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문안단일화에도 흔들리지 않는 이유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2.12.12 12:4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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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권단일화 핵폭탄? 알고 보니 불발탄!"

[일요시사=정치팀] 단일화 효과는 없었다. 지난달 23일 안철수 전 무소속 대선후보가 백의종군을 선언하며 사실상 야권단일화가 성사됐지만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의 지지율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와의 지지율 격차를 오차범위 밖까지 벌리며 여유 있는 모습이다. 뒤늦게 안 전 후보가 문 후보와 손을 맞잡았지만 기대처럼 효과는 별반 나타나지 않고 있다. 한때 야권 승리의 보증수표로 여겨지던 단일화 성사에도 박 후보가 흔들리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요시사>가 살펴봤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야권후보단일화 이슈에 묻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전 무소속 후보 모두 양자대결에서 박 후보를 앞서고 있었다. 때문에 새누리당 내에서는 야권단일화는 곧 대선 패배라는 위기감이 팽배했다.

박근혜 상승세
문재인 하락세

지난달 23일 안 전 후보가 백의종군을 선언하며 사실상의 단일화가 성사된 후 2주 가량이 지났다. 하지만 박 후보의 지지율은 여전하다. 오히려 문 후보의 지지율 하락세가 뚜렷해졌다. 단일화만 성사되면 컨벤션효과와 더불어 시너지효과를 불러일으키며 단숨에 대권 승리를 거머쥘 것이라 예상했던 문 후보 측은 그저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정치권에서는 박 후보의 저력에 또 한 번 놀라는 눈치다. 이번 대선정국의 블랙홀이라고까지 불렸던 야권단일화가 성사됐음에도 박 후보가 흔들리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가장 크고 표면적인 이유는 단일화와 지지표명 과정에서의 잡음이다. 당초 안 전 후보는 지난 3일 캠프 해단식에 참여한 자리에서 문 후보에 대한 지지의사를 밝힐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날 안 전 후보는 "문 후보를 성원해 달라"는 한마디 외엔 별다른 언급이 없었다.


철 지난 네거티브, 안철수만 바라보는 무능
"이대로 가면 진다" 문재인 대권행보 빨간불

지난 5일에는 다급해진 문 후보가 안 전 후보의 자택을 직접 찾았으나 안 전 후보를 만나지 못하고 돌아오는 굴욕까지 겪었다. 이튿날 드디어 안 전 후보가 문 후보와 단동회동을 갖고 문 후보에 대한 적극적 지지에 나서겠다고 표명했지만 강제로 등 떠밀린 듯한 인상은 지울 수가 없었다.

정치권에서는 안 전 후보가 문 후보에 대한 지원을 망설인 이유에 대해 여러 가지 분석이 쏟아지고 있다. 그 중 가장 유력한 것은 안 전 후보가 민주당의 행태에 실망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우선 안 전 후보는 민주당 일각에서 "안 전 후보가 조만간 지원 유세에 합류할 것"이라 언론플레이를 하고 문 후보가 자신의 자택을 방문한 것을 두고 '빨리 지원에 나서 달라'는 압박으로 받아들이며 무척 불쾌해 했다는 후문이다.

한 정치전문가는 "안 전 후보가 문 후보를 지원한다는 입장은 변함이 없었지만 문제는 지지자들을 온전히 데려가는 것"이라며 "안 전 후보로서는 상처 입은 지지자들을 설득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인데 민주당의 조급함이 오히려 일을 그르쳤다"고 지적했다.

안개화법 안철수
구걸화법 문재인

두 번째는 민주당의 잘못된 선거전략이다. 공식선거운동이 개시된 후 민주당의 일일브리핑과 논평 등을 살펴보면 박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오죽하면 안 전 후보는 해단식에서 "지금 대선은 거꾸로 가고 있다"면서 "새 정치를 바라는 시대정신은 보이지 않고 과거에 집착하고 싸우고 있다"며 여야를 에둘러 비판하기도 했다.

이번 대선의 승부처는 중도층 공략이다. 이러한 민주당의 구태정치 답습으로는 결코 중도층을 공략할 수 없다. 게다가 민주당이 네거티브라고 내놓은 사항 중 새로운 것도 없었다. 한 정치전문가는 "보수는 이미 단단하게 결집해 있는데 유효기간 지난 네거티브로 철옹성을 깨뜨릴 수 있겠는가? 그나마 문 후보를 지지하던 중도층도 내쫓는 한심한 선거전략"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또 야권단일후보로서 자력으로 본선에서 이길 전략을 마련하지 않고 초반부터 안 전 후보의 지원에만 기댄 것도 실패한 선거전략이라는 분석이다. 대선전략 전반에 대한 질타도 쏟아진다. 문 후보는 선거 초반 친노 프레임에 빠지면서 '실패한 참여정부의 핵심'이라는 새누리당의 공세에 고스란히 노출됐고, 뒤늦게 정권심판론을 들고 나왔지만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

세 번째는 민주당의 지지세력 규합 실패다. 지난 6일 '리틀DJ'라 불리던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가 박 후보 지지를 표명하고 나섰다. 이외에도 최근 박 후보의 지지를 선언한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무척 화려하다. 이인제 전 선진통일당 대표부터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대표,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 김영삼 전 대통령까지 역대 대선에서 단 한번도 한데 뭉친 적이 없는 이들이 보수정권 재창출이라는 대의 아래 박 후보를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보수대연합'이다. 민주당에선 구태정치인들의 집합일 뿐이라며 이들을 애써 무시하고 있지만 최소한 문 후보가 대선 승리를 위해 반드시 공략해야할 중도 보수층에서 이들의 영향력은 여전하다. 또 중도 보수층뿐만 아니라 지역별 격전지에서도 이들은 무시 못 할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박 후보는 이들을 품음으로써 '화합의 정치인'이라는 이미지까지 덤으로 얻었다. 반면 박 후보와 비교할 때 문 후보 측은 동교동계의 분화로 기존 야권세력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일각에선 문 후보 곁엔 친노만 남았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 전문가는 "노련한 정치인이라면 선거에서 지지세력의 규합이 얼마나 중요한지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비록 한물 간 인물들이라고 해도 과거 엄청난 영향력을 자랑했던 이들이 박 후보 주변으로 모이는 것을 과소평가한다는 것은 민주당이 현실인식을 제대로 못하고 있거나 사태의 심각성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애써 모른 척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보수 대연합
진보 대분열

네 번째 이유는 바로 공약이다. 이번 대선의 승부처는 바로 중도층에 있다. 때문에 박 후보는 중도층을 끌어안기 위해 선거초반 보수층의 반발을 감수하면서까지 경제민주화 등을 전면에 내세우며 좌클릭 행보에 나선 것이다.

이와 비교할 때 문 후보의 공약은 중도층을 끌어안기 위해 단 한 발자국도 양보하지 않았다. 북한의 사과나 재발방지책도 없이 금강산 관광을 일단 재개하겠다거나 북한이 몽니를 부려 지속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개성공단을 무작정 확대하겠다는 등의 대북 공약은 중도층은 물론 진보진영 내에서조차 반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반값등록금을 모든 대학, 모든 계층으로 확대하겠다는 등의 퍼주기식 복지도 마찬가지다.

한 전문가는 "물론 새누리당과 정책에서 차별화는 필요하겠지만 중도층을 끌어안기 위한 민주당의 양보도 있어야 한다"며 "최소한 안철수식의 중도적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과거 김대중 대통령은 선거과정에서 동서화합을 강조하며 자신을 살해하려고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기념관 건립을 약속했다. 이와 비교할 때 문 후보는 어떠한 공약을 제시했는가? 상대진영의 표를 끌어올 공약이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보수대연합 효과 '톡톡' 진보진영은 사분오열
오르지 않는 지지율 "민주당 스스로 변해야"

다섯 번째 이유는 박 후보의 정치내공이다. 문 후보 측은 박 후보가 평소 토론에 약한 모습을 보여왔다며 대선후보 토론회를 역전의 기회로 삼고자 했다. 하지만 토론회가 끝난 후에도 지지율의 변동은 없었다. 박 후보가 토론을 잘했다는 평가는 드물었지만 지지율에 변동을 줄 만큼 큰 실수를 한 것도 아니었다. 박 후보가 평소 토론에 약한 모습을 보여 온 것은 사실이지만 15년 정치 내공은 이를 상쇄하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또 야권이 단일화에 몰두할 때 뚜벅뚜벅 정책행보를 걸으며 하루 10곳의 유세현장을 방문하는 등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해내는 박 후보의 정치내공이야말로 박 후보가 단일화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라는 평가다.

여섯 번째 이유는 단일화 피로감이다. 일단 새누리당 관계자들은 안 전 후보가 문 후보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에 나서겠다고 표명한 만큼 지지율이 2~5%까지 요동칠 수 있다고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당초 야권단일화 시 거의 확실한 패배가 예상됐던 것과 비교하면 여전히 박 후보는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한 전문가는 "단일화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차라리 백의종군 선언 직후 적극적인 지지에 나서는 게 좋았다"며 "이후 안 전 후보가 뜸을 들이면서 국민들의 단일화 피로감이 높아졌고 전체의 큰 흐름을 바꿀 수 있는 폭발력은 이미 상실했다고 본다. 한마디로 단일화란 핵폭탄이 불발탄이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전문가도 "후보사퇴 직후 적극적인 지지에 나서든지 아니면 안 전 후보의 주장대로 지지자들을 설득할 시간을 충분히 갖고 지지에 나서든지 둘 중 하나가 됐어야 하는데 설익은 밥통을 강제로 열어버린 모양새"라고 비판했다.

박근혜의 정치내공
문재인은 정치초보
 

마지막으로 한 전문가는 "안철수만 움직이면 이긴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이대로 가면 민주당은 반드시 질 것"이라며 "안 전 후보가 적극적인 지지에 나서기로 했지만 안 전 후보가 움직일 수 있는 지지율은 2∼5%에 불과하다. 대선승리를 위해선 민주당 스스로가 더욱 정치쇄신에 박차를 가하고 정책과 공약으로 국민들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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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