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둘러싼 '정치권 루머' 총정리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3.01.09 09:16:05
  • 댓글 0개

아니 땐 굴뚝서도 '검은연기' 솔~솔

[일요시사=정치팀] 18대 대통령선거는 치열했던 만큼 선거기간 내내 온갖 루머와 각종 시나리오 등이 난무했다. 그 중 대부분은 너무나 황당무계한 이야기였지만 일부 그럴듯한 시나리오는 대선판을 뒤흔들기도 했다. 따라서 <일요시사>는 지난 대선을 전후해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을 둘러싸고 불거져 나왔던 각종 루머들을 총정리 해봤다.

혹자는 이번 대선을 두고 안철수로 시작해 안철수로 끝났다고도 한다. 정치경험이 전무했던 안철수 전 대통령후보는 이번 대선에서 여야 모두를 쥐고 흔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2011년 서울시장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안 전 후보는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안철수 신드롬'을 일으키며 가장 유력한 대선 후보로 떠올랐다. 이번 대선에서 여야를 가릴 것 없이 가장 촉각을 곤두세웠던 것은 바로 안 전 후보의 행보였다.

'루머왕' 안철수
식지 않는 인기

때문에 이번 대선 기간 쏟아져 나온 각종 루머와 시나리오 중 상당수는 안 전 후보와 관련한 내용이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박사모)' 정광용 회장이 지난해 6월 제기한 이명박 대통령의 안 전 후보 지원설이다. 이 대통령이 안 전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물밑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정 회장은 이 대통령이 이 같은 내용을 이재오, 김태호 새누리당 의원에게 전달했으며, 박근혜를 떨어뜨리기 위해 이 대통령이 민주통합당과도 접촉하고 있다는 첩보를 전해 들었다고 주장했다. 물론 이 대통령 측은 말도 안 되는 주장이라며 일축했지만 한동안 이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과의 관계는 냉각됐다는 게 주위의 전언이다.


대선이 끝난 후에는 일부 문재인 전 민주통합당 대통령후보의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안철수-박근혜 밀약설'이 터져 나왔다. '박근혜 승리의 1등 공신은 사실 안철수'라는 것이 골자다. 이들은 안 전 후보가 이번 대선에서 사실상 야권에 훼방을 놓음으로써 차기 정부에서 주요 요직을 약속받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안 전 후보가 단일화 과정에서 '몽니'를  부리다 일방적인 사퇴로 단일화를 한 것, 단일화 이후에도 문 전 후보를 적극적으로 돕지 않은 것, 대선 당일 미국으로 떠나 버린 것 등이 바로 그 근거라고 말한다. 특히 안 전 후보가 앞으로 정치를 계속하겠다고 선언한 만큼 박 당선인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박근혜-안철수 밀약설 "박근혜 승리 '1등 공신'은 안철수?"
백의종군 박근혜 측근 컴백 시나리오 '더 화려하게 돌아온다'

올해 재보선이 있긴 하지만 한때 대권을 눈앞에 뒀던 안 전 후보에겐 성이 차지 않는다. 이들은 안 전 후보가 박근혜 정부에서 초대총리나 박 당선인이 부활을 약속했던 과학기술부의 초대장관을 맡을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두 번째는 대선이 끝난 후 백의종군을 선언했던 '박근혜 측근들의 컴백 시나리오'다. 이 시나리오의 골자는 측근들의 백의종군을 지시한 것이 박 당선인이며 어느 정도 기간이 지나면 다시 불러들여 주요요직을 맡길 것이라는 것이다. 박 당선인 측근들의 백의종군은 대선 승리 후 새누리당 진영의 도덕적 우월성을 과시하기 위한 한편의 연극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주장을 하는 이들은 "대선이 끝나자마자 이들에게 요직을 맡긴다면 측근 코드인사, 보은인사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따라서 일단 백의종군의 형태로 물러나 호의적인 여론을 형성한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요직을 맡길 것"이라고 말한다. 같은 측근 코드인사라 하더라도 백의종군한 인사를 다시 불러들이는 것은 훨씬 모양새가 좋기 때문이다.

대선 공신들에게 보답을 안 할 수는 없지만 이미 이명박 정부가 출범 초기 측근 코드인사 논란으로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던 박 당선인이기 때문에 이 같은 연극을 지시했다는 것이다.


백의종군?
금의환향?

실제로 박 당선인의 대선 승리 이후 많은 공신들이 백의종군을 선언했다. 친박의 좌장으로 불리던 김무성 전 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총괄본부장은 대선 직후인 지난해 12월21일 자신의 사무실 문에 자신의 역할은 끝났다는 내용을 담은 편지 한 장 붙여놓고 홀연히 떠났다. 안대희 정치쇄신특별위원장과 김성주 공동선대위원장, 이학재 후보 비서실장도 마찬가지였다.

일각에서는 측근들 스스로가 박 당선인에게 신뢰를 주기 위해 백의종군을 선택했다는 주장도 있다. 한번 믿은 사람은 끝까지 신뢰하는 박 당선인의 스타일을 볼 때 일단은 박 당선인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물러나는 모양새를 취하는 것이 미래를 위한 더 큰 투자라는 것이다.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박 당선인과 당을 위한 순수한 희생을 음모론의 시각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무척 섭섭하다"는 입장이다. 과연 이들의 행동은 순수한 희생이었을까? 이제 관건은 이들이 정말 박근혜 정부 5년 동안 아무런 요직도 맡지 않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세 번째는 '박근혜-이명박 밀약설'이다. 박 당선인과 이명박 대통령은 대선과정에서 이 대통령의 안철수 지지설이 나돌면서 한때 냉기가 돌았지만 지난해 9월2일 양자 단독회동 이후론 부쩍 가까워졌다는 것이 주위의 전언이다.

일각에선 두 사람의 단독회동 과정에서 모종의 밀약이 있었던 것 아니냐며 의심하고 있다. 이날 두 사람은 배석자 없이 무려 1시간40여 분간이나 비공개로 대화를 나눴다. 때문에 이 같은 의혹을 제기한 이들은 대선과정에서 정부기관의 대대적인 개입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대선과정에서 불거져 나왔던 '국정원녀' 사건 역시 이 대통령의 작품 중 하나였을 것이란 주장이다.

국가정보원?
선거조작원?

실제로 정부기관의 대선 개입 의혹은 지난 1992년 초원복집 사건을 통해 사실로 밝혀지기도 했다. 초원복집 사건은 당시 정부 기관장들이 부산의 '초원복집'이라는 음식점에 모여 제14대 대통령 선거에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지역감정을 부추기자고 모의한 것이 도청에 의해 드러나 문제가 된 사건이다.

게다가 특히 국정원은 그동안 이번 국정원녀 의혹뿐 아니라 1990년 대구서갑 보궐선거에서 한 후보에게 사퇴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이 있었고, 1992년 총선에서는 홍사덕 후보에 대한 흑색선전물 살포 의혹, 1996년 총선에서는 대북 식량지원과 엮어 판문점 무력시위를 요청한 의혹이 제기됐었다.

1997년 대선에서는 한 종교인의 월북사건과 김대중 당시 후보의 연관성을 공작했다는 의혹까지 있었다. 2002년 대선에서는 당시 한나라당에 의해 국정원의 불법 도청 문건이 폭로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의 박 당선인 지원설과 관련, 이 대통령이 이번 대선에서 박 당선인을 물밑 지원한 대가로 측근들의 사면을 약속 받았다는 루머도 있다. 최근 이 대통령의 측근들은 줄줄이 항소를 포기하며 형을 확정 받았다. 이를 두고 정치권 일각에선 특별사면을 염두에 둔 행동이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특별사면을 받기 위해서는 형이 확정돼야 하기 때문이다.

박근혜-MB 대선 공동전선 구축 의혹 "국정원녀는 MB 작품?"
박근혜-북한 교감설 '보수정권 규탄한다더니?' 수상한 북한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형이 확정되기 전까지 지내는 구치소에서의 생활이 교도소에서의 생활보다 훨씬 편하다. 또 피고인만 항소를 할 경우 새로운 혐의가 발견되지 않는 이상 항소하는 과정에서 형량이 줄어드는 것이 일반적이라 대부분의 범죄자들은 무조건 대법원까지 항소를 한다"고 설명했다.

특별사면을 염두에 둔 행동이 아니라면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아직 이 대통령의 임기가 남아있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직접 사면도 가능하지만 마땅한 명분이 없고 여론도 냉담한 만큼 박 당선인이 취임 후 국민통합 명목으로 사면을 실시하는 쪽이 훨씬 부담이 적다는 분석이다.

네 번째는 '박근혜-북한 교감설'이다. 이러한 루머는 '북한은 보수정권이 들어서는 걸 반대한다면서 왜 꼭 선거 때만 되면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는 걸까?'라는 의문에서 시작됐다.

북한은 지난해 12월11일 대선을 불과 일주일 앞둔 민감한 시기에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북한이 미국 본토를 위협할 수 있는 발사체 기술력을 과시하면서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가 발칵 뒤집혔다. 이 과정에서 미사일 발사시기를 놓고 박 당선인 측과 북한과의 교감이 있었을 것 이라는 루머다.

지금까지 각종 선거 때마다 보수진영의 북풍 의혹은 수도 없이 제기됐다. 하지만 모두 단순한 루머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그중 실제로 드러난 사건도 있기 때문이다. 바로 지난 1997년 일어났던 '총풍사건'이 그것이다.

당시 대통령 선거에 앞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측의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청와대 행정관을 비롯한 3명이 중국 베이징에서 북한의 박충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참사를 만나 휴전선에서 무력시위를 해달라고 요청하였다는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과정에서 결국 실체를 확인하지는 못한 채 불분명한 사건으로 종결됐지만 이른바 '북풍'이 처음으로 드러나 큰 파문을 일으켰다.

겉으론 진보 환영
속으론 보수 환영

일각에선 북한이 겉으로는 보수정권의 집권을 반대하면서도 실제로는 보수정권의 집권을 환영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그 이유는 포용과 대화를 주장하는 진보정권이 들어설 경우 개방을 하지 않을 수 없고, 그렇게 되면 북한 내부에 재스민 혁명 같은 외부사상이 몰려와 체재불안을 야기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한 지도부는 오히려 계속적인 대결구도를 만들어 남북 긴장을 유지할 수 있는 보수정권을 원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정치 전문가는 "이번 대선에서는 치열했던 선거과정만큼 수도 없이 많은 정치 시나리오와 루머, 음모론 등이 생산됐다"며 "이들 중 대부분은 허무맹랑한 소설에 불과하겠지만 일부는 가까운 미래에 사실로 밝혀질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