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대선주자 3인 현미경 검증 (23)공약해부-③교육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2.11.16 17:54:03
  • 댓글 0개

국가의 백년대계 짊어질 아이들의 밝은 미소 되찾아 주세요

[일요시사=정치팀] 오는 12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여야의 대선주자들이 치열한 대권레이스를 벌이고 있다. 상대를 이겨야 웃을 수 있는 레이스에서 최후에 웃게 될 자는 누가 될 것인지에 벌써부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여야 각 정당의 경선 이전부터 예비대선주자들을 검증해 온 <일요시사>는 새누리당의 대통령후보로 확정된 박근혜 후보와 야권후보단일화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문재인(민주통합당)-안철수(무소속) 후보의 면면을 세세히 검증 중이다. 이번 호에서는 스물세 번째 순서로 그들의 '교육 정책'을 살펴봤다.

한 나라의 현재를 알고 싶으면 시장으로 가고, 미래를 알고 싶다면 학교로 가보라는 말이 있다. 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한 말이다. 이처럼 교육의 중요성은 몇 번을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교육정책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큰 변동을 겪으며 국민들을 혼란스럽게 했다. 백년지대계라는 교육은 5년지대계, 심지어는 1년지대계로 전락한지 이미 오래다. 이제는 바꿔야 한다. 유권자들이 대선주자들의 교육정책에 귀를 기울여야만 하는 이유다.

박근혜 <경쟁축소와 기회확대>
"꿈과 끼를 끌어내는 행복교육 만들기"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는 현재 우리나라 교육시스템에 대해 "지나친 경쟁과 입시위주로 변질되어 학생은 성적, 학부모는 사교육비, 교사는 교권 때문에 불행해 하고 이에 더해 학교폭력으로 더 힘들어 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로 인해 교육이 오히려 계층 이동의 기회를 막고 있으며 또한 100세 시대를 준비하는 평생교육시스템도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소질 찾는 교육

따라서 박 후보는 교육 정책의 핵심으로 경쟁축소와 기회확대를 꼽고 있다. 특히 학벌, 스펙에 매달리는 교육에서 벗어나 개인의 능력과 소질에 맞는 교육을 실시한다는 계획이다.


박 후보는 대입제도에 대해 "3000개나 넘는 복잡한 대학입학 전형 수를 대폭 줄여 수시는 학생부 위주, 정시는 수능 위주로 치르도록 하겠다"며 "수시에서 수능등급 자격 요건을 두지 않도록 대학을 설득하겠다"고 밝혔다. 입시제도를 단순화함으로써 대입부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박 후보 측은 "기본적으로 입시 자체가 단순화돼야 한다는 취지에서 점차 논술 의존도를 줄여나갈 것"이라며 "논술이 유발하는 사교육비 문제도 제거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다른 입시제도는 "큰 틀에서 (현행) 골격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또 박 후보는 "대학 입시제도를 자주 바꾸면 학부모, 학생들이 혼란스럽고 힘들어진다"며 '입시 3년 예고제'의 법제화도 공언했다. 그는 "주요 대입전형계획을 변경할 때, 3년 전에는 미리 예고하도록 의무화시키겠다"고 말했다.

한편 박 후보의 교육공약 슬로건은 '꿈과 끼를 끌어내는 행복교육 만들기'다. 박 후보는 이를 위한 4가지 실천과제와 행복한 교육을 만들기 8대 약속을 제시했다. 주요내용은 ▲입시위주의 교육을 탈피하여 소질과 끼를 개발할 수 있는 교육 ▲누구에게나 공평한 기회가 주어지는 교육 ▲경쟁력을 높이는 교육 ▲배우고 싶은 것을 언제든지 배울 수 있는 교육 등 4가지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다시 8가지를 약속했다. ▲학생들의 끼를 살리는 교육 ▲교육행정지원 인력확보 ▲대입부담 완화와 안정적인 입시제도 ▲교육비경감 ▲대학의 다양화 및 취업시스템의 확충 ▲학벌타파를 통한 능력사회 구현 ▲직업교육 강화를 통한 산업별 전문 인재양성 ▲100세 시대를 대비한 평생교육 시스템의 구축이다.

평생교육 시스템

이 밖에도 박 후보는 다양한 교육복지 정책을 내놨다. 우선 무상 의무교육은 고등학교까지 확대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교육기본법을 개정하겠다고 약속했다. 고교 무상의무교육은 새누리당의 총선 공약이기도 하다. 한꺼번에 재원 조달이 어려운 만큼 차상위 계층을 시작으로 매년 25%씩 확대하면 5년내 10조원 정도의 재원으로 달성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또 저소득층 학생에게는 대학등록금이 실질적으로 무료가 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덧붙여 박 후보는 효과적인 교육개혁을 위해 '국가미래교육위원회'라는 이름의 범정부적·초당적으로 교육정책을 책임질 별도 위원회도 신설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도입 후 지속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학업성취도 평가(일제고사)에 대해서는 "자기 (성적의) 위치를 알아야 하지 않느냐"고 사실상 찬성의 뜻을 내비쳤다. 전문가들은 "박 후보가 지나친 경쟁과 입시위주의 교육을 문제로 지적하면서도 그 근본 문제인 학업성취도 평가에 대해서는 찬성의 입장을 밝혀 박 후보 표 교육 공약의 진정성이 의심된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사교육 근절>
"행복한 교육, 즐거운 학교"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는 교육정책의 가장 우선적인 목표로 과열된 사교육 경쟁을 잡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문 후보는 고등학교 서열화를 사교육 열풍의 주원인으로 보고 과학고를 제외한 외국어고와 국제고, 자사고(자립형사립고등학교)를 단계적으로 일반고로 전환한다는 계획이다.

대입 단순화

문 후보는 "특목고가 설립 취지에서 어긋나 입시 명문고로 변질됐다"며 "이들을 단계적으로 일반고로 전환하고 대학입학 전형에서도 일반고를 차별하는 소위 고교등급제를 허용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대입 제도는 수능과 내신, 특기적성, 기회균형 선발 등 4가지로 단순화하고 입학사정관 전형은 기회균형 선발에만 적용하겠다고 약속했다. 장기적으로는 수능을 자격고사화 하고 내신중심 선발을 정착시킬 방침이다. 사교육을 예방하고 교육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수능, 논술 등은 고교 교육과정 범위 안에서만 출제하도록 한다는 것.

지나치게 높은 영어 '스펙' 요구의 폐해에 대해서도 바로잡는다는 계획이다. 문 후보는 "심지어는 외국에서 생활하다 온 학생들마저 영어 사교육을 받아야 하는 실정"이라며 "과도하게 부풀려진 영어 사교육의 폐해를 바로 잡겠다"고 말했다.

입학사정관제 전형에 대해서는 전면적인 감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다양한 적성과 재능을 가진 학생을 선발하기 위한 도입 취지와 달리 온갖 의혹과 우려를 낳고 있는 부분을 해소하겠다는 취지다. 대학 입시의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영국의 '대학입학지원처'와 같은 기구를 상설화해 점진적 개선이 가능한 입시제도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문 후보는 이와 함께 교육복지의 일환으로 "전 국민의 출발선을 같게 하겠다"며 0~5세 무상보육·교육을 실현하고, 취학 전 1년의 유치원 과정을 의무교육에 편입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문 후보는 학교가 이제 단순하게 지식을 전수하는 곳을 넘어서 돌봄 기능을 실질적으로 갖추도록 통영 한아름양의 이름을 딴 '한아름법'을 제정하겠다는 계획도 마련했다.

아울러 학교와 지역사회가 함께 교육과 돌봄을 책임지는 에듀케어시스템도 구축한다. 학교 차원에서는 모든 학교에 전문상담교사를 배치하고 각 시·도에 부적응학생을 위한 대안교육기관도 마련한다. 이와 함께 '힐링교육위원회'를 설치해 마을 전체가 함께 교육공동체로 발전 할 수 있도록 지원할 방침이다. 문 후보는 또 내년 국공립대부터 시작해 2014년에는 사립대까지 반값등록금을 실현하겠다고 약속했다.

반값 등록금

한편 문 후보가 내세운 교육정책의 기본 방향은 '행복한 교육, 즐거운 학교'다. 주요내용으로는 ▲유아 및 초등단계의 과도한 학습 부담을 줄이기 위한 방과 후 교육의 활성화 ▲산업혁신을 위한 평생학습체제의 구축 ▲행복한 중2프로젝트를 통한 진로적성교육 강화 및 아일랜드식 전환학년제의 도입 ▲공기업과 공공기관의 지방대학 채용할당제 ▲학력 블라인드제 실시 등이다. 이밖에도 문 후보는 정치적 중립이 보장되는 '국가교육위원회'를 설치하고 고등교육재정을 GDP 대비 1%로 확대하는 공약을 제시했다.


안철수 <교육격차 해소>
"사회구조 개혁이 최우선"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는 우리나라 교육문제에 대해 "(다들) 공교육이 죽었다고 말한다"며 "사교육 시장이 활개를 치고 아이들은 수업시간에 잠을 자며 학부모들은 사교육 부담에 허리가 휜다"고 지적했다. 이어 "더 중요한 문제는 부모들이 희생하면 아이들이 좀 더 나은 미래를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희망을 가질 수 없는 계급사회가 되고 있다는 점"이라며 "교육복지와 교육정의를 바로 세워 천재 배출만이 아닌 대기만성형 인재를 기다리는 사회적 분위기와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기만성형 인재육성


이를 위해 안 후보가 내세운 교육정책의 골자는 교육격차의 해소와 창의성을 바탕으로 한 교육체제 확립이다. 이를 위해 안 후보는 지역거점대학과 특성화혁신대학을 집중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지역거점대학 육성 방안은 지역별 최우수 대학을 하나씩 선정해 국내 최우수 대학수준으로 육성한다는 정책이다.

지역거점대학에는 국공립대 뿐 아니라 사립대학도 지정될 수 있다. '특성화 혁신대학'은 전국에서 30여개 정도 교육우수대학을 선정해 지역취업 및 창업과 연계하여 교육을 실시하도록 육성하고 이들을 연합체로 구성해 학생과 교수, 학점이 교류될 수 있도록 한다는 복안이다. 특성화 혁신대학과 지역거점대학의 차이점은 육성 수준이다. 포럼은 지역거점대학의 경우 서울대 수준으로 키우겠다는 구상을 내놓았다.

안 후보는 지역고용 할당제를 통해 공공기관에서부터 지역대학 졸업자들을 일정 비율 채용하는 방안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계층 간 교육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중산층 이하의 대학생들을 선발하여 차상위 계층 이하의 학생들을 가르치도록 하는 '튜터링 시스템'을 도입한다는 계획이다.

교육현장에서는 창의성에 초점을 맞췄다. 학생 스스로 과목을 선택하는 고교 학점제를 도입하고 사교육을 획기적으로 줄이기 위한 공교육 지원법을 마련하기로 했다. 외고와 국제고, 자립형사립고는 존속할 수 있지만 우선선발 방식을 없애고 대입 전형은 수능, 논술, 내신, 입학사정관 등 네 가지로 간소화할 방침이다.

한편 안 후보는 "교육은 사회구조의 종속변수라서 교육 자체를 개혁하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면서 "근본적인 사회구조 개혁이 전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공기업과 대기업의 지방이전 유도 ▲지역기업들의 지방대생 채용확대 ▲젊은이들의 창업활성화 등을 제시했다.

일제고사 대체


안 후보는 또 교육복지의 일환으로 2017년까지 전면 고교 무상교육과 모든 국·공·사립대에 반값등록금을 적용시키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비리가 있거나 부실한 사립대는 정부가 재정을 보조하되 운영을 책임지기로 했다. 또 안 후보는 일제고사 대신 국가수준 최소달성 목표기준을 설정하고 이에 도달했는지 만을 판단하는 '기초학력도달평가'를 정책으로 제시했다.

이 밖에도 안 후보는 일관된 교육정책의 실시를 위한 '교육개혁위원회'를 대통령 직속으로 두기로 했다. 위원회는 교원과 학부모, 학생과 관련 시민단체 인사 등으로 꾸려진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