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우의 다물 칼럼> 법치의 위기

사법을 정치 도구로 삼는 나라

대한민국이 위험한 길목에 서 있다. 법원의 판결이 내려지고 검찰의 수사가 진행되는 그 순간에도,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정치권은 사법의 권위를 흔들고 그 결과를 무력화하거나 역이용하는 데 골몰하고 있다. 이것은 특정 정파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 법치주의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는 경보다.

세계정의프로젝트(WJP)의 2023년 법치 지수에서 한국은 143개국 중 19위를 기록했지만 2015년 0.79점에서 2023년에도 0.74점으로 10년째 사실상 제자리걸음이다. 수치가 보여주는 정체는 우연이 아니다. 정치권의 고질적인 사법 도구화가 그 원인이다.

재판 중 대선 출마 - ‘유권자의 심판’이 사법 대체할 수 있는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복수의 형사재판이 진행되는 도중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이 사실 자체를 두고 ‘민주적 정당성’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있다. ‘국민이 선택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논리는 위험한 선례를 낳는다. 선거에서 이기면 사법적 판단이 유예되거나 무력화될 수 있다는 인식, 나아가 ‘표가 판결을 이길 수 있다’는 착각을 제도 안에 심어놓는 것이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는 상호 보완의 관계이지, 하나가 다른 하나를 지배하는 관계가 아니다.

유권자의 선택은 존중받아야 하지만 그것이 진행 중인 형사재판의 정당성 자체를 소거할 수는 없다. 대통령 취임 이후 헌법상 형사불소추특권으로 재판이 정지된 상황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원칙이 권력의 무게에 눌리는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조작기소‘ 프레임에서 국정조사 강행까지 - 입법권으로 사법을 대체하다

대통령 당선 이후 일부 여권 인사들과 친여 논객들 사이에서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 관련 재판 등을 두고 ‘검찰이 조작한 기소’라는 서사가 빠르게 확산됐다. 이화영 사건의 대법원 판결이 마무리된 이후 임에도 이 흐름은 멈추지 않고 있다.

더 나아가 민주당은 2026년 3월, ‘윤석열 정권 정치검찰 조작기소 의혹사건 진상규명 국정조사’를 강행 처리했다.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 심지어 대법원 판결이 확정된 사건까지 조사 대상에 포함시킨 것이다. 이원석 전 검찰총장은 즉각 입장문을 내고 “수년간 수십~수백회에 걸쳐 법원의 증거 조사와 판단이 이뤄진 사실관계와 법리를 단 며칠 만에 송두리째 뒤집고 있다”며 “법치주의와 사법시스템이 무너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현행 국정조사법은 재판·수사에 관여할 목적의 국정조사를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이해당사자인 집권여당이 자기당 대통령의 재판을 겨냥한 국정조사를 주도하는 것은 명백한 이해충돌이자 삼권분립의 정면 위반이다.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절차적 문제가 있었다면 마땅히 법적으로 다퉈야 할 일이다. 항소하고, 상고하고, 재심을 청구하는 것이 법치국가가 마련한 길이다. 그 길을 버리고 국회를 제2의 법정으로 삼으려 한다면, 우리는 ‘법치’가 아니라 ‘인치’ - 정치인치(政治人治)'의 나라에 살게 된다.

‘사법개혁 3법’은 판사 겁줘서 판결을 바꾸려는 시도

지난달 국무회의를 통과한 이른바 ‘사법 3법’은 재판소원 도입, 법왜곡죄 신설, 대법관 증원을 골자로 한다. 70여년을 다듬어온 형사사법체계를 전면적으로 뒤흔드는 내용이다. 법원이 여러차례 반대 의견을 냈음에도 정치권은 이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

헌법학 권위자 허영 전 경희대 석좌교수는 이를 “77년 헌정사를 퇴행시키는 초유의 사태”라고 진단했다. 특히 ‘법왜곡죄’는 그 파장이 심각하다. 법원 내부에서는 ‘항소심에서 파기되면 법왜곡죄로 기소되고, 재판소원이 인용되면 법왜곡죄가 확정된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마음에 들지않는 판결을 내린 판사를 형사처벌로 위협하는 것은 사법독립의 근간인 ‘법관의 양심에 따른 재판’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다수가 틀렸다고 해도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관이 사법부다. 그 사법부가 무너지면 오히려 소수자와 약자가 기댈 곳이 사라진다. 사법개혁이라는 명분이 실제로는 사법부를 정치권의 영향력 아래에 두는 수단이 된다면 그것은 개혁이 아니라 사법의 정치 예속화다.

유죄 확정 후 재보선 출마 - 김용의 사례가 보내는 신호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은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2심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그런데 그 이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출마 움직임이 확인되고 있다. 공직선거법상 일정한 형이 확정되면 피선거권이 제한되지만, 그 경계를 타진하며 출마 가능성을 저울질하는 행위 자체가 이미 법의 정신을 훼손하는 것이다.

유죄 판결을 받은 정치인이 선거를 통해 정치적 복권을 시도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당이 묵인하거나 지원한다면 이는 유권자에게 ‘사법적 판단은 선거로 뒤집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공개적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이것이 반복될 때 우리 사회의 법 감수성은 무뎌지고, 결국 선거는 사면의 도구로 전락한다.

까르띠에 시계 수수 - 전재수 의혹 해소돼야

부산시장 출마가 확정된 더불어민주당 전재수 의원은 고가의 까르띠에 시계 수수 의혹을 받고 있다. 아직 수사 결과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이지만 의혹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광역단체장 선거에 나선다는 것은 유권자를 향한 예의가 아니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법정에서의 권리지, 공직 출마의 면죄부가 아니다. 공직 후보자에게는 더 높은 수준의 도덕적 기준이 요구된다. 의혹에 대한 충분한 해명과 납득할 만한 사유를 제시한 후 출마를 결정하는 것이 공직자로서의 최소한의 책임이다. 그 과정을 건너 뛰고 정치적 기회를 먼저 계산하는 행태는 권력을 향한 욕망이 공적 책임감을 앞서고 있음을 방증한다.

탄핵 정국의 사법 방해 - ‘윤 어게인’ 야권의 사법 부정

반대편에서도 노골적인 사법 부정이 자행됐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심판이 진행되는 동안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헌법재판소 재판관 임명을 의도적으로 지연했고, 검찰은 윤석열 구속 취소 결정에 즉시항고를 포기하여 사법 절차를 스스로 훼손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삼권분립의 수호자여야 할 법 집행기관이 권력자 보호의 방패가 된 것이다.

내란 혐의로 사법적 판단을 받는 상황에서도 ‘윤 어게인(Yoon Again)’이라는 이름의 정치 운동이 조직됐다. 이들은 재판 결과에 승복하기보다 정치적 탄압이라는 프레임으로 지지층을 결집시키고 정치적 재기를 모색한다.

헌법재판소와 법원의 결정은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민주주의 공동체가 집단적으로 수용해야 하는 판단이다. 그 판단에 법적으로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정당하다. 그러나 판결 자체를 ‘정적에 의한 음모’로 규정하고 이를 정치 동원의 기제로 삼는 것은 사법부의 독립성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행위다. 이것이 어느 방향에서 오든 그 해악은 동일하다.

법치는 ‘내 편일 때’만 작동하는 게 아니다

지금 한국 정치의 공통된 병리는 명확하다. 사법은 내 편에 불리할 때는 조작이요, 내 편에 유리할 때는 정의다. 이 이중성이 여야 모두에서 작동하고 있다.

노태악 전 대법관은 퇴임사에서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한 사안을 사법부로 가져오는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며 “양극화된 사회에서 정치의 사법화는 결국 사법 불신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조희대 대법원장도 근거없는 사법 폄훼와 법관 악마화를 중단해 달라고 호소했다.

사법부 스스로 위기를 고백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진보든 보수든, 법치주의는 나에게 불리한 판결도 수용하는 데서 비로소 성립한다. 내가 동의하는 판결만 법이고 내가 동의하지 않는 판결은 음모라고 부르는 순간, 법은 더 이상 사회를 통합하는 규범이 아니라 권력투쟁의 무기가 된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

대한민국은 수십년에 걸쳐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동시에 세워 온 나라다. 군사독재에 맞서 민주화를 이룬 역사, 그리고 그 위에 사법 독립과 헌정 질서를 쌓아온 과정은 결코 가볍지 않다.

판결은 정치로 뒤집는 것이 아니라 법적 절차로 다투는 것이다. 그 유산을 정치적 이해관계를 위해 허물어뜨리는 것은 지금의 정치인들만의 손해가 아니다. 다음 세대가 살아갈 나라의 기초를 갉아먹는 일이다.

의혹은 선거로 덮는 것이 아니라 수사와 해명으로 해소하는 것이다. 국정조사는 삼권분립의 틀 안에서 입법부의 정당한 감시기능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특정인의 재판 결과를 뒤집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법 앞에 모두가 평등하다는 원칙 위에서만 지속 가능하다.

여야를 막론하고, 사법을 정치의 시녀로 삼으려는 모든 시도에 우리 국민이 더 단호하게 경계해야 할 때다.

<bmw47@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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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제2의 로켓랩?’ 비트팜스 사건 내막

[단독] ‘제2의 로켓랩?’ 비트팜스 사건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주식시장이 활활 타고 있다. 미국 대통령의 한마디에 휘청이던, 전쟁 여파에 고꾸라지던 모습이 전생처럼 느껴질 정도다. 특정 악재가 발생해도 하루 이틀이면 다시 제자리를 찾는 것을 넘어 지수를 말아 올리고 있다. 대통령이 공언했던 코스피 지수 5000보다 이제는 1만이 더 가까워졌다. 이재명 대통령이 주식시장의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없애겠다며 ‘코스피 5000시대’를 공약으로 내세웠을 때 대부분 ‘빈 약속’이 될 것이라 예상했다. 12‧3 비상계엄의 여파를 제외하고라도 코스피 지수는 3000 언저리 박스권에 갇혀 있는 상태였다. 바닥이 얇고 지붕이 단단하다는 우리나라 주식시장에 대한 인식은 깨지기 어려워 보였다. 역대급 불장 돈이 모인다 이재명정부 1년째를 앞둔 현재, 주식시장의 지붕은 완벽하게 뚫렸다. 국내외 증권사들은 코스피 상방을 올려 잡고 있다. 동시에 주식시장에 뛰어드는 ‘개미(개인 투자자)’의 비율이 높아졌다. 나만 뒤처질 수 없다는 포모(FOMO) 증후군이 퍼졌고 인생 역전을 꿈꾸는 이들이 너도나도 주식시장으로 움직였다. 부동산에 몰린 자금을 주식시장으로 옮기겠다는 정부 차원의 ‘머니 무브’ 정책으로 역대급 불장이 계속되면서 덩달아 증권업계도 신났다. 올해 1분기 국내 증권사는 거래대금 폭증으로 역대급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했다. 주요 금융지주 계열 증권사 1분기 순이익은 전년 대비 100% 이상 증가했다. 대형 증권사의 분기 순이익이 1조원을 돌파할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오고 있다. 60여개에 이르는 국내 증권사들은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개미들을 잡으려 각종 유인책을 내놓았다. 증권사는 주식 거래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수료로 이익을 내는 구조인 만큼 투자자가 많을수록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또 증시가 폭발하면서 빚을 내서까지 시장으로 진입하는 비율이 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도 증권사는 손해 볼 게 없다. 문제는 주식 거래가 증가하면서 일어나는 증권사발 사건‧사고다. 최근 증권사의 갈지(之)자 행보로 투자자가 의도치 않은 세금 폭탄을 맞은 사건도 한 예다. 증권사마다 명확한 기준을 적용하지 않고 제멋대로 굴면서 일부 투자자는 수백만원, 많게는 억대의 손해를 봤지만 하소연할 곳도 마땅치 않은 상태다. 정부도 손을 놓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캐나다→미국 본사 이전 주식 구분 변경 일어나 캐나다에 본사를 두고 암호화폐를 채굴하던 ‘비트팜스(Bitfarms)’라는 기업이 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에 법인을 뒀던 비트팜스는 미국으로 본사를 옮기고 인공지능 및 고성능 인프라 기업으로 전환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사명을 ‘킬 인프라스트럭처(Keel Infrastructure)’로 변경했다. 본사 이전이 완료된 시기는 지난달 1일. 비트팜스는 킬 인프라스트럭처의 자회사가 됐고 미국 현지시각으로 같은 달 6일 주식 구분이 변경됐다. 다시 말해 주식 종목에서 비트팜스가 없어지고 킬 인프라스트럭처로 거래가 개시된 것이다. 미국에서는 이 과정이 ‘주식 교환’으로 처리돼 세금이 붙지 않았다. 문제가 된 건 비트팜스 주식을 가지고 있던 우리나라 ‘서학 개미’들이다. 이들의 주식은 매도 후 재매수 처리됐다. 다시 말해 비트팜스 주식이 처분되고 킬 인프라스트럭처를 구매하는 방식으로 이른바 ‘양도’가 일어난 것이다. 비트팜스 1주는 킬 인프라스트럭처 1주로 바뀌었다. 이 과정은 투자자가 아닌 증권사의 의지로 이뤄졌다. 비트팜스 주주들은 당연히 반발했다. 현행법상 해외주식으로 소득이 발생하면 ‘양도소득세’라는 세금이 붙는다. 250만원 이상의 주식 소득에 22%의 세금이 매겨진다. 예를 들어 해외 주식으로 1000만원을 벌었다면 250만원을 제외한 750만원에 대해 22%의 양도소득세를 내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 증권사 수수료까지 떼고 나서야 투자자가 실제 번 돈이 된다. 양도소득세는 1년치 해외주식 소득을 따져 부과된다. 그래서 양도소득세를 내야 하는 시점이 되면 투자자들은 주식을 정리한다. 이익과 손해가 250만원 이내로 합산되면 양도소득세를 내지 않아도 되기에 이 시기에 투자자들은 계산에 골몰한다. 물론 주식을 사고팔지 않으면 양도소득세 자체는 ‘0’이다. 예상치 못한 세금 날벼락 하지만 비트팜스가 킬 인프라스트럭처로 주식 구분이 변경될 당시 ‘매도 후 재매수’라는 방식으로 거래가 이뤄지면서 투자자들은 ‘강제로’ 이익 혹은 손해가 발생했다. 기대 수익, 예상 손해로 존재하던 게 실제 이익과 손해로 전환된 것이다. 이렇게 되면 투자자들에게는 예상하지 못했던 세금 부과 이슈가 발생한다. 비트팜스 사건을 두고 지난해 5월 일어난 ‘로켓랩’ 주식 전환 사태를 떠올리는 이유다. 미국 민간 우주기업 로켓랩 USA는 지난해 5월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는 기업재편을 단행했다. 같은 해 5월23일 신설된 로켓랩 코퍼레이션이 기존 로켓랩 USA 법인을 자회사로 흡수합병했다. 이때 로켓랩 USA 주식은 동일한 가치의 로켓랩 코퍼레이션 1주로 자동 전환됐다. 미국은 세법상 주식 교환 과정에서 이익과 손해를 실현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매도 후 재매수 방식으로 처리됐고 무엇보다 당시 이 과정이 야밤에 기습적으로 이뤄졌다. 로켓랩 USA 주주들은 크게 반발했고 금융감독원 등에 ‘민원 폭탄’이 쏟아졌다. 단일 민원으로는 최다였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특히 문제로 떠오른 점은 국내 증권사들의 대응이었다. 당시 국내 증권사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를 두고 각자 다른 답을 내놨다. 세법에 대한 해석이 갈리면서 적용을 달리한 것이다. 일부 증권사는 법무법인의 자문을 받아 ‘양도 거래’로 판단해 매도 후 재매수 방식으로 처리했다. 또 다른 증권사들은 단순 주식 교환으로 간주해 양도소득세를 부과하지 않았다. 투자자로서는 어느 증권사를 이용하고 있었느냐에 따라 세금이 부과되고, 부과되지 않는 이른바 ‘복불복’ 상태에 놓인 것이다. 당시 로켓랩 주식 전환 처리 방식에 따라 증권사를 옮기는 이동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논란이 계속되자 공은 결국 정부로 넘어갔다. 세법에 대한 유권해석을 요청한 것이다. 민원 폭탄에 기재부 해석 당시 기획재정부는 로켓랩 사태 이후 양도소득세를 부과하는 게 맞다는 해석을 내놨다. 국세기본법 제14조 실질과세의 원칙과 소득세법 제88조의 ‘양도’의 의미를 근거로 내세웠다. 주식 티커명이 같더라도 법률상 기존 로켓랩 USA 주식이 소멸하고 주주가 새로운 로켓랩 코퍼레이션을 취득한 만큼 동일한 자산을 연속적으로 보유한 것이 아니라 자산을 교환한 것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주식 티커는 증권거래소에서 특정 상장회사의 주식을 고유하게 식별하기 위해 사용하는 짧은 약어를 뜻한다. 비트팜스 주주들은 기재부의 유권해석에 치명적인 허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비트팜스가 KEEL로 티커명이 바뀌어도 주식을 보유한 투자자는 같은 사람이고 거래 상태는 ‘보유 계속’이다. 사업, 경영진, 지분율 어느 하나 바뀌지 않았는데 (기재부는) 이걸 자산의 이동으로 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백번 양보해서 로켓랩 사태 당시 기재부가 유권해석을 내렸기에 비트팜스 사건에 동일하게 양도소득세를 부과하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선례가 있음에도 국내 증권사들은 저마다의 방식을 적용했다. 이번에도 증권사에 따라 손해와 이익이 갈리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따지고 보면 비트팜스 사건과 로켓랩 사태에서 투자자들이 분노한 지점은 같다. ‘실제 팔지도 않은 주식’에 세금을 매겼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을 더 화나게 하는 부분은 증권사들이 적용 기준을 제멋대로 했다는 점이다. 재판으로 비유하면 판례가 있는 상황에서 이 같은 증권사의 행보는 ‘갑질’로 느껴질 정도라고 지적했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비트팜스가 킬 인프라스트럭처로 주식 구분이 변경되는 과정에서 일부 증권사별로 적용 시점이 달랐다. 메리츠 증권은 지난달 3일, 토스 증권은 같은 달 6일에 투자자들에게 주식 구분 변경 사실을 알렸다. 미국은 비과세로 처리하는데… 우리나라는 ‘매도 후 재매수’ 투자자들에 따르면 일부 증권사는 주식 구분 변경 사실을 아예 공지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말 그대로 자고 일어나보니 내가 하지 않은 주식 거래가 이뤄져 있던 셈이다. 로켓랩 사태와 오버랩 되는 대목이다. 토스 증권을 사용 중인 한 투자자는 “6일에 비트팜스에서 킬 인프라스트럭처로 바뀌어서 거래가 개시됐는데 그 당일에 공지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토스 증권은 해당 투자자의 문제 제기에 “(4월)3일에 (주식 구분 변경) 정보에 대해 처음 알게 됐고 (4월)6일에 공지했다. 최초로 정보를 알게 된 (4월)3일은 현지 휴장일로 투자자가 실제 매매 등 대응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해명했다. 이후 7일에 외부 법무법인의 자문을 받아 권리 처리를 이행했다고 덧붙였다. 즉 매도 후 재매수 방식으로 적용했다는 뜻이다. 투자자들은 처음에는 교환으로 적용했다가 뒤늦게 양도로 처리한 증권사도 있다고 주장했다. 한 투자자는 “신한 증권을 사용하고 있는데, 처음에는 주식명만 바뀌더니 2~3일 뒤에 재처리됐다. 증권사에 문의했더니 다른 증권사의 처리 방식대로 했다고 하더라. 그사이에 주가와 환율이 바뀌었는데 일괄 적용한 것이다. 주먹구구식도 이런 주먹구구식이 없다”고 비판했다. 정부도 비트팜스 투자자들의 민원을 증권사에 돌리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넣은 투자자들이 받은 답변은 이 사안이 ‘자율 조정 대상’이라는 내용이었다. 자율 조정 대상은 정식 조사 전 금융사와 소비자가 자율적으로 합의하도록 유도하는 제도다. 일단 증권사랑 얘기하라는 뜻이다. 투자자로선 금감원에서 증권사로 넘어간 공이 이리 튀고 저리 튀는 상황에 직면한 셈이다. 손 놓은 정부 투자자 운다 70명가량 모여 있는 비트팜스 투자자 단체 채팅방에서는 무력한 분위기가 감지됐다. 정부와 증권사의 태도에 분통을 터트리면서도 로켓랩 사태의 선례로 이번 사건 또한 흐지부지될 것이라 자포자기한 듯한 모습이었다. 실제 몇몇 투자자는 ‘손절(손해 보고 매도)’하고 채팅방을 떠났다. 한 투자자는 “로켓랩 사건 때 정말 다 들고 일어났다고 느낄 정도로 문제 제기가 많았는데도 결론적으로 양도소득세가 부과됐다. 그러다 보니 이번에는 민원도 많이 안 들어간 걸로 안다”며 “이 사건이 스페이스X와 합병설이 도는 테슬라 같은 대형 주식에 일어났어도 정부나 증권사가 이렇게 반응했을까”라고 한탄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