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의·법리 다툼 여지 있어” 추경호 구속영장 기각

특검 “수긍 못해⋯신속 공소 제기”

[일요시사 취재2팀] 박정원 기자 =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 표결을 방해한 혐의(내란중요임무종사)를 받는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에 대한 구속영장이 3일 기각됐다.

서울중앙지법 이정재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오전 추 의원에 대해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청구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이 부장판사는 “본건 혐의 및 법리에 대해 다툼의 여지가 있어 면밀하고 충실한 법정 공방을 거친 뒤 그에 합당한 판단 및 처벌을 하도록 함이 타당하다”며 “이를 위해 피의자가 불구속 상태에서 변호인의 조력을 받으며 방어권을 행사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피의자의 주거, 경력, 수사 진행 경과 및 출석 상황, 관련 증거들의 수집 정도 등을 볼 때 피의자에게 도망 및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피의자를 구속해야 할 사유와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은 전날 오후 3시부터 오후 11시53분까지 8시간53분간 이어지며 역대 최장 시간대 심문 중 하나로 기록됐다.

추 의원은 지난해 12월3일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 표결 당시, 집권여당 대표로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표결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의원총회 집결 장소를 여러 차례 바꿔 사실상 표결을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특검에 따르면 추 의원은 자택에서 국회로 이동하던 오후 10시59분,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국회에서 비상 의원총회를 연다”고 공지했다가, 11시9분에는 장소를 국민의힘 중앙당사로 변경했다. 이어 오후 11시33분에는 다시 국회로, 다음날인 오전 12시3분에는 재차 당사로 집결지를 옮기도록 안내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검은 이 과정이 단순한 혼선이 아니라 의도적 분산 조치였다고 보고 있다.

특히 두 번째 공지 직후 윤석열 전 대통령과 통화한 뒤에도, ‘더 늦으면 국회가 봉쇄될 수 있으니 당사에 모인 의원들과 함께 신속히 국회로 가야 한다’는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대표의 제안을 추 의원이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점을 핵심 정황으로 제시했다.

특검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비상계엄일 오후 11시22분경, 추 의원에게 약 2분간 전화를 걸어 “비상계엄이 보안을 요하는 사안이라 미리 알리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하며, 대국민 담화에서 밝힌 것과 같은 취지로 비상계엄 선포 이유를 설명하고 협조를 요청했다.

특검은 “윤 전 대통령과 추 의원이 정치적 입장을 공유해 온 관계를 감안하면, 짧은 통화로도 계엄 관련 공감대와 역할 분담이 이뤄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해 왔다.

또 추 의원이 같은 날 홍철호 당시 정무수석, 한덕수 당시 국무총리 등과 통화하며 파악한 비상계엄 관련 정보, 특히 계엄 선포 요건 충족 여부 등에 관한 내용을 당 소속 의원들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 삼았다.

특검은 국민의힘 의원들이 해제 요구안 표결 참여 여부를 결정하는 데 중요할 수 있는 정보를 의도적으로 차단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이 부장판사는 이런 정황들만으로 구속수사를 해야 할 정도의 ‘고의’와 공모관계가 충분히 소명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 통화 기록, 의원총회 장소 변경, 표결 불참 등의 정황은 존재하나, 이를 내란 가담으로까지 연결할 만한 결정적 증거나 추가 진술이 부족하다고 본 것으로 해석된다.

이날 서울구치소에서 심사 결과를 기다리던 추 의원은 구속영장 기각 직후인 오전 5시20분경 구치소 정문을 나서며 “무엇보다 공정한 판단을 내려준 법원에 감사드린다”며 “강추위 속에서 늦은 시간까지 걱정과 응원을 보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고 소회를 밝혔다.

현장에는 국민의힘 의원들이 대거 나와 추 의원의 이름을 연호하며 박수로 맞았다.

추 의원은 특검 수사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특검은 제가 언제, 누구와 계엄에 공모·가담했다는 어떤 구체적 증거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원내대표로서의 통상적 활동과 발언을 억지로 꿰맞춰 영장을 창작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민주당의 독선적 국회 운영을 비판한 제 발언을 계엄 사전 공모의 증거라고 우겨댄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계엄 선포 당일 동선과 관련한 의혹에 대해서는 “윤 전 대통령과 짧게 통화한 뒤 당사에만 머문 것이 아니라, 동료 의원들과 함께 국회로 이동하며 의총 장소를 당사에서 국회 예결위 회의실로 옮겼다”며 “이를 본회의장 출입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왜곡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어 “당일 본회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셨듯이 국민의힘 의원 그 누구도 계엄 해제 표결을 물리적으로 방해한 사실이 없다”며 “미리 결론을 정해놓고 죄를 구성한 것은 정치적 의도를 가진 공작 수사였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 판단에 대해 내란특검팀은 즉각 유감을 표했다. 특검팀은 입장문에서 “법원의 결정을 존중하지만 수긍할 수 없다”며 “무장한 군인들에 의해 국회가 짓밟히고, 이에 저항하는 시민들이 군과 대치하는 상황을 추 의원이 직접 목격하고도, 집권여당 대표로서 시민의 안전과 헌정 질서 수호를 위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신속히 공소를 제기해 법정에서 합당한 처벌이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영장 기각은 조은석 특별검사팀이 지난 6개월간 진행해 온 내란 수사의 사실상 마무리 국면에서 나온 결정이라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특검은 지금까지 내란 의혹 관련 인사 6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해 윤 전 대통령,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조태용 전 국가정보원장 등 3명에 대해서만 구속영장을 받아냈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에 이어 추 의원까지 영장이 기각되면서 구속영장 인용률은 절반에도 못 미치게 됐다.

특히 박 전 장관의 경우 두 차례 청구에도 불구하고 모두 기각되면서 특검 수사가 ‘무리한 영장 청구’에 치우쳤다는 지적도 나온다.


남은 수사 기간이 열흘 남짓에 불과한 상황에서 특검이 추가로 구속수사를 시도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검찰·법조계 안팎에선 특검이 추 의원을 불구속 기소하는 쪽으로 방향을 정하고, 향후 본 재판에서 내란 가담 여부와 고의성을 두고 치열한 법정 공방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추 의원 영장 기각 사태와 관련, 정치권의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다. 더불어민주당은 “비상식적 결정”이라며 사법부를 강도 높게 비판했고, 국민의힘은 “지극히 당연한 결정”이라며 특검과 민주당을 향한 공세 수위를 끌어올렸다.

박수현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에서 “그간 추 의원에 대한 구속 증거는 차고도 넘쳤다”며 “법원의 비상식적인 결정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박 수석대변인은 “추 의원은 내란 수괴 윤석열과의 통화 이후 불법 비상계엄 해제 표결을 적극 방해한 혐의를 받고 있음에도, 지금 이 순간까지 일말의 반성과 사과 없이 거짓과 회피로 일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을 향해서는 “적반하장식 행태는 더욱 가관”이라며 “당 지도부 및 내란 주요 혐의자들은 여전히 거짓으로 진실을 덮으려는 시도를 획책하며 국민을 기만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사법부를 겨냥해서도 “조희대 사법부는 국민의 내란 청산과 헌정 질서 회복에 대한 바람을 철저히 짓밟고 있다”며 “내란 청산과 헌정 질서 회복을 방해하는 세력은 결국 국민에 의해 심판받고 해산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민주당은 이번 구속영장 기각을 계기로 사법개혁·사정기관 개혁 등 권력기관 개편 드라이브에 한층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국민의힘은 법원 결정을 “지극히 상식적인 결과”라고 평가하며 특검 수사를 “삼류 공상수사”라고 몰아세웠다.

박성훈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법원의 지극히 당연한 결정”이라며 “이재명정권과 민주당은 추 전 원내대표에게 내란이라는 극단적 프레임을 씌우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해 왔다”고 주장했다.

그는 “영장이 기각되면 사법부를 공격하겠다고 공언한 정청래 민주당 대표의 노골적 겁박과 정치 보복 속에 법치는 흔들렸고, 국민의 분노는 이미 한계에 이르렀다”며 “오늘의 영장 기각은 그 무도한 공격과 조작된 프레임이 더는 통하지 않는다는 사법부의 마지막 양심이자 준엄한 경고”라고 강조했다.

이어 “민주당이 국민의힘을 위헌 정당으로 몰아가려 했던 음험한 계략은 물거품이 됐다”며 “이제 민주당과 이재명정권은 사법부 겁박과 야당 탄압을 멈추고 민생회복에 국정 동력을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결정으로 내란 특검 수사는 형식적으로는 마무리 수순에 접어들지만, 본격적인 정치·법정 싸움은 이제 시작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향후 재판에서는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에 여당이 어떻게 대응해야 할 ‘법적 의무’가 있었는지 ▲추 의원의 의총 장소 변경과 정보 제공 여부가 실제로 표결 방해에 해당하는지 ▲내란중요임무종사죄의 구성요건을 어디까지 적용할 수 있는지 등이 핵심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법원의 영장 기각이 내란 의혹에 대한 최종 판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 만큼, 추 의원과 윤 전 대통령 등 주요 피고인들을 둘러싼 내란 공방은 당분간 국회와 법정을 오가며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jungwon933@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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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