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떠도는 '안철수 시나리오' 전격해부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2.12.04 11:5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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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퇴는 처음부터 계획된 각본? 차차기 노렸다!"

[일요시사=정치팀] 안철수 전 무소속 대선후보가 지난달 23일 후보직 전격사퇴를 선언하며 물러났다.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깜짝 행보였다. 그는 오전까지만 해도 민주통합당과 경선룰을 놓고 치열하게 대립했으며, 사퇴 선언 5시간 전에는 후보 등록에 필요한 범죄경력증명서를 발급받았었다. 그렇다면 안 전 후보의 갑작스런 사퇴에는 어떠한 사연이 숨겨져 있을까? <일요시사>는 안 전 후보의 사퇴로 불거져 나온 이른바 '안철수 시나리오'를 추적해봤다. 

 

 

 안철수 전 무소속 대선후보가 지난달 23일 긴급기자회견을 열겠다고 공지했을 때 그의 후보사퇴를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그가 이날 오후 후보 등록에 필요한 범죄경력증명서를 발급받은 사실을 떠올리며 단독으로 대선에 출마하겠다는 선언을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돌았다. 그러나 안 전 후보는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후보 사퇴'라는 극단의 선택을 하고 쓸쓸히 퇴장했다.

치열해진 짝사랑
안철수 주가상승

하지만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안 전 후보가 후보직을 사퇴한 후 여야의 '안철수 모시기' 경쟁이 오히려 더 치열해진 것이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의 경쟁이 워낙 박빙이라 안 전 후보의 말 한마디에 승패가 결정되게 된 까닭이다.

며칠 사이 각종 여론조사를 분석해보면 안 전 후보 지지자 가운데 절반 정도는 문 후보에게 갔지만 중도층은 20%까지 늘어났다. 단 1~2%지지율로도 승패가 갈릴 수 있는 이번 대선에서 안 전 후보의 영향력은 그만큼 절대적인 변수가 됐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이번 대선은 누가 뭐래도 '안철수의, 안철수에 의한, 안철수를 위한 선거'가 됐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일례로 새누리당은 최근 난데없이 '안철수 정신'을 계승하겠다고 선언하고 나섰다. 당 정치쇄신특위에서 안 전 후보의 쇄신안을 적극 공약에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안 전 후보의 사퇴 전까지만 해도 부동산투기 의혹을 제기하며 '먹튀 대통령'이란 비판을 서슴지 않았던 새누리당이었다.


안철수는 떠났는데 안철수만 바라보는 여야
분명 버렸는데 다 가진 안철수 '신의 한수'

민주당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아예 자존심도 버린 채 납작 엎드렸다. 안 전 후보가 문 후보를 '야권단일후보'라고 선언해줬지만 일방적인 사퇴라는 모양새 때문에 단일화 효과가 제대로 나타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문 후보 측은 "원하면 당을 맡길 수도 있다" "공약을 수용하겠다" "선대위 중요 직책을 넘기겠다"는 등 연일 선심성 제안을 내놓으며 안 전 후보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주요 공약도 안 전 후보 측과 조율을 하겠다며 발표를 미루고 있을 정도다. 이에 따라 정치전문가들도 안 전 후보의 사퇴로 가장 큰 이득을 본 것은 문 후보가 아닌 안 전 후보 본인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정치권에서 안 전 후보의 이번 사퇴가 처음부터 치밀하게 계획된 각본이었다는 이른바 '안철수 시나리오'설이 나도는 이유다. 정치권에 떠돌고 있는 안철수 시나리오의 골자는 안 전 후보가 처음부터 이번 대선보다는 차기 대선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사퇴는 이미 계획된 수순이었다는 주장이다.

차차기 노렸나?
순수한 양보인가?

그렇다면 안 전 후보는 왜 이번 대선에 출마한 것일까? 한 정치전문가는 "안 전 후보의 인기는 한 예능프로그램 출연 후 급격하게 얻은 것이다. 그런데 대선에 출마할 생각이 없다고 잘라 말하면 그에 대한 관심과 인기 또한 거품처럼 사라져버리고 대중에게 잊혀질 수도 있었다"며 "만약 안 전 후보가 실제로 차기 대선을 노리고 있었다면 처음엔 이번 대선에서 유력후보로 거론되는 정도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막판엔 자신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가 너무 커졌기 때문에 여기서 출마를 안하면 야권에 훼방을 놓는 수준이 됐다. 안 전 후보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페이스메이커'론을 주장했다. 페이스메이커란 장거리를 뛰는 마라톤에서 경주력 향상을 위해 초반 레이스를 이끌며 선두로 치고 나가다가 다른 주자들이 일정 시간 궤도에 오르면 자신은 경주를 포기하는 역할을 맡는 선수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안 전 후보는 이번 대선에서 야권의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한 것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안 전 후보가 나타나기 전까지 야권에선 박 후보에 대항할 만한 인물이 없었다. 지금은 문 후보가 박 후보와 박빙의 승부를 펼칠 정도로 성장했지만 민주당 경선 당시만 하더라도 당원 간에 물병과 달걀을 투척하며 싸우는 모습을 보이는 등 막장경선 논란을 일으키며 1위 박 후보와는 엄청난 격차를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안 전 후보의 등장으로 중도층이 대거 야권으로 이동했고 안 전 후보와의 단일화 대결로 대선이슈를 장악했다. 문 후보는 그 과정에서 자신의 리더십을 국민들에게 알릴 수 있었고 '형님' '통큰 양보' 등으로 대표되는 포용의 이미지도 얻었다. 만약 안 전 후보가 이번 대선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문 후보가 지금처럼 성장할 수 없었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다.

일단 안 전 후보로서는 이번 사퇴로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더 많다. 안 전 후보는 경선이 아닌 양보를 선택함으로써 패배자가 아닌 양보자가 됐다. 그 과정에서 정권교체를 위한 '순교자'라는 이미지까지 덤으로 얻었다. 이는 안 전 후보가 차차기 대권에 도전하는데 있어 큰 자산이 될 것이 분명하다.

또 안 전 후보의 사퇴를 통해 문 후보가 대권을 잡게 된다면 향후 그의 정치적 영향력은 더욱 극대화 될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문 후보가 원활한 국정운영을 하기 위해선 안 전 후보의 지지층을 끌어안아야만 하고 그러기 위해선 안 전 후보에게 힘을 실어줄 것이라는 예상이다.

안 전 후보로서는 문 후보의 집권 5년 동안 자신의 최대 약점이었던 부족한 정치 경력을 보완한다면 차차기 대선에서 누구보다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다.

설령 문 후보가 패배한다고 해도 안 전 후보로서는 잃을 것이 없다. 문 후보가 패배하게 된다면 당장 민주당 책임론이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 박 후보와의 양자대결 경쟁력이 더 높았던 안 전 후보를 민주당이 고집을 부리면서까지 끌어내려 결국 선거에 패배했다는 책임론이다.

이 경우엔 민주당 내 갈등이 격화되고 당내 비주류 인사들이 대거 안 전 후보 측으로 옮겨오면서 최소한 교섭단체 구성이 가능한 신당이 단숨에 창당될 수도 있다.

승패 상관없다
'순교자 안철수'

게다가 지난 대선과정을 복기해보면 안 전 후보가 처음부터 사퇴카드를 염두에 뒀었다는 정황들도 곳곳에서 포착된다. 안 전 후보는 지난달 21일 후보단일화 TV토론에서 남북정상회담과 관련 "시한을 못 박으면 교섭할 때 주도권을 잃고 몰릴 수 있다"고 주장했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야권후보단일화 시점을 후보등록일 전으로 못 박으며 협상을 시작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한 전문가는 "자신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사퇴한다는 명분을 쌓기 위한 포석이었다"고 분석했다.

안 전 후보와 문 후보는 지난달 6일 후보등록일 전까지 단일화를 성사시키겠다고 합의했다. 하지만 당시부터 단일화를 성사시키기에는 물리적으로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럼에도 굳이 후보등록일 이전으로 단일화 기한을 못 박은 이유는 처음부터 사퇴를 염두에 뒀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이와 함께 모든 국민들이 약속한 기한 내에 단일화가 이뤄질 수 있을지 촉각을 곤두세우는 그때 전격적으로 후보 사퇴를 발표함으로써 안 전 후보로서는 더욱 극적인 효과까지 얻어내며 시쳇말로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또 다른 전문가는 "유럽처럼 아예 결선투표를 치르는 것이 아니라면 어떤 방식으로 단일화를 하던 조직이 없는 안 후보는 자신이 절대적으로 불리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라며 "만약 안 전 후보가 단일화 승부에서 패배했다면 차차기를 위한 정치적 동력을 크게 잃었을 텐데 승부를 펼칠 생각이 있었겠는가? 처음부터 사퇴를 생각했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기한 정한 단일화 승부 왜? '예견된 사퇴?'
조직 없고 경험 없는 약점 스스로 잘 알아

안 전 후보 측이 단일화룰 협상과정에서 협상중단을 선언하는 등 여러 가지 '몽니'를 부린 이유도 결국엔 시간 끌기용이었다는 주장이다.

단일화룰 협상과정에서 안 전 후보 측의 태도는 진보논객 진중권 교수조차 "잘라 말해 안철수 캠프가 잘못하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문화예술인들이 중재안으로 '가상대결 50%+적합도 50%' 안을 제시했을 때 안 전 후보 측이 받아들였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 후보 측은 이를 받아들였지만 안 전 후보 측은 이를 거부하고 다시 '실제대결 50%+지지도 50%' 안을 최종안으로 제시해 야권 지지자들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았었다. 안 전 후보가 차차기 대권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면 처음부터 단일화룰을 양보했으면 간단했을 것이다.

이어 그는 "안 전 후보는 처음부터 당선되느냐 마느냐가 중요하지 않았다. 대통령직을 스스로 잘 해낼 수 있을지가 더욱 관건이었다"며 "조직도 없고 국정경험도 없는 그가 대통령직을 잘 수행해낼 수 있었겠는가? 심지어 단일화 승부에서 이길 수 있었다고 하더라도 양보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 얻은 안철수
차차기 대권직행?

마지막으로 한 전문가는 "안철수란 인물이 이토록 주도면밀한 인물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지금 대선정국은 이른바 안철수 시나리오대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이대로라면 대선의 캐스팅보트는 안 전 후보가 쥐게 되고 승자가 누가 되더라도 차차기 대권에서 가장 유력한 후보는 안철수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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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