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2팀] 박정원 기자 =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 표결을 방해한 혐의(내란중요임무종사)를 받는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에 대한 구속영장이 3일 기각됐다.
서울중앙지법 이정재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오전 추 의원에 대해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청구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이 부장판사는 “본건 혐의 및 법리에 대해 다툼의 여지가 있어 면밀하고 충실한 법정 공방을 거친 뒤 그에 합당한 판단 및 처벌을 하도록 함이 타당하다”며 “이를 위해 피의자가 불구속 상태에서 변호인의 조력을 받으며 방어권을 행사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피의자의 주거, 경력, 수사 진행 경과 및 출석 상황, 관련 증거들의 수집 정도 등을 볼 때 피의자에게 도망 및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피의자를 구속해야 할 사유와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은 전날 오후 3시부터 오후 11시53분까지 8시간53분간 이어지며 역대 최장 시간대 심문 중 하나로 기록됐다.
추 의원은 지난해 12월3일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 표결 당시, 집권여당 대표로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표결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의원총회 집결 장소를 여러 차례 바꿔 사실상 표결을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특검에 따르면 추 의원은 자택에서 국회로 이동하던 오후 10시59분,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국회에서 비상 의원총회를 연다”고 공지했다가, 11시9분에는 장소를 국민의힘 중앙당사로 변경했다. 이어 오후 11시33분에는 다시 국회로, 다음날인 오전 12시3분에는 재차 당사로 집결지를 옮기도록 안내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검은 이 과정이 단순한 혼선이 아니라 의도적 분산 조치였다고 보고 있다.
특히 두 번째 공지 직후 윤석열 전 대통령과 통화한 뒤에도, ‘더 늦으면 국회가 봉쇄될 수 있으니 당사에 모인 의원들과 함께 신속히 국회로 가야 한다’는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대표의 제안을 추 의원이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점을 핵심 정황으로 제시했다.
특검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비상계엄일 오후 11시22분경, 추 의원에게 약 2분간 전화를 걸어 “비상계엄이 보안을 요하는 사안이라 미리 알리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하며, 대국민 담화에서 밝힌 것과 같은 취지로 비상계엄 선포 이유를 설명하고 협조를 요청했다.
특검은 “윤 전 대통령과 추 의원이 정치적 입장을 공유해 온 관계를 감안하면, 짧은 통화로도 계엄 관련 공감대와 역할 분담이 이뤄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해 왔다.
또 추 의원이 같은 날 홍철호 당시 정무수석, 한덕수 당시 국무총리 등과 통화하며 파악한 비상계엄 관련 정보, 특히 계엄 선포 요건 충족 여부 등에 관한 내용을 당 소속 의원들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 삼았다.
특검은 국민의힘 의원들이 해제 요구안 표결 참여 여부를 결정하는 데 중요할 수 있는 정보를 의도적으로 차단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이 부장판사는 이런 정황들만으로 구속수사를 해야 할 정도의 ‘고의’와 공모관계가 충분히 소명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 통화 기록, 의원총회 장소 변경, 표결 불참 등의 정황은 존재하나, 이를 내란 가담으로까지 연결할 만한 결정적 증거나 추가 진술이 부족하다고 본 것으로 해석된다.
이날 서울구치소에서 심사 결과를 기다리던 추 의원은 구속영장 기각 직후인 오전 5시20분경 구치소 정문을 나서며 “무엇보다 공정한 판단을 내려준 법원에 감사드린다”며 “강추위 속에서 늦은 시간까지 걱정과 응원을 보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고 소회를 밝혔다.
현장에는 국민의힘 의원들이 대거 나와 추 의원의 이름을 연호하며 박수로 맞았다.
추 의원은 특검 수사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특검은 제가 언제, 누구와 계엄에 공모·가담했다는 어떤 구체적 증거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원내대표로서의 통상적 활동과 발언을 억지로 꿰맞춰 영장을 창작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민주당의 독선적 국회 운영을 비판한 제 발언을 계엄 사전 공모의 증거라고 우겨댄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계엄 선포 당일 동선과 관련한 의혹에 대해서는 “윤 전 대통령과 짧게 통화한 뒤 당사에만 머문 것이 아니라, 동료 의원들과 함께 국회로 이동하며 의총 장소를 당사에서 국회 예결위 회의실로 옮겼다”며 “이를 본회의장 출입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왜곡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어 “당일 본회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셨듯이 국민의힘 의원 그 누구도 계엄 해제 표결을 물리적으로 방해한 사실이 없다”며 “미리 결론을 정해놓고 죄를 구성한 것은 정치적 의도를 가진 공작 수사였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 판단에 대해 내란특검팀은 즉각 유감을 표했다. 특검팀은 입장문에서 “법원의 결정을 존중하지만 수긍할 수 없다”며 “무장한 군인들에 의해 국회가 짓밟히고, 이에 저항하는 시민들이 군과 대치하는 상황을 추 의원이 직접 목격하고도, 집권여당 대표로서 시민의 안전과 헌정 질서 수호를 위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신속히 공소를 제기해 법정에서 합당한 처벌이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영장 기각은 조은석 특별검사팀이 지난 6개월간 진행해 온 내란 수사의 사실상 마무리 국면에서 나온 결정이라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특검은 지금까지 내란 의혹 관련 인사 6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해 윤 전 대통령,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조태용 전 국가정보원장 등 3명에 대해서만 구속영장을 받아냈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에 이어 추 의원까지 영장이 기각되면서 구속영장 인용률은 절반에도 못 미치게 됐다.
특히 박 전 장관의 경우 두 차례 청구에도 불구하고 모두 기각되면서 특검 수사가 ‘무리한 영장 청구’에 치우쳤다는 지적도 나온다.
남은 수사 기간이 열흘 남짓에 불과한 상황에서 특검이 추가로 구속수사를 시도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검찰·법조계 안팎에선 특검이 추 의원을 불구속 기소하는 쪽으로 방향을 정하고, 향후 본 재판에서 내란 가담 여부와 고의성을 두고 치열한 법정 공방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추 의원 영장 기각 사태와 관련, 정치권의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다. 더불어민주당은 “비상식적 결정”이라며 사법부를 강도 높게 비판했고, 국민의힘은 “지극히 당연한 결정”이라며 특검과 민주당을 향한 공세 수위를 끌어올렸다.
박수현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에서 “그간 추 의원에 대한 구속 증거는 차고도 넘쳤다”며 “법원의 비상식적인 결정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박 수석대변인은 “추 의원은 내란 수괴 윤석열과의 통화 이후 불법 비상계엄 해제 표결을 적극 방해한 혐의를 받고 있음에도, 지금 이 순간까지 일말의 반성과 사과 없이 거짓과 회피로 일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을 향해서는 “적반하장식 행태는 더욱 가관”이라며 “당 지도부 및 내란 주요 혐의자들은 여전히 거짓으로 진실을 덮으려는 시도를 획책하며 국민을 기만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사법부를 겨냥해서도 “조희대 사법부는 국민의 내란 청산과 헌정 질서 회복에 대한 바람을 철저히 짓밟고 있다”며 “내란 청산과 헌정 질서 회복을 방해하는 세력은 결국 국민에 의해 심판받고 해산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민주당은 이번 구속영장 기각을 계기로 사법개혁·사정기관 개혁 등 권력기관 개편 드라이브에 한층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국민의힘은 법원 결정을 “지극히 상식적인 결과”라고 평가하며 특검 수사를 “삼류 공상수사”라고 몰아세웠다.
박성훈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법원의 지극히 당연한 결정”이라며 “이재명정권과 민주당은 추 전 원내대표에게 내란이라는 극단적 프레임을 씌우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해 왔다”고 주장했다.
그는 “영장이 기각되면 사법부를 공격하겠다고 공언한 정청래 민주당 대표의 노골적 겁박과 정치 보복 속에 법치는 흔들렸고, 국민의 분노는 이미 한계에 이르렀다”며 “오늘의 영장 기각은 그 무도한 공격과 조작된 프레임이 더는 통하지 않는다는 사법부의 마지막 양심이자 준엄한 경고”라고 강조했다.
이어 “민주당이 국민의힘을 위헌 정당으로 몰아가려 했던 음험한 계략은 물거품이 됐다”며 “이제 민주당과 이재명정권은 사법부 겁박과 야당 탄압을 멈추고 민생회복에 국정 동력을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결정으로 내란 특검 수사는 형식적으로는 마무리 수순에 접어들지만, 본격적인 정치·법정 싸움은 이제 시작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향후 재판에서는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에 여당이 어떻게 대응해야 할 ‘법적 의무’가 있었는지 ▲추 의원의 의총 장소 변경과 정보 제공 여부가 실제로 표결 방해에 해당하는지 ▲내란중요임무종사죄의 구성요건을 어디까지 적용할 수 있는지 등이 핵심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법원의 영장 기각이 내란 의혹에 대한 최종 판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 만큼, 추 의원과 윤 전 대통령 등 주요 피고인들을 둘러싼 내란 공방은 당분간 국회와 법정을 오가며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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