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점점 멀어지는 이재명의 길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리더십이 위기다. 1인1표제가 통과된 이후 힘을 받나 싶더니,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와 2차 종합특검 후보 논란 등 악재가 겹치면서 연임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시시각각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지만 결국 대권가도의 길을 걸었다. 정 대표도 무사히 ‘이재명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를 ‘일시 중지’하기로 결론지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의원총회서 민주당 의원들은 대체로 지방선거 전 합당 추진을 중단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충분한 논의 없이 합당을 띄워 당을 혼란스럽게 하고, 당·청 관계까지 어색해진 만큼 ‘정청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리더십은 타격을 입게 됐다.

더 좁아진
운신의 폭

이날 정 대표는 국회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연 뒤 브리핑에서 “오늘 민주당 긴급 최고위와 함께 지방선거 전에 합당 논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신 지방선거 후 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연대와 통합을 위한 추진준비위원회(이하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을 결정하고, 혁신당에도 준비위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로서 혁신당과 통합을 제안한 것은 오직 지방선거 승리와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한 충정이었다”며 “그러나 통합 제안이 당 안팎에서 많은 우려와 걱정을 가져왔고, 통합을 통한 상승 작용 또한 어려움에 처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자리에서 의원들의 말씀을 경청했고 민주당 지지층 여론조사 지표도 꼼꼼히 살피는 과정에서 더 이상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당 안팎의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을 혼란케 한 점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정 대표는 “그동안 통합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은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국민 여러분과 민주당 당원들, 혁신당 당원들께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당초 이달 13일 입장을 밝히겠다던 혁신당은 날짜를 앞당겨 지난 11일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고 사안에 대해 입을 열었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에 동의하며 6월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당을 향한 뼈있는 말도 이어졌다. 조 대표가 “선거 후에는 통합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내용과 방식에 대한 논의를 책임감 있게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동안 혁신당은 민주당에 흡수되는 방법을 피하고자 했던 만큼 합치는 방식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합당의 최대 과제로 남아있다.

조 대표는 “양당 간 회동이 이뤄지면 먼저 민주당이 제안한 연대가 지방선거에서의 연대인지 아니면 추상적 구호로서의 연대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지방선거 연대가 맞다면 추진준비위에서 그 원칙과 방법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모든 과정에서 양당은 상호 신뢰와 존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며 “특정 정치인 개인과 계파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반드시 역효과가 난다. 국민과 양당 당원께 또다시 실망을 드리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동 걸린 민주당-혁신당 합당…다음 복안은?
‘쌍방울 변호인’까지…제대로 꽂힌 ‘2연타’

조 대표는 정 대표의 사과를 수용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조 대표는 “정 대표께서 혁신당 당원에게 표명한 사과를 받아들인다”며 “혁신당 당원은 당으로 향해지는 비방과 모욕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혁신당 박병언 선임대변인도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단순히 연대라고만 표현했는데 우당 간 레토릭적 연대를 의미하는지, 실질적으로 두 당이 지선을 치러낸다는 선거 연대인지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민주당의 답변을 요구했다.

앞서 민주당은 합당이 아닌 ‘지선 이후 통합’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민주당의 답변에 따라 향후 당의 대응이 달라질 것으로 풀이된다.

합당 논의가 중지되면서 당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나 싶더니 2차 종합특검으로 추천된 전준철 변호사가 새로운 불씨가 됐다. 민주당이 추천한 전 변호사는 2023년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인물이다.

1심 이후 사임했지만, 친명(친 이재명)계에서는 “이재명 죽이기” “제2의 체포동의안 사태” 등 격하게 반발했다. 친청(친 정청래)계로 분류되는 이성윤 최고위원이 전 변호사를 추천하면서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 변호사는 검사 시절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 한동훈 채널A 사건 등을 담당했다. 이 최고위원은 “(전 변호사가) 윤석열·김건희 수사를 할 때 서슬 퍼런 윤 총장하에서도 결코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강직하게 수사했다”며 “이번 2차 종합특검의 중요성에 비춰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확한 팩트 확인 없이 전 변호사가 김성태 대북 송금 조작 의혹 사건을 변호했고, 그런 변호사를 추천함으로써 마치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것처럼 의혹이 확산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정·이
차이는?

‘윤정부에서 탄압을 받은 변호사’를 강조했지만, 민주당을 설득시킬 명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자 이 최고위원은 “이번 2차 종합특검 추천 과정에서 조금 더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사과했다.

정 대표도 거듭 고개를 숙였다. 정 대표는 해당 사태를 인사 검증 실패에 따른 ‘사고’로 규정하고 “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의 책임은 당 대표인 저에게 있다. 대단히 죄송하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사태는 이 최고위원을 향한 사퇴 압박으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인사 사고가 아닌 정청래 체제를 향한 불만이 표면화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무산과 후보자 논란으로 정 대표의 리더십이 2연타를 맞으며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연임 가능성도 불투명해졌다.

정 대표는 직접 연임 여부를 밝히지 않았지만 1인1표제 등 당원의 힘을 강화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며 대권주자로 나서기 위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혁신당과의 합당 이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다면 공은 정 대표에게 돌아간다.

그 성과를 토대로 대표 연임에 성공한 뒤 차기 대권까지 밟는 이른바 ‘이재명의 길’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여의도가 바라본 이재명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친문(친 문재인)계가 민주당을 꽉 쥐던, 시절 그는 한 줌의 계파도 없이 고군분투하며 기득권에 맞섰다. 온건파 사이에서 파격적인 개혁을 앞세워 당원들의 갈증을 해소했고, 이들을 ‘개딸(개혁의 딸)’로 묶어 본격적인 팬덤 정치에 나섰다.

당 대표 시절에는 대선에 출마하려는 대표의 사퇴 시한인 ‘대선 1년 전’에 예외를 두는 내용의 당헌을 바꾸면서 극심한 내홍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당시 이재명 대표는 자신 있게 뜻을 밀어붙였고 전당대회서 최종 득표율 85.4%로 연임에 성공했다.

리더십
심폐소생

권력의 정점에 선 이 대통령이 걸어온 길은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나고 싶어하는 정치인들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정 대표는 그런 거친 이재명의 길 초입에 들어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이다 화법’으로 지지 세력을 키우는 시도는 이 대통령과 매우 유사하다. 이 대통령도 성공하지 못했던 1인1표제를 정 대표는 해냈다”면서도 “서둘렀던 게 문제다. 합당도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당 대표이던 시절부터 모든 것이 순차적으로 맞아떨어졌다. 그때는 민주당이 야당이었고 윤석열·김건희라는 공공의 적이 있으니 친명과 비명(비 이재명)이 매일같이 싸워도 봉합할 명분이 충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차이는 측근의 유무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일 때부터 함께해 온 이른바 ‘성남 라인’이 존재했고, 김현지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 등 측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다”며 “친청을 자처하는 의원들이 있지만 이들을 측근이라고는 볼 수 없다. 김어준·유승민 두 사람이 정 대표에게 영향을 주는 인물로 꼽히지만, 그들조차도 자기 정치에 당 대표를 쓰는 느낌이 든다. 누가 중심이고, 누가 휘둘리는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승부수를 던지지 않는 한 지방선거가 정 대표의 마지막 리더십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 ‘압승’을 끌어낸다면 무너진 리더십을 다지는 건 물론 8월 전당대회 출마 명분까지 얻을 수 있다.

당장은 정 대표가 타격을 받았지만 선거 국면을 통과하면서 과오가 희석되는 흐름에 기대를 건 셈이다.

민주당은 오는 4월 중순까지 모든 지방선거 공천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경선 규칙과 공천 룰 등을 두고 계파 간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권력에는 비판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한 정치권 관계자의 말처럼 반대 여론을 찬성 여론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리더십이 판가름 난다.

시계를 돌려 2024년 4월, 이 대통령 역시 당 대표이던 시절 공천 시즌을 앞두고 ‘비명횡사’ 논란에 휩싸였다. 현역 의원 의정평가 하위 20% 통보를 박은 이는 6명으로 모두 비명계였던 만큼 의원들 대다수가 ‘친명’을 내세워 마케팅을 이어갔다.

이, 비주류서 180석 야당 대표로
지선 앞둔 대표님의 큰 그림은?

공천 갈등은 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고 민주당이 패배했던 2012년 총선이 되풀이될 것이란 당내 우려가 커졌다.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사퇴 요구에 이 대표는 “툭 하면 사퇴 요구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사퇴하면 1년 내내 대표를 바꿔야 한다”며 오히려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친명과 비명 간의 갈등은 “환골탈태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진통”으로 진단했다. 이 대표의 리더십이 총선의 최대 걸림돌로 여겨졌지만, 180석 공룡 야당을 탄생시키면서 여론을 뒤집었다.

정 대표 역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합당 논란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지방선거 승리에 올인하겠다”며 반전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기습 행동으로 당을 흔들지 종잡을 수 없어 잃어버린 신임을 되찾는 것이 지방선거를 앞둔 첫 번째 과제로 여겨진다.

정 대표는 ‘억울한 컷오프를 최소화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11일에는 “공천 과정 전반의 불공정·불합리한 사례를 사전에 점검해 신뢰받는 공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겠다”며 공천신문고 구성 안건을 의결했다.

이날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합당 과정에 여러 가지 내홍을 겪고 걱정을 끼쳐드렸지만 그런 와중에도 할 일은 빈틈없이 해왔다”며 “민주당은 공정한 경선을 통한 공천, 투명한 공천이 지방선거 승리의 요체임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당 대표의 이 같은 의지가 (공천신문고) 제도를 통해서 충실히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이재명 모델’로 노선을 잡았지만 ‘제2의 ○○○’이라는 꼬리표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과감하게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은 이 대통령의 ‘중도 보수’ 전략까지 정 대표가 따라 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 실망한 사람들이 정권교체에 손을 들어줬다. 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 즈음이면 정권 유지든 교체든 국민의 마음속에 새로운 잣대가 세워질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좌우 통합을 이뤄낼 지도자를 원할지, 지금보다 조금 더 강경한 지도자를 원할지는 현 정부에 달려 있다. 그 시대에 맞는, 또 국민이 원하는 사람이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될 것”이라고 봤다.

신선한
뉴페이스?

이어 “이 대통령은 후임자를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미래의 민주당은 당 대표도, 차기 대권주자도 ‘포스트 이재명’이 아닌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며 “이 대통령의 행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 그림자에만 메어서는 민주당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극단으로 치닫는 여야 갈등

지난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설을 앞두고 민생 회복과 국정 안정을 위한 초당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 대표를 오찬에 초대했지만, 약속 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불참을 통보했다.

장 대표는 “(이번 회동이) 부부 싸움하고 둘이 화해하겠다고 옆집 아저씨 불러놓는 꼴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어 “오늘 회동에 가면 여야 합치를 위해 무슨 반찬을 내놨고, 쌀에 무슨 잡곡을 섞었고 그런 것들로 오늘 뉴스를 다 덮으려 할 것”이라며 “대한민국 사법시스템 무너지는 소리를 덮기 위해 여야 대표와 대통령이 악수하는 사진으로 모든 걸 다 덮으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밤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재판소원법’과 ‘대법관증원법’이 국민의힘 반발 속에 여당의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청래 대표는 SNS를 통해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는 국민의힘의 작태에 경악한다”며 “본인이 요청할 때는 언제고 약속 시간 직전에 이 무슨 결례인가. 국민의힘, 정말 ‘노답(답이 없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청와대도 “이번 회동은 국정 현안에 대한 소통과 협치를 위한 자리였다. 그런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데 깊은 아쉬움을 전했다”고 밝혔다. <박>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문재인-이재명 부동산 평행이론

문재인-이재명 부동산 평행이론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제9회전국동시지방선거가 4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호재에도 악재에도 민감한 시기다. 정부 정책이 선거판을 뒤흔들 수 있는 때이기도 하다. 실제 정치권은 선거에 가까워질수록 유권자를 자극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작은 불씨가 승리와 패배를 가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다. 이런 상황에 최근 대통령이 연이어 ‘부동산’ 이슈를 던지고 있다. 부동산, 주식, 세금 등 돈 관련 이슈는 대중의 최대 관심사다. 실생활과 밀접하게 얽혀있어 체감 수준도 크다. 선거가 다가오면 돈을 풀지언정, 세금 등으로 거둬들이는 정책을 자제하는 이유다. 특히 아주 작은 이슈로도 승패가 갈릴 수 있는 상황이라면 세제 정책이나 자산 이슈는 건드려선 안 될 ‘금기’나 다름없다. 잘못 건들면 민심 나락 그중에서도 단연 민감한 부분은 ‘부동산’이다. 우리나라 국민의 자산 구성 자체가 부동산에 편중돼있는 구조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금융자산에 눈을 돌리는 비율이 늘고 있지만 집과 땅, 즉 부동산은 전통적인 ‘선호 자산’이었다. 대부분 국민이 근로소득, 사업소득을 모아 부동산에 투자하고 그 자산을 불려왔다. 지난해 12월 한국경제인협회가 송헌재 서울시립대 교수에게 의뢰한 ‘주요국 가계 자산 구성 비교 및 정책 과제’ 연구용역 보고서가 나왔다. 보고서에는 우리나라의 비금융자산 비중이 주요국 중 가장 높다는 내용이 담겼다. 보고서 내용대로면 우리나라의 비금융자산 비중은 64.5%에 이른다. 예를 들어 전체 자산이 5억원이라면 3억2250만원이 토지나 주택, 산업용 부동산 등 실물자산으로 이뤄졌다는 뜻이다. 국내 가계 자산 중 비금융자산의 비중은 2020년 65.3%에서 2021년 66.8%, 2022년 66.3%, 2023년 65.2%를 기록하고 지난해 소폭 줄었다. 문제는 주요국과 비교해 부동산 쏠림 비율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미국은 32%, 일본은 36.4%(2023년 기준), 영국은 51.6% 정도다. 우리나라가 꾸준히 65%대 전후를 기록하는 것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낮다. 자산의 3분의 2가 부동산에 묶여있다 보니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초유의 관심사다. 여기에 교육열이 더해져 학군에 따라 부동산의 등급이 달라진다. 이른바 상급지로 불리는 지역에 사는 이들과 집값이 상대적으로 낮은 지역에 사는 이들 사이에는 보이진 않지만 분명하게 계급이 존재한다. 문정부 “부동산 실패 인정” 오락가락한 정책에 정권교체 정부는 ‘우상향’하는 집값을 잡겠다고 각종 대책을 내놓는다. ‘발표 날짜+대책’으로 나온 정책은 시장에 충격을 가한다. 다주택자, 1주택자, 무주택자 등 정부가 표적으로 잡은 주체로부터 연쇄적으로 반응이 일어난다. 시장의 반응 속도는 무시무시한 수준이다. ‘부동산은 심리’라는 말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정도다. 문재인정부도 예외는 아니었다. ‘민주당이 정권을 잡으면 집값이 오른다’는 풍문을 현실화했다는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20번이 넘는 부동산 정책은 시장에 상처를 냈다. 연이은 정책에 상처는 곪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는 정도로 상했다. 고름을 빼내야 할 지경에 이르렀을 땐 집값은 이미 정부의 손을 떠난 상태였다. 이때 ‘영끌’ ‘벼락거지’ 등의 부동산 관련 신조어가 쏟아졌다. 부동산 매입에 성공한 이들과 시장에 진입하지 못한 사람을 빗댄 표현들이다. 대출 등 돈을 끌어올 수 있는, 즉 영혼까지 자금을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이 있었고, 그 사이클에 올라타지 못해 상대적으로 ‘거지’가 된 기분을 느끼는 이들이 공존하던 시기였다. 정책이 나올 때마다 시장이 요동쳤고 부동산은 문정부 임기 내내 불안정했다. 그 결과는 정권교체였다.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임기 말까지 40%를 넘나들었다. 역대 대통령이 집권 4~5년 차에 지지율이 20%대로 떨어져 레임덕을 겪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부동산 정책의 실패는 진보와 보수 진영이 10년씩 정권을 차지한다는 ‘10년 주기설’도 깨뜨릴 만큼의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래도 아직 집 문 전 대통령이 지지율은 유지했을지언정 일부 국민에게 ‘실패한 대통령’으로 인식되는 이유가 집권 5년 만에 정권교체를 당했다는 것인데, 그 배경에 부동산이 있던 셈이다. 실제 문 전 대통령은 최근 들어 부동산 실패를 인정하는 발언을 내놓고 있다. 다른 정책은 몰라도 부동산 정책만큼은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자인한 것이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 9일 유튜브 채널 ‘평산책방’에 올라온 ‘평산책방 시즌2’ 예고 영상에서 이렇게 말했다. 탁현민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과 경제 관련 책에 관한 대화를 나누던 도중이었다. 평산책방은 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경남 양산시 하북면에서 운영 중인 평산책방과 관련한 콘텐츠를 올리는 채널이다. 탁 전 비서관은 이날 방송에서 “부동산이 나의 가장 아픈 손가락”이라는 문 전 대통령의 과거 발언을 언급했다. 그러자 문 전 대통령은 “일단 실패했다고 인정해야죠”라면서 “우리가 부동산 정책만큼은 실패했다”고 말했다. 문 전 대통령은 재임 당시에도 부동산 문제를 아쉬웠던 점으로 꼽은 바 있다. 2021년 4주년 기자회견에서 그는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겠다는 그 목표를 이루지 못했고 또 지난 보궐선거에서도 그에 대해서 아주 엄중한 심판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그 여파를 직접 겪은 당사자다.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대결에서 0.73%p로 졌을 때 부동산 문제가 영향을 미친 것이다. 윤 전 대통령과 이 대통령 사이의 표 차이는 23만표에 불과했다. 서울에서 예상보다 적은 표를 얻은 점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는데 그 배경에 집값이 있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대선 이듬해인 2023년 8월 패배 원인을 담은 보고서를 내놨다. 민주당이 짚은 주요 패인은 문정부 당시 오락가락했던 부동산 정책이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는 녹서(주요 정책 방향에 대한 조직 구성원들의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일종의 대화록) 형태의 <민주당 재집권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다가오는 선거 변수 을지로위원회는 녹서에서 문정부 당시 부동산 정책에 일관성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부족한 점이 많았지만 철학과 원칙은 버리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반면 “문정부는 집값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면서 세제 강화가 오히려 집값 상승의 원인이며 징벌적 조세에 해당한다는 비판이 나오자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비판했다. 그 결과 시중의 돈이 서울과 수도권 부동산 투자로 쏠리고 서울 강남의 ‘똘똘한 한 채’ 현상을 부추겼다는 설명이다. 이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부동산 정책에 ‘가급적 손을 대지 않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지난해 2월 이 대통령은 경제 전문 유튜브 채널인 ‘삼프로TV’에 출연해 “내가 돈 벌어서 비싼 집에 살겠다고 하는 1가구 1주택 실거주는 제약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다주택자에 관한 질문에는 “세금을 열심히 내면 된다”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막을 수 없고, 대신 세율은 조금 비싸게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발언은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답습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최근 이 대통령은 ‘SNS’로 연일 부동산 정치를 하고 있다. 부동산 안정화에 대한 의지를 SNS 글로 피력하고 있는 것이다.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를 종료하는 내용이 불씨가 됐다. 지난달 23일 양도세 중과 유예 연장 여부를 둘러싸고 시장에서 엇갈린 전망이 나오고 있었는데 이 대통령이 SNS에 글을 올려 매듭지은 게 시작이었다. 지난 3일에는 “상식적이고 번영하는 나라를 위해 망국적인 부동산 투기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잡을 것” “높은 주거비용으로 결혼·출산을 포기하는 수백만 청년의 피눈물은 안 보이나” “돈이 마귀라더니, 설마 마귀에게 최소한의 양심마저 빼앗긴 것은 아닌가” 등으로 발언 수위를 높였다. SNS 통해 다주택자 경고 5월9일까지 변화 있어야 이재명정부는 임기 초부터 대출을 조이고 공급을 예고하는 방식으로 집값 잡기에 나섰다. 서울 전 지역과 경기 일부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는 등 초강경 대책도 내놨다. 집값은 정부의 정책 발표 이후 잠시 주춤하다가 다시 상승곡선을 그렸다. 한쪽을 누르면 다른 한쪽이 튀어나오는 ‘풍선 효과’도 일어났다. 한 지역을 규제하면 다른 지역의 집값이 오르는 일이 반복된 것이다. 결국 이 대통령이 SNS를 통해 직접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일단 정부는 이 대통령의 의지를 담은 정책을 내놨다. 다주택자에게 주고 있던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 혜택을 예정대로 오는 5월9일 종료하기로 한 것. 동시에 혼선을 줄이기 위한 출구전략도 내놨다. 시장 충격을 최소화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정부는 이 정책을 중심으로 한 일부 다주택자의 매물이 시장에 나와 공급효과로 이어지길 기대하고 있다. 정부는 세금 부과는 예정대로 하되 다주택자에게 퇴로를 열어줬다. 이제는 시장의 몫이다. 5월9일까지 매물이 얼마나 나오는지를 봐야 한다는 뜻이다. 공교롭게도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가 끝나는 시기는 지방선거(6월3일)를 한 달여 앞둔 때다. 민주당은 이정부 출범 이후 처음 진행되는 대형 선거에서 압승을 거둬 국정 동력에 부스터를 달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국민의힘은 지방 권력까지 빼앗기면 ‘식물 야당’이 될 것이라는 위기감에 봉착해 있다. 양당 모두 사활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다. 주식시장 등에 업고? 이 대통령은 부동산 정책과 관련해 “시장을 이기는 정부도 없지만 정부를 이기는 시장도 없다” “비정상을 정상화할 수단과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등의 강경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정부의 규제가 투기 바람을 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피력한 것이다. 과거와 달리 돈의 흐름이 주식시장으로 몰리고 있는 점도 이 대통령으로선 든든한 지원이 될 수 있다. 앞서 문정부는 시장에 졌는데, 이정부는 이길 수 있을까?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