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언제나 선거의 연속이다. 그러나 모든 선거가 같은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 어떤 선거는 권력을 바꾸는 분수령이 되고, 어떤 선거는 다음 권력으로 가는 징검다리가 된다. 지금 국민의힘 내부에서 벌어지는 움직임을 보면 6·3 지방선거는 이미 전면 승부가 아니라 다음 권력으로 가기 위한 중간 단계처럼 보인다.
겉으로는 지방선거 승리를 말하지만, 실제 계산은 그 이후에 맞춰져 있다는 인상이 짙다.
정치의 이런 계산법은 이미 현실에서 확인된 적이 있다. 2022년 대선에서 패배하고 지선에서도 큰 타격을 입었던 당시 야당 더불어민주당의 선택이 그랬다. 민주당은 전당대회를 통해 이재명 대표 중심으로 당을 재편했고, 이후 윤석열정부의 실정을 정면으로 공격하는 전략으로 정치 구도를 바꾸기 시작했다.
그 흐름은 결국 2024년 총선 승리로 이어졌고, 이후 정치적 주도권은 완전히 민주당으로 넘어갔다.
2022년 지방선거 당시 민주당의 전략은 단순한 선거 승리가 아니었다. 대선에 이어 지선 패배 이후 정치 사이클을 장기적으로 설계하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총선에서 승리한 뒤 정권 책임론을 강화하고 결국 대통령 탄핵이라는 극단적 정치 상황까지 이어지면서 권력 지형은 다시 뒤집혔다.
그 결과 이재명 대표는 대통령 후보가 됐고, 결국 2025년 대선에서 당선됐다. 지선 패배 이후의 정치 전략이 결국 권력 교체로 이어진 사례였다.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금 국민의힘 내부에서 보이는 움직임도 4년 전 민주당의 전략을 그대로 따라가려는 듯한 모습이다. 2025년 대선에서 패배한 상황에서 이번 지선 역시 쉽지 않다는 현실 판단이 깔려 있다. 그렇다면 다음 정치 기회는 어디인가. 자연스럽게 시선은 2028년 총선으로 향하게 된다. 총선을 통해 정치 주도권을 다시 확보하고 이후 대선을 노리는 전략이다.
문제는 이런 계산이 당 전체 전략이 아니라 개인 정치의 계산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선에서 승리해야 할 당의 전략 대신, 지선 이후 전당대회를 누가 장악하느냐가 정치의 중심이 되는 모습이다. 선거를 이기기 위한 전략보다 선거 이후 권력구도를 계산하는 정치가 먼저 움직이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 흐름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바로 국민의힘 서울시장 공천 문제다. 겉으로 보면 단순한 후보 문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훨씬 큰 정치 계산이 깔려 있다. 서울은 지선 중에서도 상징성이 가장 큰 곳이다. 수도권 정치의 중심이자 전국 정치 흐름을 좌우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서울시장은 사실상 차기 대권을 향한 가장 강력한 정치 발판이 되는 자리다.
현재 상황을 보면 장동혁 대표와 오세훈 서울시장의 움직임이 묘하게 엇갈리고 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오 시장의 공천 여부를 둘러싸고 지난 13일 “공천은 공정이 생명”이라고 말하며 계속 시간을 끌고 있다. 공천 신청 마감일을 두 차례나 연장한 것 자체가 정치적 계산이 작동하고 있다는 신호로 읽힌다. 정치에서 일정 연장은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다. 당내 권력 구도와 향후 정치 지형을 동시에 계산하지 않고서는 설명하기 어려운 행보다.
정치권에서는 이런 시나리오가 거론된다. 장 대표 입장에서는 오 시장이 서울시장 후보로 나가 선거에서 패하면 지방선거 패배 책임을 오 시장에게 돌릴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당 지도부 책임은 상대적으로 줄어든다. 이후 지선 패배 국면 속에서 열릴 전당대회에서 다시 당권을 장악할 수 있다는 계산이 가능해진다.
결국 선거 결과를 당의 위기가 아니라 당권 재편의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정치적 셈법이다.
만약 이런 흐름이 만들어지면 정치의 다음 장면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장 대표가 전당대회에서 다시 당권을 잡고 2028년 총선을 지휘하게 된다. 총선을 승리로 이끌 경우 대권 후보로 가는 길도 열리게 된다. 당권과 총선 주도권을 동시에 확보한 정치 지도자는 자연스럽게 차기 대선의 중심 인물이 된다. 결국 이번 지선은 대권을 향한 중간 정치 단계가 되는 셈이다.
오 시장의 계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오 시장은 윤석열 정치와의 거리 두기를 분명히 하면서 지난 12일 ‘혁신형 선거대책위원회’ 조기 구성 등 사실상 장 대표의 2선 후퇴를 요구했다. 장 대표가 물러나거나 당 권력구도가 바뀌면 자신이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해 승리하고 이후 대권 기반을 확실히 다지겠다는 전략으로 읽힌다.
결국 오 시장 역시 이번 지선을 다음 대권으로 이어지는 정치 사다리로 바라보고 있는 셈이다.
이 경우 지선 이후 전당대회에서 오 시장 측 인사가 당 대표가 될 가능성도 커진다. 그렇게 되면 당의 권력 축은 자연스럽게 오세훈 중심으로 이동한다. 이후 2028년 총선을 거쳐 대권으로 가는 정치 경로도 열린다. 총선을 승리로 이끌 경우 당내 대권 경쟁 구도 역시 오세훈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커진다. 결국 이번 공천 싸움 역시 서울시장 공천이 아니라 2030년 대권을 염두에 둔 권력 경쟁이다.
이런 흐름을 보면 지금 국민의힘 내부 정치의 중심은 지선이 아니다. 다음 전당대회다. 지선 패배를 어느 정도 상수로 놓고 그 이후 정치 지형을 계산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지선에서 이기기 위한 정치보다 지선 이후 권력구조를 계산하는 정치가 먼저 움직이고 있다는 의미다. 선거를 준비하는 정당이라기보다 권력 재편을 준비하는 정치 조직처럼 보이는 장면이다.
더 문제는 이런 계산이 특정 인물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장동혁과 오세훈뿐 아니라 유승민, 안철수, 나경원 등 이른바 국민의힘 잠룡들도 비슷한 정치 흐름 속에 있다. 지선에 직접 뛰어들기보다 당권 경쟁을 먼저 바라보는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들 가운데 누구도 지선 승부의 중심에 서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 결국 지금 정치의 중심이 지선이 아니라 당내 권력 경쟁으로 이동하고 있는 셈이다.
이들의 정치 계산은 우선 하나의 목표로 모인다. 2028년 총선이다. 총선을 승리로 이끌면 대권 후보가 될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당권을 장악한 상태에서 총선을 치르면 정치 주도권 역시 자연스럽게 그 인물에게 집중된다. 결국 지금 정치의 중심은 지선이 아니라 총선과 대선으로 이동해 있다. 선거의 시간표와 정치의 시간표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정치 계산은 국민에게는 매우 낯설게 보일 수 있다. 국민은 지금 6·3 지방선거를 바라보고 있다. 지역을 누가 맡을 것인지, 어떤 정책이 지역을 바꿀 것인지에 관심이 있다. 지방정부가 어떤 방향으로 운영될지, 생활과 직결된 변화가 무엇인지가 더 중요한 문제다. 그러나 정치권 잠룡들의 관심은 이미 2030년 대선으로 이동해 있는 모습이다. 정치의 시선이 국민의 현재가 아니라 권력의 미래를 향하고 있다는 게 안타깝다.
정치가 이렇게 되면 선거는 책임의 경쟁이 아니라 기회의 경쟁이 된다.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선거 이후 정치 기회를 계산하는 정치가 된다. 패배조차도 다음 권력으로 가는 정치 자산처럼 활용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정치가 국민보다 권력의 시간표에 맞춰 움직일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모습이다. 선거의 의미가 국민의 선택이 아니라 권력 전략의 단계로 변질되는 것이다.
민주당 역시 이 문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2022년 이후 권력 사이클을 경험한 정치인들이 다음 권력 기회를 계산하기 시작했다. 정청래 등 민주당 잠룡들의 움직임 역시 지선 이후 전당대회와 총선을 염두에 둔 정치로 읽힌다. 지선 승리를 기반으로 당내 권력구조를 재편하려는 흐름도 보인다.
정치권 전체가 이미 다음 대선을 바라보는 구조에 들어간 것이다. 권력 경험이 있는 정당일수록 정치 계산이 더 빠르게 움직이는 모습이다.
그래서 지금 정치권에서 묘한 공통점이 나타난다. 여야 잠룡 누구도 “다음 대선에 나가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선언하지 않는다. 정치 계산의 여지를 남겨두기 위해서다. 모두가 다음 권력을 염두에 두고 정치 공간을 열어두고 있는 것이다. 정치적 선택지를 최대한 유지하려는 계산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정치권 전체가 잠재적 대권 경쟁 구조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
만약 진정으로 선당후사의 정신이 있다면 지금 선언해야 한다. 다음 대선에 나가지 않겠다고 말하고 당의 선거 승리에 집중하겠다고 말해야 한다. 선거 승리를 위해 개인 정치의 계산을 뒤로 미루겠다는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런 선언을 하는 정치인은 거의 없다. 정치의 계산이 권력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증거다.
서울시장 공천 싸움이 단순한 후보 경쟁이 아니라 2030 대권 전초전처럼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치가 선거보다 권력을 먼저 계산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이 정말로 이번 지선에서 이기고 싶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당권 계산이 아니라 선거 책임 정치다. 그러나 지금 모습만 보면 국민의힘은 아직도 그 현실을 제대로 깨닫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6·3 지방선거는 이제 막 공천 단계에 들어섰다. 그러나 정치의 중심이 이미 대권으로 이동했다면 그 선거는 시작부터 방향을 잃은 것이나 다름없다. 국민은 지방선거를 보고 있지만 정치권 잠룡들은 이미 다음 대선을 보고 있다. 정치가 국민보다 권력을 먼저 바라보는 순간, 그 선거는 시작도 하기 전에 길을 잃는다. 지금 국민의힘 정치가 바로 그 위험한 길 위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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