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찍힌 권력과 침묵 국회, 공익성과 개인정보의 역설

요즘 정치 뉴스를 보면, 정치인의 입 대신 휴대폰 화면이 자주 등장한다. 국회 본회의장 한가운데서 오가는 인사 청탁 문자, 주식 거래 내역, 권력 핵심 인물의 이름이 기자들의 카메라 렌즈를 통해 그대로 중계된다.

그런데도 정작 국회는 ‘언론의 공익성 VS 개인정보보호법·정보통신망법 위반 여부’에 대한 본격적인 싸움을 하지 않는다. 왜일까? 정말 아무 문제가 없어서일까, 아니면 싸우기 시작하면 더 곤란해질 쪽이 따로 있기 때문일까?

국회 본회의장, 누가 누구 휴대폰을 보고 있나

국회 본회의장은 중대한 결정을 내리는 공간이지만, 국민의 시선은 토론보다 의원들이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장면에 더 쏠린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본회의장에서 포착된 휴대폰 화면과 그 문자 내용이 반복적으로 뉴스의 중심이 되고 있다.

최근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 사례도 같다. 문진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본회의장에서 인사 추천 문자를 보내고, 김 비서관이 “훈식이 형이랑 현지 누나에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장면이 촬영됐다. ‘현지 누나’ 표현이 대통령실 실세 논란을 키웠고, 결국 김 비서관은 사퇴했다.

과거 국회 취재 카메라는 누가 졸거나 자리를 비웠는지 정도를 찍었지만, 이제는 휴대폰 화면을 포착하는 감시 장비처럼 기능한다. 이런 장면이 반복될수록 ‘휴대폰 화면 촬영과 보도가 법적으로 정말 문제없는가?’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연인의 카톡은 범죄인데, 의원의 카톡은 공익인가

법원은 휴대폰을 통한 타인의 비밀 침해에 엄격하다. 법원은 잠든 남자 친구의 휴대폰에서 카톡 대화를 몰래 보고 촬영한 여성에게 벌금형을 선고해 왔다. 연인 간 다툼이나 증거 확보보다 ‘정보통신망에 보관된 타인의 비밀을 침해했다’는 판단이 우선한 것이다.

형법의 비밀침해죄가 잠긴 비밀장치를 열어보는 행위를 문제 삼는다면, 정보통신망법은 더 넓게 타인의 정보를 들여다보고 촬영·저장·누설하는 행위까지 금지한다. 잠든 남자 친구의 카톡을 보고 대화를 촬영한 사례가 여기에 해당한다는 판단이다.

이 잣대를 국회에 적용하면 복잡해진다. 기자들이 의원 휴대폰의 텔레그램·카톡·증권앱 화면을 촬영해 보도하는 행위도 잠긴 휴대폰을 연 것은 아니지만, ‘타인의 비밀을 촬영·누설했다’는 구조는 연인 사례와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법원이 국회에는 어떤 기준을 적용할 것인가 라는 질문이 생긴다.

김남국 사건, 공익과 사생활 사이에 놓인 애매한 선

이번 김남국 사건은 이런 공백을 드러낸 사례다. 인사 청탁 여부와 상관없이 권력 핵심부의 인사 논의가 본회의장에서 비공식 채널로 오갔다는 사실이 공개된 것이다. 결국 김 비서관은 사퇴했고, 여권에서도 “처신이 부적절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 사건이 의미심장한 이유는 화면이 촬영되지 않았다면 정치적 책임 문제도 드러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공식 문서나 발언이 아닌 텔레그램 문구 한 줄이 즉각 책임을 촉발했고, 국민은 “국정 인사·정책의 얼마나 많은 부분이 이런 비공식 메시지로 오가는가”라는 근본적 의문을 갖게 된다.


법적으로는 김남국·문진석도 휴대폰 화면 촬영을 문제 삼아 정보통신망법·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을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 제기 순간 인사 청탁 논란이 더 커질 수 있어 침묵을 택한다. 결국 침묵이 가장 안전한 선택이 된 셈이다.

이춘석 차명 주식 의혹, ‘휴대폰 화면’이 만든 파장

이춘석 무소속 의원의 차명 주식 의혹도 휴대폰 화면에서 시작됐다. 본회의장에서 주식 앱을 조작하는 모습이 찍히고, 화면에 다른 이름이 나타나며 차명계좌 의혹이 제기됐다. 이후 금융실명제법·공직자윤리법 위반 가능성이 거론되고, 정당 윤리기구와 야당의 고발로 이어졌다.

핵심은 화면을 어떻게 찍었느냐가 아니라, 그 내용의 파급력이었다. 법안을 논의해야 할 의원이 본회의장에서 주식 거래에 몰두한 모습은 국민 정서에 큰 반감을 불렀고, 차명 의혹까지 더해지며 화면 촬영의 법리 논쟁은 사실상 설 자리를 잃었다.

권성동·송언석 사례, 휴대폰 정치의 일상화

휴대폰 화면이 정국을 흔든 사례는 이미 많다. 대표적으로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의 ‘체리따봉 문자’가 있다. 대통령의 사적 텔레그램 메시지가 본회의장 휴대폰 화면에 찍히면서, 여당 대표와의 갈등, 내부 총질 논란, 당내 권력투쟁이 일거에 불거졌다. 출발점은 역시 카메라에 포착된 휴대폰 화면이었다.

송언석 의원의 ‘김포 다음엔 공매도’ 문자도 마찬가지다. 공매도 금지 발표 전 휴대폰에 도착한 메시지가 찍히며 “여권이 발표 전에 정보를 주고받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정책보다 정보 공유 정황이 국민적 관심을 더 끌었다.

휴대폰 화면은 이제 공식 회의록에 없는 권력의 표정과 사적 언어를 드러내는 ‘제3의 회의록’이 됐다. 그럼에도 국회가 법적·제도 논쟁을 피하는 이유는, 논쟁이 시작되면 “공개되지 않을 권력 정보는 어디까지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김태우 폭로, 공익제보와 비밀누설 사이의 모순

휴대폰 화면 논쟁과는 별개로, 비밀 폭로에 대한 법체계는 또 다른 모순을 보인다. 2018년 청와대 특별감찰반 비위를 폭로한 김태우 수사관이 대표적이다. 그는 공익 제보를 주장했지만 곧바로 공무상 비밀누설로 기소·해임됐고, 청와대는 “징계를 피하려 폭로했다”고 비판했다.

시간이 지나 김태우가 제기한 환경부 블랙리스트와 유재수 감찰 무마 의혹은 실제 유죄로 확인됐다. 폭로 내용은 사실로 드러났지만, 김태우의 법적 지위는 끝내 ‘공무상 비밀누설’에 머물렀고, 공익성과 진실성은 인정돼도 법적 잣대는 바뀌지 않았다.

이 지점은 휴대폰 화면 논란과도 연결된다. 권력 비리를 폭로한 사람은 공무상 비밀누설로 처벌받지만, 정치인의 휴대폰 화면을 촬영해 사적 언어를 드러낸 언론은 공익 보도로 보호된다. 공익성 판단이 겨냥한 대상과 맥락에 따라 달라진다면 이는 법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의 문제에 가깝다.


언론의 자유와 일반인의 사생활, 같은 잣대로 볼 수 있는가

정치인은 공인이기에 일정한 사생활과 비밀은 국민 감시를 전제로 한다. 본회의장에서 드러난 인사 청탁 문자나 정책 메시지, 차명 의혹 주식 거래 화면은 공익성이 크며, 이 경우 국민의 알 권리와 언론의 자유가 개인정보 보호보다 우선한다는 논리가 힘을 얻는다.

그러나 공익성과 무관한 일반인의 휴대폰 화면을 언론이 같은 방식으로 촬영·공개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지하철에서 보인 사적 문자나 금융·건강 정보, 가족 사진을 기사화한다면 이는 언론의 자유가 아니라, 명백한 사생활 침해이며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 된다.

공익성은 정치인에게만 적용되어선 안 된다. 공직자에겐 강한 감시를, 일반 시민에겐 두터운 사생활 보호를 보장하는 기준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의 논쟁은 원칙보다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공익성과 사생활 보호를 선택적으로 활용하는 모습에 가깝다.

왜 아무도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을 말하지 않는가

이쯤 되면 질문이 생긴다. “정말 문제라면 왜 국회의원들은 본회의장 촬영 범위나 화면 확대 취재를 제한하는 법안을 만들 수 있는 데도 법 개정을 하지 않는가.” 실제로 일부 국가는 의회 내부 촬영을 엄격히 금지한다. 그러나 우리 국회는 기본 가이드라인조차 없다.


그럼에도 국회가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지 못하는 이유는 역설적이다. 논쟁이 시작되면 국민은 “왜 언론의 자유보다 의원 사생활이 우선인가” “왜 평소엔 무심하던 개인정보를 자기 휴대폰이 찍히자 문제 삼는가”라고 묻게 된다. 이런 질문은 이미 조용하지만 집요하게 국회를 향하고 있다.

박병영의 손자병법, 국회가 피하는 전선

박병영의 ‘손자병법’ 리더십은 조직이 불리한 전선에서는 결단을 미루고, 유리한 전선만 선택적으로 움직이는 ‘전략적 회피’의 위험성을 강조한다. 지금 국회의 휴대폰 화면 논쟁 역시 이 패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책임과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하는 문제일수록 정치권은 논의를 지연시키고 회피하려 한다.

국회는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이나 본회의장 촬영 기준 설정처럼 스스로에게 불리할 수 있는 전선에는 발을 들이지 않는다. 반면 상대 진영의 휴대폰 화면이 포착되면 즉각 공세로 전환하며, 유리한 전장은 빠르게 확장한다. 이는 손자병법이 경계한 ‘선택적 결단’의 전형적 모습이다.

이런 전략적 회피가 반복되면 공익성과 사생활 보호라는 두 원칙은 언제나 정치적 상황에 따라 선택적으로 적용될 수밖에 없다. 손자병법이 말하는 리더십의 핵심은 불리한 전선일수록 먼저 정면으로 다루는 용기다. 국회가 이 원칙을 받아들이지 않는 한, 휴대폰 화면 정치의 악순환은 계속될 것이다.

‘시사펀치’가 이 문제를 꺼내는 이유

국회는 결국 모호한 침묵을 택하고, 논란이 커지지 않기만 바라며 자신들에게 유리한 부분적 개정만 탐색한다. 그러나 과제는 명확하다. 정치권 감시는 투명하게, 시민의 개인정보는 두텁게 보호해야 한다. 핵심은 화면을 누가 찍었느냐가 아니라, 권력자가 불리한 정보까지 공개할 의지가 있느냐다.

지금 국회는 그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카메라와 휴대폰 화면 사이에서 머뭇거리고 있다. 언론의 공익성과 개인정보 보호의 경계를 논의해야 할 곳이 국회이지만, 정작 스스로 휴대폰을 내려놓지 못하는 한, 이 논쟁은 또다시 ‘불편한 진실이 찍힐 때만 잠깐 떠오르는 소동’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김삼기의 시사펀치>가 이 문제를 꺼내는 이유는 단순하다. 국회가 가장 먼저 논의해야 할 중요한 법적·윤리적 문제를 왜 정작 의원들은 피하려고만 하는지, 이제는 그 질문을 그냥 넘겨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