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대통령' 꿈꾸는 김순자 무소속 대통령후보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2.12.10 11:3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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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아줌마는 청소나 하라고? 청와대 가서 부패정치인들 청소하지요"

[일요시사=정치팀] 제18대 대선에 출마한 기호 7번 김순자 무소속 대선 후보는 청소노동자 출신이라는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의 출마를 놓고 "청소아줌마는 청소나 하지?"라며 눈을 흘기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김 후보는 당당히 외친다. "청소노동자도 정치할 수 있다. 돈 많고 배운 사람들은 우리를 대변해주지 않는다. 대통령은 잘난 사람이 하는 게 아니라 우리를 잘 대변해줄 사람이 해야 한다"고.

인터뷰를 위해 찾은 김순자 무소속 대선후보의 캠프는 어느 허름한 주택가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 흔한 현수막조차 없어 캠프를 찾는데 상당한 애를 먹었다. 하지만 내부의 분위기는 그 어떤 후보의 캠프보다도 활기찼다.

캠프는 단 한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자원봉사자들로 구성돼 있다. 지난 5일 기준으로 김 후보의 지지율은 0.1% 남짓. 이들을 움직이게 한 것은 오직 바른 정치, 바른 노동, 바른 세상을 향한 열망이었다.

어제까진 평범한 청소아줌마였던 그가 이번 대선에 출마할 수밖에 없었던 진짜 사연은 무엇일까? <일요시사>는 이른바 대선 빅2의 틈바구니에서도 청소노동자 출신이라는 특이한 이력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김 후보를 만나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눠봤다. 다음은 김 후보와의 일문일답.

- 청소노동자 출신이라는 특이한 이력으로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정치에 입문하게 된 계기와 이유는 무엇인가.
▲ 평범한 주부로 생활하다 남편과 사별 후 청소노동자로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런데 노동현장에 들어와 보니 부당한 일들이 너무나 많았다. 관리직과의 임금차이가 4배나 됐고, 연장근무수당 같은 아주 당연한 권리조차 그림의 떡이었다. 그래서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투쟁에 나섰다. 그 과정에서 많은 노동자들을 만났다. 그분들도 무척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며 일하고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누군가는 그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정치에 입문하게 됐다.

- 기성정치인 못지않은 입담을 자랑한다. 이전 직업이나 학력에 대한 정보가 없던데 청소노동자 이전 직업은 무엇이었는가?
▲ 평범한 주부였다. 한때는 식당이나 당구장을 경영하기도 했지만 지난 2003년부터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로 일했다. 학력은 초등학교 졸업이다. 이를 굳이 숨기려 한 것이 아니라 대통령을 뽑을 때조차 학력을 기재하도록 해 학력차별을 조장하는 선거제도에 저항하기 위함이었다.


- 2억9000여만원의 재산을 신고했다. 비정규직 청소노동자 출신임을 감안할 때 꽤 많은 재산이라는 말이 있다. 재산형성 과정은?
▲ 그동안 열심히 일하며 성실하게 돈을 모았고 남편과 시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남긴 재산이 대부분이다.

- 후보등록을 할 경우 기탁금 3억 외에도 선거벽보, 현수막, 공보물 배포 등에 엄청난 돈이 드는 것으로 안다. 무소속 후보로서 선거비용 마련에 어려움은 없었는가.
▲ 처음에는 과연 후보등록을 할 수 있을까 걱정했다. 그런데 제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후원에 동참해 주셨다. 심지어 어떤 분은 자신의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후원금을 내시기도 했다. 후원에 동참해주신 분들이 300여 명에 달하는 것 같다. 이 분들은 정말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오직 바른 정치, 바른 노동, 바른 세상을 함께 만들자고 당부하셨다.

- 당선 가능성이 낮은 상황에서 주위의 반대는 없었는지?
▲ 많은 분들이 반대를 했다. 가능성도 없고, 고생만 하고, 돈만 드는 그런 일을 왜 하려고 하느냐고 말렸다. 그러나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 그동안 선거운동을 하면서 정말 출마하길 잘했다고 느낀 순간은 언제였는가?
▲ 지금 단 한 분을 제외하고 선거캠프를 돕고 있는 모든 인원이 자원봉사자들이다. 현실적으로 내가 당선되기 어렵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따라서 이들에게 돌아갈 혜택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모두 자기 일처럼 열심히 돕고 있다. 이런 분들을 만나게 된 것이 너무나 기쁘고 행복하다. 또 이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전할 수 있어서 기쁘다.

- 끝까지 완주할 계획인가? 완주할 경우 야권승리에 방해가 된다는 비판도 예상된다. 만약 야권연대를 이룰 생각이 있다면 조건은 무엇인가?
▲ 무조건 완주한다. 내가 보기엔 새누리당이나 민주당이나 큰 차이가 없다. 민주당 정부 10년 동안 노동자를 위해 무엇을 했나? 비정규직 악법 만들어 노동자들을 힘들게 하고 지금에 와서 뜬금없이 비정규직을 위한다고 하는데 이해가 안 된다. 지금까지는 왜 못했는가? 그들이 내놓은 노동 관련 공약도 진정성이 없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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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가능성이 높지 않다. 이번 출마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 노동자들의 절박한 상황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다. 지금도 수많은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정당한 임금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저의 출마로 '열악한 노동환경'이 이번 대선의 화두가 되길 바란다. 반드시 근본적인 대안이 마련되길 바란다. 또 많은 노동자들에게 저의 출마가 희망이 되길 바란다.


- 핵심공약은 무엇인가?
▲ 일자리, 소득, 삶을 보장하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우선 비정규직 철폐, 불안정노동 폐지, 노동권의 완전한 보장을 이루겠다. 또 7년에 1년씩 쉬는 유급 안식년 제도를 도입해 최대 34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 노동시간 상한법을 제정해 하루 7시간, 일주일 35시간, 일년 1800시간으로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이를 통해 최대 534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 이와 같은 방식의 노동시간 단축이 생활수준 하락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단축된 노동시간에 대하여 시간당 1만원씩 계산해 매월 33만원의 기본소득을 국가가 지급하는 한편, 유급 안식년에 대해서도 월 150만원을 국가가 보조하도록 함으로써 제도 시행으로 인한 중소기업의 부담을 줄이겠다. 최저임금은 시간당 1만원으로 인상해 생활임금 수준으로 조정할 계획이다.

- 공약이 대체로 노동 쪽에만 치우쳐 있다. 대통령이 되려면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공약이 필요한데.
▲ 노동 외에도 교육, 문화, 경제, 안보 분야 등에 다양한 공약을 갖고 있다. 이번에 출마 하면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만나 많은 이야기를 듣고 준비를 했다. 예를 들어 적극적 평화국가 수립을 위해서는 서해상 공동어로구역과 평화구역을 설정하고, 남한의 방어적 무기체계로의 전환, 남한과 북한의 상호 군축 등을 제시했다. 또 복지국가 건설을 위한 조세 혁명을 공약했는데 모든 소득에 대해 과세하고, 세금 탈루를 방지하기 위해 1000만원 이상의 거래는 전자거래를 의무화하기로 했다.

- 이른바 대선 빅2 간 경쟁이 치열하다. 많은 유권자들은 김순자 후보를 뽑는 것은 사표가 되는 것이 아닌가 우려하고 있다. 그럼에도 유권자들이 김 후보를 뽑아야 하는 이유는?
▲ 지금까지 정치는 돈 많고, 힘 있고, 많이 배운 사람들만 해왔다. 그런데 그 분들은 선거 때는 서민과 사회적 약자를 위한다고 하다가 막상 선거가 끝나고 나면 서민의 삶은 안중에도 없었다. 정치는 간단하다. 국민에게 거둔 세금으로 국민들 잘 살게 해주면 된다. 때문에 서민의 고통을 공감하는 서민 출신 대통령이 나와야 된다. 또 내가 당선되지 않더라도 나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는 기존 정치권에 대한 경고가 될 것이다. 

- 만약 김 후보가 당선된다면 우리나라는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비전을 제시해 달라.                    

▲ 가장 먼저 변하는 것은 노동환경이다.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 가량인 2400만명이 노동자다. 그 분들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 완전 고용 사회, 노동자가 가장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

- 대선 후에도 계속 정치에 몸담을 계획인가?
▲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선거가 끝나면 일단 청소노동자 본연의 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 마지막으로 국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 버스도 타본 사람이 요금을 안다. 평생 승용차만 타본 사람이 버스 요금을 어떻게 알겠는가? 저는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고통 받고 있는 국민들의 고단한 삶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제는 노동자들을 대변해줄 정치인이 필요하다. 만약 저에게 투표를 해주신다면 국민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정치인이 되겠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김순자 후보 프로필>

▲ 1955년 7월6일 울산 언양 출생
▲ 2003년 울산과학대 청소용역업체 입사
▲ 2007년 세계인권선언기념 국가인권위 대한민국인권상 수상
▲ (전) 제19대 국회의원선거 진보신당 비례대표후보자
▲ (현) 민주노총 울산지역연대노조 울산과학대지부장
▲ (현) 민주노총 울산지역연대노조 부위원장
▲ (현) 울산지역 청소노동자 배움터 '노동이 아름다운 빛나는 학교' 운영위원
▲ (현) 더불어숲 노동인권센터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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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