안팎에서 "공약을 지키면 안된다"는 충언(?)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선에서 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던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공약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우선순위를 정해서 추진해야 한다"며 "공약을 한꺼번에 지키려 한다면 그 취지는 좋지만 현실적으로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심재철 새누리당 최고위원도 "내세운 공약 중 예산을 짜다 보니 현실적으로 문제가 있는 부분이 있다면 국민에게 고백해야 한다"며 "잘못된 것들은 지금이라도 얘기하는 게 옳고 정직한 태도"라고 말했다.

전문가 그룹은 물론 당 내부에서도 이 같은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박 당선인의 공약 전반이 당초부터 소요재원이 과소 계산된 데다 재원을 마련할 방법도 비현실적이기 때문이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큰 법. 이젠 부푼 기대를 내려놓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새정부 출범도 하기 전에 "공약 포기하자"
증세 없는 복지 확대 '지킬 수 없는 약속'

우선 전문가들로부터 가장 많은 지적을 받고 있는 것은 박 당선인의 가계부채 대책이다. 박 당선인은 약 322만명에 달하는 채무불이행자 중 일부를 대상으로 원금의 최대 50%까지 감면(기초수급자는 70%) 해주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기본적인 구조는 채무불이행자의 악성 채권을 시장에서 싼 값에 사들인 뒤 일정 원리금을 탕감하고, 남은 부채는 8~10년간 장기분할상환방식으로 전환해 회수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우려스러운 것은 이로써 우리 사회에 도덕적 해이가 만연할 수 있다는 점이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가계부채 대책에 대해 "채무자는 '나라에서 해주겠지', 채권자는 '기다려보자'는 식으로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또 이 공약을 실현하기 위해선 18조원 규모의 '국민행복기금'이 마련되어야만 한다.


박 당선인 측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의 부실채권정리기금 정부 배당분 3000억원, 신용회복기금 잔여재원 8600억원, 캠코 차입금 7000억원 등으로 1조8600억원의 종자돈을 만들고 10배의 공사채를 발행해 18조원을 마련한다는 구상이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처음 얼마동안은 여론을 의식해 실제로 시행될지도 모르겠지만 기금의 건전성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결국엔 견디지 못하고 폐지될 공약"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가계부채 대책
도덕적 해이 불러

박 당선인이 내놓은 4대 중증질환 100% 보장 공약에 대해서는 보건의료 관계자들조차 우려를 넘어 반대 입장을 표하고 있다. 4대 중증질환 100% 보장 공약은 현재 70% 수준인 암·심장병·뇌질환·희귀병 등 4대 중증질환 진료비의 건강보험 보장률을 올해부터 순차적으로 높여 2016년까지 100%로 만들겠다는 공약이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현재 건보 재정으론 감당하기 어렵다며 난색을 표했다. 4대 중증질환 진료비를 100% 보장하려면 현재 보장 대상이 아닌 6인 미만 병실의 입원료, 선택진료비(특진료), 간병비에도 건보를 적용해야 한다. 문제는 특정질환 진료비가 모두 무료가 되면 쓸데없는 가수요까지 촉발시켜 건보 재정에 부담을 줄 가능성이 커진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노무현 정부에서는 6세 미만 어린이들의 입원진료비를 전액무료로 했다가 어린이들의 입원이 급증해 보험재정지출이 늘어나자 1년 만에 어린이 진료비의 본인부담을 10%로 되돌린 적도 있다. 또 4대 중증질환은 한 번 발생하면 사망할 때까지 치료를 받아야 하는 부분이기에 연속성도 고려해야 한다. 노령 인구가 늘고 있는 실정을 반영했을 때 이 정책은 단순하게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박 당선인이 대선 직전 내놓은 '군복무기간 단축' 공약도 논란이다. 육군 사병 기준 현행 21개월인 복무기간을 18개월로 줄이겠다는 것인데 여권 내부에서도 반대의 목소리가 크다. 국방부는 인수위 업무보고 과정에서 복무기간 단축 시 연평균 2만7000명이 부족하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연간 1조원 이상의 예산이 필요하다며 사실상 추진불가 입장을 밝혔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복무기간을 줄이면 공백을 메우기 위해 전투경찰, 경비교도, 소방요원 등 대체복무요원을 없애야 하고 입대자들의 신체 급수도 훨씬 더 낮춰야 한다. 대체복무요원을 없애는 만큼 이들을 대신할 공무원을 충원해야 한다. 큰 정부가 될 수밖에 없고 국가가 수천억원의 인건비를 추가로 부담해야 된다. 게다가 현 21개월 복무체제하에서도 병사들의 낮은 숙련도 문제가 지적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함께 입대 병사들의 낮은 신체 등급은 초급 간부들의 지휘 부담을 훨씬 더 가중시키게 될 것이다.

군복무 단축
묻지마 공약

박 당선인의 최초 공약에는 복무기간 단축이 없었다. TV토론에서도 복무기간 단축은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그런데 박 당선인은 대선 이틀 전에 이를 번복하고 이 같은 공약을 내놨다. 군 입대를 앞둔 청년층의 표를 의식한 '묻지마 공약'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이유다. 때문에 일각에선 군복무기간 단축 공약을 두고 "지킬 수도 없고 지켜서도 안 되는 공약"이란 지적까지 나온다.

박 당선인이 교육정책의 일환으로 제시했던 무상보육과 반값 등록금 공약도 위태롭다. 올해부터 만 0~5세 영·유아에 대한 무상보육이 전면 시행된다. 대학등록금은 부모의 소득과 연계해 '소득연계 맞춤형 국가장학금'으로 소득하위 80%까지 지원된다.

문제는 지속가능성이다. 무상보육의 경우 단 1년도 버티지 못하고 당장 올 가을이면 보육대란이 일어날 것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국회를 통과한 만 0~5세 영유아 대상 무상보육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8조4195억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이는 지난해 6조2545억원보다 35%가 증가한 금액이다.


당장은 시행하겠지만 문제는 '지속 가능성'
박근혜 공약 '대국민 사기극'으로 막 내리나?

대표적으로 서울시만 보더라도 무상보육 확대에 따른 필요 예산은 1조2297억원으로 추정되는 상황인데 정부로부터 지원받는 예산은 3566억원 뿐이다. 나머지 8731억원은 시와 자치구에서 부담해야 한다. 올해 서울시 무상보육 예산은 시비 2644억원, 구비 1419억원 등 모두 4063억원이 편성된 상태로 추가로 필요한 금액의 절반 수준도 되지 않는다. 지난해 발생했던 보육대란의 재발은 이미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다. 보육현장에서는 지난해에 이어 어린이집 부족과 맞벌이 아동 기피 현상이 되풀이 되고 있다.

반값 등록금 역시 필요한 재원 가운데 1조원 정도는 대학이 마련해야 돼 정책 지속 여부가 불투명하다. 박 당선인은 반값 등록금 예산에 7조원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중 정부 예산을 4조원 투입하고 나머지 3조원은 대학 자체 장학금에서 2조원을 확충하고 대학 자구 노력을 통해 1조원을 추가로 확보해야 한다.

일부 선거공약 이행 여부가 개별 대학의 재정능력에 달린 만큼 대학들이 의지가 없거나 재정능력이 없다면 공약 이행이 불가능 하다. 또 올해부터 무상보육과 반값 등록금 정책이 시행된다고 하지만 고작 1년치 예산을 확보한 것뿐이다. 당장 내년부터는 공약의 이행여부를 장담할 수 없다.

못 지킨 공약
잘못 된 공약

한 정치전문가는 "물론 국정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공약을 못 지키는 경우는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그런데 선거가 끝난 후 고작 한 달도 지나기 전에 대선을 실질적으로 이끌었던 당직자들 입에서 공약을 지켜선 안 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은 큰 문제"라며 "이들은 자신들의 공약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선거기간 중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이를 방관한 것이다. 물론 잘못된 공약을 억지로 추진하는 것은 안 되지만 이는 국민들을 현혹해 대권을 차지한 것이나 마찬가지라 뒷맛이 씁쓸할 수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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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