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대선주자 2인 현미경 검증 (완결)지지세력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2.12.18 17: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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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권 위해서라면 악마와도 손잡는다?"

[일요시사=정치팀] 오는 12월19일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여야의 대선주자들이 치열한 대권레이스를 벌이고 있다. 상대를 이겨야 웃을 수 있는 레이스에서 최후에 웃게 될 자는 누가 될 것인지에 벌써부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여야 각 정당의 경선 이전부터 대선예비주자들을 철저히 검증해 온 <일요시사>는 여야의 대선 후보로 압축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의 면면을 검증한다. 이번 호에서는 마지막 순서로 그들의 '지지세력' 면면을 살펴봤다.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여야의 인재영입 전쟁도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호남에선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에 대한 지지선언이 쏟아져 나오고 반대로 영남에선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에 대한 지지선언이 줄을 잇는다. 과거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진영을 넘나드는 인재영입은 지역주의와 이념갈등을 타파하는데 일조했다는 평가도 있지만 '철새정치'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과연 이들의 지지선언은 이번 대선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박근혜 <국민대통합>
호남권·동교동 끌어안기 “아버지의 이름으로”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의 캠프는 여야를 넘나드는 폭넓은 스펙트럼의 인재풀을 자랑한다. 대선 출마 이후 줄곧 '국민대통합'을 부르짖으며 인재영입에 공을 들인 결과다.

우선 박 후보는 지난 2011년 4·11 총선을 앞두고 직접 김종인 행복추진위원장을 영입했다. '경제민주화의 아버지'로 불리는 김 위원장은 지난 2004년 새천년민주당의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지내기도 했다. 김 위원장의 영입으로 박 후보는 경제민주화 이슈를 선점하고 중도층 공략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파격 인재영입


지난 8월27일에는 한나라당의 차떼기 사건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선자금 수사로 '국민 검사'로 불린 안대희 전 대법관이 새누리당의 정치쇄신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전격 영입됐다. 안 위원장의 영입을 위해 박 후보는 삼고초려도 마다하지 않는 등 상당한 공을 들였다는 후문이다.

박 후보는 이 과정에서 정치권의 권력형 비리를 뿌리 뽑아 달라며 안 위원장에게 전권을 위임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후보는 안 위원장의 영입으로 야권이 주도하던 정치쇄신 이슈에서도 나름의 존재감을 부각시킬 수 있었다.

지난 10월5일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한광옥 전 민주당 상임고문이 박 후보 캠프 합류를 공식선언해 민주통합당 지지자들을 당혹하게 했다.

한 전 고문은 11·13·14·15대 등 4선 의원을 지낸 인사로 동교동계 원로이자 김대중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불린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DJP(김대중+김종필)' 연대를 성사시킨 막후 주역이기도 하다. 김대중 정부에서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냈으며 2002년 대선 때는 민주당 대표로서 국민경선제를 최초로 도입해 '이회창 대세론'을 넘어서는 데도 기여했다.

하지만 지난 4·11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 공천에서 탈락하자 "공천 과정에서 친노(친노무현) 세력이 개혁공천이라는 미명 아래 당권 장악을 위한 패권주의에 빠졌다"고 비판하며 탈당, 정통민주당을 창당해 서울 관악갑에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한 전 고문과 함께 동교동계의 핵심으로 불리던 김경재 전 의원도 새누리당 국민대통합위 기획조정특보로 임명되며 박 후보 캠프에 합류했다.

이들의 영입은 박 후보의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 전 대통령간의 역사적 화해의 상징성을 취하는 동시에 취약지역인 호남 민심 공략의 교두보를 마련하려는 복안으로 풀이된다.

지난 11월16일에는 새누리당과 선진통일당이 전격 합당했다. 특히 이인제 선진당 대표는 새누리당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임명돼 대선 기간 내내 충청권 민심을 사로잡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이 대표 개인적으로는 1997년 신한국당 대선 경선에 불복해 탈당한 뒤 15년 만의 친정 복귀였다.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총재 역시 지난 11월24일 박 후보를 지지하면서 새누리당에 입당했다. 이 전 총재를 필두로 심대평 전 자유선진당 대표와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도 박 후보 지지선언에 동참했다. 특히 이 전 총재의 경우 박 후보와의 악연은 유명하다.

박 후보는 2002년 대선 당시 경선 룰을 두고 이 전 대표와 갈등을 빚은 끝에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미래연합을 창당했었다. 반대로 2007년 대선에는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이 전 대표가 당시 박 후보에게 도움을 구하기 위해 삼성동 자택을 3차례나 찾았다가 모두 문전박대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김종필 전 총재의 경우는 지난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른바 DJP연합을 형성하며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에 대선패배의 아픔을 선사한 인물이기도 하다.

지난 6일에는 한화갑 전 새천년민주당 대표가 박 후보를 지지하겠다고 선언했다. 단 새누리당에 입당은 하지 않겠다는 조건이다. 4선 의원 출신의 한 전 대표는 권노갑 전 의원과 함께 '양갑'으로 불리며 동교동계의 중추역할을 해 왔다.

참여정부 시절인 2006년 불법정치자금 수수로 의원직을 잃으면서 민주당 공동대표에서도 물러났다. 이후 18대와 19대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호남에서 출마했으나 연이어 고배를 마셨다. 지난 2010년 6·2 지방선거를 앞두고는 DJ의 옛 평화민주당을 계승해 새로운 '평화민주당'을 창당하고 대표직을 맡았지만 단 한 명의 당선자도 내지 못하면서 사퇴했다.

넓은 인재풀

마지막으로 지난 11일에는 민주통합당 출신 박주선 무소속 의원이 박 후보의 지지를 선언하려다 취소하고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에 대한 지지선언을 하는 웃지 못 할 해프닝도 있었다. 박 의원은 당초 지난 10일 박 후보에 대한 지지 선언을 할 것으로 예견됐으나 박 후보 지지를 반대하는 자신의 지지자들에 의해 산속으로 끌려갔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 의원의 지역구는 민주당의 텃밭인 전남 광주다. 검사 출신인 박 의원은 '세 번 구속, 세 번 무죄'라는 특이한 이력을 가진 정치인이다. 4·11 총선을 앞두고 모바일 선거인단을 모집하는 과정에서 선거법을 위반한 혐의가 드러나자 탈당한 뒤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문재인 <용광로 선대위>
"영남권·상도동 끌어안기"

이번 대선의 화두가 중도층 공략인 만큼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통령후보 역시 출마 직후 용광로 선대위를 천명하며 인재영입에 공을 들였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국민대통합에 맞서 본격적인 인재영입전쟁에 불을 당긴 것은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의 영입이었다. 한때 안철수 전 무소속 후보의 멘토로 알려졌던 윤 전 장관은 지난 9월26일 문 후보 캠프에 전격 합류했다. 그는 국민통합추진위원장직을 맡았다.

늦은 인재영입


윤 전 장관은 제16대 한나라당  국회의원이었고 지난 1997년에는 환경부 장관을 지냈다. 한나라당의 여의도연구소 소장을 지냈으며, 2002년 대통령 선거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선거 전략가 역할을 했다. 이후 범보수의 제갈량, 한나라당의 전략통이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문 후보와 윤 전 장관은 지난해 12월 한 시민단체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처음 만났으며, 문 후보 측은 약 한 달간 윤 전 장관을 영입하기 위해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윤 전 장관의 캠프 합류는 문 후보 측의 다중 포석이었다.

합리적 보수층을 끌어안음으로써 중도층 확대의 발판이 되었으며 당시 야권단일화 승부의 경쟁상대였던 안 전 후보를 견제하는 역할도 했다.

하지만 박 후보에 비해 문 후보 측은 이후로 이렇다한 인재영입성과는 얻지 못했다. 오히려 민주당의 뿌리와도 같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교동계가 둘로 나뉘어 대립하는 과정을 앉아서 지켜봐야만 하는 아픔을 겪었다. 그러나 이달 들어 문 후보에 대한 외부인사들의 지지선언이 줄을 이으며 대반격에 나선 모양새다. 

지난 10일에는 이명박 정부에서 국민통합특별보좌관을 지낸 김덕룡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상임의장이 문 후보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다. 김 의장은 지난 1970년 당시 김영삼 신민당 총재의 비서실장으로 정계에 입문한 대표적인 상도동계 정치인이다. 서울 서초을에서 5선을 지냈고, 한때 김영삼 전 대통령의 후계자로 거론되기도 했다.

김 의장은 지난 2006년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 구청장 공천 희망자들에게 금품을 받은 혐의가 불거져 당시 당 대표였던 박근혜 후보에게 검찰에 고발당한 악연도 있다. 이후 김 의장은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대통령과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이상득 전 의원, 박희태 전 국회의장, 이재오 의원과 함께 ‘6인회의’를 이끌었다.


김 의장은 지난 2008년 총선에서 재기를 모색했으나 신예 고승덕 변호사에게 밀려 한나라당 공천에 탈락한 뒤 주로 물밑에서 개헌촉구운동 등을 벌여왔다.

김 의장의 영입은 새누리당의 동교동계 공략에 맞선 민주당의 상도동계 역습으로 평가됐다. 이번 대선에서 과거 정치적 라이벌이었던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끈질긴 악연이 재현되는 모양새다.

지난 12일에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인 김현철 전 새누리당 여의도연구소 부소장도 사실상 문 후보에 대한 지지의사를 밝히면서 상도동계는 완전히 갈라서게 됐다.

김 전 부소장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이 나라의 미래를 위해, 아버지의 민주화에 대한 지금까지의 열정이 역사에 욕되지 않기 위해 이번 선거는 민주세력이 이겨야 한다"고 말했다. 김 전 부소장은 또 "혹독한 유신시절 박정희와 박근혜는 아버지와 딸이 아니라 파트너로서 이 나라를 얼음제국으로 만들었다"면서 박근혜 후보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이에 따라 김영삼 전 대통령이 과연 이번 대선에서 어떤 후보를 지지할 것인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은 그동안 보수세력의 승리를 위해 박 후보를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김 전 부소장은 "아버지께서 공식적으로 박 후보에 대해 지지 선언을 한 것은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다. 상도동계의 잇따른 지지선언으로 문 후보 측은 이번 대선의 전략 요충지인 경남 공략에 더욱 힘을 받게 됐다는 평가다.

지난 11일에는 정운찬, 이수성 전 국무총리가 문 후보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다. 이들은 직접 기자회견 등을 열진 않았지만 민주당을 통해 간접적으로 지지의사를 밝혀왔다. 때문에 당초 고건 전 총리도 문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는 발표도 있었으나 고 전 총리 측이 이를 부인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대역습 시작

정 전 총리는 이명박 정부의 2대 총리로 지명된 뒤 세종시 원안 추진을 반대하며 박 후보와 대립각을 세우다 수정안이 부결되면서 총리직에서 물러난 바 있다. 이후 동반성장위원장을 맡아 동반성장지수 공표 등을 주도했다.

이수성 전 총리는 김영삼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역임하고 1997년 신한국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했으나 이회창 당시 후보에게 밀려 낙선한 경력이 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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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