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2팀] 김준혁 기자 = 유엔군사령부(유엔사)가 군사분계선 남측 비무장지대(DMZ) 구역에 대한 출입 통제 권한이 전적으로 자신들에게 있다고 강조했다.
유엔사는 지난 17일 공개 성명을 내고 “지난 1953년 체결된 정전협정에 따라 DMZ 출입 통제 권한은 유엔사 군사정전위원회에 있다”고 밝혔다.
이는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추진 중인 이른바 ‘DMZ법’ 관련 법안들에 사실상 제동을 건 것으로 풀이된다. 유엔사가 특정 현안에 대해 공개 성명으로 입장을 낸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앞서 지난 8월, 한정애 민주당 의원은 비군사적이고 평화적인 목적에 한해 DMZ 출입을 한국 정부가 승인할 수 있도록 하는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 지원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재강·이병진 민주당 의원도 유사한 취지의 법안을 각각 발의한 바 있다.
유엔사는 정전협정 1조9항을 인용하며 “민사행정 및 구호사업 집행에 관계되는 인원과 군사정전위의 특정 허가를 얻은 인원을 제외하고는 어떤 군인이나 민간인도 DMZ에 출입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제사회의 참여는 정전협정 유지에 매우 중요한 요소”라며 “군사정전위는 DMZ 내 이동이 도발적으로 인식되거나 인원 및 방문객의 안전에 위험을 초래하지 않도록, 확립된 절차에 따라 출입 요청을 면밀히 검토하고 승인 또는 거부 결정을 내린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간 유엔사는 한국 정부와 회원국들의 아낌없는 지원에 힘입어 살육과 고통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안정의 기둥 역할을 해왔다”며 “궁극적으로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조약이 체결되기를 기대하며 정전과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통일부는 유엔사가 발표한 성명에 대해 “유엔사가 DMZ에서 그동안 평화 유지를 위해 노력해 온 것에 대해 존중한다”면서도 “정전협정은 서문에 명시된 대로 군사적 성격의 협정인 만큼 DMZ의 평화적 이용을 금지하는 것은 아니”라고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그러면서 “DMZ를 포괄적으로 규율하는 국내법이 부재한 상황에서 국회에서 DMZ 보전 및 평화적 이용을 위한 법안이 총 3건 발의돼있다”며 “관계 부처 협조하에 유엔사와의 협의를 추진하고 국회 입법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통일부의 대응에 야권에선 반발이 일었다. 김효은 국민의힘 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유엔사의 반대 성명에도 DMZ법을 강행하는 정부와 민주당은 피 묻은 목함지뢰의 교훈을 잊은 ‘가짜 평화쇼’를 멈추시라”고 촉구했다.
김 대변인은 “이재명정부와 민주당이 유엔사의 이례적 반대 성명에도 불구하고, 소위 DMZ법을 강행하려 하고 있다”며 “정전협정 체제 아래 DMZ 출입 통제 권한을 둘러싼 민감한 사안을, 오직 ‘평화’ 구호로만 밀어붙이는 폭주에 아연실색할 따름”이라고 비판했다.
정가에선 통일부가 입장을 고수하는 배경에 대해, DMZ 출입 허가의 주체를 한국 정부로 가져오려는 시도가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현재도 민간인 출입이 전면 금지된 것은 아니지만, 최종 결정권이 유엔사에 달려 있다는 이유로 주권 행사에 제약을 받는다는 지적이 반복돼왔다.
한 의원은 해당 법안 발의 배경에 대해 “DMZ는 명백히 대한민국의 영토임에도 비군사적, 평화적 이용을 위한 출입까지 유엔사의 허가를 받도록 하는 것은 과도한 제한”이라며 “DMZ의 보전과 평화적 이용에 필요한 사항들을 규정해 통일부 장관의 허가에 따라 출입 및 반입 등을 허용하도록 특례를 규정했다”고 밝혔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도 지난 3일, 국가안보실 김현종 1차장이 유엔사로부터 DMZ 출입을 불허당한 사실을 공개하며 “우리 영토에서 주권을 행사해야 할 공간조차 출입을 제약받는 현실을 더는 묵과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선 남북 분단이라는 특수성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키프로스 사례와 비교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지중해에 위치한 섬나라 키프로스는 지난 1974년 이후 그리스계와 터키계 간 갈등이 격화되면서 분단 상황이 이어지고 있으며, 양측 사이에는 유엔 키프로스 평화유지군(UNFICYP)이 관리하는 유엔 완충지대 ‘그린라인’이 설정돼있다.
이곳에선 농사나 상업시설 유지 등 일부 민간활동이 허가 절차를 통해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지정된 검문소를 통해 남측 키프로스 공화국과 북키프로스 간 왕래도 가능하다.
다만 이곳 역시 현지 행정기관이 단독으로 결정하는 구조는 아니다. 건축 등은 현지 관할 당국의 허가와 함께 UNFICYP의 승인도 요구되는 등, 유엔 측 동의 없이는 실제 집행이 제한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이 같은 사례에 비춰보면 관련 법안이 의결되더라도 DMZ 출입이 정전협정 체계 아래 이뤄지는 만큼, 유엔사 군사정전위의 승인 절차와의 접점을 마련하지 못하면 실제 집행이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kj4579@ilyosis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