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우리의 대배우 이순재

  • 서진 기자 jen9@ilyosisa.co.kr
  • 등록 2025.12.01 11:22:17
  • 호수 156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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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남을 ‘국민 아버지’

[일요시사 취재1팀] 서진 기자 = “이 아침이 드라마 한 장면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선생님이 ‘오케이, 컷’ 소리에 툭툭 털고 일어나시고 ‘다들 수고했다. 오늘 좋았어’라고 해주실 것 같습니다.” 지난달 27일 오전 5시30분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진행된 ‘국민 배우’ 고 이순재 영결식에서 배우 김영철이 목멘 소리로 추도사를 읽어 내려갔다.

배우 이순재. 그의 생은 단지 배우로서의 삶만은 아니었다. 후학을 가르치는 스승으로도, 정치인으로도 존재했다. 수십년간 문화 예술계에 그가 쌓은 헌신과 노고는 우리 모두에게 귀감이 됐다. 이순재, 그 이름은 오랫동안 한국 연극과 방송, 그리고 우리의 마음속에 영원히 남을 빛나는 별이다.

대한민국
연기 역사

지난달 25일 새벽, 91세의 나이로 별세한 이순재는 70년 가까이 연기 인생을 이어오며 현역 최고령 배우로서 왕성한 활동을 펼쳐왔다. 그러다 지난해 10월 건강 악화로 출연 중이던 연극을 취소한 뒤 조용히 휴식을 취하다가 작고했다.

고인의 영결식에서는 배우 정보석이 사회를 맡고, 김영철과 하지원이 추모사를 낭독했다. 이 외에도 많은 배우들이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발인은 같은 날 오전 6시20분에 치러졌으며, 장지는 경기도 이천에 위치한 에덴낙원이었다.

영결식에서 사회자 정보석은 “선생님의 한 걸음 한 걸음이 우리 후배들이 따라갈 수 있는 큰 역사였고, 선생님은 항상 제일 앞에서 큰 우상으로서 후배들이 마음 놓고 연기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주셨다”며 그는 이순재를 ‘연기의 역사’라고 칭했다.

‘평생 연기했는데 팬클럽이 없다’는 말에 팬클럽 회장을 자처했던 배우 하지원은 추도사에서 생전 고인과 연기에 관해 나눴던 대화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그는 당시 “연기는 왜 할수록 어려운가요? 라고 물었더니 선생님은 잠시 저를 바라보더니 특유의 담담한 목소리로 ‘나도 지금까지 어렵다’고 하셨다”며 “그 한마디는 저의 큰 위로이자 오랜 시간 마음 깊이 새긴 가르침이었다”고 말했다. 하지원은 “저는 선생님의 영원한 팬클럽 회장”이라며 추도사를 마쳤다.

애도의 물결이 이어지며 가수 겸 배우 이승기, 배우 최수종·하희라 부부, 송승헌, 김성환, 이한위, 손숙, 박상원, 김희애, 장용, 최지우, 가수 이용, 바다, MC 유재석, 박경림 등이 조문했다.

tvN 여행 예능 <꽃보다 할배>를 같이 했던 원로배우 백일섭, 박근형, 신구, 김용건도 빈소를 찾았다. 백일섭은 “먹먹해서 하루 종일 소화가 안 된다”며 “(이순재와) 거의 50년을 가깝게 지냈다. 가끔 만나도 어제 만난 것 같았다”고 전하면서 “형이 95살까지 하면 나도 95살까지 연기할 거라고 했었는데, 약속 못 지키고 가시나”라고 애도했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유족에게 대한민국 정부 포상의 최고 훈격인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훈장은 영전에 함께 놓였다. 최 장관은 “연극, 영화, 방송을 아우르며 칠십년의 세월 동안 늘 우리 국민과 함께하며 울고 웃으셨다”며 “선생님이 남기신 발자취는 길이길이 기억될 것이다. 선생님, 우리 모두 신세 많이 졌습니다”라고 고인을 기렸다.

91세 나이로 별세…후배들 배웅 속 영면
<햄릿> 보고 배우의 길…70년 연기 인생

고인은 지난 1월 <개소리>로 KBS에서 연기대상을 수상하며 역대 최고령 수상자로 이름을 남기기도 했다. 당시 이순재는 “오래 살다 보니 이런 날이 온다”며 “여러분, 정말 평생 신세 많이 지고 도움 많았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수상 소감으로 시청자에게 큰 감동을 남겼다.

이순재는 1934년 함경북도 회령군에서 태어나 4세 때 조부모를 따라 서울로 내려왔다. 이후 서울대학교 철학과에 진학해 영국 배우 로렌스 올리비에가 출연한 영화 <햄릿>을 보고 배우의 길을 걷게 됐다. 그는 1965년 TBC 1기 전속 배우로 데뷔해 연극 <지평선 너머>를 시작으로, 총 70년 가까이 연기 인생을 이어왔다.

무대뿐 아니라 드라마와 영화에서도 활약하며 ‘국민 아버지’로 대중들에게 친숙히 다가왔다. 그는 KBS와 MBC 등을 넘나들며 수많은 드라마에 출연했다.

대표작으로는 1991년 방영된 MBC 주말 연속극 <사랑이 뭐길래> 고집스러우면서 가부장적인 아버지 ‘이병호’ 역을 맡았다. 그는 1990년대 당시 전형적인 아버지 상을 연기하며 엄격하고 목소리가 큰 성격의 가장을 보여줬다.

특히 아들인 이대발 역의 최민수를 특유의 걸걸한 목소리로 “대발아”라고 부르는 대사가 전국적으로 유행어가 될 만큼 큰 인기를 얻으면서 ‘대발이 아버지’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 작품은 역대 한국 드라마에서 손꼽히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1999년 드라마 <허준>에서 이순재는 주인공 허준의 스승인 명의 ‘유의태’ 역을 맡았다. 유의태는 뛰어난 의술과 강한 성격을 지닌 조선 최고의 한의사로, 젊은 허준에게 의술과 인생의 진리를 가르치는 든든한 멘토이자 조력자 역할을 한 인물이었다.

이순재는 <허준>에서 탁월한 연기로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으며, 주인공이 위기에 빠질 때마다 지혜와 용기로 돕는 장면들이 크게 사랑받았다.

특히 임진왜란 중 허준을 위험에서 구해내고, 의서 편찬을 지원하며 허준이 궁궐 내에서 인정받게 만드는 과정에서 그의 역할이 돋보였다. 유의태의 엄격하지만 인간적인 모습과 불같은 성격, 그리고 허준에 대한 깊은 애정이 어우러진 장면들이 많은 시청자들의 기억에 남았다.

이 드라마는 최고 시청률 64.8%를 기록하며 국민 드라마로 자리 잡았고, 이순재의 일품 연기는 작품의 깊이를 더하는 결정적인 요소로 평가받았다. 이 작품은 대한민국 사극 사상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으며 높은 완성도로 아직까지 사극 중 최고로 평가받고 있다.

대한한의사협회는 고인이 “단순한 국민 배우를 넘어 한의철학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이를 국민에게 온전히 전달해 준 귀중한 분이었다”고 밝혔다. 이들은 “한의학 발전과 국민 건강 증진에 기여한 고인의 공로를 길이 기억하겠다”고 전하며 추모했다.

이 작품을 통해 이순재는 한의학의 뿌리와 철학을 대중에게 친숙하게 전달하며 공로를 인정받았다. 대한한의사협회는 그를 ‘명예 한의사’로 위촉했고,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에서도 ‘한의학 명예 학사’ 학위를 수여한 바 있다.

전설의
발자취

2006년 방영된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이순재는 가족에게 진심 어린 마음을 보여주는 캐릭터를 연기했다. 그는 본명 그대로 ‘순재’라는 인물로 등장해 한방병원 원장으로서 까칠하고 권위적인 가부장 역할을 했다. 아내 ‘문희’와 자식들에게 엄격하고 때로는 가족들 속을 썩이기도 하지만, 결국 가족을 위한 진심 어린 애정을 보여주는 인물이었다.

‘순재’는 작품에서 아들과 손자들 몰래 인터넷 야동(야한 동영상)을 본다는 설정으로 ‘야동 순재’라는 전무후무한 별명으로 불렸다. 그는 노년 남성의 이미지를 내려놓고 유쾌한 연기를 보여주며 시청자에게 큰 웃음을 선사했다.

2009년 방영된 MBC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은 ‘하이킥’ 시리즈 형태로 시청자 앞에 재등장했다. 이순재는 <거침없이 하이킥>에 이어 여기서도 ‘순재’라는 이름으로 출연하지만, 한의사에서 자수성가한 식품회사 사장으로 변신해 전과 다른 면모를 보여줬다.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그는 다혈질이지만 사랑 앞에서는 자상하고 매너 있는 역할을 맡았다. 아내와 사별한 이후 6년 만에 다시 사랑을 찾아 나선 ‘순재’는 유쾌한 연기를 보여주며 시청자를 다시 한번 매료시켰다.

특히 새로운 사랑인 ‘자옥’과의 러브라인과 사위인 정보석 등 가족 간에 벌어지는 크고 작은 소동은 시청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이 시트콤은 이순재에게 또 다른 세대와 공감할 수 있는 친근한 이미지를 확고히 한 작품으로 남았다. 특히 그는 <거침없이 하이킥>을 통해 2007년 MBC 방송연예대상 시상식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출연진들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2007년 MBC 사극 드라마 <이산>에서 조선 왕 영조 역을 맡아 냉철하고 카리스마 있는 왕의 모습을 연기해 같은 해 MBC 연기대상에서 사극 부문 황금연기상을 공동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영조의 권위와 냉철함을 표현하며 아들 이산(정조)을 향한 복잡한 감정, 권력과 왕권 유지를 위한 결단을 연기하는 면모로 돋보였다.

이순재는 이 밖에도 <베토벤 바이러스> <선덕여왕> <대물> <욕망의 불꽃> 등 굴지의 인기 드라마에 출연했다.

2008년 MBC 미니시리즈 <베토벤 바이러스>에서는 악단 대표 ‘김갑용’ 역할로, 음악과 인생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며 주목받았다.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는 캐릭터로, 음악에 대한 열정을 포기하지 않는 깊이 있는 연기를 선보였다.

특히 김갑용의 치매 증상이 점차 심해지면서 발생하는 주변인들과의 관계 변화를 섬세하게 표현해 큰 호평을 받았다. 이순재는 <베토벤 바이러스>를 통해 2008년 MBC 연기대상 특별상을 수상했다.

2010년 SBS 드라마 <대물>에서는 ‘백성민’ 대통령 역을 맡아 권력자의 위엄과 인간적인 면모를 동시에 소화했다. 그는 권력의 무게와 정치적 갈등 속에서도 인간적인 면모를 잃지 않는 대통령 역을 소화했는데, 특히 ‘조배호’ 역의 배우 박근형과 정치적 갈등을 이루며 긴장감을 높였다.

2015년에는 KBS2 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에서 조연으로 출연하며 연기상을 수상하는 등 다수 작품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것으로 평가받았다.

최근 작품은 지난해 KBS 드라마 <개소리>로, 주연으로 출연한 미스터리 코미디 드라마다. 이 작품은 이순재가 드라마 촬영 중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갑질 배우’라는 오명을 쓰고 충격에 빠져 거제도로 도피성 휴양을 떠나면서 시작된다.

평생 연극
깊은 애정

그곳에서 은퇴한 경찰견 ‘소피’와 만나 강아지의 말을 사람의 언어로 듣게 되면서 그는 미스터리한 사건들을 하나씩 해결해 나간다. 이후 거제도 동네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소피와 함께 조사하며, 인간관계와 삶의 의미를 새롭게 찾아가는 이야기로, 유쾌하면서도 발칙한 노년 성장기를 담아냈다.

이순재가 미스터리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인생 2막을 열어가는 모습이 주를 이루고, 오랜 친구이자 동료인 배우 김용건과 티격태격하면서도 서로 돕는 동거 관계도 주요 웃음 포인트로 등장했다. 그에게 이 작품은 2024 KBS 연기대상에서 대상을 수상케 한 생애 마지막 수상작이기도 했다.

이순재는 연극에 대해 평생 깊은 애정을 가진 배우였다. 그는 2018년 한 인터뷰에서 “대사를 외울 수 있을 때까지는 연기하고 싶다. 매 작품이 유작이라는 생각으로 임한다”고 말하며 무대에 대한 특별한 책임감과 열정을 드러냈다.

2023년에도 “내 소망은 무대에서 쓰러지는 것이다. 그게 가장 행복한 것”이라는 발언으로 연극에 대한 애착과 그가 생각하는 배우의 삶을 진솔하게 밝혔다.

이순재는 “배우가 자기 연기를 구체화해 관객과 소통하는 방법은 연극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배우였다. 그는 연극 <장수상회> <앙리할아버지와 나> <세일즈맨의 죽음> <리어왕> 등을 통해 더욱 가까이서 관객과 마주했다.

연극 <앙리할아버지와 나>는 2018년 시작해 2021년에는 서울 공연과 지방 투어를 통해 전국적으로 선보여졌다. 흥행 면에서 작품성과 배우들의 열연으로 꾸준한 관객 호응을 받았다. 특히 현실적인 세대 갈등과 따뜻한 메시지로 관객으로부터 깊은 공감을 얻었다.

티켓 오픈 시마다 빠른 매진을 기록하며 흥행 성공을 거뒀고, 작품성까지 인정받았다. 그는 <장수상회>와 같은 후속작의 성공에도 기여하며, 세대 공감을 자아내는 휴먼 드라마를 만들어 이 연극을 꾸준히 사랑받는 작품으로 남겼다.

이순재는 2020년부터 3년 동안 연극 <장수상회>에서 ‘김성칠’ 역을 연기했다. 까칠하고 융통성 없는 노신사 성칠이 오랜 시간 지켜온 장수마트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뿐만 아니라 원로배우 신구, 손숙 등 베테랑 배우들이 선사하는 섬세한 연기로 관객들에게 깊은 감동을 줬다. 무엇보다 가족 간 갈등과 화해, 치매 환자에 대한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 많은 공감을 얻었다. 연극을 관람한 관객들은 “내 자신과 가족들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며 “연극 보면서 오열한 건 처음”이라는 등의 호평을 쏟아냈다.

‘대발이 아버지’부터
‘야동 순재’까지 소화

이순재는 연극 <리어왕>으로 정점을 찍었다. 87세의 나이에도 무대에 올라 화제가 됐다. 3시간이 넘는 러닝타임과 방대한 대사를 소화하며 ‘노장 배우’의 상징으로 불렸다. 2024년 백상예술대상 특별무대에서 <리어왕> 연기를 재연하기도 했다.

배우 박근형은 이순재의 장례식장에서 2021년 방영됐던 골프 예능 <그랜파> 촬영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이순재가 “취침 시간에도 계속 연극 <리어왕> 대사를 외웠다”며, 이순재에게 “‘일을 좀 적게 하시는 건 어떻냐’고 했는데 ‘아니야, 이건 내가 꼭 해야 돼. 하고 싶었던 거야’”라는 대답을 들었다고 전했다.

이순재는 구순(90세)이었던 지난해 건강 이상으로 활동을 중단하기 전까지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로 연기를 펼쳤다.

이순재는 나영석 PD가 연출한 대표 예능 <꽃보다 할배> 시리즈에 출연하며 그와 큰 인연을 맺었다. <꽃보다 할배>는 나영석이 tvN으로 이적한 후 처음 만든 작품이다. 2013년 첫 방영을 시작으로 시즌 4까지 제작된 여행 버라이어티로 이순재, 신구, 백일섭 등 원로 배우들과 여행 예능을 펼쳐 큰 인기를 끌었다.

특히 배우 이서진은 젊은 짐꾼 역할로 출연하며 할아버지 세대와 호흡을 맞췄다. 나영석은 이순재의 별세 소식에 깊은 충격과 애도를 표하며 방송 중 그와 함께했던 시간을 회고했고, 이서진과 함께 빈소를 방문해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꽃보다 할배>에서 ‘순재 할배’는 귀엽고 순박한 매력으로, 때로는 직진하는 엉뚱한 모습들을 보여줬다. 동시에 80세가 넘는 나이에도 외국어를 유창히 구사하며 끊임없이 공부하고 배우는 모습이 담겨 찬사를 받았다.

또 파리, 스페인 등 해외여행에서 보여준 모습들도 화제가 됐다. 이순재는 나영석과 멤버들 사이에서 중심 역할을 하며 특유의 유머와 인간미로 화면을 빛냈다. 나영석이 인터뷰에서 “이순재는 ‘꽃할배’ 그 자체”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방송계도 추모를 이어갔다. KBS 2TV에서는 지난달 25일부터 26일까지 <추모특선 국민배우 이순재 개소리 1~4회 몰아보기>와 <추모특선 국민배우 이순재 십분간, 당신의 사소한>을 방영했다.

KBS는 “반세기 넘게 한국 방송 발전에 기여한 고인의 예술적 업적과 헌신을 기리기 위해 분향소를 설치했다”며 서울 여의도 KBS 본관 2층에 고인의 추모 공간을 마련했으며, 일반인들의 조문 행렬이 잇따랐다.

끝까지
무대서

이순재는 “예술이란 영원한 미완성이다. 나는 완성을 향해 끊임 없이 도전한다”는 말을 습관처럼 했다. 이 같은 심상으로 도전했던 드라마가 310편, 영화가 130편, 연극이 60편이었다.

연기를 향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탐미하는 자세와 철학은 그가 평생 현역으로 연기활동을 이어온 이유이자, 후배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이유였다. 이제 그는 평생을 예술에 바친 진정한 장인으로 편안한 영면에 들었다.

<jen9@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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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설계사 발목 잡는 ‘포괄양수도’ 함정

[단독] 설계사 발목 잡는 ‘포괄양수도’ 함정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보험설계사가 회사를 떠나더라도 자신이 모집·관리해 온 고객의 보험계약을 함께 옮길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이른바 ‘포괄양수도’. 한 대형 보험대리점 산하 조직이 설계사를 영입하는 과정에서 퇴사 시 기존 관리계약을 양수도 방식으로 이관해 주겠다는 내용의 약정서를 작성했다. “나가도 기존 계약을 가져갈 수 있다”는 약속은 실제로 지켜질 수 있었을까. 보험설계사가 회사를 옮길 때 자신이 기존 회사에서 모집·관리하던 보험계약을 새 소속에서도 계속 담당할 수 있도록 넘겨받는 것을 업계에서는 흔히 ‘포괄양수도’라고 부른다. 설계사 입장에서는 이직 이후에도 기존 고객을 계속 관리할 수 있고, 계약 유지에 따라 발생하는 수수료 문제와도 연결될 수 있어 소속을 옮길 때 중요한 조건으로 꼽힌다. 양수도 약속 실행 미지수 다만 보험계약 자체가 설계사의 소유물인 것은 아니다. 보험계약의 당사자는 보험회사와 보험계약자이고, 보험설계사는 고객에게 상품을 설명하고 계약 체결을 중개한 대가로 보험사나 법조인보험대리점(GA)으로부터 약정된 수수료를 받는 구조다. 따라서 설계사가 자신이 모집한 계약에 대해 법적인 ‘소유권’을 갖고 있어 회사를 옮길 때 자유롭게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한 설계사가 한 법인보험대리점에서 근무하면서 고객 100명의 보험계약을 모집했다고 가정해 보자. 설계사가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보험대리점으로 옮긴다고 해서 고객 100명의 보험계약이 자동으로 설계사를 따라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보험계약 자체는 기존 보험사와 고객 사이에 그대로 유지되고, 설계사가 퇴사하면 기존 회사가 해당 계약을 관리하거나 다른 설계사를 담당자로 지정할 수 있다. 반대로 기존 회사와 설계사 사이에 계약 이관에 대한 합의가 있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설계사가 새 보험대리점으로 이동한 뒤에도 자신이 모집했던 계약을 계속 담당할 수 있도록 기존 회사에서 새 회사로 관리관계를 옮기는 절차를 밟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기존·신규 보험대리점 간 협의와 수수료 정산, 보험사 전산상 담당자 변경 등 실무적인 절차가 뒤따를 수 있다. 중요한 점은 이 같은 계약 이관을 보험업법 등이 일률적으로 보장하거나 금지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보험설계사의 이직에 따른 계약 이관을 직접 규율하는 법령이 없어, 실제로 계약을 넘겨줄지 여부는 기본적으로 보험대리점과 설계사 사이의 계약이나 합의에 따라 결정되는 영역으로 해석된다. 설계사 영입 ‘계약 이관’ 약정 본사는 양수도 불허…엇갈린 방침 이 때문에 보험대리점이 설계사를 영입할 당시 “향후 다른 회사로 옮기더라도 기존 계약을 이관해 주겠다”고 약속했다면 해당 약정이 중요해진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인카금융서비스 내 인카다이렉트 산하 사업단은 설계사를 영입하는 과정에서 향후 퇴사할 경우 기존 관리계약을 양수도 방식으로 이관해 주겠다는 내용을 약정서에 담았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인카금융서비스(주) 사업단 부속 약정서’에는 인카다이렉트 사업단과 설계사 김모씨 사이의 구체적인 계약 조건이 적혀 있다. 눈에 띄는 것은 퇴사 이후의 계약 처리 방식이다. 약정서에는 “조직의 이동(퇴사) 시, 전체 관리계약의 양수도 조건으로 원활한 계약 이관 조치한다”고 명시돼있다. 설계사가 향후 조직을 떠나더라도 기존에 관리하던 계약을 이관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계약 이관뿐 아니라 퇴사 이후 남아 있는 수수료에 대한 내용도 포함됐다. 약정서에는 조직 이동 또는 퇴사 시 “미정산 잔여 유지수수료는 월지급 또는 퇴사 시점부터 1년이 되는 시점에 정산해 지급한다”고 적혀 있다. 영입 당시 지급 수수료율과 일부 시책 등 구체적인 보상 조건도 함께 약정됐다. 앞서 작성된 또 다른 부속 약정서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확인된다. 해당 문서 역시 조직 이동 또는 퇴사 시 전체 관리계약을 양수도 조건으로 이관하고, 남은 유지 수수료를 별도로 정산하도록 했다. 그런데 이 약정에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설계사에게 계약 이관을 약속한 주체는 인카금융서비스 본사가 아니라 인카다이렉트 산하 사업단이다. 인카다이렉트는 인카금융서비스 내에 편입된 영업 조직이다. 기존 다이렉트119가 인카금융서비스에 합병되면서 인카다이렉트라는 조직으로 편입됐고, 그 아래 다시 사업단과 본부 등 영업 조직이 구성돼있다. 계약 옮겨도 정산은 별개 앞서 김씨와 부속 약정을 체결한 사업단 역시 이 같은 인카다이렉트 산하 조직 중 하나다. 문제는 인카다이렉트 산하 사업단이 체결한 이 같은 약정이 인카금융서비스 본사의 방침과 맞아떨어졌느냐다. 인카금융서비스 본사는 지난 2024년 소속 조직에 포괄양수도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방침을 전달했다. 김씨는 이후 본사의 방침과 자신이 체결한 약정 내용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본사에서는 안 된다고 하는 포괄양수도를 사업단이 어떻게 약정할 수 있는 것이냐”며 문제를 제기했다. 본사가 포괄양수도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갖고 있었다면, 사업단이 설계사에게 향후 퇴사 시 전체 관리계약을 이관해 주겠다고 약정할 수 있었는지가 쟁점인 셈이다. 사업단 자체 판단만으로 계약 이관을 약속할 수 있었는지, 아니면 인카다이렉트나 인카금융서비스 차원의 권한이나 승인이 전제돼있었는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약정서에 ‘계약을 이관한다’고 적었다고 해서 실제 포괄양수도가 쉽게 이뤄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계약을 넘기는 과정에서는 기존 소속 회사와 새로 옮길 회사, 보험사 등 여러 주체의 협의가 뒤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가령 한 설계사가 A법인보험대리점(GA)에서 B 대리점으로 옮기면서 기존에 관리하던 계약을 함께 가져가려 한다면, 우선 기존 GA가 해당 계약을 내보내는 데 협조해야 하고, 새 GA 역시 이를 받아 관리할 수 있는 상태여야 한다. 이후 실제 보험계약을 보유한 보험사 전산에서도 담당 조직이나 설계사 변경 등 필요한 절차가 이뤄져야 한다. 근저당 걸고 3년 만 이관 계약을 넘기는 과정에서는 돈 문제도 함께 정리해야 한다. 설계사에게 지급되는 수수료는 계약 체결 시점에 모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유지 기간에 따라 나눠 지급되는 경우가 많다. 회사가 자체 재원으로 일부 수수료를 먼저 지급했거나 정착 지원금·시상금 등을 지급했다면, 퇴사 시 이를 어떻게 정산할지를 두고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실제 보험업계에서는 설계사가 다른 GA로 옮기는 과정에서 기존 소속 회사가 계약 이관에 협조하지 않아 분쟁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반복돼 왔다. 계약 이관 여부를 일률적으로 정한 법적 기준이 없는 만큼, 기존 GA가 계약을 내보내지 않겠다고 판단할 경우 설계사가 이를 일방적으로 요구하기는 쉽지 않은 구조다. 기존 GA 입장에서도 계약이 빠져나가면 향후 해당 계약에서 발생하는 수수료 등 수익이 줄어들 수 있다. 설계사의 이직과 함께 기존 고객 계약까지 다른 회사로 넘어갈 경우, 회사가 관리하던 계약과 수익 기반을 함께 내주는 셈이어서 계약 이관에 소극적일 유인이 있다는 설명이다. ‘포괄양수도’가 가능하다고 해도 실제 진행은 쉽지만은 않다. 계약의 관리만 넘겨주는지, 남은 수수료까지 함께 정산하는지, 기존에 지급된 지원금이나 시상금에 환수 조건이 붙는지 등에 따라 설계사가 체감하는 조건은 크게 달라진다. 인카다이렉트 측 관리자들은 이와 관련해 포괄양수도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지난 8월 김씨와의 카카오톡 대화에서 한 관리자는 “인카다이렉트 양수도 100% 된다”며 “W금융이 대표적이고, 개인이든 지점이든 자신들이 계속분을 받기 위해 안 한 거지 원하는 분들 다 해드렸다”고 말했다. 이들의 설명대로라면 포괄양수도가 이뤄지지 않은 사례는 회사가 이를 거부해서가 아니라, 설계사나 조직이 기존 계약에서 계속 발생하는 수수료를 받기 위해 스스로 계약 이관을 선택하지 않은 경우라는 취지다. ‘100% 가능’ 철석같은 약속 실제 이관까지 절차 수두룩 하지만 <일요시사>가 확인한 W금융 측 설명은 달랐다. W금융 대표는 DM(다이렉트 메시지)에서 “포괄양수도를 받은 사실이 없다”고 전했다. “내가 과거 인카 측에서 해촉된 뒤 곧바로 포괄양수도를 받은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인카다이렉트 측 설명처럼 퇴사와 동시에 기존 계약과 관련 권리가 한꺼번에 넘어온 것이 아니라, 해촉 이후 약 3년이 지나서야 기존에 관리하던 계약을 이관받았다는 것이다. 대표는 계약을 넘겨받는 과정에서도 별도의 조건이 뒤따랐다고 주장했다. 계약 이관 과정에서 근저당 설정 등의 부담이 있었고, 기존 계약에서 발생하는 유지 수수료 역시 충분히 정산받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다만 계약 이관을 어디까지 ‘포괄양수도’로 볼 것인지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퇴사 이후 기존 계약 일부 또는 전부가 다른 회사로 이관됐다고 하더라도, 영입 당시 약속한 조건에 따라 즉시 계약과 잔여 수수료 등이 함께 이전된 것인지, 일정 기간이 지난 뒤 별도의 협의와 조건을 거쳐 이관된 것인지는 성격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포괄양수도 사례로 W금융을 언급한 경위에 대해 당시 김씨와 대화를 나눴던 사업단 관리자에게도 확인을 요청했다. 해당 관리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회사에서 전해 들은 내용을 그대로 전달했을 뿐”이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자신이 포괄양수도 가능 여부나 과거 사례를 직접 확인해 안내한 것은 아니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후 A씨는 인카다이렉트를 떠나 같은 인카금융서비스 내 다른 조직으로 소속을 옮겨달라고 요청하는 한편, 포괄양수도 약정과 실제 운영 방식에 대한 문제를 SNS에 제기했다. 해당 내용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커지자 인카다이렉트 측은 A씨의 게시물 등을 문제 삼았고, 결국 A씨는 ‘허위 사실 유포 및 회사 평판 리스크’ 등을 이유로 해촉 통보를 받은 상태다. 결국 문제는 인카다이렉트 산하 사업단이 설계사들에게 약정한 포괄양수도가 실제 100% 가능한 조건이었는지다. 또 본사의 방침과는 달리 ‘포괄양수도’에 대해 사업단이 자체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는지도 쟁점이다. 방침 따로 약정 따로 인카다이렉트 측은 현재 회사 내부 규정상 설계사 퇴사에 따른 타사 계약 이관과 잔여 수수료 등을 일괄 이전하는 포괄양수도를 운영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소비자가 직접 요청하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개별 계약 이관을 허용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산하 사업단에서 포괄양수도가 가능하다고 안내하거나 별도 약정을 체결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사실관계를 확인하겠다고 밝혔다. 회사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만약 그렇게 했다면 사업단에서 독단적으로 결정한 것”이라는 취지로 설명하며, 잘못된 안내가 사실로 확인될 경우 내부 조사와 필요시 제재가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