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정치팀] 정치인들은 연말연시가 두렵다. 몸은 하나인데 참석할 행사는 너무나 많다. 그렇다고 초청받은 행사에 가지 않으면 다음 선거에서 표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정치인들에겐 연말연초 모임에 참석하는 것도 업무의 일환인 것이다. <일요시사>가 정치권만의 특별한 연말연초 풍경을 들여다봤다.
한국사회에서 인맥의 중요성은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오죽하면 정권이 바뀔 때 마다 대통령의 출신학교와 출신지역 등이 주요관심사로 떠오를까. 그런 의미에서 정치인들에게 연말연초는 인맥을 쌓을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우리가 남이가?
회원들의 면면이 화려한 일부 모임에는 가입 대기자들이 줄을 서기도 한다. 또 모임 참가자들 사이에선 자신의 세를 불리기 위한 치열한 물밑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처럼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인맥관리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이번 국회에는 300명의 국회의원 중 거의 절반인 148명(새누리당 76명, 민주당 56명)이 초선이다. 이들 여야 초선의원들은 대학생 뺨치는 각종 모임을 결성하고 민생현장 탐방은 물론이고 봉사활동, 정책개발 등의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 중 연말연초가 되면 빠지지 않는 것은 각종 봉사활동 모임이다. 이미지가 생명인 정치인에게 봉사활동만큼 좋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봉사활동 모임은 비록 몸은 힘들지만 인맥도 쌓고 표몰이도 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모임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역시 지난 25일 성탄절을 맞아 서울 쪽방촌을 방문해 도시락 배달 봉사활동을 펼친 바 있다.
특히 봉사활동 모임의 경우 같이 땀을 흘리며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타 어떤 모임보다 인맥 쌓기에 탁월하다는 평가다. 봉사활동 후엔 참가자들끼리 뒤풀이 자리를 가지며 친목을 다지기도 한다.
현재 국회 내에서 봉사활동만을 목적으로 구성된 모임은 없지만 모임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봉사활동을 펼치는 단체들은 많다. 대표적인 것이 새누리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모임인 '약속지킴이 25(약지25)'다. 이들은 지속적으로 현장을 찾아 국민 속에서 나오는 정책을 발굴하고 국민과의 소통 강화에 주력하겠다며 발족 후 정기적으로 봉사활동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민주통합당의 초선의원 모임인 '민초넷' 역시 매월 1회 정기 모임을 갖고 국민들과의 접촉을 강화하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 후보도 민초넷의 회원이다.
또 굳이 이런 모임이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국회의원들은 연말이 되면 각 지역구에서 여러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것이 보통이다. 물론 순수한 마음으로 봉사활동에 임하는 정치인들도 많지만 일부 정치인들의 경우 봉사활동에 참가해 사진만 찍고 사라지는 구태는 여전하다고 한다.
두 번째는 각종 향우회 모임이다. '우리가 남이가?'로 대표되는 향우회는 지난 87년 대선을 기점으로 심한 정치바람을 타기 시작했다. 그 후 향우회의 위력을 절감한 정치권은 향우회 회원들을 당원으로 적극 포섭하기도 했다. 한때 향우회에선 타향출신 후보를 지지할 경우 모임에서 매장될 정도로 정치색이 강했다.
오전엔 봉사활동, 오후엔 인맥 다지기 분주
기독교 신자가 법당에, 불교신자도 교회에
최근엔 지역주의가 많이 약해졌다고 하지만 정치인들에게 지역 지지기반은 여전히 중요하다. 정치인들이 선거 때마다 자신의 고향을 강조하며 지지를 호소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도 "향우회가 지역주의를 비판하는 여론에 밀려 겉으론 몸조심을 하지만 여전히 지역색이 강하다. 향우회에 찍히고도 살아남는 정치인은 별로 없다"고 귀띔했다. 특히 향우회 중 호남, 충청 향우회의 세력이 강하다고 알려져 있다.
반면 경기친목회, 영남향우회 등은 다소 여론 형성 기능이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된다. 호남향우회의 경우 그 회원수가 무려 1300만명에 달한다고 한다. 이번 대선에선 전국호남향우회 총연합회 측은 문재인 전 후보를, 전국호남향우회 총연합회 중앙회는 박근혜 당선인을 지지했다.
세 번째는 학연과 관련된 모임이다. 대표적인 것은 서울대출신 국회의원들의 모임인 '관악회'다. 19대 당선자들의 출신대학을 살펴보면 서울대가 78명(26%)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고려대 26명(8.7%), 연세대 24명(8.0%), 성균관대 21명(7.0%), 이화여대 12명(4.0%) 순이다.
지난 15대 국회에선 서울대 출신 당선자가 과반을 넘기도 했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서울대출신 국회의원들이 언제나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했음은 물론이다. 때문에 관악회는 국회 내에서도 여야를 넘나드는 파워인맥으로 손꼽힌다.
이번 19대 국회에선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전공에 따른 모임도 생겼다. 새누리당 이공계 출신 국회의원 22명이 참여하는 '이공계의원 모임(이공모임)'이 그것이다. 과학기술 관련 정책과 입법활동에 적극적으로 앞장서겠다며 발족한 이 모임에는 박근혜 당선인과 강창희 국회의장 등이 참여하고 있어 여러 의원들의 부러움을 받고 있다.
네 번째는 종교모임이다. 선거 때마다 정치인들은 교회로, 성당으로, 절로 표를 얻으러 다닌다. 불자도 교회에 나가고, 기독교인도 성당과 절을 다닌다. 그래서인지 국회의원 중 상당수가 종교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이른바 소망교회 라인이 각광받기도 했다.
우선 국회 내 종교모임 현황을 살펴보면 국회조찬기도회, 새누리당 기독인회, 민주당 기독신우회, 가톨릭신도의원회, 불교 정각회 등 다양하다. 이중 국회조찬기도회는 창립 이후 지금까지 매달 국회 내 소회의실 또는 대회의실에서 행사를 가져왔으며 회원수도 가장 많다.
신도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있는 정치인들이 국회조찬기도회에 참석하는 것은 거의 필수다. 대선을 앞두고 박 당선인과 문 전 후보 역시 국회조찬기도회에 참석했었다.
능력보단 눈도장?
이외에도 국회에는 장성출신 의원모임, 법조인출신 의원모임 등 직업별 모임과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 경제민주화 실천을 위한 국회의원모임 등 목적별 다양한 모임 등이 연말연시 송년회와 신년회를 앞두고 있다. 물론 국회의원 개개인별로도 각종 단체의 연말연시 모임 참석 러브콜이 쇄도하고 있다. 연말연시에 가장 바쁜 사람은 정치인이라는 말은 결코 틀린 말이 아닌 듯하다.
마지막으로 한 정치 전문가는 "이러한 인맥정치는 스킨십을 강화해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너무 심할 경우 능력보다는 눈도장만 잘 찍는 정치인이 득세하는 부작용도 있다"며 "유권자들의 냉철한 판단으로 잘못된 관행은 바로잡아 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명일 기자<mi737@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