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대선주자 3인 현미경 검증 (22)공약해부-②일자리 정책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2.11.09 23:5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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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백수 서러움 달래줄 분! '거기 누구 없소'

[일요시사=정치팀] 오는 12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여야의 대선주자들이 치열한 대권레이스를 벌이고 있다. 상대를 이겨야 웃을 수 있는 레이스에서 최후에 웃게 될 자는 누가 될 것인지에 벌써부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여야 각 정당의 경선 이전부터 대선예비주자들을 검증해 온 <일요시사>는 새누리당의 대통령후보로 확정된 박근혜 후보와 야권후보단일화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문재인(민주통합당)-안철수(무소속) 후보의 면면을 세세히 검증 중이다. 이번 호에서는 스물두 번째 순서로 그들의 '일자리 정책'을 살펴봤다.

일자리는 생계와 직결된 국민들의 가장 큰 관심사다. 역대 대선에서 각 후보들은 수많은 일자리 공약을 쏟아냈지만 임기 말 결과는 언제나 초라했다. 전문가들은 가장 중요하면서도 가장 지키기 어려운 공약이 바로 일자리 공약이라고 입을 모은다. 집권 전부터 치밀한 계획을 바탕으로 접근하지 않는다면 차기정부에서도 일자리 공약은 헛된 구호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때문에 유권자들은 대선주자들의 일자리 정책을 유심히 살펴보고 옥석을 가려내야만 한다.


박근혜 <창조경제론>
"성장률보다 고용률에 집중"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는 현재 우리나라가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이뤄내고 있음에도 많은 국민들이 일자리 문제로 고통 받고 있는 것은 '고용없는 성장'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박 후보는 "고용없는 성장을 넘어 일자리 창출이 중심인 새로운 성장 방식을 제시 하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이에 대한 해답으로 박 후보는 '창조경제를 통한 성장동력 확보와 일자리 창출'을 내세우고 있다.

새로운 성장 방식

박 후보는 기존의 경제 발전 방식이 추격형, 모방형, 경제성장률 지향, 양적 성장이었다면 앞으로는 상상력과 창의력,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경제운용으로 성장동력을 확보하고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 후보가 새로운 일자리, 새로운 성장기반을 만들겠다며 제시한 '창조경제론' 구현을 위한 7대 전략으로는 ▲과학기술과 IT(정보기술)를 활용한 새로운 일자리 창출 ▲소프트웨어 산업의 미래성장산업 육성 ▲정보개방·공유를 통한 창조정부 구현 ▲새로운 기업이 끊임없이 탄생하는 창업국가 건설 ▲스펙을 초월한 채용시스템 정착 ▲청년들이 글로벌시장에서 일자리를 찾는 'K-Move' ▲미래창조과학부 신설 등이 있다.


박 후보는 특히 "대학에 창업기지를 건설하고, 창업연구실을 운영하며 다양한 창업교육을 통해 청년창업가를 양성하겠다"며 청년 일자리 해소에 적극 나서겠다는 뜻을 밝혔다. 박 후보는 청년 일자리 창출과 관련해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 주는 부분, 취업을 지원하는 부분 등 크게 2가지 방향으로 생각 중"이라며 "우선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큰 관광, 소프트웨어, 문화 등 신성장동력을 발굴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스펙을 초월한 채용시스템 정착에 대해서는 "그 사람이 가진 열정, 잠재력 그리고 끼만으로도 취업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구직자들이 인재은행에 등록만 하면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해 자기 능력에 맞도록 지원하고 일자리와 연계하는 취업 지원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새롭게 신설하겠다고 공약한 미래창조과학부에 대해서는 "상상력과 창의성의 배양을 위해 우리 교육을 꿈과 끼를 키워주는 교육으로 바꾸겠다"며 "창의적 융합인재를 육성하고, 미래를 선도할 연구를 지원하며, 지식 생태계 구축 및 보호를 위한 법제도의 지원 등을 담당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박 후보의 창조경제론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바로 '스마트뉴딜'이다. 스마트는 정보 및 IT기술, 뉴딜은 내수활성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을 의미한다. 1930년대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이 대공황 극복을 위해 대규모 토목사업을 벌여 일자리를 만들었던 뉴딜 정책을 산업전반과 IT의 접목으로 응용한다는 구상이다. 일자리 창출의 신성장동력으로 정보기술과 과학기술을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스마트 뉴딜

박 후보 캠프는 스마트뉴딜 정책에 대해 "기존 제조업이 사양산업이고 중국 등과 비교해봤을 때 경쟁력이 낮다고 여겨지지만, 과학기술과 융합되면 부가가치가 상승해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보통신기술을 농어업에 적용해 고부가가치 농어업을 만들고, 제조업에 활용해 제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서비스업에 적용해 새로운 시장,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구상이다. 박 후보 캠프는 이를 위해 세계 최고수준의 기술과 인프라를 가지고 있는 정보통신기술을 산업 전반에 적용하고 소프트웨어 산업을 집중 육성해 성장동력과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밝혔다.

 

문재인 <만·나·바 일자리 혁명>
"일자리가 성장전략이자 복지정책"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는 출마선언 후 '일자리'가 가장 중요한 성장전략이자 복지정책이라며 일관되게 '일자리 혁명'을 강조해왔다. 선대위 내에서는 '일자리혁명위원회 위원장' 자리를 직접 맡아 챙기고 있을 정도다.

지난 9월16일 민주당 대선후보 수락연설에서도 "대통령에 당선되면 대통령 직속으로 국가일자리위원회를 설치해 직접 챙기고, 그 안에 청년일자리특별위원회를 두고 청년실업 문제를 챙기겠다"고 밝혔다. 그만큼 문 후보는 일자리 문제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문 후보의 일자리 정책은 '일자리 혁명으로 일하는 사람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것'으로 요약된다.  

행복한 근로자

문 후보는 현재 우리나라의 노동시장에 대해 "양극화, 활력 소진, 근로 빈곤, 악순환의 4대 함정에 빠졌다"고 분석하고 있다. 비정규직은 '절망 일자리', 청년은 '알바 일자리', 여성은 '불안 일자리', 노인은 '허드레 일자리'만 찾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덧붙여 문 후보는 "한국사회는 '고용없는 성장'과 '고용양극화'로 '1:9 격차사회'로 진입했다"며 특히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좋은 일자리는 줄고, 비정규직과 나쁜 일자리만 증가했다고 비판했다.

일자리 혁명을 이룩하기 위한 구체적인 목표로는 고용율을 선진국 수준인 70%로 달성해 중산층 비율을 80% 수준으로 복원시키는 것을 꼽았다. 이 과정에서 30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취임 후 신설될 국가일자리위원회를 통해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고, 좋은 일자리를 나누어 지키고, 나쁜 일자리를 좋은 일자리로 바꾸겠다는 주장이다.

문 후보는 자신의 일자리 정책에 '만·나·바'라는 이름까지 붙였다. 만·나·바는 '일자리를 (만)들고, (나)누고, 좋은 일자리로 (바)꾼다'는 의미다. 만·나·바 일자리 혁명의 이행절차는 크게 4가지로 ▲포용·창조·협력·생태의 4대 성장 전략으로 좋은 일자리 만들기 ▲좋은 일자리 나누기 ▲절망의 일자리를 희망의 일자리로 바꾸기 ▲든든한 일자리 지키기가 바로 그것이다.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우선 중소기업 육성과 사회공공서비스 인프라 구축, 마을기업,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지원을 대폭 확대하고 이와 함께 최첨단 기술에 기반한 산업과 지식기반 서비스 산업 육성, 중소·중견기업의 기술연구 역량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또 절망의 일자리를 희망의 일자리로 바꾸기 위한 방안으로는 '전 국민 고용평등법'을 제정해 전 산업 비정규직 비중 절반 이하로 감축, 근로기준법의 적용 확대와 적용 제외 축소, 최저임금을 전체 노동자 평균임금의 50% 이상으로 결정하기 등을 꼽았다. 좋은 일자리를 나누고 지키기 위해서는 실노동시간 단축과 교대제 개편, 청년고용의무할당제를 시행하고 법정 정년을 60세로 보장한다는 계획이다.

고용의 평등

이외에도 문 후보는 고용영향평가제도의 채택, 고용증진과 기업지원의 연계, 교육의료복지 사회서비스 일자리 창출, 공기업과 공무원의 지역우대 채용, 각종 정부 지원의 지방채용 연동제 확대 등을 일자리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마지막으로 일자리 혁명을 달성하기 위한 재원 조달방안에 대해서는 "일반회계와 기금을 활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안철수 <국민들의 일할 권리 보장>
"가장 다채로운 공약, 엇갈리는 평가"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의 일자리 정책 목표는 '일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일할 수 있는 경제를 실현하는 것'이다. 즉 국민의 일할 권리를 보장하겠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의사, 벤처기업 CEO, 교수 등 다양한 경력을 갖고 있는 안 후보는 출마선언 후 다른 후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다채로운 일자리 정책들을 쏟아냈다.


문재인 닮은 꼴

그가 최근까지 발표한 일자리 정책은 ▲청년고용특별조치 추진 ▲대통령 직속 일자리 국민합의 기구 설치 ▲고용평등기본법 제정(비정규직 남용방지) ▲대기업 고용관련 공시제도 실시 ▲노동시간 단축 일자리 나누기 ▲취약근로자 직업훈련 확대 ▲정년 60세 연장과 점진적 연령제한 폐지 추진 ▲사회통합 일자리 기금 조성 ▲직장 생활 균형을 위한 여성친화적 일자리 창출 ▲고령자 일자리 제공 등이다. 좀 더 세부적인 사항으로는 공공 부문부터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추진, 새로운 블루오션 개척을 통한 일자리 창출, 문화예술을 새로운 성장 동력원으로 육성, 벤처 생태계 정비를 통한 청년창업 활성화 등을 약속했다.

안 후보는 우리나라 일자리 부문의 문제점을 "고용없는 성장의 고착화와 비정규직 등 나쁜 일자리의 증가"라고 지적하고 "우선 공공부문의 2년 이상 계속되는 직무에 대해 정규직을 사용하겠다"며 "민간부문은 고용공시제를 통해 정규직화를 유도하게 하겠다"고 밝혔다. 또 "고성장 중소기업과 중견기업에게 고용보조금으로 추가 고용 1인당 연간 1000만원 이상을 지원하겠다"는 공약도 발표했다.

한편 안 후보의 일자리 공약은 여러 부분에서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의 공약과 유사하다. 안 후보도 문 후보와 마찬가지로 일자리 정책의 주요 과제로 일자리 나누기를 꼽고 있다. 현재 OECD 최장인 노동시간을 단축한다는 점에서는 유사하지만 실행방안은 노사정 간 대타협이다. 기업은 노동시간을 줄여 신규인력을 고용하고 노조와 근로자는 노동시간 단축으로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대신 임금인상은 자제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사회보험료 및 세금감면으로 이를 지원한다.

임금피크제와 연계한 정년 60세 연장도 문 후보와 비슷하지만 안 후보는 한발 더 나아가 고용에 있어서는 아예 연령 제한을 폐지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함께 보육·교육·간호·복지·환경보호 등 대인서비스에 고령자를 대거 배치해 일할 능력만 있다면 나이 제한 없이 일할 기회를 주겠다는 게 안 후보의 구상이다.

이외에도 안 후보는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5년 한시 청년고용특별조치'를 법제화해 대기업과 공기업에 청년 의무 고용 비율을 할당키로 했다. 비정규직-정규직 근로자 간 차별을 금지하기 위한 '고용평등기본법'도 주요 공약으로 소개됐다.


동일가치노동-동일임금 원칙을 위반한 기업주에게는 징벌적 배상금을 물리고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정규직화를 한층 강도 높게 요구키로 했다는 점에서는 균형을 잃은 근로자 중심의 정책이란 평가가 나오기도 한다. 때문에 일부 전문가들은 안 후보의 정책에 대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하기도 했다. 실제 노동구조를 살펴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근로자 중심

그러나 민주노총 등은 안 후보의 일자리 정책에 대해 "현실에 대한 비판적 통찰에 기초한 전향적 정책공약"이라며 긍정 평가했다. 안 후보는 이러한 일자리 정책을 실현시키기 위한 재원 조달방안에 대해서는 "불요불급한 예산 절감과 우선순위 조정으로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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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