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입취재] 본지 여기자의 '텐프로 면접' 체험기

“오빠만 믿어, 화류계 스타 만들어줄게”

[일요시사=사회팀] 상위 텐프로(10%). 이는 고급 유흥업소에 종사하는 연예인보다 더 뛰어난 외모와 화술을 갖춘 여성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들은 소위 1%급 고객들을 상대하며 월 1500만∼2000만원에 이르는 거액을 벌어들인다. 일반 회사 임원급과 비교할 정도로 높은 수익이다. 최근 텐프로 아가씨 채용면접 메일이 인터넷상에 떠돌고 있어 <일요시사>가 텐프로 면접 현장을 직접 취재해봤다.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텐프로’만 쳐도 수십개의 광고들이 줄을 잇는다. 개중에는 텐프로에 관려된 채용정보를 알리는 블로그들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는데, 특히 외모에 대한 기준을 꽤 높고 추상적으로 세워놓고 있었다. 모 블로그의 운영자 장모씨가 채용 공지란에 “솜씨 좋은 장인의 얼굴에 빛나는 외모를 갖추신 분, 날 때부터 엘프(요정)족으로 태어나신 분이나 고귀한 혈통을 이어받은 여신급 외모의 소유자만 제게 연락주세요”라는 글귀를 남겼다.

대학 등 스펙본다?
근거 없는 헛소문

본 기자는 국내 ‘텐프로 면접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무작정 장씨의 연락처에 연락을 취했다. 전화통화에서 그는 우선 만나서 사이즈(외모평가)를 잰 후에 상담이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며 만남을 요청해왔다.

오후 7시쯤. 역삼동 인근의 한 카페에서 사전에 통화한 장씨를 만날 수 있었다. 장씨는 마치 면접관인 양 오자마자 기자의 외모를 쭉 훑어보더니 “텐프로급은 아닌데 바로 아래단계까지는 가능할 수 있겠다”며 텐프로의 실상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의 말은 우리가 흔히들 알고 있었던 텐프로의 자격조건과 매우 달랐다.

외모는 기본이고 학벌을 포함한 외국어 스펙을 보지 않으냐는 기자의 물음에 그는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은데 소문이 와전된 것”이라며 코웃음을 쳤다. 그의 말에 따르면 텐프로도 타 고급술집 여성들과 다를 바가 없지만 외모에서 풍겨져 나오는 묘한 매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명문대 출신에 지성미를 갖춘 자만이 텐프로의 자격조건에 충족한다는 말은 그저 헛소문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는 이어 유흥업소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약 10여 단계로 나눠 설명했다. 상위급부터 나열하면 ‘텐프로-텐카페-하이쩜오-쩜오-클럽-세미-퍼블릭-소프트풀-하드풀-하드코어-노래방·가라오케’ 순으로 이어진다. 이 중 사이즈가 잘 나와 고급 유흥업소에서만 취급할 수 있다는 쩜오 이상은 거의 연예인급이라고 공공연히 불리고 있다.

그는 “쩜오의 외모기준이 일반 연예인이라고 한다면 하이쩜오는 A급 배우 정도는 돼야한다”고 말했다. 하이쩜오 아가씨들은 오히려 텐프로보다 더 예쁜 경우가 많아 유흥업소에서 일하다가 연예인으로 직종을 바꾸는 경우도 파다한데, 이들은 대부분 스폰서를 잡고 연예계에 진출한다고 한다.

불특정 다수 상대로 텐프로 채용면접 홍보 전쟁
‘도화살’로 이어지는 농염한 매력이 신 트렌드

반면 텐카페 이상(텐프로 포함), 즉 텐들은 한마디로 포스가 넘쳐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다. 단지 외모가 다는 아니라는 얘기였다. 텐들 중에서는 자연 미인이 대부분이고 성형을 했더라도 거의 티 안 나게 조금씩 손 본 사람들이 주를 이룬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중요한 건 다른 데 있었다.

텐은 사람의 마음을 끄는 묘한 매력을 갖고 있어야 했다. 이를테면 포스가 넘쳐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의 소유자나 마릴린 먼로와 같은 백치미가 매력인 사람, 묘한 색기가 넘쳐흐르는 사람 등이 텐급에 속하는 여성들이었다.

이야기가 길어지자 장씨는 기자를 이끌고 자신의 가게에서 일하는 언니들(?)을 보여주겠다며 소프트풀 업소로 데리고 갔다. 이 쪽 관계자들은 소위 애프터(2차:성관계)만 취급하는 업소를 소프트풀이라고 부른다. 약 10층에 달하는 건물 전체가 모두 소프트풀이었는데, 로비를 제외하고는 모두 룸과 ‘매직미러’(밖에서는 보이지만 안에서는 밖이 안 보이는 거울)로 채워져 있었다. 로비에는 건장한 남성들이 고객의 에스코트 역할을 자처하고 있었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6층에 들어선 순간 말로만 듣던 매직미러가 전체 층을 차지하고 있었다.

거울 안에는 겉옷 복부 쪽에 번호표를 붙인 한눈에 봐도 어여쁜 여성들이 나란히 앉아 초이스(고객지명)를 기다리고 있었다. 영업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이른 시간임에도 꽤 많은 남성들이 매직미러 내의 여성들을 훑으며 마음에 드는 여성을 고르고 있었다. 바로 옆에 서있었던 한 남성은 바로 “55번이요!”라고 우렁차게 외치며 여성을 초이스했다. 이후 남성은 어디론가 층을 옮겨갔고, 초이스를 받은 여성은 손님을 맞이하려 매직미러를 빠져나오는 듯 했다.

화류계 경험 없으면
가산점 ‘팍팍’

그때 장씨는 이곳에 너무 오래 머무르면 안 된다며 기자를 다시 로비로 데리고 갔다. 이후 그는 기자에게 적당한 가게를 소개시켜주겠다고 미리 부른 콜(콜택시와 비슷한 개념)에 태워 장소를 옮겼다. 콜의 운전기사는 자신의 명함이라며 회사명과 휴대폰 번호만 찍힌 명함을 기자에게 건넸다.

그들은 “경기가 좋지 않아 텐프로 시장이 예전만치 못하다” “이왕 할 거면 월 1000만원 가까이 벌 생각으로 하는 게 후회 없지” 등의 대화를 오가며 강남구 논현동에 위치한 모 텐카페 앞에 차를 세웠다. 텐카페 앞 역시 천막 내에 건장한 남성들이 즐비해 있었고, 신분확인 후 외부인들을 들여보냈다. 장씨는 이번에 새로 개업한 전무의 업소라며 면접 후 궁금한 것은 모두 그에게 물어보라고 했다. 전무라고 불리는 이모씨는 기자와 장씨를 상냥하게 맞이하며 한 방으로 안내했다.

장씨는 이씨에게 텐 일에 관심 있는 언니라며 기자를 소개했다. 이씨 또한 기자를 훑어보며 “키가 몇이에요?” “몸무게 50kg은 안 되죠?” 등 신체검사를 하듯 꼬치꼬치 캐물었다. 간단히 신체정보 입수 후 그는 텐프로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벌어들이는 수익은 어떤지, 현재 텐프로 시장의 상황은 어떤지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유흥업소에 종사하는 여성들은 등급별로 나뉘는데, 등급별로 하는 일이 각기 다르다고 한다.

손님에게 술 따르고, 대화하는 것은 같지만 상대하는 손님의 등급부터 확연히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텐급이 상대하는 손님들은 대부분 기업인이나 부모 잘 둔 덕에 능력 없이 술집을 전전하며 돈을 쓰는 졸부들이라고 했다. 고위층 인사들도 들르지만 자주 오는 편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주간엔 본업 존중
“야간에만 뛰어라”

텐프로와 텐카페 여성들의 장점은 타 유흥종사자와는 달리 신체접촉 없이 상위 1%대 손님들과 술 마시고 대화정도만 해줘도 하루 70만∼100만원까지는 벌 수 있다는 것이다. 우선 출근수당으로 40만원은 받고 하루 일을 본다. 40만원은 텐 정도면 하루 평균 4테이블은 볼 수 있다는 전제하에 기본으로 매긴 수당이다. 물론 손님의 초이스가 많은 여성일 경우에 한한다. 텐프로 중에서도 에이스는 애프터 없이 테이블만 돌고도 한 달에 1500만원에서 2000만원에 달하는 수익을 벌어들인다고 한다.

또한 테이블 당 매겨진 수당 10만원과 손님이 주는 팁 또는 애프터 합의금 등은 개인이 챙긴다. 그 부분은 업소 내 그 누구도 관여할 사항이 아니기 때문. 그래서 이들 중 스폰서를 잘 잡아 팔자 고친 케이스는 고객으로부터 강남의 오피스텔과 외제차, 수백만원에 달하는 용돈 등을 협찬 받으며 살아간다고 한다. 

텐급 여성들은 앞서 본 여성들과는 달리 매직미러 안에 들어가 있지 않고, 새끼마담이 새로 온 아가씨나 에이스 등 한눈에 보기에도 괜찮은 여성들을 손님 앞에 나란히 세워놓으면 손님들이 직접 초이스 하는 방식을 쓰는 듯 했다. 제일 인기 있는 타입은 매력 넘치는 외모에 장단 잘 맞춰주고 애교가 많은 여성이지만 이보다 새로 온 아가씨가 차지한다고 한다.

더욱이 이 쪽 세계에 한 번도 발을 담그지 않았던 여성이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라고 말한다. 이씨는 “손님들은 처음부터 새로 온 여성에게 호기심을 갖고 무작정 초이스한다”며 “예전부터 유흥업소 손님들은 진한 화장보단 화장기 없는 청순한 외모의 여성을 선호해왔다. 거기에 순수함까지 더해진다면 손님은 여성의 매력에 쉽게 빠지게 되고, 지속적으로 그 여성을 초이스하려 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화장은 지금처럼 옅게 하고 헤어만 조금 다듬으면 바로 일할 수 있겠다”는 이씨의 말에 “기자는 주간에 본업을 하고 있어 당장은 힘들다”고 받아쳤다. 그러자 동행했던 장씨는 “이 정도급 현관문에 통과할 정도면 클래스다. 처음 면접 본 것 치고는 정말 대단한 것”이라며 바람을 불어넣었다.

외모 등급별 업소 달라…콜 불러 면접장소 이동 
테이블만 돌고 월 2000만원 수익…2차는 보너스

지속적으로 제안을 거절하자 이씨는 “현재 아가씨들 중 일부는 낮에 본업에 충실하고 가끔 아르바이트로 텐 일을 하기도 한다”고 설득했다. 실제로 많은 여성들이 하루 6시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50만원 이상은 거뜬히 벌 수 있으니 아르바이트로 이 일을 택한다고 한다.

요즘은 업소에서도 술은 눈치껏 조절하라며 강요하지 않고 여성 종사자들을 많이 배려해주는 추세기 때문에 여대생을 비롯한 일반 회사원들도 선입견 없이 이 바닥에 발을 들인다고 전해진다. 이씨는 “단 간혹 짓궂은 손님들이 술에 취해 과도한 신체접촉을 시도하거나 인격을 무시하는 경우가 있어 이 점은 어느 정도 감수하고 일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그는 텐프로에 들어가려면 유흥가의 분위기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다양한 손님을 상대해 봐야한다고 전했다. 과거 성행하던 텐프로 시장은 현재 많이 죽고, 강남에 위치한 수백개의 유흥업소 중 진짜 텐프로만 취급하는 업소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텐급으로 진출하려고 화류계에서도 일반 샐러리맨 못지않게 업소 종사자들끼리 경쟁이 치열하다고 한다.

단시간에 고수익을 보장하는 직업이지만 그만큼 위험한 직업이 바로 텐프로다. 손쉽게 번 돈인 만큼 씀씀이가 커질 수밖에 없어 업소로부터 마이킹(유흥업소대출)을 지급받는다는 것. 그러나 이 마이킹은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칠 수도 있는 무서운 시스템이다. 한 번 마이킹을 받고나면 빚에 빚을 낳아 결국엔 터무니없이 부푼 돈을 메꾸기에만 급급해져 화류계를 떠나고 싶어도 빚을 갚기 전까지 떠날 수 없기 때문.

고액 버는 만큼
“위험하다” 충고

텐프로의 실상을 거짓 없이 공개한 이씨는 면접 막바지에서 “절대 빚의 노예가 되면 안 된다. 현재 등록금조차 낼 수 없는 어려운 환경에 처해있거나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지 않으면 처음부터 화류계에 발을 들이지 않는 것이 좋다”며 “도박과 마약보다 끊기 힘든 일이다. 그러나 알고도 다시 찾는 게 이 바닥이다”라고 충고했다.

김지선 기자 <jisun86@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