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서관들이 털어놓은 국회의원들의 '횡포'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2.11.12 11:3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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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서 다르고 밖에서 다른 두 얼굴의 영감님

[일요시사=정치팀]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은 입법활동을 지원받기 위해 4급 보좌관 2인과 5급 비서관 2인, 6·7·9급 비서 각 1인, 그리고 2인의 인턴을 채용할 수 있다. 총 9명으로 구성된 이들 보좌진은 여의도 정치의 숨은 주역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늘 가슴 속에 사직서를 품고 산다고 한다. 밖에서는 늘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한 없이 좋은 사람이지만 의원실만 들어오면 180도 돌변하는 일부 의원들 때문이다. 안팎으로 '반전' 있는 영감님들의 횡포 속에 우는 비서진들의 애환을 <일요시사>가 파헤쳐봤다.

모 의원실의 A비서관은 자신들은 국회의원들을 '영감님'이라 부른다고 말했다. 영감이란 단어는 원래 지체 있는 사람을 높여 이르는 말이지만 비서관들 사이에선 속칭 '꼰대'라는 의미가 더 강하다고 부연설명 했다.

인권 사각지대

A비서관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전 "부모님한테는 이런 이야기 절대 못한다. 그래도 국회에서 공무원으로 일한다고 자랑스러워하시는데, 사실 별정직 파리 목숨"이라며 "아마 내가 국회에서 의원 가방 들어주고 커피심부름에 구두 닦기까지 뒤치다꺼리만 하고 다닌다는 거 알면 부모님이 쓰러지실 것"이라고 자조 섞인 농담을 했다.

그들이 털어 놓은 이야기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일부 의원들은 툭하면 사소한 이유로 보좌진들에게 화를 내거나 차량에 탈 때마다 뒤에 앉아서 수행비서들의 운전에 대해 온갖 참견을 하며 때로는 욕설도 서슴지 않는다고 한다.

게다가 국회의원 보좌진들은 늘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한 비서관은 "국회에서 일한다고 하면 다들 좋겠다고 하시는데 사실은 3D업종"이라며 "밤샘 근무도 잦고 주말은 물론이고 휴가 때나 심지어 새벽 1시가 넘은 시각에도 시도 때도 없이 전화가 온다. 보좌진들은 항시 의원의 1분 대기조"라고 한탄했다.


또 다른 비서관은 "지난 총선 때 토론회에서 모 진보정당의 보좌진을 만나서 얘기하는데 그 정당 공약이 8시간 노동시간준수랑 최저임금 대폭 상향이었다. 그래서 '거기는 처우가 어떠냐'고 물으니까 하루에 18시간씩 일한다고 하더라. 한마디로 기가 막혔다"고 말했다.

비서관들은 "그런 의원들이 정작 국회에선 비정규직 처우개선이나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내고 목소리 높이는 것을 보니 씁쓸하다"고 토로했다.

의원실의 과도한 업무 탓에 연인과 헤어진 비서관도 있었다. 이 비서관은 "의원실에 들어오면서 자연스럽게 연인과 헤어지게 됐다"며 "도저히 만날 시간이 안났다. 주말에도 의원실의 스케줄이 잡혀있는 경우가 많고 스케줄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 마음 편하게 연인과 약속도 잡을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의원들이 사적인 일로 보좌진들을 동원하는 일도 횡행했다. 어떤 비서관은 의원 가족들이 여름휴가를 간 사이 애완견의 사료를 대신 챙기는 일이나 의원이 이사할 때 이삿짐을 나르고 집을 청소한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 18대 국회에서는 심지어 자녀의 과외수업을 비서에게 맡기는 국회의원도 있었다고 한다.

"저녁 있는 삶은커녕 주말도 없는 삶"
공무원이라 좋겠다고? 별정직 파리목숨
 

모든 비서관들이 공감한 내용은 의원의 자녀가 임기 중 결혼을 하게 되는 경우였다. 한 비서관은 "청첩장 발송은 기본이고 식장 가서 식권체크에 축의금을 정산하고, 오만 잡일은 비서가 도맡아 한다"며 "결혼을 앞둔 자녀가 있는 의원실엔 두 번 다시 들어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특히 대선이 다가옴에 따라 비서관들의 볼멘소리는 더욱 커져가고 있다. 한 비서관은 "각 선거캠프들이 자원봉사란 명목아래 엄청난 노동착취를 자행하고 있다"며 "제발 일주일에 하루라도 제대로 쉬는 후보일정을 법으로 강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대선정국에 들어서니 의원들이 각종 행사에 자주 참여하고 대선캠프에 시도 때도 없이 드나들면서 힘들어진 건 정작 보좌진들이다. 의원들은 일정을 마친 후 퇴근하면 그만이지만 보좌진들은 일과시간에는 의원들을 수행하느라 해야 할 일들을 마치지 못하고 매일같이 야근을 하고 있다는 불만이다.

한 비서관은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대선 슬로건이 나왔을 때 많은 비서관들이 무척 공감했다"며 "우리는 저녁이 있는 삶은커녕 주말도 없는 삶을 살고 있다"고 말했다.

의원들의 자질부족을 질타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모 의원실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는 B씨는 "의원실에 들어온 후 사람이 겉으로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나름 유명한 의원이라 언론을 통해 자주 봤었는데 실제 모습은 전혀 달랐다"며 "국감 때 보좌진들이 밤새 작성한 질의서를 본인이 제대로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 실수해놓고는 오히려 보좌진들에게 화를 내기도 했다"고 말했다.

B씨는 "여기에 와서 보니 실제로 정책을 개발하고 지역 민원을 해결하는 등 의원실을 꾸려가는 건 보좌진들이었다"며 "정작 의원은 밖으로만 도는데 언론에선 의원만 부각된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의원들의 횡포 때문인지 일부 비서관들은 다음 총선 때는 현재 몸담고 있는 의원의 낙선을 위해 당사 앞에서 촛불시위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라며 억울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한편 이러한 문제가 불거지는 가장 큰 이유는 국회의원 보좌진들이 모두 별정직 공무원이라는 데 있다. 한 비서관은 "의원이 아무리 부당한 지시를 하거나 비서들을 하인 취급해도 직언을 하려면 잘릴 각오를 해야 한다. 의원의 말 한마디면 해고되는 보좌진들은 더러우면 그만두는 수밖에 없다"고 한탄했다. 또 다른 비서관은 "총각들은 때려치울 용기라도 있지만 가정이 있는 사람들은 때려치우고 싶어도 당장 생계가 걱정 된다"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적반하장 의원

그러나 동정론도 있었다. 한 비서관은 "국회의원도 일종의 감정 노동자들 아니냐. 옆에서 지켜보면 지역주민들에게 이리 저리 치이고 당 내에서도 복잡한 역학관계에 의해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러니 어느 정도 이해는 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국민들이 국회의원들을 나쁘게만 볼까 걱정 된다"면서 "국회의원이 300명이다. 당연히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는 법이다. 의원 중에는 정말 능력 있고 보좌진들에게 잘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덧붙였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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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구 친윤(친 윤석열)계 핵심으로 분류됐던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장 대표는 흔들리면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이들의 공개 갈등엔 ‘옹립의 정치학’이 숨어 있다. 특정 세력이 정변을 일으키거나 지도자 교체를 시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지도자 옹립이다. 그 과정에서 정치적 정당성·생존 본능이 적절하게 조화해야 한다. 그래서 복잡한 조건이 가미된다. 지도자 옹립을 위한 조건으로는 대체로 ▲적절한 상징성 ▲새 기득권이 될 주도 세력과의 조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 등을 들 수 있다. 아무나 못 갖는 지도자 조건 이 중 가장 어려운 숙제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라고 할 수 있다. 새 지도자가 자신의 정치적 의지를 강하게 밀어붙이면, 새 기득권 세력과의 충돌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새 지도자는 자신의 생존을 도모해야 한다. 생존 본능은 강한 권력 의지로 연결된다. 자신만의 새로운 비전을 실천하려는 정치적 의지가 강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자신을 옹립한 주도 세력과 마찰한 사례는 역사적으로 빈번하다. 왕은 왕권을 강화하려고 했고, 귀족은 이를 막으려고 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왕과 귀족은 끊임없이 정치적 다툼을 벌였다. 이 때문에 많은 왕이 교체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옹립된 지도자는 대체로 권위가 약하다. 옹립된 지도자는 지배 질서가 규정한 정통성이 약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옹립되는 과정 자체가 지도자로선 주도 세력에게 빚을 진 격이 되는 사례도 많다. 조선 태종은 정변을 일으켜 아버지를 몰아낸 후 즉위했다. 태종은 태조의 다섯 번째 아들이었다. 적장자 승계를 중시하는 유교 질서에선 도저히 후계자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태조는 막내아들을 세자로 책봉하는 악수를 뒀고, 사병을 혁파하려고 했다. 새 질서를 왕이 직접 부정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기득권 세력의 기반을 침범하려고 한 것이다. 태종은 적장자 대접을 받던 형 정종을 세자·왕으로 옹립한 후 형의 양자로서 왕위를 승계해 질서를 지키는 모양새를 갖췄다. 제1차 왕자의 난에서 주축은 주도 세력이 동원한 사병이었는데, 태종은 이들에게 빚을 진 셈이다. 하지만 그는 주도 세력 중 상당수를 정계에서 일시 퇴출시킨 후 사병을 혁파했다. 자신과 왕조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안전판을 확실하게 확보한 것이다. 경제적 이권까지 거둬들이려고 해선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 태종은 공신들이 저지르는 각종 비행을 적당한 선에서 눈감아줬다. 태종의 킹메이커 하륜은 도성 안에 조성된 신덕왕후의 능이 이장되자, 주변의 좋은 땅을 선점하기 위해 사위들을 동원했다. 하륜에겐 지금도 유능한 신하·부정부패의 상징이란 평가가 함께 따라다닌다. 조선 중종도 형 연산군 폐위 이후 옹립된 임금이었다. 엉겁결에 왕위에 올라 큰 빚을 졌기 때문에 중종은 공신들을 통제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핵심 공신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병사했다. 이후 중종은 조광조·김안로 등 대리인을 내세웠다가 토사구팽하는 정치술을 반복했다. 너무 유능해도, 너무 무능해도 안 된다 출마설 도는 주호영·윤한홍의 장 직격 조광조 일파는 중종이 한밤중에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숙청됐다. 김안로는 아들의 초례가 예정된 날 체포됐다. 주도 세력으로선 왕이 너무 유능하거나 정치에 밝으면 곤란하다. 그렇다고 너무 무능하거나 막 나가도 안 된다. 지나치게 막 나가서 폐위된 대표적인 왕은 고려 충혜왕이었다. 충혜왕은 아버지 충숙왕이 양위해서 즉위했다. 당시 고려 왕은 원나라 사신이 하루아침에 폐위해 귀양을 보낼 수 있을 정도로 권위가 없었다. 고려 친원파의 권력은 왕보다 더 강했다. 그리고 고려엔 원나라 제2황후 기황후의 오빠 기철이 있었다. 고려 왕은 정상적으로 즉위하더라도 원나라·친원파가 사실상 인준해야 왕 노릇을 할 수 있었다. 즉위하는 임금마다 옹립된 지도자나 다름없었다. 충혜왕은 즉위 후 아무나 성폭행하는 기행을 저질렀다. 성폭행 대상 중엔 서모 경화공주도 있었다. 이 사실은 원나라 사신에게도 알려졌다. 결국 충혜왕은 폐위돼 귀양 가던 중 사망했다. 한편으로 충혜왕은 폭력배들을 자신의 측근 세력으로 양성한 후 권문세족이 독점하던 유통구조 개선을 통해 재정을 확충하려고 했다. 아울러 권문세족의 사유지를 혁파하려 하는 등 이들의 경제기반을 뒤흔들려고 했다. 충혜왕이 폐위된 결정적인 계기는 기철의 건의였다. 원나라는 기철의 건의를 받아들여 충혜왕을 폐위했다. 충혜왕은 폐위되던 순간 사신으로부터 발길질을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주도했던 12·3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 대부분은 소장파 성향의 초·재선 의원들이었다. 이들은 지난 1년 동안 꾸준히 당에 비상계엄 관련 사과와 당의 혁신을 요구했기 때문에 딱히 특별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원조 친윤’ 중 1명으로 평가받는 국민의힘 3선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에게 비상계엄 관련 사과를 요구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윤 의원은 지난 5일 진행된 국민의힘 ‘이재명정권 6개월 국정평가 회의’ 도중 장 대표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인연과 골수 지지층의 손가락질을 다 벗어던지고, 계엄 굴레에서 벗어나자”고 요구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비상계엄이 잘못됐단 인식을 아직도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계엄을 벗어던지고, 국민께 어이없는 판단의 부끄러움을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앞에서 사과 요구 이는 장 대표가 지난 3일 비상계엄에 대해 사과하지 않고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려던 계엄이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한 반박이었다. 장 대표는 이날 윤 의원의 비판을 들은 후 고개만 살짝 숙인 채 굳은 표정을 유지했다. 국민의힘 6선 주호영 국회부의장도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은 지난 8일 대구 지역 언론인과의 정책토론회 중 장 대표를 일컬어 “자기 편을 단결시키는 과정을 밟다가 중도가 도망간다면 잘못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장 대표는 ‘12월3일까진 지켜봐 달라’고 말했고, 그 이후엔 민심에 따르는 조치가 있을 거라고 기대했지만, 그런 말을 하지 않아서 당내 반발이 많다”고 강조했다. 주 부의장은 “윤 전 대통령은 폭정을 거듭하다가 탄핵당했다”며 “비상계엄도 김건희 여사 특검을 막으려던 것이 아닌가 짐작만 할 뿐”이라는 등 윤 전 대통령도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과 윤 의원은 광역자치단체장 선거 출마 가능성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주 부의장은 이날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 “준비는 많이 해왔고, 이른 시일 안에 의견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윤 의원은 지난 2021년 경남도지사 출마 의사를 내비쳤다가 입장을 선회했던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지난 2월 공개한 명태균씨의 전화 통화 녹취엔 “윤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윤 의원의 경남도지사 출마를 막았다”는 취지의 대화가 공개됐다. 지방선거를 약 6개월 앞두고 있는 시점이었다. 주 부의장처럼 출마 가능성을 암시한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지방선거는 국회의원에게는 매우 중요한 정치적 이벤트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두는 방법엔 ▲지역구 내 지방선거 공천 ▲중앙정치에 지역 이해관계 반영 등이 있다. 지방선거에선 국회의원이 공천·조직 동원 등에 행사하는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민주당 이상헌 의원은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현재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박순자 전 의원도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지난 3월 징역형을 확정받았다. 힘 못 쓰는 2가지 이유 국민의힘 대표를 지냈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지난 2월 <일요시사>와 만나 “국민의힘은 김종인 선거대책위원장·이준석 대표 체제 외엔 선거에서 이겨본 적이 없다”고 단언했다. 실제로 국민의힘은 지난 2016년 이후 지난 2022년 대선·지방선거 외엔 참패를 거듭했다. 국민의힘이 선거에서 힘을 못 쓰는 이유로는 크게 2가지가 거론된다. 하나는 자체적으로 선거 후보를 양성하는 게 아니라, 선거가 임박해 외부 명망가를 데려와 주요 선거 후보로 옹립하는 특성이다. 다른 하나는 영남·강원 등 핵심 텃밭에 자리 잡아 중앙정치보다 지역구 기반 다지기에 집중하는 정치인 집단이다. 세간에선 이들을 일명 ‘언더 찐윤’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선거 참패가 이어지면, 중앙정치에 끼칠 수 있는 영향력도 줄어든다. 영향력이 줄면, 지역의 이익을 중앙정치에 반영하기 어렵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둘 방법·영향력을 모두 잃는다는 것은 언더 찐윤 의원들에게 매우 치명적이다. 아무리 중앙정치·전국 단위 선거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정당이 정권 획득 가능성이 아예 없는 수준으로 추락하는 것은 매우 곤란하다. 그 정당에 소속된 국회의원과 이해관계를 교환해야 할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21세기 이후 국민의힘에서 배출한 대선후보는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 ▲이명박·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 ▲홍준표 전 대구시장·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 등이다. 이들의 대체적인 공통점은 ▲전국적 인지도 ▲정치적 상징성 ▲낮은 당 장악력 등이다. 대선 출마 당시 “당 장악력이 낮다”는 평가를 받지 않았던 대선후보는 이 전 총재·박 전 대통령밖에 없었다. “당 장악력이 낮다”는 명제는 국민의힘 친윤계 의원들에게 매우 중요했다. 당 장악력이 높은 대통령·대권주자는 의원들과 굳이 이익을 주고받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은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대표 등 수도권에 기반해 중도 공략 의지가 강한 정치인과의 불화가 잦다. 이들과 이해관계·성향·기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른 것이 많아서 당권을 다투거나 알력이 있을 가능성도 큰데, 결국 화합하기 어렵다. 살기 위해 충돌하는 장 VS 친윤 “우리끼리 총구 안 돼” 의견 고수 언더 찐윤 의원들이 언론 노출을 꺼리는 성향도 ‘당 장악력이 낮은 적절한 대권주자’를 선호하는 현상과 맞물린다. 언더 찐윤의 관점으로 보자면, 윤 전 대통령은 자멸해서 사라졌다. 한 전 대표·안 의원은 수도권 엘리트 성향이 강하다. 지난 8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했던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은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을 청산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런 상황에서 두드러진 사람이 바로 장 대표였다. 장 대표는 정치 경력이 짧으면서도 한 전 대표와 결별한 이력이 있다. 지난 2월엔 백봉신사상을 수상할 정도로 신사적 이미지도 강했다. 국민의힘 내 강성 보수 성향 당원들은 장 대표를 선택했다. 이후 장 대표는 범보수 대권주자로 주목받았다. 코리아정보리서치가 지난 6일부터 이틀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범보수 차기 대선후보 적합도 여론조사에서도 21.3%의 지지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겐 정치적 기반이 없다. 대권주자에게 필요한 것은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다. 대선에 출마하지 않더라도,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 없으면 정치 생명을 길게 유지할 수 없다. 장 대표는 장외집회 개최 위주로 정치활동을 이어갔다. 장외집회에선 이재명 대통령을 강하게 비난하는 강성 발언을 주로 내놨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 장외집회에서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불법이었고, 국민의힘은 그 불법을 방치했다”고 주장했다가 강경 보수 성향 당원의 비난을 받았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김민수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을 강경 보수의 길로 이끄는 ‘투톱’이다. 그런데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둔 시점이기 때문에 둘 사이에 충돌이 일어난다. 지방선거는 이들의 정치적 삶과 죽음을 좌우할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의원들이 충돌하는 결정적인 지점은 살고자 하는 의지다. 윤 의원이 장 대표를 비판했다는 사실은 “국민의힘 구 친윤계가 장 대표를 통제불능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으로 연결된다. 강경 보수 성향이 짙어지면, 선거의 캐스팅보트로 인식되는 중도층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 친윤계 의원들에겐 당과 개인의 이익이 모두 줄어드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조 의원은 지난 8월 <일요시사>와 만나 “강경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선택지는 어차피 국민의힘밖에 없다”면서 중도 공략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것이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친윤계 의원들이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한 이유와 맞물릴 가능성이 크다. 장 대표의 실질적 임기는 지방선거 결과에 달렸다. 따라서 장 대표에게 주어진 시간은 6개월 정도다. 장 대표는 이 안에 강경 보수 세력을 자신의 독자적인 기반으로 삼으려 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옹립하는 세력과 옹립되는 수장은 각자의 삶과 죽음이 걸려 있어 긴장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장 대표에 대해선 “국민의힘, 나아가 보수 진영의 진정한 1인자가 될 만한 기반이 부족하다”는 다수의 분석이 나온다. 장 대표와 친윤계의 이해관계는 여기서 엇갈릴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남은 6개월 빠듯한 시간 새누리당 정옥임 전 의원은 지난 9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신중한 사람이지만 현실감각이 굉장히 빠르다”며 “장 대표는 화장을 지운 여자의 얼굴처럼 다 보여줘서 장 대표 체제 종언은 이제 뚜껑만 열리면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게 남은 시간은 불과 6개월이다. 부족한 것은 결국 시간이다. 하지만 장 대표는 윤 의원·주 부의장의 비판에 “우리끼리 총구를 겨눠선 안 된다”며 “싸워야 할 대상은 이재명 독재정권”이라고 반박했다. 장 대표는 흔들리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흔들리지 않고 있다. 장 대표와 구 친윤계는 과연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