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민의힘 내부에서 상징적인 장면 하나가 연출됐다. 공천 추가 마감일이었던 지난 12일, 두 광역단체장이 서로 다른 선택을 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끝내 공천 신청을 하지 않았고, 김태흠 충남도지사는 신청서를 제출했다.
두 사람의 선택은 단순한 개인 결정이 아니라 정치의 태도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대비 장면이었다.
오 시장은 이날 “당의 변화를 위한 실천 조짐이 없다”며 공천 신청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당의 노선 전환과 인적 쇄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겉으로 보면 원칙적 주장처럼 들릴 수 있다. 당이 바뀌지 않으면 선거에 나서기 어렵다는 논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거의 시간표 속에서 이 발언은 원칙이라기보다 조건에 가까운 정치 행위로 읽힌다.
정치는 언제나 완벽하지 않은 환경에서 시작된다. 당이 완전히 정비된 뒤에 선거에 나가겠다는 말은 현실 정치에서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선거는 오히려 혼란 속에서 책임을 떠안는 과정이다. 당이 어려울수록 정치인은 전면에 서야 한다. 정치 지도자의 역할은 조건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조건을 바꾸는 데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같은 날 김 도지사가 보여준 선택은 대조적이다. 김 도지사는 공천 신청을 하면서 “당이 어려울 때 피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충남·대전 행정통합 문제로 한때 공천 신청을 보류했던 그는 결국 당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정치인은 ‘때로 개인의 계산보다 조직의 책임을 먼저 선택해야 한다’는 메시지였다. 이 장면은 정치가 무엇인지 다시 묻는 질문을 던진다.
서울과 충남은 정치적 무게가 다른 지역이다. 수도권 선거의 상징은 서울이다. 서울시장 선거는 전국 선거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바로미터다. 그렇기 때문에 서울시장 후보의 태도는 단순한 개인 결정이 아니라 당 전체의 사기와 전략에 영향을 미친다.
수도권 선거의 장수 역할을 해야 할 인물이 출발선에 서지 않는 장면은 당연히 논란을 부를 수밖에 없다.
오 시장은 자신이 선거에 참여할 의지가 있다고 밝혔지만 당이 변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그러나 정치 현실에서 조건을 먼저 제시하는 지도자는 대중에게 쉽게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국민이 보고 싶은 지도자는 조건을 제시하는 정치인이 아니라 책임을 떠안는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지방선거는 국민의힘에게 결코 쉬운 선거가 아니다. 정권과 당의 노선 논쟁, 내부 갈등, 수도권 민심 등 복잡한 변수들이 얽혀 있다. 이런 상황일수록 당의 주요 인물들은 책임을 나눠 져야 한다. 정치 지도자의 선택은 개인의 메시지를 넘어 조직 전체의 방향을 결정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오 시장의 선택은 정치적 해석을 피하기 어렵다.
오 시장의 논리는 “당이 변해야 선거를 치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 현실은 종종 그 반대다. 선거를 통해 변화가 만들어지는 경우가 더 많다. 정치인은 선거라는 공간에서 메시지를 던지고 조직을 움직인다. 출발선에 서지도 않은 채 변화를 요구하는 방식은 정치의 방식이라기보다 공허한 압박에 가깝다.
물론 오 시장이 주장하는 당 혁신 요구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니다. 정치 조직은 언제나 자기 혁신이 필요하며, 노선 정비와 인적 쇄신 역시 중요한 문제다. 문제는 이 부분을 지도부에 요구하는 방식이다. 정치에서 혁신은 종종 내부 경쟁과 선거를 통해 만들어진다. 선거를 미루면서 혁신을 요구하는 방식은 설득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정치는 결국 책임의 예술이다. 책임을 미루는 정치가 반복되면 조직은 점점 약해진다. 반대로 책임을 떠안는 정치가 등장하면 조직은 살아난다. 같은 날 공천을 신청하지 않은 오 시장과 공천 신청을 한 김 도지사의 장면이 정치적 상징처럼 읽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오 시장의 선택이 전략일 수도, 당 지도부에 압박을 가하기 위한 정치적 메시지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정치 전략은 때로 의도와 다른 결과를 낳는다. 지도자가 출발선에 서지 않는 장면은 당 내부의 동력을 약화시키는 신호로 읽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치는 결국 선택의 연속이다. 어떤 선택은 조직을 결집시키고 어떤 선택은 조직을 흔든다. 이번 장면은 정치 지도자의 선택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갖는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절충 방안은 무엇일까. 현실 정치에서는 대립만이 해답이 아니다. 필자는 오 시장이 요구한 당 혁신 문제를 논의하되, 동시에 선거 준비를 병행하는 방식을 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혁신 선대위 구성과 인적 쇄신을 논의하는 동시에 후보 등록을 통해 선거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는 정치적 메시지는 유지하되 책임의 자리에서도 물러서지 않는 방식이다. 공천 신청을 하고 선거 준비를 하면서 동시에 당 혁신을 요구하는 길도 있다. 그것이 지도자의 정치적 영향력을 가장 강하게 보여주는 방식일 수 있다. 정치는 원칙과 책임이 함께 가야 한다. 원칙만 있고 책임이 없으면 정치적 선언에 그친다.
이번 지방선거는 국민의힘에게 중요한 시험대다. 수도권 선거의 결과는 당의 미래뿐 아니라 한국 정치의 방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런 선거에서 지도자의 태도는 단순한 개인 행동이 아니라 정치적 메시지가 된다. 정치 지도자는 완벽한 환경이 만들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불완전한 현실 속에서 먼저 출발하는 사람이다.
6·3 지방선거의 출발선에서 우리는 ‘정치인은 언제 전장에 서야 하는가. 그리고 책임 있는 정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마주하고 있다. 그 답은 아마도 “정치는 조건이 아니라 책임”이라는 이 단순한 문장 속에 있지 않을까?
이런 상황에서 이정현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이 13일, 돌연 사퇴를 표명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공천 과정에서 변화와 혁신을 추진하려 했지만 여러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생각한 방향을 더 이상 추진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며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공천 방식을 둘러싼 당내 이견이 드러난 사건이지만, 동시에 정치가 책임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를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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