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편의 제왕’ 입증한 제임스 카메론 감독

  • 박형준 기자 ctzxp@ilyosisa.co.kr
  • 등록 2025.12.29 13:55:38
  • 호수 156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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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이간의 역사
<아바타3> 생생 리뷰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아바타: 불의 재>는 적절한 장면 구성·편집으로 전편들을 다시 기억하도록 도와준다. 지금까지 제시됐던 제임스 카메론 감독 작품 세계의 특성도 밀도 있게 반영됐다. 압도적인 영상미와 화려한 회전 연출은 여전지만, “신선하지 않다”는 일각의 평가도 나온다.

지난 17일 개봉한 <아바타: 불의 재(이하 아바타3)>는 <아바타: 물의 길<이하 아바타 2)> 개봉 이후 3년 만에 공개됐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에 따르면, <아바타 2>와 <아바타 3>은 원래 하나의 작품처럼 기획됐다. 그래서 1편 개봉 이후 13년 만에 공개됐던 <아바타 2>는 “대립 구도도 1편에 비해 약해졌고, 후반부 전투 장면도 규모가 지나치게 작아졌다”는 일각의 평가를 받았다.

3년 만에

실제로 <아바타 2>의 후반부는 카메론 감독이 구상했던 서사의 중간에 해당했던 것이다.

<아바타 3> 첫 장면은 <아바타 2> 마지막 장면과 곧바로 연결된다. 이는 제이크 설리(샘 워딩턴 분)·네이티리(조 샐다나 분) 가족이 <아바타 2>에서 겪었던 비극을 다시 기억하게 해준다. 영상미와 관객의 기억 상기를 동시에 추구한 첫 장면을 통해 <아바타 2>와 <아바타 3>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장면 구성과 편집을 통해 <아바타 1>과 <아바타 2>를 다시 기억하게 할 뿐만 아니라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단서가 서서히 흘러나온다. 그러면서도 <아바타 3>은 독자적인 영화로 느껴질 수 있게 구성돼 전작들을 감상하지 않은 관객도 큰 무리 없이 작품을 즐길 수 있다.


속편이 연이어 나오거나 시네마틱 유니버스화된 시리즈가 갖는 운명적인 단점을 감독이 강하게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그에 대해 “속편의 제왕답게 속편 감상의 피로도를 줄이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아바타 3>을 비롯해 시리즈 전반엔 카메론 감독의 성향이 진하게 묻어나온다. 카메론 감독은 영화 <타이타닉> 제작을 계기로 해양 탐험을 시작했다. 당시 카메론 감독은 1인 잠수함을 타고 세계에서 가장 해저가 깊은 마리아나 해구 밑바닥까지 탐사했다.

이후 카메론 감독은 해양환경 보호 관련 주장을 강하게 내세운다. <아바타 2>에선 일본의 포경 산업을 비판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장면이 나오고, <아바타 3>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보여준다.

판도라 행성을 침략한 지구인 중 군인·용병의 비중이 높아 착각할 수 있는 점이 있다. <아바타 3>에 등장하는 지구인들은 RDA란 거대 민간기업의 고용인들이다.

교묘한 서사 연결·편집 무리 없는 감상
계속 이어지는 거장 특유의 서사 구조

RDA 고용인은 판도라 행성에 대한 내적 이해 없이 중남미 아메리카를 침략한 스페인의 콩키스타도르와 아프리카를 침략·분할 통치한 유럽 제국주의를 연상시킨다. <아바타 3>에선 RDA가 판도라 행성 내부 갈등을 활용하는 양상으로 이어진다.

이는 카메론 감독의 일관적 성향이다. <에이리언 2>를 연출할 때엔 ‘웨이랜드 유타니’란 대기업을 등장시켰다. 1편을 제작한 리들리 스콧 감독도 웨이랜드 유타니를 통해 영감을 받아 <프로메테우스>와 <에이리언: 커버넌트>의 주요 설정으로 활용할 정도로 거대 기업의 개입은 중요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터미네이터> 시리즈에선 ‘사이버다인 시스템스’가 악의 축으로 자리 잡는다.

또 카메론 감독은 이질적 존재에 대해 갖는 다양한 감정을 영화 소재로 즐겨 사용한다. <터미네이터> 1편과 2편에선 이질적 존재 간 감정 교류가 작품의 핵심이었다. <에이리언 2>에선 합성 인조인간이 인간의 우군으로 등장한다.

<아바타>에선 인간 출신 나비족 지도자인 주인공 제이크 설리에게 마치 전설이라도 되는 듯 ‘외부 구원자’ 서사를 활용해 무게감을 부여한다. 가족 구성에도 이질적 존재가 포함돼 작품 전체를 좌우한다.

<아바타> 시리즈 전반을 좌우하는 설정도 이 감정이다. 이 감정은 외부 구원자가 혼탁한 내부 질서를 수호하는 데 영향을 준다. <터미네이터 1>에선 미래에서 온 카일 리스와 사라 코너 사이에 사랑이 싹터 예수 그리스도 격인 외부 구원자 존 코너가 탄생한다.

<터미네이터 2>에선 존 코너와 T-800이 존재를 초월하는 우정을 느낀 후 T-1000의 위협을 극복한다. 제이크 설리는 <아바타 1>에서 이미 나비족 최고의 영웅 토루크 막토로 등극했다. <아바타 3>에선 이질적인 존재가 작품에 미치는 영향력이 더욱 강력해졌다. 카메론 감독의 서사 구조가 더욱 강해진 것이다.

<아바타 3>에 대해선 호불호가 갈리고 있다. 압도적인 영상미와 화려한 회전 연출은 여전하다. 하지만 <아바타 1>의 대미를 장식한 나비족과 RDA의 회전 연출과 비슷해서 “신선하지 않다”는 평가도 있다.

서사 자체도 기승전결 구도가 명확해서 평이하다. 서사가 평이한 것은 카메론 감독 작품 전반의 특징이다. 평이한 서사 속 강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게 카메론 감독의 장점이다. 그런데 <아바타 3>엔 1편과 2편의 서사가 많이 스며들어 있어 “<아바타 3>을 상영하는 영사 기사가 실수로 <아바타 2> 영상을 넣은 것으로 착각하더라도 이상할 건 없다”는 혹평도 나왔다.

압도적 영상미·영상
떨어진 신선도 아쉬워

<아바타> 시리즈는 카메론 감독과 팬에겐 애증의 존재다. 카메론 감독은 <아바타> 제작·연출을 시작한 후 다른 영화는 연출하지 않고 있다. 카메론 감독은 원래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으로부터 일본 만화 <총몽>을 소개받은 후 오랫동안 이에 대한 영화화를 추진했다.

하지만 <아바타> 시리즈 제작·연출을 시작하면서 <총몽> 영화화는 로베르토 로드리게즈 감독이 맡아 지난 2019년 <알리타: 배틀 엔젤>이 개봉됐다. 하지만 <알리타: 배틀 엔젤>의 흥행은 부진했고, 암시됐던 속편은 제작되지 않고 있다.

카메론 감독은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엔 제작자 겸 원안자로 참여했다.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는 영화 시작 직후 터미네이터 Rev-9이 존 코너를 살해하는 등 골수팬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초반에 존 코너를 살해하는 설정은 카메론 감독이 직접 구상한 것으로 알려져 “자신이 직접 낳고 기른 시리즈를 죽였다”는 비난을 받았다. <터미네이터> 시리즈가 카메론 감독이 영화 촬영 중 꾼 꿈으로부터 발상을 얻어 기획된 시리즈였기 때문에 받았던 비난이었다. <아바타> 시리즈는 이런 희생을 치러가면서 나오고 있다.


<아바타 1>은 영상 혁명 그 자체였다. 13년 만에 베일을 벗고 개봉했던 <아바타 2>는 <아바타 3>으로 가는 중간 단계였던 만큼 규모가 소소해졌다. <아바타 3>은 1편과 2편의 조합이어서 “신선함이 떨어진다”는 체감이 확산되는 경향이 있다.

<아바타> 시리즈가 쉬고 있던 13년 동안 촬영 기술도 비약적으로 발전했기 때문에 ‘영상 혁명’이란 말은 <아바타> 시리즈의 전유물이 아니다. <아바타 1>이 2009년 몰고 온 혁명은 ▲3D 영상 기술 ▲모션캡처 ▲CG 기술 발전 등이었다.

영상 혁명

<아바타> 4편과 5편은 <아바타 3>의 흥행 실적에 따라 제작 여부가 결정될 예정이다. ‘영상 혁명’이란 상징을 유지하려면, <아바타 3>의 흥행과 새로운 혁명으로 통할 수 있는 소재 탐구가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카메론의 혁명은 계속 이어질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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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