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흔드는 '내부의 적' 실상 대해부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2.11.19 17: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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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의 적' 1만보다 '내부의 적' 1명이 더 무섭다

[일요시사=정치팀]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는 내부의 적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지난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과정에서 자기사람이라고 믿었던 인사들이 공공연하게 박 후보를 깎아내리는 발언을 하는 바람에 큰 타격을 입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야권단일화 이슈에 파묻혀 절체절명의 위기에 봉착한 박 후보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또 한 번 내부의 적에게 발목이 잡혔다. 상황으로 치자면 2007년보다 훨씬 심각하다. 경선이 아닌 본선인 까닭이다. 그 내부의 적들은 과연 누굴까? <일요시사>가 박 후보를 덜덜 떨게 만드는 그들의 실체를 집중 추적했다.

새누리당은 과거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주도했다가 역풍을 맞아 당의 존립마저 불확실한 위기를 맞았었다. 그때 '천막당사'라는 깜짝 쇄신카드로 당을 구해낸 것이 박근혜 현 새누리당 대선후보였다.

2007년 아픔
2012년 재현?

박 후보는 지난 2004년 총선에서 기적같은 선전을 펼쳤고, 그 결과 당시 한나라당은 100석도 힘들다는 예상과 달리 121석을 차지하는 큰 성과를 거뒀다. 자연스럽게 당시 당내 주류는 친박계가 됐다. 그러나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이명박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높아지자 충성을 맹세했던 다수의 친박계 의원들은 박 후보를 배신하고 오히려 박 후보를 공격하는 선봉에 섰다. 박 후보가 유독 '내부의 적'에 대해 심각한 트라우마를 보이는 이유다.

그런데 박 후보는 최근 내부의 적 때문에 또다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야권후보단일화 이슈에 파묻혀 벼랑 끝에 선 박 후보로서는 무척 난감하다 못해 참혹한 상황이다. 그들이 쏟아낸 발언을 살펴보면 그 심각성을 익히 알 수 있다.

"(박 후보의 정치쇄신안에 대해) 알맹이가 없고 껍데기만 있다."
"(경제민주화와 관련) 박 후보가 변했다. 대기업 로비 받았나?"


웬만한 야권인사들의 공세보다 수위가 높은 이 같은 발언을 쏟아낸 주인공들은 놀랍게도 같은 당 이재오 의원과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이다. 이 의원의 경우는 새누리당 대선후보 경선을 앞두고 '룰 갈등'으로 박 후보와 대립하다 아예 경선에 불참하면서부터 본격적인 악연이 시작됐다.

'막말' 김종인 "박근혜 대기업 로비 받았나?"
'몽니' 이재오 "탈당 안하는 것만 해도 돕는 것"

박 후보는 지난 8월 20일 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후 경선 경쟁자였던 김태호 의원, 안상수 전 인천시장,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과 역시 룰 갈등으로 경선에 불참했던 정몽준 전 대표까지 캠프에 동참시키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 의원만은 박 후보의 영입제안을 끝까지 거절했다.

민주통합당의 손학규 상임고문 역시 대선경선 패배 후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의 도움 요청을 거절하긴 했지만 두 사람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손 고문은 캠프에 참여하진 않았지만 경선 패배 후 침묵을 지킨 반면, 이 의원은 외곽에서 꾸준히 박 후보를 공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의원의 주요 공격무기는 바로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였다. 이에 대해 한 정치전문가는 "공적인 자리에서 박 후보를 직접 공격할 경우 해당행위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지만 SNS를 이용할 경우엔 개인적인 생각을 남긴 것뿐이라 선을 긋기가 수월하다"며 "게다가 이 의원이 SNS에 남긴 글들은 기자들이 알아서 기사화 해주니 발언의 무게감과 파장도 결코 적지 않다. 이 의원에게는 최고의 공격수단으로 애용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이 의원은 박 후보가 대선정국에서 위기를 맞을 때마다 자신의 SNS를 통해 신랄한 비판을 쏟아냈다.

얄미운 김종인
더 미운 이재오

김종인 위원장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김 위원장은 박 후보가 주창하고 있는 경제민주화의 상징성을 갖고 있는 인물로 그의 영입은 당초 '신의 한수'로 평가됐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이 박 후보와 엇박자 행보를 걷자 선거캠프가 통째로 술렁거리는 모양새다. 최근 박 후보와 김 위원장의 갈등이 심화된 것은 순환출자 등 재벌 개혁의 속도와 방향을 둘러 싼 이견 때문이다.


당내에선 자신의 고집만 내세우는 김 위원장을 향한 비판도 날로 거세지고 있다. 야권에선 이 틈을 타 박 후보의 경제민주화 공약이 모두 거짓임이 드러났다며 연일 공세를 펼치고 있다.

김 위원장은 특히 이 의원과는 달리 대선캠프에 직접 참여하고 있으며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이라는 주요직책까지 맡고 있다. 때문에 박 후보 진영에서는 김 위원장이 책임감을 갖고 캠프 내에서 헌신해주길 기대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박 후보가 과거사 논란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에도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와의 갈등으로 당무를 거부하는 등 대선판도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주장만 내세워 박 후보를 난감하게 만들고 있다.

김 위원장은 과거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근무할 때부터 '고집불통'이라는 평을 들었다. 그는  지난 총선 때도 수차례 당무를 거부하며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켜줄 것을 요구한 바 있다.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자신의 정책을 100% 실현시키고 싶으면 본인이 직접 후보로 나와야지 이건 월권이 아니냐"며 "김 위원장은 박 후보의 대선승리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이대로라면 박 후보에게 방해만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정치권에선 박 후보와 김 위원장의 결별 가능성이 꾸준히 거론되고 있지만 두 사람의 위험한 동거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물론 이 두 사람 외에도 지금까지의 대선정국에서 박 후보의 발목을 잡아온 타칭 내부의 적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공천헌금 사태로 박 후보를 궁지로 몰아넣었었던 현영희 의원이 그랬고,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의 불출마를 종용하며 협박했던 정준길 전 공보위원도 있었다. 새누리당 공동대변인 내정 첫날 기자들과 저녁식사 자리에서 욕설을 해 물의를 일으켰던 김재원 의원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내부의 적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어디까지나 타칭 내부의 적들이었다. 정작 박 후보는 이들을 내부의 적으로 보지 않았다. 사태가 진정된 후 박 후보가 여론의 비난을 감수하고 정준길 위원과 김재원 의원을 다시 캠프에 받아들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들과 이재오 의원, 김종인 위원장의 차이점은 바로 '고의성'이다. 비록 결과적으로는 그들이 박 후보의 발목을 잡긴 했지만 고의성은 없었다. 때문에 그 영향도 일회성에 그쳤다. 하지만 이 의원과 김 위원장은 고의성이 다분하다는 것이 문제다. 앞으로의 대선과정에서도 얼마든지 박 후보의 발목을 집요하게 잡고 늘어질 가능성이 큰 게 이들이다.

뼈아픈 내부의 적
대선행보 걸림돌

게다가 더 큰 문제는 내부의 적의 비판은 박 후보에게 더욱 뼈아프게 다가온다는 사실이다. 한 정치전문가는 "같은 상황이라도 야권의 인사가 비판을 하면 사람들은 객관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는 반면, 내부의 비판은 아무래도 근거가 있지 않겠냐는 생각을 한다"며 "일례로 박 후보의 정치쇄신안에 대해 야권에서도 비판을 했지만 각종 언론에선 이 의원의 비판에 더 무게를 두고 '당내 인사인 이 의원조차 박 후보의 쇄신안에 대해 비판을 했다'는 식으로 기사가 났다"고 설명했다.

또한 내부의 적으로부터의 공격은 자칫 외부에는 집안싸움으로 비쳐져 외연확대는 물론이고 전통적인 지지층 결집에도 큰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한편 그동안의 대선정국에서 문제를 일으킨 측근들은 가차 없이 내치기로 유명한 박 후보지만 이들을 내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박 후보가 이들을 내칠 경우 얻는 것보단 잃는 것이 더 많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이들을 내치기엔 명분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지만 새누리당이 대선을 적극적으로 돕지 않는 의원들까지도 제재하겠다고 나선 마당에 심지어 대선을 방해하고 있는 이들을 내치지 못할 이유는 없다.

내부의 적에 발목 잡힌 박근혜 '이를 어쩌나?'
딴지 걸고 얻는 것은 무엇? 노림수 분석 분주


일단 이 의원은 친이계의 수장으로 평가받는 거물급 인사다.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지만 당내 영향력도 여전하다. 이러한 이 의원을 내칠 경우 박 후보가 내세워온 대통합은커녕 당내 갈등이 불거져 나올 수도 있다.

김 위원장의 경우는 경제민주화의 상징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사퇴할 경우 박 후보가 중도층 공략을 위해 공을 들인 경제민주화 이슈는 물거품이 되고 만다. 박 후보가 속앓이를 하면서도 이들의 행동을 그저 지켜보고 있는 이유다.

이들이 밖으로 내쳐질 경우 외곽에서 박 후보를 향해 엄청난 공세를 펼쳐 올 것이 분명한데 차라리 내부에 두고 '관리'하는 편이 낫다는 분석도 있다. 그렇다면 내부에서 박 후보를 공격하고 있는 이들의 노림수는 무엇일까?

이 의원의 경우는 지난 14일 "박 후보가 분권형 개헌을 받아들이면 도울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분권형 개헌은 대통령과 총리가 권력을 나눠 행사하는 것으로 대통령은 국가수반으로서 국방·외교·통일을, 총리는 국내 행정 전반을 책임진다는 게 골자다. 따라서 정치권에선 이 의원이 분권형 개헌 후 총리직을 원하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일각에선 이 의원의 평소 성격이 워낙 불같은 면이 있기 때문에 경선룰을 끝까지 거부했던 박 후보에 대해 단순히 '몽니'를 부리는 것이란 분석도 있지만 가능성은 낮다.

원하는 것은 무엇?
승부 가를 분수령

김 위원장의 경우는 좀 더 복잡하다. 김 위원장이 정말 순수하게 자신의 경제민주화 정책을 반영시키기 위해 박 후보와 대립각을 세우는 것인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이들이 많다. 결국에는 두 사람 모두 자신의 가치를 상승시키기 위한 계산된 전략이 아니겠냐는 해석이다.


어느새 대선은 3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박 후보가 내부의 적을 잘 다독여 끌어안을 수 있을까? 이는 이번 대선의 승부를 가를 또 하나의 분수령이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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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