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특집 대담> 박득훈이 보는 지금 국민의 시계

“젊은 세대에 미안하고 죄송하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2024년 12월3일, 대한민국이 뒤집혔다. 대통령의 권한이라는 명목으로 자행된 행위는 국민의 시계를 40여년 전으로 돌려놨다. 그 시절 피와 땀, 그리고 눈물로 민주주의를 부르짖었던 기성세대와 아이돌 응원봉을 든 젊은 세대가 거리로 나왔다. 이후 새 정부가 출범했고 8개월이 흘렀다. 지금 대한민국호는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주가는 코스피 5000이라는 전인미답의 고지를 밟았는데, 2030세대는 일자리를 찾아 헤매고 자영업자는 폐업을 걱정한다. 한쪽에서는 환호성이, 또 다른 쪽에서는 곡소리가 나는 형국이다. 위정자들은 통합과 화합을 외치지만 정작 국민의 마음에는 크게 와닿지 않는 듯하다.

빈부 격차
핵심 뿌리

2024년 12월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기습적으로 선포한 비상계엄은 대한민국호의 뱃머리를 삽시간에 반대 방향으로 돌려 버렸다. 민주화에 대한 국민의 열망이 정치적으로 실현된 지 불과 30여년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안 의결, 윤 전 대통령의 공식 해제로 사태는 6시간 만에 종결됐지만 한국 사회에 남긴 상흔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극단에 치우친 정치 세력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그 가운데 일부는 젊은 세대였다. 일부일지라도 과거였다면 민주화의 깃발을 들고 휘둘렀을 젊은 세대의 ‘우경화’는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진영 논리에 따른 정치 갈등은 성, 세대, 지역 갈등으로 확산했다. 시간이 갈수록 갈등 수위는 임계점에 이르고 있다.

교회개혁실천연대 고문인 박득훈 목사는 현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갈등의 원인을 개인이 아닌 구조에서 찾아야 한다고 진단했다. 사회와 경제 성장이 둔화하면서 축적된 자본주의의 모순이 분노로 치환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의 갈등이 정체성의 갈등으로 세분화하는 현상에도 주목했다.

지난 3일 박 목사의 자택에서 그를 만났다. 인터뷰 내내 목소리는 단호했지만 답변은 조심스러웠다. 진보 진영에 대해 비판할 때는 ‘내부 총질’로 비칠까 염려했다. 인터뷰 마지막 즈음에 이르러서는 자기 고백에 가까운 말이 이어졌다. 기성세대로서 젊은 세대를 향해 “미안하다, 죄송하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박 목사는 현재 사회 상황에 대해 “비상계엄 실패에 따라 새로운 정권이 수립되고 극우 세력이 전 지구적으로 확산하는 상황에서 한국 사회와 민주주의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모색하는 과정에 있다”고 설명했다.

또 “비상계엄 사태를 거치면서 K-민주주의에 대한 자부심이 생긴 듯하다.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도 극우 세력에 휘둘리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시민의 힘으로 민주주의를 지켜냈다는 자부심, 동시에 우리가 피와 눈물로 가꿔온 민주주의가 언제든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경각심을 갖게 됐다”고 덧붙였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변화한 보수층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조갑제씨나 정규재씨 같은 보수의 오피니언 리더들이 비상계엄 사태 발생 이후 윤석열정권이나 극우 세력의 정치적 행태에 대해 굉장히 비판적인 태도를 보인다. 또 진정한 민주주의는 어때야 하는가 하는 내용의 발언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상계엄 이후 사회 변화
2030세대 보수화 우려돼

이어 “현재 60%에 이르는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율도 세부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율(40%대 전후)보다 높게 나타나는데, 이는 그동안 민주당 정권을 격렬하게 반대했던 사람 가운데서도 이재명정부가 지향하는 실용주의적 노선을 긍정하고 기대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이 또한 비상계엄 이후 나타난 변화”라고 전했다.

박 목사는 비상계엄, 대통령 탄핵 등 대형 정치 이슈를 거치면서 극우 세력의 목소리가 커진 점, 그 극우 세력에 젊은 세대가 일부 합류하고 있는 현상을 우려했다. 실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 이후 일부 그의 지지자들이 법원에 난입해 기물을 파손하는 등의 행위를 한 이른바 ‘서울서부지법 사태’의 가해자는 대부분 20~30대였다.

박 목사는 “전수조사를 해본 건 아니기 때문에 정확히 판단할 순 없지만 과거보다 많아진 건 분명하다. 이전부터 젊은 층이 보수화되는 그 흐름이 있었다. 무시할 수 없는 한국 사회의 변화”라면서 “젊은 보수가 생각이 없다거나, 어리석다거나, 지나치게 이념적이라고 비판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충분히 공감되는 부분이 있다”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박 목사는 젊은 세대가 보수화하는 문제의 배경을 진보 진영에서 찾았다.

그는 “진보 진영은 그동안 서민과 중산층 이하의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것처럼, 그들의 편인 것처럼 수사적 표현을 해왔다. 하지만 실제로 그들은 엄청난 기득권을 누리면서 정책적인 면에서는 큰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고 서민에게 굉장한 실망감, 배신감을 안겼다”며 “요즘 젊은이들이 보수 진영으로 갔다는 것은 진보에 대한 경종”이라고 꼬집었다.

보수화된 젊은 세대를 향해 손가락질하는 태도를 주의해야 한다고도 지적했다.

박 목사는 “(보수화된) 젊은이들을 생각이 없다는 식으로 비판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오히려 진보가 어떻게 (그들을) 실망하게 했길래 그들이 다른 길로 갔는지를 성찰해야 한다. 그동안 인류 역사를 보면 젊은 사람들은 대체로 세상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고 앞장섰다. 그런 젊은 사람들이 어째서 세상을 바꿀 생각을 하지 않고 기존 세력을 지지하는 흐름으로 바뀌었는지를 생각해 봤을 때 진보는 책임을 피해갈 수 없다”고 강조했다.

수사적 표현
“속지 않는다”

정치권에서 비주류 취급을 받던 극우 세력이 서구 유럽에서는 주류로 치고 올라가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처럼 세계를 상대로 ‘큰소리’치는 지도자가 늘어난 것도 현 상황과 궤를 같이한다고 설명했다. 진보 진영의 ‘우아하고 듣기 좋은’ 수사적 표현이 오히려 대중의 불신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박 목사는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고 할 순 없지만 현재 우리 사회에 일어나고 있는 성, 세대, 지역 갈등의 뿌리를 따라가 보면 빈부격차가 나타난다. 물론 빈부격차를 해결하면 사회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느냐 하면 또 그건 아니지만 가장 중요한 뿌리를 뽑아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문제의 원인을 빈부격차에서 찾았다.

그는 “자본은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이용하는 게 아주 많다. 예를 들어 여성 노동자를 싸게 고용하면 이윤이 커진다. 여성의 인품, 인격, 능력을 평가절하하는 게 자본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여성과 남성의 갈등이 증폭되고 강화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눈여겨볼 대목은 자본이 지닌 영향력이 지나치게 커지면서 노동 계급이 약화했고 그 빈자리에 다양한 갈등이 들어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계급 문제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저항의 크기는 약해졌고 그 대신 여성 문제나 성 소수자 문제 등 이른바 정체성 문제라고 불리는 다양한 갈등이 분출했다”고 부연했다.

박 목사는 이른바 ‘눌리고 있는’ 사람들의 분노가 상대를 상처 입히는 언행으로 나타나고 서로를 배척하는 ‘대혐오의 시대’로 이어진다고 짚었다.

그는 “자본주의가 한참 성장하다가 버벅거리기 시작할 때 모순이 극대화된다. 문제는 그 모순을 정당화하는 세력이 정치적 기득권을 가지고 있을 때 나타난다”며 “본인들은 여러 면에서 박탈을 겪고 있는데 기득권은 강력한 세력을 유지하고 있다. 솔직히 고통당하는 처지에서 기득권의 정치 성향이 진보인지 보수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모두 기득권 세력”이라고 말했다.

또 “국민이 정권교체를 택했다는 것은 오랫동안 박탈당해 무기력해진 상황에서 변화를 기대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기대했던 이들이 바꿔주는 척하면서 자기 이익만 챙기고 있으면 국민은 기댈 곳이 없다. 외롭고 고통스럽고 분노가 치민다. 누군가를 두들겨 패주고 싶은 감정적인 아픔이 축적된다”고 강조했다.

더 큰 문제는 이 분노를 이용하려는 지도자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동시에 이런 지도자들은 약자 간의 혐오를 부추긴다고 비판했다.

개인 아닌
사회 문제

박 목사는 “트럼프 대통령 같은 경우엔 너희들이 이렇게 고통을 겪고 있는 건 불법 체류자 때문이다. ‘저 인종, 저 저차원적인 인종이 와서 당신들(백인)의 일자리를 빼앗아 간 거야’라고 규정해 버린다”고 예시를 들었다.

실제 일자리가 줄어드는 건 자본주의의 구조적 한계에서 비롯된 문제인데 이를 ‘갈라치기’로 이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왜 사람들이 트럼프 대통령이 내놓는 메시지에 귀 기울이는지를 들여다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위 말하는 진보 지식인이 분노한 대중을 향해 제대로 된 설명을 못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는 “노골적이고 직선적이며 때론 미치광이처럼 내뱉는 언행이 대중에겐 솔직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카리스마를 느끼고 카타르시스를 준다. 대중은 트럼프 대통령이 엘리트 정치인을 혼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대통령이 혐오 언어를 퍼트리면 기꺼이 공유하고 동의하고 확산시키는 것이다. 그에 대한 부끄러움도 없다. 그 언어가 우아한 언어를 쓰는 위선에 대한 강력한 도전, 저항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결국 진보가 대중의 분노를 불식하고 달래주지 못하는 틈을 트럼프 대통령이나 전광훈 목사 같은 사람이 파고들었다는 뜻이다. 너무 화가 나는데 누구를 때려야 할지 모르는 사람, 즉 누군가에게 분풀이하고 싶지만, 대상을 명확히 규정하지 못하는 사람의 감정적인 고통을 이들이 포착했다는 것이다.

박 목사는 “그들(진보 진영)은 진짜로 고통당한 사람들에게 가지 않았다. 말 그대로 머리와 언어만 진보적이고 몸은 진보적이지 않다. 좋은 집에서 누릴 거 다 누리고 사는데 서민과 중산층 이하의 사람들을 위한 정책을 만들 수 있겠나. 부동산과 주식을 잔뜩 보유하고 있는데 그에 반하는 정책을 쓸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몸도 마음도 약자와 함께 있지 않기에 진정한 의미에서 그들을 위한 논리와 정책을 만들 수 없다. 서민을 위하는 약자의 편이라는 수사적 언어만 사용할 뿐 실질적인 정책에 있어서는 사실상 보수 진영과 큰 차이가 없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사회, 경제, 정치적으로 박탈을 겪고 있는 사람들은 더 이상 그 ‘멋진 말’을 믿지 않는다”고 일갈했다.

박 목사는 사회 변화의 원인을 구조에서 찾아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빈부격차, 즉 경제 문제에서 대부분 갈등이 야기되는데 그 해결책을 개인의 노력에서 찾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본주의의 한계가 드러났고 이 과정에서 나타난 모순이 갈등의 ‘진짜’ 원인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박 목사는 “앞선 세대 사람들이 탐욕적이고 이기적이어서, 자기 욕심만 차려서 잘 먹고 잘 살았던 게 아니다. 또 젊은 세대가 노력하지 않아서 못 먹고 못 사는 게 아니다. 똑같이 열심히 살아왔고 살고 있다. 하지만 현재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는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지 않느냐”고 진단했다.

진보 진영에 대한 실망
자본주의의 구조적 한계

그는 “기성세대는 한국 자본주의가 급성장 혹은 꾸준히 성장하는 흐름 속에서 열심히 살았다. 근로소득으로 집을 살 수 있었고 애를 낳아도 크게 불안하지 않았다. 사회적 상승도 어느 정도 가능했지만 지금은 성장이 멈춘 포화 상태”라며 “그러니 젊은 세대로선 아무리 몸부림쳐도 불안한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다. 집을 구할 가능성도 안 보이고 애를 많이 낳아 키울 자신도 없다. 미래가 불확실하다. 자본주의의 모순과 병폐가 극대화된 시기에 사는 상황”이라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결국 위정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짚었다. 동시에 위정자를 선택하는 국민의 역할도 강조했다.

박 목사는 “위정자가 권한을 많이 갖고 있으니까 책임의 무게는 훨씬 무겁다. 영향력도 크기 때문에 문제가 생겼을 때 혼나야 할 사람은 지도자가 맞다. 그렇다고 해서 민중이 가만히 있어도 되냐, 하면 그렇지 않다. 민중이 들고일어나 위정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올바른 사람을 선택해야 하고 현실을 직시하며 공부하고 토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깊고 여유로운 토론을 하지 않는 세대가 됐다. 정확히는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사람들이 경쟁에 시달리느라 정서적으로 너무 피곤하다. 너무 피곤하면 자극적인 쾌락, 짧은 즐거움, 웃음, 행복에 매달리게 된다. 길게 뭘 생각하고 누리기엔 현실이 너무 각박한 것이다. 사회가 사람들에게 여유를 주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진보 진영이 대중의 신뢰를 다시 얻을 수 있느냐는 질문에 박 목사는 매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이 한창이던 시절 외국 유학을 하던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면서 ‘부채 의식’을 언급했다.

질문에 답변하기에 부담스럽다는 말도 건넸다. 그러면서도 그는 현 시점에서는 자신을 내던지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

박 목사는 “요즘에는 사회적 약자를 위해, 역사의 진보를 위해, 사회 변혁을 위해 자신의 어떤 명예나 정치적 권력, 세력화 등을 염두에 두지 않고 자기 몸을 던지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며 “기득권을 취하려고 생각하지 말고 ‘그냥 던지고 간다’는 마음으로 진보 운동에 투신할 사람이 있어야 한다. 누군가가 먼저 그 길을 가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그는 “진보 진영은 억울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현재 대중이 보는 시각은 이들이 기득권을 위한 운동을 했다는 것이다. 현실이 어떻든 대중이 어떻게 느끼느냐도 굉장히 중요하다. 실제 그렇지 않더라도 대중이 그렇게 느끼고 있다면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걸 돌파하지 못하면 대중을 이끌 수 없고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설명했다.

신중하면서도 단호한 답변을 이어가던 박 목사는 젊은 세대를 향한 메시지를 부탁하는 질문에 잠시 머뭇거렸다. 처음 나온 말은 “미안하다, 그리고 죄송하다”였다.

내던지는
지도자 필요

그는 “젊은이들이 이렇게 힘겹게 사는 상황, 삶을 포기하거나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무기력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체제를 누가 만들었나, 누가 물려줬나 하면 기성세대다. 누군가는 바꾸려 노력했지만 안 됐고 누군가는 체제 유지를 지지했다. 그 무기력함에 대해, 대세를 뒤집지 못한 데 대한 책임감이 크다. 미안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기성세대가 가진 게 젊은 세대에 비해 많지 않나. 이것을 적극적으로 나눠서 젊은 세대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길을 기성세대가 걸어갔으면 한다. 나도 미력하나마 그 흐름에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러니 젊은 세대도 기성세대를 좀 용서해주고 불쌍히 여겨서 서로 마음을 합해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갔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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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양정원 남편 연루 주가조작 ‘리니언시 1호’ 사건 전말

[단독] 양정원 남편 연루 주가조작 ‘리니언시 1호’ 사건 전말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코스닥 상장사 듀오백 주가조작 사건이 현직 경찰 유착 의혹으로 번졌다. 시세조종 사건으로 시작됐던 수사가 “주가조작 세력의 뒤를 경찰이 봐준 것 아니냐”는 의혹으로 확대된 것이다. 경찰은 관련 인사들에 대한 인적 쇄신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건은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부가 직접 보도자료까지 배포할 정도로 이례적인 규모의 사건이다. 검찰은 자본시장법상 ‘시세조종 리니언시(자진 신고 감면)’ 제도를 활용해 수사에 착수했다. 약 3개월 만에 시세조종 조직의 구조와 자금 흐름, 경찰 상대 청탁 정황까지 포착할 수 있었다. 주가조작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현금 30억원의 주인이자, 투자자로 알려진 차모씨가 자진 신고하면서 수사에 탄력을 받았다. 검찰은 이를 ‘시세조종 리니언시 1호’ 사건으로 지칭했다. 자진 신고 검찰 수사 결과에 따르면, 이번 사건은 자칭 영화 <작전> 실제 모델이라고 주장해 온 시세조종 전문가 김모씨(이하, 작전주 김씨)가 기획한 것으로 파악됐다. 여기에 대신증권 부장 출신 전모씨, 유명 인플루언서 양정원의 남편으로 알려진 이모씨, 전직 축구선수 김모씨까지 가세한 조직형 범행이었다. 김씨는 과거 승부조작을 주도해 선수직을 박탈당했다. 이들은 코스닥 상장사 특정 종목을 타깃으로 삼아 차명계좌와 대포폰, 현금 30억원 등을 동원해 본격적인 시세조종에 나섰다. 검찰은 실제로 현금 30억원이 담긴 캐리어가 대신증권 사무실로 전달되는 장면까지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코스닥 상장사 듀오백 주식 거래를 둘러싸고 30억원대 현금 이동과 차명계좌 운용, 반대매매, 투자금 반환 분쟁 등이 얽힌 정황이 담긴 내부 조사 자료가 확인됐다. 지난 3월 <일요시사>가 단독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여행용 캐리어에 담긴 현금 전달부터 다수 명의 계좌 개설, 투자자문사와의 주식 양수도 계약, 수십억원대 자금 이동, 이후 손해배상 소송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날짜별로 상세히 기재돼있다. 본지가 확보한 ‘조사 기초자료’에 따르면 사건의 출발점은 지난해 12월19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서울 노원역 인근 한 카페에서 차모씨는 “코스닥 상장사 씨유박스 만기 전환사채(CB) 70억원을 인수할 수 있으며, 20억원 상당의 권리를 제공할 수 있다”는 취지의 제안을 받았다. 그러나 이후 구조가 변경되며 70억원 전체 인수가 아닌 일부만 인수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이에 차씨는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일단락됐다. 이후 논의는 듀오백 주식 거래로 이어졌다.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22일 서울 강동구 한 카페에서 차씨는 “듀오백 2대 주주가 보유한 200만주를 주당 2700원, 총 54억원에 인수할 수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이어 “54억원 규모 인수 자금과 별도로 30억원의 주식 매수 자금을 제공하겠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들은 것으로 기록됐다. 차씨의 지인 문모씨는 2024년 8월경부터 김씨의 사무실을 오가며 관련 정보를 듣고 있었다. 앨터스투자자문이 보유한 듀오백 보통주 200만주를 확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내용도 적혀 있다. 실제 현금 이동은 같은 달 27일 진행된 것으로 나타난다. 자료에는 지난해 12월27일 오후 4시경 대신증권 일산WM지점에서 전직 야구선수 김모씨와 문씨가 대신증권 전 부장 전모씨 및 작전주 김씨에게 30억원을 전달했다고 기재돼있다. 형태는 ‘여행용 슈트케이스 및 쇼핑백’으로 적시됐다. 자금을 4인 명의 계좌로 나눠 입금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또 텔레그램을 통해 계약자 4인의 명의로 전씨에게 일체 권한을 위임한다는 위임장 파일이 전달됐으며, 작전주 김씨의 부인 송씨·양정원의 사촌동생 김모씨와 소모씨, 그리고 이모씨 등 명의로 증권계좌를 개설하기 위해 휴대전화 4대도 이들에게 직접 전달한 것으로 적혀 있다. 30억 중 7억만 돌려받은 현금 주인 폭로 반대매매 발생 후 투자금 손배소로 번져 자료에는 “대신증권에서는 현금 보관이 불가능하다고 해 작전주 김씨가 직접 수령해 이동했다”는 대목도 나온다. 이후 자금은 금융기관을 통해 입고됐다. 지난 2025년 1월3일 새마을금고 영등포본동지점에서 차명주 A씨의 명의로 현금 30억원이 입금됐고, 현금 확인에만 4시간이 소요됐다는 내용이 기재돼있다. 또 문씨에게 은행 입고 사실을 전달했다는 기록도 포함됐다. 본격적인 계약은 지난 1월14일 진행됐다. 자료에 따르면 이날 방배동 스타벅스에서 앨터스투자자문과 계약을 위한 사전 미팅이 진행됐다. 당시 최초 54억원 지급 계획과 관련해 양정원 남편 이씨가 “어렵다”는 취지로 답했고, 30억원 중 일부 자금으로 앨터스투자자문이 보유한 듀오백 주식 150만주를 우선 계약하는 방향으로 정리됐다는 내용이 담겼다. 같은 날 앨터스투자자문 사무실에서는 150만주에 대한 계약이 체결됐다. 자료에는 4명의 차명주 명의로 각각 37만5000주씩 계약이 진행됐다. 이씨는 양정원 사촌동생 소씨의 대리인 자격으로, 야구선수 김씨는 차씨의 부인 송씨 대리인 자격으로 참여했다고 적혀 있다. 계약 상대방은 앨터스투자자문 회장 유영근이다. 이 과정에서 보유 주식 수량이 부족해 추가 매수가 필요하다는 판단이 있었고, 계약 체결일은 2025년 1월15일 자로 작성됐다. 또 앨터스투자자문 고객 4인이 보유한 총 49만5000주에 대해 차명주 A씨와 별도의 양수도 계약도 체결된 것으로 정리돼있다. 실제로 자금 이체도 이뤄졌다. 같은 해 1월15일 A씨는 150만주 계약금 명목으로 각 5062만5000원씩 총 2억250만원을 앨터스투자자문에 송금했다. 같은 날 49만5000주 계약금 10%에 해당하는 총 1억3365만원도 지급됐다. 세부 내역에는 B씨 3만5000주 945만원, C씨 8만주 2160만원, D씨 15만주 4050만원, E씨 23만주 6210만원 등이 기재됐다. 이들의 수법은 전형적인 주가조작 패턴을 따른다. 복수 계좌를 활용한 이른바 ‘배수 계좌’ 구조를 통해 물량을 분할하고 반복 매매를 진행했다. 배수 계좌주는 전 축구선수 김씨로 알려졌다. 통정매매와 가장매매, 고가 매수 주문 등을 반복하며 듀오백 주가는 단기간 급등했다. 1900원대였던 주식은 장중 4000원 이상까지 치솟았고, 거래량도 최대 400배 가까이 폭증했다. 검찰은 이들이 최소 200억원 이상 규모의 시세조종 거래를 벌여 14억원 이상의 부당이득을 챙긴 것으로 보고 있다. 또 1월17일에는 대신증권 차명주 김씨의 계좌에서 양정원에게 2억원이 송금됐고, 같은 날 소씨 계좌에서는 문씨에게 1억원이 송금됐다. 이후에도 특정 인물의 지시에 따라 수억원 단위 자금이 지속적으로 이동했고, 일부 자금은 개인 계좌로 빠져나가기도 했다. 이후 주가 흐름과 반대매매 문제가 불거진 것으로 보인다. 자료에는 2025년 3월경 반대매매가 발생했다고 기재돼있다. 이후 차씨가 30억원 반환을 요구했고, 이씨 측은 듀오백 인수 구조와 120억원 규모 코인 자금, 향후 주가 목표 등을 언급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다. 특히 자료에는 “목표가 8000원”, “최종적으로 1만7000원” 등의 표현이 등장한다. 자료에는 차씨가 투자금 반환을 요구하며 법적 대응 가능성을 언급했고, 이후 관계자들 사이에 갈등이 심화됐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뚜렷한 줄기 나왔는데 놓아준 경찰? 유착 정황 포착···인적 쇄신으로 끝? 실제로 2025년 3월14일 반대매매로 주가가 무너지면서 작전은 사실상 실패로 돌아갔다. 이후 30억원의 실소유를 둘러싼 분쟁이 본격화됐다. 차씨는 “30억원은 자신의 자금”이라며 반환을 요구했다. 자금이 자신의 동의 없이 이동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제보에 따르면, “이씨 측에서 차씨에게 반환한 현금은 7억원가량”이라며 “23억을 못 돌려받으면서 차씨가 반환을 요구하면서 신고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대신증권 내부 감사도 진행된 것으로 나타난다. 2025년 5월 대신증권 감사실에 관련 진정서가 접수됐으며, 전씨에 대해 정직 6개월 조치가 내려졌다는 내용이 포함돼있다. 자료 마지막 부분에는 차씨가 대신증권 외 2명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는 내용이 적시돼있다.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핵심 인물이자 양정원의 남편 이씨가 서울 강남권 경찰 관계자들에게 각종 형사사건 무마 청탁을 시도한 정황을 포착했다. 검찰은 이씨가 과거 양정원이 연루된 사기 사건 해결을 부탁하며 현직 경찰관들에게 향응과 금품을 제공한 혐의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실제 공소 사실에는 경찰관들에게 유흥주점 접대를 제공하고 금품까지 건넨 내용이 포함됐다. 수사선상에는 서울 강남경찰서 소속 경찰관들이 오른 것으로 알려졌으며, 검찰은 강남경찰서 압수수색까지 진행했다. 이어 서울경찰청은 강남서의 수사·형사과 인력을 전원 교체하기에 이르렀다. 수사라인 교체는 강남서 소속 송 모 경감이 이씨로부터 청탁을 받았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이뤄졌다. 서울경찰청은 지난 12일 오후 상반기 경정급 정기인사를 단행했다. 강남서 신임 수사 1과장 자리에는 경북경찰청에서 전입해 온 손재만 경정이, 수사 2·3과장은 경기남부경찰청에서 전입해 온 유민재·채명철 경정이 맡는다. 형사 라인의 경우 1과장에는 김원삼 서울 강서경찰서 형사1과장이, 2과장에는 염태진 서울 용산경찰서 형사과장이 각각 자리했다. 박성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은 전날(11일) 기자간담회에서 “유착 의혹과 관련 강남권 수사 부사에서 경정·경감급에 대한 근무 기강을 포함한 내부 평가를 고려해 순환 인사를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강남서 수사 라인 물갈이는 2019년 ‘버닝썬’ 사태 후 역대 최대가 될 전망이다. 실제로 강남서는 최근 강남권 외 경찰서 수사 경력자 등을 지원 조건으로 하는 ‘수사·형사과 보직 공모’를 경찰 내부적으로 공고했다. 경감을 대상으로 한 두 자릿수 모집이다. 버닝썬 후 최대 물갈이 공고에 따르면 팀원·팀장을 구분해서 모집하지만 강남권 경찰서 5곳(강남·서초·송파·방배·수서) 이외 26개 관서에서 근무 중인 경감이어야 한다는 게 필수 조건으로 내걸렸다. 이씨의 주가조작 혐의를 수사하던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부는 수사 과정에서 그가 평소 친분이 있던 경찰청 소속 A 경정을 통해 당시 강남서 수사1과 팀장이던 송 경감에게 사건 무마를 청탁하고, 룸살롱 접대 등 향응을 제공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