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서진 기자 =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이 지난 국정감사에서 자신을 둘러싼 ‘뇌물수수’ 의혹에 대해 추궁을 받았다. 1억원의 불법 선거자금 수수, 20억원대 핸드크림 리베이트 의혹까지 잇따라 터져 나왔다. 금융감독원이 감사에 나선 뒤 임원진 절반을 교체하는 쇄신안을 내놓자 ‘꼬리 자르기식’ 대처라는 질타를 받고 있다.
NH농협생명은 지역 농·축협의 보험 판매 실적을 높이기 위해 판촉용으로 핸드크림 3종 세트를 세트당 2만원(생산 단가 1만1000원)의 가격으로 모두 10만개(20억원 상당)를 수의계약으로 지난해 12월 발주했다.
97년생 대표
직원은 1명
하지만 납품 기한 내 실제 보급량은 절반인 5만개에 불과했고, 실질 납품업체는 현재 대기발령된 농협생명 3급 고위 직원의 여동생이 운영하는 전남 완도 소재 피부숍으로 밝혀졌다. 단가는 세트당 2만원으로 총액은 20억원에 달했다. 계약 규모가 큰 만큼 당시 농협생명 부사장이었던 박병희 현 대표까지 결재 라인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실제 농협생명에 납품된 핸드크림은 10억원어치(5만개)에 불과해 나머지 10억원을 횡령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다.
농협금융지주가 특별감사에 나선 후에야 뒤늦게 나머지 5만개가 납품된 것으로 알려졌다. 농협생명 측은 계절적 요인 등을 고려해 분할해 납품받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10월21일부터 감사에 착수했다. 문제가 된 핸드크림은 경기 용인시 소재의 한 회사가 제조하고, 판매(화장품 책임 판매업자)는 코스메디엠이 담당한 것으로 기재돼있다. 코스메디엠은 자본금 1000만원에 불과한 1997년생 대표 1명이 직원의 전부인 회사로 2024년 11월14일에서야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화장품 책임 판매업 허가를 받았다.
매체에 따르면, 농협생명과 수의계약을 맺은 하나로유통삼송센터는 에이오(AO)와 라인플러스라는 회사에 핸드크림 구매·유통 하청을 줬다. 두 업체는 다시 지현살롱이라는 업체에 재하청을 맡겼다. 지현살롱은 농협생명 직원의 가족이 운영하는 회사로 드러나면서 의혹을 키웠다.
코스메디엠→지현살롱→에이오·라인플러스→삼송센터→농협생명 순서로 핸드크림이 유통되는 구조인 셈이다.
핸드크림은 납품 기한인 지난 2월28일까지 계약과 다르게 5만개만 보급됐다. 이 같은 내용의 제보가 농협중앙회에 접수됐고, 농협금융지주가 이를 전달받아 지난 8월28일부터 9월11일까지 현장 감사를 진행했다. 나머지 5만개 핸드크림은 농협금융의 감사가 시작된 직후 납품된 것으로 확인됐다.
2배 뻥튀기…20억원 핸드크림 허위 결제
금감원 감사 들어가자 나머지 5만개 납품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NH농협생명의 판촉물 리베이트 거래 의혹에 대해 “비리 혐의가 짙다”며 검사 결과에 따라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이 원장은 지난달 27일, 국회 정무위원회 종합 국정감사에서 허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이같이 말하고 보험업계 사은품 전반에 대한 전수조사를 검토하기로 했다.
이 원장은 “NH농협생명이 고객 사은품으로 핸드크림 10만개를 수의계약하는 과정에서 비자금성 현금 리베이트 거래를 했다”는 허 의원의 지적에 “관련 비리 혐의가 짙기 때문에 사실관계를 확인 중으로, 현장 검사는 이미 했다”고 답했다.
핸드크림 계약 당시 농협생명 부사장으로 재직하다 지난 1월 사장으로 승진한 인사가 내부 감사 과정에서 진술한 내용도 의심을 키웠다.
허 의원은 “유령업체와 거래하면서 최대 9억원의 비자금이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며 “현금이 중앙회장, 농협생명 대표에게 현금으로 전달됐다는 것이고 횡령 뇌물을 수수한 것인데 농협금융지주는 당사자에 대한 내부 감사를 전혀 하지 않았다”고 질책했다.
이어 “올해 1월 사장으로 승진하고 계약할 당시 농협생명 부사장이 내부 감사 과정에서 ‘나는 챙긴 게 없고 11층에 갖다줬다’고 진술했다”며 “11층은 농협생명 중앙회인데 이게 뇌물 및 불법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사은품을 취급하는 보험업계 전반에 대한 전수조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에 대해 이 원장은 “검사할 때 참고해서 반영토록 하겠다”고 답했다.
납품가격에 대한 문제점도 제기됐다. 판촉물로 구매한 핸드크림 3종 세트는 1세트당 단가가 2만원으로 책정됐다. 인터넷 판매가격이 3만7000원인데, 대량 구매를 고려해 2만원까지 낮췄다는 것이다.
의심 키운
진술 내용
하지만 네이버 등 주요 포털 및 쿠팡 등 전자상거래 구매 상위권에 오른 상품 중 비슷한 성분과 용량의 핸드크림 세트의 가격은 1만원 안팎으로 형성돼있다. 해당 제품은 판매사조차 불분명한 데다 현재 공식 판매 사이트는 운영이 중지된 상태다.
화장품 업계 한 임원은 “특별한 브랜딩이나 기능성 성분이 들어간 것이 아니라면 일반적인 핸드크림 30㎖ 제품의 판매가는 3000원 정도”라며 “세트당 1만원 안팎이 대부분”라고 귀띔했다.
농협금융 내부에선 이 석연치 않은 계약이 리베이트를 위한 시도였을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이 나온다. 한 농협 관계자는 “단순 직원 개인의 일탈로 보이지 않는다”며 “중간에 빼돌리려 했던 돈이 농협 내부에 만연해 있는 리베이트 자금으로 활용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박병희 농협생명 대표는 매체와 통화에서 “농협금융이 감사 중인 사안이라 따로 할 말이 없다”고 했다. 리베이트 의혹에 대해서도 즉답을 피했다. 앞서 농협생명 측은 “결제 금액이 일정 수준 이상이면 부사장도 결재선에 들어간다”고 했다.
금감원 검사의 핵심은 10억원의 자금흐름을 파악하는 것이 될 전망이다. 박 대표가 관련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는지도 주요 쟁점이다. 앞서 경찰은 이 건과 별개로 1억원대 뇌물수수 혐의를 받는 강호동 중앙회장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뇌물수수 의혹을 받게 된 농협중앙회 측은 “우리 소관이 아니니 농협생명 담당자에게 물어보시라”며 책임을 회피했다.
연락 끊고
잠수 탔다
농협생명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전화 통화에서 “금융감독원이 농협중앙회를 감사한 이후 농협생명도 현재 감사 중인 상황이라 세부적인 답변이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핸드크림이 기한 내 납품되지 않은 것과 관련해 타 매체와 인터뷰에서 “당시 구매한 핸드크림은 해당 기업 제품이 맞다”며 “시기의 문제”라고 했다.
기한은 지났지만, 최종적으로는 핸드크림이 전부 납품됐다는 것이다. 코스메디엠 대표와 지현살롱 측은 연락을 받지 않고 있다.
한편, 강 회장은 2024년 1월 농협중앙회장 선거 과정에서 농협 계열사와 거래 관계에 있던 용역업체 대표로부터 약 1억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서울경찰청 반부패수사대는 지난달 15일, 강 회장의 집무실 등 농협중앙회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 회장의 구체적인 금품수수 시점을 지적하는 의원의 질의도 나왔다. 진보당 전종덕 의원은 “벤츠 안에서 5000만원, 그리고 2023년 12월 서울역 인근에서 5000만원 등 1억원을 수수했느냐”라고 물었다. 이에 대해 강 회장은 “경찰에 가서 설명하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농협 용역업체 이 모 대표의 지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의 녹취록도 나왔다.
전 의원이 감사장에서 공개한 녹취록엔 “강호동한테 전화해가지고 ‘왜 돈을 받았으면서 고맙단 얘기를 안 하냐’ 그러니까 강호동이가 ‘아차차, 형님 연락할 겁니다’라고 했고 바로 연락이 와서 OO을 만나보라고 하니 만난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부사장 “11층에 돈 갖다 줬다” 진술
허영 의원 “11층은 중앙회장실인데?”
전 의원은 강 회장이 용역업체 대표를 플라자호텔에서 만났고 회유를 시도했다는 제보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농협중앙회 측은 “당사자가 아닌 제3자의 카더라 녹취”라며 “경찰 수사를 통해 소명할 것”이란 입장을 밝혔다.
전 의원은 “강호동 회장이 율곡 조합장 시절이었던 2022년에도 2000만원의 금품을 수수한 의혹이 있다”며 관련 녹취록을 공개했다. 이어 “강호동 회장이 취임 1주년 기념 인천지역조합장협의회가 회원 동의 없이 회비로 구입한 560만원 상당의 황금열쇠를 받았다가 논란이 되자 7월에 돌려줬다는 의혹도 있다”며 맹공을 이어갔다.
700조원 자산을 관리하는 농협중앙회가 강 회장의 검찰 수사 등으로 위기에 놓였다는 분석도 나왔다. 추락한 지역농협 신뢰와 부실채권 급증으로 상승한 연체율 등이 회복될 수 있을지 시장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농협중앙회는 임원진 절반을 교체하는 대규모 인사 쇄신안을 내놓으며 고강도 혁신을 선언했다. 하지만 강 회장 본인이 수억원대 뇌물수수 혐의를 받는 상황에서 이번 조치가 실질적 개혁이 아닌 ‘꼬리 자르기’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확산하고 있다.
지난달 25일 농협중앙회는 최근 발표한 ‘조직 쇄신 및 경영 투명성 강화 방안’을 통해 ▲계열사 대표 및 임원 절반 이상 교체 ▲대표이사 문책 강화를 위한 책무 구조도 도입 ▲수의계약 원칙적 금지 ▲향후 5년간 108조원 규모의 생산적·포용금융 지원 계획 등을 제시했다.
이는 조직 내 책임 경영 체계 확립과 윤리 경영 강화가 핵심 골자다.
중앙회가 제시한 이번 인적 쇄신 적용 대상은 중앙회를 비롯한 전 계열사의 대표이사와 전무이사 등 상근 임원과 집행 간부들이다. 경영 성과가 부진하고 전문성이 부족한 임원들을 전격 교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당장 이달부터 시작된 인사에 대대적인 변화의 바람이 불 것으로 보인다.
“생명에 물어라”
꼬리 자르기
이번 농협 개혁 과제 추진을 위해 출범시킨 ‘범농협 혁신 태스크포스(TF)’ 위원장에 지준섭 중앙회 부회장이 선임된 점도 논란이다. 지 부회장은 현재 농협은행 부당 대출 사건과 관련한 업무방해 혐의로 검찰에 불구속 기소된 상태임에도 중앙회 부회장직과 혁신 TF 위원장직을 겸직하게 됐다.
검찰 수사를 받는 중앙회장과 부회장이 내부 조직 개선 선봉에 나선 가운데 혁신안에서는 적극적인 외부 인력 보임으로 전문성과 투명성을 강화하겠다고 주장하는 점이 충돌한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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