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떠도는 '안철수 시나리오' 전격해부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2.12.04 11:5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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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퇴는 처음부터 계획된 각본? 차차기 노렸다!"

[일요시사=정치팀] 안철수 전 무소속 대선후보가 지난달 23일 후보직 전격사퇴를 선언하며 물러났다.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깜짝 행보였다. 그는 오전까지만 해도 민주통합당과 경선룰을 놓고 치열하게 대립했으며, 사퇴 선언 5시간 전에는 후보 등록에 필요한 범죄경력증명서를 발급받았었다. 그렇다면 안 전 후보의 갑작스런 사퇴에는 어떠한 사연이 숨겨져 있을까? <일요시사>는 안 전 후보의 사퇴로 불거져 나온 이른바 '안철수 시나리오'를 추적해봤다. 

 

 

 안철수 전 무소속 대선후보가 지난달 23일 긴급기자회견을 열겠다고 공지했을 때 그의 후보사퇴를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그가 이날 오후 후보 등록에 필요한 범죄경력증명서를 발급받은 사실을 떠올리며 단독으로 대선에 출마하겠다는 선언을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돌았다. 그러나 안 전 후보는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후보 사퇴'라는 극단의 선택을 하고 쓸쓸히 퇴장했다.

치열해진 짝사랑
안철수 주가상승

하지만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안 전 후보가 후보직을 사퇴한 후 여야의 '안철수 모시기' 경쟁이 오히려 더 치열해진 것이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의 경쟁이 워낙 박빙이라 안 전 후보의 말 한마디에 승패가 결정되게 된 까닭이다.

며칠 사이 각종 여론조사를 분석해보면 안 전 후보 지지자 가운데 절반 정도는 문 후보에게 갔지만 중도층은 20%까지 늘어났다. 단 1~2%지지율로도 승패가 갈릴 수 있는 이번 대선에서 안 전 후보의 영향력은 그만큼 절대적인 변수가 됐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이번 대선은 누가 뭐래도 '안철수의, 안철수에 의한, 안철수를 위한 선거'가 됐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일례로 새누리당은 최근 난데없이 '안철수 정신'을 계승하겠다고 선언하고 나섰다. 당 정치쇄신특위에서 안 전 후보의 쇄신안을 적극 공약에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안 전 후보의 사퇴 전까지만 해도 부동산투기 의혹을 제기하며 '먹튀 대통령'이란 비판을 서슴지 않았던 새누리당이었다.


안철수는 떠났는데 안철수만 바라보는 여야
분명 버렸는데 다 가진 안철수 '신의 한수'

민주당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아예 자존심도 버린 채 납작 엎드렸다. 안 전 후보가 문 후보를 '야권단일후보'라고 선언해줬지만 일방적인 사퇴라는 모양새 때문에 단일화 효과가 제대로 나타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문 후보 측은 "원하면 당을 맡길 수도 있다" "공약을 수용하겠다" "선대위 중요 직책을 넘기겠다"는 등 연일 선심성 제안을 내놓으며 안 전 후보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주요 공약도 안 전 후보 측과 조율을 하겠다며 발표를 미루고 있을 정도다. 이에 따라 정치전문가들도 안 전 후보의 사퇴로 가장 큰 이득을 본 것은 문 후보가 아닌 안 전 후보 본인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정치권에서 안 전 후보의 이번 사퇴가 처음부터 치밀하게 계획된 각본이었다는 이른바 '안철수 시나리오'설이 나도는 이유다. 정치권에 떠돌고 있는 안철수 시나리오의 골자는 안 전 후보가 처음부터 이번 대선보다는 차기 대선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사퇴는 이미 계획된 수순이었다는 주장이다.

차차기 노렸나?
순수한 양보인가?

그렇다면 안 전 후보는 왜 이번 대선에 출마한 것일까? 한 정치전문가는 "안 전 후보의 인기는 한 예능프로그램 출연 후 급격하게 얻은 것이다. 그런데 대선에 출마할 생각이 없다고 잘라 말하면 그에 대한 관심과 인기 또한 거품처럼 사라져버리고 대중에게 잊혀질 수도 있었다"며 "만약 안 전 후보가 실제로 차기 대선을 노리고 있었다면 처음엔 이번 대선에서 유력후보로 거론되는 정도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막판엔 자신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가 너무 커졌기 때문에 여기서 출마를 안하면 야권에 훼방을 놓는 수준이 됐다. 안 전 후보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페이스메이커'론을 주장했다. 페이스메이커란 장거리를 뛰는 마라톤에서 경주력 향상을 위해 초반 레이스를 이끌며 선두로 치고 나가다가 다른 주자들이 일정 시간 궤도에 오르면 자신은 경주를 포기하는 역할을 맡는 선수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안 전 후보는 이번 대선에서 야권의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한 것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안 전 후보가 나타나기 전까지 야권에선 박 후보에 대항할 만한 인물이 없었다. 지금은 문 후보가 박 후보와 박빙의 승부를 펼칠 정도로 성장했지만 민주당 경선 당시만 하더라도 당원 간에 물병과 달걀을 투척하며 싸우는 모습을 보이는 등 막장경선 논란을 일으키며 1위 박 후보와는 엄청난 격차를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안 전 후보의 등장으로 중도층이 대거 야권으로 이동했고 안 전 후보와의 단일화 대결로 대선이슈를 장악했다. 문 후보는 그 과정에서 자신의 리더십을 국민들에게 알릴 수 있었고 '형님' '통큰 양보' 등으로 대표되는 포용의 이미지도 얻었다. 만약 안 전 후보가 이번 대선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문 후보가 지금처럼 성장할 수 없었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다.

일단 안 전 후보로서는 이번 사퇴로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더 많다. 안 전 후보는 경선이 아닌 양보를 선택함으로써 패배자가 아닌 양보자가 됐다. 그 과정에서 정권교체를 위한 '순교자'라는 이미지까지 덤으로 얻었다. 이는 안 전 후보가 차차기 대권에 도전하는데 있어 큰 자산이 될 것이 분명하다.

또 안 전 후보의 사퇴를 통해 문 후보가 대권을 잡게 된다면 향후 그의 정치적 영향력은 더욱 극대화 될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문 후보가 원활한 국정운영을 하기 위해선 안 전 후보의 지지층을 끌어안아야만 하고 그러기 위해선 안 전 후보에게 힘을 실어줄 것이라는 예상이다.

안 전 후보로서는 문 후보의 집권 5년 동안 자신의 최대 약점이었던 부족한 정치 경력을 보완한다면 차차기 대선에서 누구보다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다.

설령 문 후보가 패배한다고 해도 안 전 후보로서는 잃을 것이 없다. 문 후보가 패배하게 된다면 당장 민주당 책임론이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 박 후보와의 양자대결 경쟁력이 더 높았던 안 전 후보를 민주당이 고집을 부리면서까지 끌어내려 결국 선거에 패배했다는 책임론이다.

이 경우엔 민주당 내 갈등이 격화되고 당내 비주류 인사들이 대거 안 전 후보 측으로 옮겨오면서 최소한 교섭단체 구성이 가능한 신당이 단숨에 창당될 수도 있다.

승패 상관없다
'순교자 안철수'

게다가 지난 대선과정을 복기해보면 안 전 후보가 처음부터 사퇴카드를 염두에 뒀었다는 정황들도 곳곳에서 포착된다. 안 전 후보는 지난달 21일 후보단일화 TV토론에서 남북정상회담과 관련 "시한을 못 박으면 교섭할 때 주도권을 잃고 몰릴 수 있다"고 주장했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야권후보단일화 시점을 후보등록일 전으로 못 박으며 협상을 시작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한 전문가는 "자신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사퇴한다는 명분을 쌓기 위한 포석이었다"고 분석했다.

안 전 후보와 문 후보는 지난달 6일 후보등록일 전까지 단일화를 성사시키겠다고 합의했다. 하지만 당시부터 단일화를 성사시키기에는 물리적으로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럼에도 굳이 후보등록일 이전으로 단일화 기한을 못 박은 이유는 처음부터 사퇴를 염두에 뒀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이와 함께 모든 국민들이 약속한 기한 내에 단일화가 이뤄질 수 있을지 촉각을 곤두세우는 그때 전격적으로 후보 사퇴를 발표함으로써 안 전 후보로서는 더욱 극적인 효과까지 얻어내며 시쳇말로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또 다른 전문가는 "유럽처럼 아예 결선투표를 치르는 것이 아니라면 어떤 방식으로 단일화를 하던 조직이 없는 안 후보는 자신이 절대적으로 불리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라며 "만약 안 전 후보가 단일화 승부에서 패배했다면 차차기를 위한 정치적 동력을 크게 잃었을 텐데 승부를 펼칠 생각이 있었겠는가? 처음부터 사퇴를 생각했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기한 정한 단일화 승부 왜? '예견된 사퇴?'
조직 없고 경험 없는 약점 스스로 잘 알아

안 전 후보 측이 단일화룰 협상과정에서 협상중단을 선언하는 등 여러 가지 '몽니'를 부린 이유도 결국엔 시간 끌기용이었다는 주장이다.

단일화룰 협상과정에서 안 전 후보 측의 태도는 진보논객 진중권 교수조차 "잘라 말해 안철수 캠프가 잘못하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문화예술인들이 중재안으로 '가상대결 50%+적합도 50%' 안을 제시했을 때 안 전 후보 측이 받아들였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 후보 측은 이를 받아들였지만 안 전 후보 측은 이를 거부하고 다시 '실제대결 50%+지지도 50%' 안을 최종안으로 제시해 야권 지지자들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았었다. 안 전 후보가 차차기 대권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면 처음부터 단일화룰을 양보했으면 간단했을 것이다.

이어 그는 "안 전 후보는 처음부터 당선되느냐 마느냐가 중요하지 않았다. 대통령직을 스스로 잘 해낼 수 있을지가 더욱 관건이었다"며 "조직도 없고 국정경험도 없는 그가 대통령직을 잘 수행해낼 수 있었겠는가? 심지어 단일화 승부에서 이길 수 있었다고 하더라도 양보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 얻은 안철수
차차기 대권직행?

마지막으로 한 전문가는 "안철수란 인물이 이토록 주도면밀한 인물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지금 대선정국은 이른바 안철수 시나리오대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이대로라면 대선의 캐스팅보트는 안 전 후보가 쥐게 되고 승자가 누가 되더라도 차차기 대권에서 가장 유력한 후보는 안철수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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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