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대담> 윤여준이 보는 혼란 속 희망

“지금 고통은 민주주의 성장통”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10년 동안 대한민국은 두 번의 탄핵과 한 번의 계엄을 겪었다. 일어서고 좌절하기를 반복하면서 경제는 휘청였고 정치 양극화는 고점을 찍었다. YS(김영삼 전 대통령)를 시작으로 정치사의 명과 암을 모두 지켜본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그럼에도 비관적으로 보지 않는다”고 말한다. 윤 전 장관이 본 희망은 이 모든 걸 겪고도 다시 일어나는 대한민국 국민의 회복력이었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의 정치 인생은 좌우 이념을 가리지 않는다. 청와대를 비롯한 행정부, 국회, 선거 등 크고 작은 나랏일을 함께하며 30년 넘게 국정 운영에 관여했다.

1994년 김영삼정부 시절 청와대 대변인 겸 공보수석을 지낸 그는 1997년 제4대 환경부 장관에 임명됐으며 1998년 이회창 전 국무총리의 ‘제갈공명’으로 이름을 알렸다. 2000년 한나라당의 제16대 총선을 시작으로 2006년 오세훈 서울시장캠프 공동선대위원장, 2012년 문재인 후보 캠프 국민통합추진위원장, 2014년 안철수 의원이 이끈 새정치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 등을 차례로 지냈다.

지난 4월에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상임총괄선대위원장으로 깜짝 발탁됐다. 선거를 승리로 이끌어온 윤 전 장관은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 30일 기자회견을 본 뒤 “이 대통령 밑에서 일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고 호평하기도 했다.

오랫동안 국정 운영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해 왔던 윤 전 장관은 ‘보수 책사’로 통한다. 그러나 막상 그는 이 같은 별명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듯 했다. <일요시사>와 인터뷰 도중 “보수 책사이시다”라는 취재진의 말에 그는 양손을 내저으며 웃었다.

“책사가 아니라고 10년째 말하는데 여전히 사람들은 그러네. 책사라는 단어를 빼달라고 매번 말해도 늘 기사에 넣더라고. 지금은 국민을 설득하는 시대지, 속이는 시대가 아니에요. 책사는 꾀를 내거나 어두운 지혜를 쓰는 것을 뜻합니다. 지금 시대에는 가당치도 않은 말이지. 어떻게 주권자를 속일 수가 있나.”


다사다난한 한 해의 끝에서 <일요시사>와 만난 윤 전 장관은 책사가 아닌 국민의 잠재력을 일깨워 줄 ‘통치자’이자 ‘전략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윤 전 장관의 일문일답.

-2025년은 격변의 해였다. 지난 1년을 돌아본다면?

▲숙명인지 모르겠으나 근래에 항상 격랑하고 격변하는 세월을 보냈다. 국민도 상당이 이골이 난 것 같다. 지난 1년간 한국에 일어난 일은 다른 나라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엄청난 사건의 연속이다.

예전부터 우리 백성이 평온한 삶을 살았던 적이 별로 없다. 나라 자체가 분단국가이지 않은가? 그래도 긍정적으로 본다면 우리 국민은 웬만한 위기에는 까닥하지 않는다. 이미 탄핵을 겪은 만큼 올해 사건들을 보통 예사로 생각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았을 때 마음이 아프다.

-도서 <대통령의 자격>을 집필하셨다. ‘스테이트크래프트(Statecraft·통치 역량)’를 강조했는데,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역량은 무엇인가?

▲국가를 통치하는 기본 역량은 공공성이다. 이는 공동체 구성원의 연대 의식을 일으키는 핵심 가치다. 기본 역량은 변하지 않지만 나라가 처한 상황에 따라 유연성을 가진 지도자가 필요하겠다. 태어날 때부터 이를 습득할 수는 없겠지만, 과정은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 정치 역사가 긴 나라에서는 하루아침에 대통령이 탄생하기 어렵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이 과정이 생략됐다. 그러다 보니 윤석열 전 대통령 같은 인물이 등장한 것이다. 윤석열정부와 대통령 탄핵 정국을 거치면서 국민이 많은 걸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에서 “어느 시대에도 인재는 있다”고 하셨는데….

▲이 세상이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다 필요해서 나온 사람들이다. 본인의 역할이 있고 잘난 놈들만 역할이 있는 게 아니다.

-윤 전 대통령도 국민이 뽑은 권력이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대통령은 당선 이후가 더 중요하다. 후보들은 당선되는 데에만 혼신의 힘을 기울인다. 되고자 하는 사람은 되는 과정도 중요하지만 된 이후에 어떻게 할 것인지, 자신이 그런 실력을 갖췄는지, 이론적인 지식과 경험이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자신에 대한 과대평가가 이뤄지면 국정이 망가지고 스스로가 망가진다.

대한민국은 규모에 비해 굉장히 다스리기 어려운 나라다. 사회가 다원화돼있고 국민의 수준이 높기 때문에 이를 소홀히 하고 “감히 내가 누구인데” 이런 식으로 생각하기 쉽다. 우리는 그런 생각으로 나라를 통치한 사람들의 말로를 지켜봤다.

-6·3 조기 대선 당시 민주당 이재명 대통령 후보 캠프의 상임총괄선대위원장으로 활동하셨다. 선거 기간 동안 바라본 이 후보는 어떤 사람이었나?

▲이재명 대통령과 처음 만난 건 그가 성남시장을 할 때였다. 전화가 와서 “무슨 일이십니까?”라고 물어보니 점심을 같이하자는 연락이었다. 가게 구석에 둘이 앉아서 꽤 긴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당시 그는 나에게 국정에 대한 이런저런 것들을 물었고, 꽤 재밌게 대화한 기억이 난다.

대통령 기본 역량은 윤리와 공공성
이, 도덕성 신경 쓰면 훌륭한 지도자

짧은 시간 내에 사람을 평가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 대통령은 자기 생각이 분명한 사람이다. 지적과 수정을 받아들이는 그릇을 갖췄다. 지도자는 그렇게 행동해야 한다.

-이재명정부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윤석열정부 이후 등장한 만큼 이 대통령의 책임이 무거워 보인다. 도덕성과 효율성, 두가지의 가치를 살려야 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대장동 등 이 대통령의 도덕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효율성 측면에서 봤을 때 이 대통령은 근래 등장한 사람 중 가장 행정력이 뛰어나다.

윤 전 대통령이 파탄 낸 국정을 빠르게 정상궤도로 올렸다. 그렇기에 효율성과 도덕성 두 가지를 놓고 극단적으로 선택하라고 했을 때 나는 효율성을 택할 것이다.


-도덕성을 중요시하는 대한민국 정서 특성상 효율성만 강조해서는 국민을 설득하기 어렵지 않을까?

▲ 도덕군자란 무엇인가? 나만 잘살고 나라를 망가지게 두면 그것을 어떻게 훌륭한 지도자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런 점에서 이 대통령에게 굉장히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 이번 정부를 통해 망가진 대한민국 국정을 상당 부분 회복할 수 있겠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 대통령이 도덕성을 신경 쓰면 훌륭한 대통령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본다. 이후에 등장할 대통령에 대한 기준치도 높인 셈이다. 국민의 눈높이가 올라갔으니, 후임자 역시 그에 걸맞은 사람이어야 한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물리적인 규모는 큰 나라가 아닐지 몰라도 잠재 능력은 몹시 크다. 워낙 국민적 역량이 뛰어나고 다양성을 갖춘 나라인데, 일부 정치인은 대통령이 돼 권력만 잡으면 일이 쉽게 풀린다고 생각한다. 어림도 없는 일이다.

-보수 진영에서는 여전히 이 대통령의 ‘비호감’ 프레임이 짙다.

▲국민이 원하는데 대통령이 봤을 때 옳지 않은 길일 수도 있다. 따라서 지도자는 자기의 반대편에 선 다수의 국민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국민을 설득하고 동의를 얻는 탁월한 리더십과 신뢰를 갖춰야 한다. 정도를 걸으면서 이 모든 걸 갖추는 게 쉽지는 않다.


-‘제왕적 대통령제’가 대한민국을 비극으로 이끌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통령은 크게 통치하고 다스리는 것인데, 제왕적이지 않은 대통령이 존재할 수 있을까?

▲물론이다. 꼭 제왕적이라야만 대통령 되는 건 아니다. 권력의 속성은 ‘집중’과 ‘연장’이다. 대통령이 된 사람이 이를 절제하고 욕망을 누르면서 국가를 민주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국민 다수의 의사가 효과적으로 반영되면 우리는 통상 민주적이라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주적인 가치가 자연스럽게 내면화돼야 한다. 평생 민주화를 위해 투쟁한 이들도 권력을 잡으면 제왕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인물의 문제가 아닌, 국가 정치 운영 방식에 따른 차이인데 민주주의를 하나의 굳어진 제도와 체제로 받아들이면서 생긴 오류라고 생각한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는 매 순간 권력의 유혹을 마주할 것 같다.

▲실제로 많이 느낄 것이다. 권력을 잡는다는 건 사람을 마취시키는 효과가 있다. 그 마취 효과를 이겨내야 한다. 특히 대한민국은 국민 의식 수준이 굉장히 높기 때문에 대통령의 자리를 쉽게 봐서는 안 된다.

-국민의 의식은 높아지고 있지만 그들로부터 형성된 여론이 정치권에 잘 반영되고 있다고 보는지? 소수의 의견이 다수의 의견처럼 포장되는 경향이 있다는 해석도 나오는데….

▲그렇게 치부하는 것이 권력자의 입장에서 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민사회의 역량이 조직화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러면 어떤 권력도 함부로 휘두르지 못하고 비로소 민주주의가 제도적, 문화적으로 정착하는 때가 올 것이다.

좌절 반복…그래도 희망적인 이유?
“다시 일어난 국민, 버텨낸 기업”

-민주당 등 범여권은 ‘내란 청산’을 주장하고 있다. 내란 청산 이후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국민의 여론은 내란 세력을 청산하라는 것이다. 문제는 척결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척결은 하나의 과정이고, 이후 어떤 국가를 건설할 건지 계획하는 과정에 국민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지도자는 국민의 동의를 얻은 목표를 직접 실현하기 위한 정치적, 행정적 역량을 보여줘야 한다.

-국민의힘의 상황이 좋지 않다. 여론을 쇄신하는 방법이 있을까? 보수 진영에 오래 몸담았던 만큼 고민도 많을 것 같은데….

▲당연히 고민한다. 문제는 우리가 고민하는 것만큼 국민의힘도 고민하는지, 그건 잘 모르겠다. 한 사회의 민주주의가 성숙하는 길로 향하고 있고, 지금의 우리는 혼란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이걸 거쳐서 민주주의가 완성되는 것이지, 하루아침에 민주주의에 도달할 수는 없다.

이 모든 과정은 성숙한 사회로 향하기 위해 지나야 하는 필수적인 길목으로, 절대 비관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분단국가인 데다 경제적 어려움마저 겪어 ‘가능한 한 빨리 혼란을 극복하자’는 염원이 있는 것이지 단숨에 평화로운 사회로 거듭나는 법은 없다.

-윤 어게인(Yoon Again)이 국민의힘을 휘두르는 지금 보수를 일으킬 새 인물이 등장할 수 있을까?

▲새로운 인물이 등장해야 하고, 빠를수록 좋다. 보수든 진보든 어느 한쪽 세력이 올바르게 서야 다른 한쪽도 따라 서게 된다. 정권을 놓고 경쟁하는 세력이니 당연한 말이다.

-2026년은 병오년, 붉은 말의 해다. 역동적이고 진취적인 해로 정치권에도 역시 많은 일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해를 맞아 국회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제23대 총선이 한참 남지 않았나. 현역인 국회의원 한 명 한 명 붙잡고 바뀌라고 애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지금 의석 그대로 다음 총선까지 가야 한다. 그래도 비관적으로 보지 말자는 이야기다. 우리는 성숙한 사회로 향하는 대가를 치르고 있다. 뼈를 깎는 대가를 줄이려 노력은 하겠지만 지금의 고통 역시 필요한 시간이다.

-현 상황을 비관적으로 보지 말자고 하셨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희망을 품을 일이 있는지?

▲나는 앞날을 낙관적으로 보는 사람이다. 어떤 상황이든 희망을 놓지 않고 산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잠재력을 발휘하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고 그런 시스템을 제도로 갖추면 나라가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본다. 대한민국은 비슷한 어려움을 수없이 겪었지만 그럼에도 이 정도의 국가를 만들었다. 보통 능력으로는 안 되는 일이다.

또 하나 예를 들자면 지금 경제체제가 유지되고 있지 않나. 민생은 경제고, 경제는 국력의 바탕이다. 경제가 망가지면 국가가 무슨 소용인가? 반복되는 악조건 속에서도 기업은 굉장히 잘 해줬다.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운 와중에 부도가 나기는커녕 성장한 곳도 있다. 새삼 대단하지 않은가. 그런 점에서 우리 기업과 기업인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

-2026년 새해를 맞아 국민에게 덕담 한마디 부탁드린다.

▲희망을 품자고 말했지만 국민도 지친 것 같다. ‘이번 국면만 지나면 좀 낫겠지’ 했더니 비슷한 일이 반복됐다. 한때 정치권에 몸을 담았던 고위 관료로서 국민에게 미안한 마음이 아주 크다. 하지만 우리 국민은 워낙 총명하다. 혼란의 시기도 언젠가는 지난다. 그날이 오면 국가가 경제적으로 윤택해지고 정서적으로 안정될 것이다.

<hypak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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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