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릿고개 넘는 제3지대 근황

춥고 배고픈 여의도 생존기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여당도 싫고 야당도 싫다는 중도층이 늘었지만, 이들은 제3지대로 쉽게 발걸음을 옮기지 못한다. 거대 양당 독식 구조가 단단히 뿌리 박힌 한국 정치 제도에서 군소 정당이 존재감을 드러내기 쉽지 않은 탓이다. 선거판에 태풍을 몰고 온 이들부터 ‘0석’ 원외 정당까지, 여의도 구석구석에 존재하는 제3지대 근황을 들여다봤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 개혁신당은 제3지대 중에서도 ‘그나마 잘 풀린 사례’로 여겨진다. 조국 비상대책위원장, 이준석 대표 등 이름이 알려진 정치인이 당을 이끌면서 중요한 대목마다 주목받았다. 그럼에도 지지율 5%의 벽을 넘지 못하면서 비교섭단체의 설움을 고스란히 안고 있다.

고군분투

혁신당은 지난 11일 ‘2025 전당대회 출발식’을 열고 새 지도부 선출을 위한 공식 선거 일정을 시작했다. 오는 23일 전당대회를 통해 당 대표를 선출할 예정으로 대표 후보로 조국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단독 입후보했다.

앞서 조 비대위원장은 공식 출마 선언을 하며 “지금까지의 조국을 과거의 조국으로 남기고 ‘다른 조국’ ‘새로운 조국’으로 국민과 다시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조 전 비대위원장은 “혁신당을 개혁과 민생, 선거에 강한 이기는 강소 정당으로 만들겠다”며 “총선에서 국민이 주셨던 마음을 되찾겠다”고 말했다. 공약으로는 ▲거대 양당 독점 정치 종식 ▲검찰개혁·사법개혁 완수 ▲차별금지법 도입 등을 냈다.


이번 전당대회는 수감생활로 빼앗긴 당 대표직을 조 전 비대위원장에게 돌려주는 형식적인 선거에 지나치지 않는다는 해석이 나온다. 당선이 확실시되지만 성비위 사태로 차갑게 등을 돌린 민심과 조 전 비대위원장이 사면된 이후에도 한 자릿수에 머무르는 지지율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혁신당은 내년 지방선거에서 지방정치의 교두보를 만들겠다고 자신했지만, 한 석도 얻지 못한다면 추후 정치생명을 보장할 수 없다는 우려도 나온다.

개혁신당은 보수 집결에 공을 들이고 있다. 국민의힘이 갈지자 행보를 보이면서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하자 갈 곳 없는 보수 지지층을 자신들의 편으로 끌어당긴 것이다.

개혁신당은 10·15 부동산 대책 등을 내놓은 이재명 대통령을 타깃으로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40대인 이 대표는 정치인 중에서도 어린 편에 속하는데 개혁신당 지지층도 대부분 2030 남성이다. 2030 남성이 가장 듣고 싶어하는 메시지를 계속해서 던지는 것”이라며 “이 대표는 10년, 20년 뒤 이들이 사회의 주류가 됐을 때를 기다리는 것 같다. 기득권이 된 지지층을 기반으로 대권을 꿈꾸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조국·이준석 빼면 ‘텅’…사실상 1인 정당
김문수와 손잡은 이낙연 정치 부활 가능성은?

각자의 자리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결국 내년 지방선거를 위해서는 혁신당과 개혁신당이 각각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국민의힘과 손을 잡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군소 정당에서 1인자가 되느니, 더 큰 정당에서 정치 자산을 쌓는 것이 대권주자로서도 유리하다는 점에서다.


두 정당 모두 단박에 선을 그었다. 앞서 조 전 비대위원장은 당 대표 출마 선언을 통해 “설익고 무례한 흡수 합당론에 흔들리지 않도록 강철처럼 단단한 정당을 만들겠다”고 밝힌 바 있다. 개혁신당 역시 ‘내란 정당’ 꼬리표를 단 국민의힘과 손잡을 이유가 없다는 분위기다.

민주당과 국민의힘도 이들과 거리를 두는 모양새다.

민주당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에서 “혁신당이 리스크를 많이 안고 있는 건 사실”이라며 “혁신당 의원을 개별로 접촉해 민주당으로 영입할 수 있겠지만 통째로 흡수해 합당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봤다. 한 국민의힘 의원 역시 “이 대표는 배신자로 낙인이 찍혀 다시 당으로 돌아오기 어려울 것”이라며 “당을 떠난 것도 모자라 새로운 둥지를 꾸렸으니 당에서도 반기는 분위기가 아니”라고 말했다.

양당제를 청산하고 새로운 정치 시대를 여는 것을 모토로 한 새미래민주당(이하 새미래)도 지지율이 한 자릿수를 벗어나지 못하면서 고군분투하는 모양새다. 이낙연 전 총리라는 거물급 인사를 중심으로 꾸려진 정당이지만 그가 정치 일선에서 물러서면서 급격히 동력을 잃었다.

지난해 9월 유일한 현역 의원이었던 김종민 의원이 탈당하면서 원외로 밀려났다.

새미래도 혁신당과 마찬가지로 한때 민주당과의 합당설이 나왔지만 지난 조기 대선서 이 전 총리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를 지지하면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당시 이 전 총리는 “한 사람의 사법 리스크를 없애기 위해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을 모두 장악하는 괴물 독재 국가로 가는 길을 선택했다”며 지지 배경을 설명했다.

이 전 총리가 우클릭을 시도하자 민주당에서는 “크게 실망했다”는 기류가 이어졌다. 우선 민주당 박경미 대변인은 “권력을 향한 탐욕에 신념과 양심을 팔아넘긴 사람이 괴물이 아니면 무엇이냐”며 “국민에게 총구를 겨누며 헌정 질서를 유린하려고 한 독재 세력과 결탁해놓고 독재를 우려하느냐? 온갖 궤변으로 자신의 내란 본색을 정당화하는 모습이 참으로 뻔뻔하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지금은 이재명 시간” 받아들인 한계
거대 양당에 가려져도 ‘지선’ 노린다

비명(비 이재명)계인 박용진 전 민주당 의원도 “이 전 총리가 괴물 독재 국가를 막기 위해 김문수 후보와 손잡는다고 하셨는데, 계엄으로 내란을 실행하려 했던 괴물 독재 잔당 세력과 손을 잡으시면서 그런 말씀을 하시느냐. 완전히 길을 잃으셨다”고 꼬집었다.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이 전 총리는 정치 1선에 서는 대신 SNS를 통해 지지자들과 소통을 이어왔다.

최근에 유튜브 채널을 개설한 이 전 총리는 “인생과 사회, 국가와 세계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저의 공부와 사색과 경험을 여러분과 나눌 것”이라며 “주제를 특정 분야로 묶어놓지 않고, 여러분과 국가에 도움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말씀드리겠다. 온라인·오프라인을 통해 여러분과 즉석에서 묻고 답하는 시간도 갖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전 총리가 정치판에 복귀할 가능성은 적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지금은 ‘이재명의 시간’일뿐더러 노선을 잃은 새미래가 다시 도약하기에는 당을 향한 국민의 관심도가 다른 군소 정당보다 현저히 낮다는 설명이다.


정치 스펙트럼에서 가장 왼쪽을 맡은 진보당은 내년에 치러질 지방선거를 고대하고 있다. 진보당은 매번 선거 때마다 선거 지역을 찾아 담배꽁초를 줍고 농촌 일을 돕는 등 바닥 민심 훑기 전략을 펼치고 있다. 그 결과 2022년 지방선거에서 ▲기초단체장 1명 ▲광역의원 3명 ▲기초의원 17명 등을 당선시키는 기록을 세웠다. 이후 재보궐선거에서는 ▲광역의원 1명 ▲기초의원 1명이 추가로 당선됐다.

진보당 김재연 상임대표는 내년 지방선거와 관련해 “광역단체장을 반드시 포함한 지방자치단체장을 최소 5곳 이상에서 당선시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경기도지사 후보군으로 이름을 올린 진보당 홍성규 대변인은 경기도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돌봄 3법 제정’을 주장하는 등 지방선거를 위해 몸풀기에 나섰다는 관측도 나온다.

생활 밀착형으로 특정 선거에서 강하지만 전국으로 확대되기 어렵다는 게 진보당의 가장 큰 단점이다. 현재 4석인 진보당은 기본소득당(1석), 사회민주당(1석)과 마찬가지로 비교섭단체인 군소 정당의 현실에 부딪혔다.

묵묵히

한 군소 정당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만나 “지금은 이재명의 시간”이라며 확장성에 한계가 있음을 인정했다. 이 관계자는 “각자 자리에서 정부의 손길이 닿지 않는 구석구석을 살피는 게 우리 일인데 아무래도 국민의 관심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그러다 보니 점점 존재감이 흐려지고, 존재감이 미미하니 중앙 정치에서 밀리는 일이 반복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양당제인 한국의 정치 제도에서 제3지대를 향한 표는 사표가 된다. 군소 정당에 한 표를 던지려다가도 내가 싫어하는 당의 후보가 당선되는 걸 막기 위해 큰 정당으로 손이 간다”며 “춥고 배고프지만 지지자와 당원들이 남아 있는 한 제3지대는 계속해서 굴러갈 것”이라고 말했다.

<hypak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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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내년 6월 치러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는 단연 서울시다. 서울시에 깃발을 꽂는 쪽이 전체 선거의 승리라 봐도 무관하다는 해석도 나온다. 진보 진영에서는 당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오세훈 대항마’를 자처하는 후보군이 속속 등장했지만, 서울 시민의 마음까지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전국 지역위원장 워크숍에서 제9회 지방선거(이하 지선) 승리라는 목표를 세웠다. 이달 중으로 지선 공천 룰을 확정해 빠르게 선거에 임하겠다는 방침이다. 큰 틀로는 ▲당원 민주주의 실현 ▲완전한 민주적 경선 ▲깨끗하고 유능한 후보 선출 ▲여성·청년·장애인 기회 확대 등 4대 방향이 제시됐다. 출사표 만지작 민주당은 이번 지선의 성격을 ‘완전한 내란 종식’으로 규정했다. 민주당 전국 지역위원장은 워크숍에서 ‘이재명정부 성공과 지선 승리를 위한 더불어민주당 전국지역위원장 결의문’을 통해 “국민의 준엄한 명령을 받들어 민생회복·내란청산·개혁완수라는 역사적 사명을 반드시 이루어 낼 것을 결의한다”고 밝혔다. 내년 지선서 압도적 승리를 이끌어냄으로서 ‘무능 부패한 국민의힘 지방권력’을 심판하고 ‘진짜 자치분권 균형성장’의 시대를 만들겠다는 방침이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 또한 “이정부 성공을 위해 당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모든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다가오는 지선은 민주당의 책임과 기회의 시험대다. 당의 힘을 모아 이정부의 성공과 지선 승리라는 두 목표를 함께 이뤄낼 것”이라고 밝혔다. 주목도가 높은 서울시장 선거 최종 후보가 되는 것만으로도 존재감을 키울 수 있다. 차기 서울시장 임기는 2030년으로 21대 대통령선거 시기와 맞아떨어진다. 그동안 서울시장은 대선주자로 가는 지름길로 여겨졌던 만큼 정치인으로서 큰 꿈을 꾸는 이들에게는 ‘일생일대의 기회’다. 민주당은 서울시장 선거 본선행 티켓을 놓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원내 의원들의 공식 출마 선언 이후에도 자칭타칭 물망에 오른 진보 인사들이 시기를 재고 있어 다양한 경선 구도가 그려질 것으로 관측된다. 박주민 의원은 민주당 내에서도 가장 먼저 공식 출마 의사를 밝힌 인물이다. 그는 “서울이 ‘맏이’ 역할을 하며 지방 도시들과 함께 성장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며 일찌감치 선거판을 예열했다. 뒤이어 민주당 서영교 최고위원이 출사표를 던졌다. 조희대 대법원장 저격수를 자처하며 존재감을 키운 그가 이번에는 “서민을 위해 일 잘하는 시장이 필요하다”며 오세운 서울시장 대항마로 나섰다. 서 최고위원은 “(오 시장은) 토지거래허가구역을 무리하게 해제하면서 부동산 폭등을 자초했다”며 “이태원 참사의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은 시점에서 큰 책임이 있는 용산구청장에게 서울시 주최 지역축제 안전관리 대상을 주는 등 시민의 요구, 시대의 요구를 전혀 읽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전현희 최고위원은 “국정감사 이후 결단을 내리겠다”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는 지난달 오마이TV ‘박정호의 핫스팟’과의 인터뷰에서 “정치적 중요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반드시 승리할 후보가 서울시를 탈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자리에 과연 제가 적합한 후보인지 고민을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큰 판 향하는 의원들 오세훈만 꺾으면 끝? 지난 조기 대선 당시 ‘민주당 골목골목선대위 서울위원장’을 맡아 서울시 정책 로드맵을 짜는 데 참여한 만큼 출마 명분은 충분하다는 평이 나온다. 마찬가지로 원내 인사인 박홍근 의원과 김영배 의원도 몸풀기에 나섰다. 특히 박 의원은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선 지난해 8월 당시 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과 사전 논의가 있었던 점을 강조만 만큼 오랜 고심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홍익표 전 의원도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생각하고 준비 중”이라며 도전을 시사했다. 홍 전 의원은 가장 민감한 서울 부동산 문제를 겨냥하는 등 오 시장의 강남권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를 집값 상승의 원인으로 꼽으며 저격에 나섰다. 박용진 전 의원의 출마 가능성도 점쳐진다. 박 전 의원은 “아직 정해진 건 없다”면서도 연일 오 시장을 때리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최근에는 “민주당의 정치가 ‘영포티(젊어 보이려 애쓰는 40대)’ 정치로 전락하지 않도록 몸부림쳐야 한다”며 청년세대와의 통합을 강조하기도 했다. 원외에서는 정원오 성동구청장의 이름이 눈에 띈다. ‘K-브랜드지수’에서 서울시 지자체장 부문 1위 타이틀을 따낸 그는 활발한 SNS 활동으로 두터운 지지층을 보유한 인물이다. “나 서울 시민인데, 구청장님 좀 같이 씁시다” 등 밈(인터넷 유행 콘텐츠)이 온라인에 퍼지면서 팬덤을 등에 업고 민주당 원내 인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지 이목이 쏠린다. 민주당 후보군은 일동 ‘오세훈 때리기’에 집중하고 있다. 오 시장의 야심작인 한강버스가 연일 구설수에 오른 데 이어 최근 서울시가 최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서울 종묘 맞은편에 높이 145m 건물이 들어설 수 있도록 재정비촉진계획을 변경한 것을 두고 맹공에 나선 것이다. 지난 11일 민주당 문화예술특별위원회는 기자회견을 통해 종묘 재개발 논의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당내 서울시장 후보군인 박주민 의원과 서영교 최고위원을 비롯한 전현희·김영배·박홍근 의원 등이 대거 참석했다. 특히 박홍근 의원은 “차기 시장, 그리고 대권 놀음을 위해 종묘를 제물로 바치겠다는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서울 종묘가 서울시장 선거의 새로운 전장이 된 셈이다. 이리저리 혼돈의 표심 민주당에서는 윤석열정부 조기 퇴진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 승리의 후광효과가 지선까지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번 지선 기조를 내란 청산으로 내세운 것 역시 ‘내란 VS 헌법 수호’ 프레임이 유효하다고 본 것이다. 다시 꺼내든 내란 종식 키워드가 내년 지선에서도 먹힐지는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지선 압승이라는 낙관론에 젖어 서울시 민심을 제대로 훑지 못한다면 ‘이정부 심판론’으로 되치기당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지점이다. 민주당 출신의 한 정치권 관계자는 “서울시 선거는 ‘오세훈만 꺾으면 당선’ 같은 일차 방정식이 아니다. 오 시장이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등 각종 리스크에 발목 잡혀 약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울시민이 내란 종식을 외치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겠냐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다시 출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구 특성만큼 변수도 많은 서울시 자체가 첫 번째 허들이다. 서울은 마포·용산·영등포·광진·동작·성동·강동·중구 등 13개 선거구를 일컫는 한강벨트를 따라 보수층이 포진해 있어 보수 텃밭으로 여겨지지만, 지난해 치러진 총선에서 민주당이 서울 48석 중 37석을 얻어 과반이 넘는 지역에 파란 깃발을 수놓았다. 그럼에도 조기 대선에서 당시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서울시에서 각각 47.1%, 41.6%를 얻어 두 후보 간의 격차는 5.5%p에 불과했다. 여기에 범보수로 여겨지는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가 얻은 9.9%를 더하면 보수 진영이 진보 진영을 앞서게 된다. 비상계엄이라는 특수 상황을 경험했지만 40%에 달하는 서울 시민이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두 번째는 한강벨트를 따라 빼곡히 자리 잡은 부동산이다. 정부의 10·15 부동산 정책을 통해 서울시 민심을 움직이는 건 진영 간의 논리 싸움이 아닌 정책, 그중에서도 집값이라는 게 명확해졌다. 서울 전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과 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하는 이재명표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지 약 보름 뒤 민주당 지지율이 1주일 새 10%포인트 하락하며 국민의힘에 오차범위 내에서 역전됐다. 지지층에 휩쓸릴라 한국갤럽이 지난달 28~30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의 서울 지지율은 31%로 전주 대비 10%p 떨어졌다. 반면 국민의힘은 12%p 오른 32%로 집계됐다. 서울을 대상으로 고강도 대책이 발표되자 서울 민심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전체 긍정 평가는 전주 대비 1%포인트 상승해 57%를 기록했지만,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서울 지역에서는 8%p 하락한 47%로 나타났다. 해당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2.6%다.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와 한국갤럽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결국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진영 간의 대립구도가 아닌 인물과 정책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의견에 초점이 맞춰지지만, 진보 진영 후보들은 본선 진출을 위해 당원의 표심을 얻는 일을 우선해야 한다는 딜레마에 빠졌다. 지선을 앞두고 민주당 지도부가 권리당원 권한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밝힌 만큼 국민의힘과 잘 싸우는 ‘전투적인 후보’가 경선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하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차기 서울시장 후보 적합도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진보·여권 후보 가운데 정 구청장이 1위를 차지했다. 만일 정 구청장이 출마 의지를 굳히더라도 박주민·서영교 의원 등 쟁쟁한 원내 인사를 제치고 당원의 선택을 받을지 확신할 수 없다. 인지도면은 물론 민주당 지선 기조가 내란 청산으로 자리 잡은 한 12·3 비상계엄을 해제한 인물에게 더 많은 정치적 유산과 서사가 쥐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박 전 의원은 출마 가능성을 시사한 동시에 민주당 강성 지지층에게 집중적으로 질타 받았다. 2023년 8월 당시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이던 시절 체포동의안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던 중 불체포특권 포기 성명에 이름을 올린 31명의 의원 중 한 명인 만큼 경선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반면 민주당 지지층으로부터 꾸준히 이름을 알려온 경우 경선 통과가 수월하지만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개딸(개혁의 딸들)이 밀어준 강경파 후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면 정책이나 행정가로서의 자질은 묻히고 이에 거부감을 느낀 중도층의 표가 분산될 것이란 점에서다. 당원 마음 잡으랴, 중도층 안으랴 김민석·강훈식 ‘투톱’ 차출설도 경선과 본선을 놓고 민주당의 딜레마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김민석·강훈식 차출설’이 돌면서 서울시장 선거판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인지도가 높고 행정가 면모가 돋보이는 김민석 국무총리와 강훈식 대통령실비서실장을 서울시장 후보로 내보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국정 투톱이 또다시 정치의 한가운데에 들어섰다. 앞서 김 총리는 여러 차례에 걸쳐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에 선을 그어왔지만 종묘 재개발 논쟁에 뛰어들면서 다시 불을 댕겼다. 지난 10일 김 총리가 서울 종묘 일대를 찾아 “무리하게 한강버스를 밀어붙이다 시민의 부담을 초래한 서울시로서는 더욱 신중하게 국민적 우려를 경청해야 한다”고 우려를 표했는데, 이를 두고 오 시장이 “국민 감정을 자극하려 하는데 이는 선동”이라며 지선을 겨냥한 발언이라고 의심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한 차례 서울시장에 도전했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이름도 다시 거론된다. 김 총리가 서울시장 대신 당 대표로 나서고, 직을 내려놓은 정 대표가 서울시장 도전 후 대권 코스를 밟는 시나리오다. 3대 개혁을 두고 당정 불협화음이라는 의심의 눈초리가 따라붙는 만큼 교통정리를 통해 당정 서로에게 윈윈(win-win)하는 방법으로 꼽힌다. 우선 민주당 관계자들은 앞선 두 사람의 출마 가능성이 극히 낮다고 보고 있다. 가장 중요한 시기에 총리나 대통령비서실장 자리에 생긴 공백은 국정 운영에 차질이 빚을뿐더러 정부 출범 1년도 되지 않은 시기에 지선 후보로 차출할 시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게 공통된 설명이다. 정 대표의 서울시장 도전 여부 역시 “이제 겨우 (취임) 100일이 지났다”며 일축했다. 이처럼 ‘스타 정치인’ 후보군이 물망에 오르자 당 일각에서도 지역 일꾼을 뽑는 지선의 의미가 퇴색될까 우려하는 모양새다. 경선 당락을 결정할 당원의 표심을 사로잡기 위해 지나친 선명성 경쟁이 이어질 경우 중도층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거라는 지적도 나온다. 수많은 변수들 여권 관계자는 “지선 결과를 미리 예단하기엔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차분하게 기다리면서 후보들의 공약을 분석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앞으로 종묘 재개발 같은 이슈가 전방으로 나올 텐데 그때마다 (민주당도) 네거티브로 맞받아치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우리 당원도 내란 종식과 민생회복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사람을 최종 후보로 뽑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터줏대감 눈치 보는 국힘? 더불어민주당과 마찬가지로 국민의힘 역시 서울시장을 이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로 보고 있다. 서울시 사수를 위해 후보군을 물색하고 있지만, 오세훈 시장의 임기가 남은 만큼 누구 하나 선뜻 도전장을 내밀지 못하는 분위기다. 이에 오 시장의 재도전이 유일한 방법으로 여겨지는 모양새다. 오 시장은 “시민들이 어떤 평가를 해줄지 지켜보며 거취를 분명히 하겠다”며 3선 도전 가능성을 내비쳤다.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종묘 재개발 등 리스크를 안고 있지만 현역 프리미엄에 기댄다면 시도해 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본 셈이다. 한때 경기도지사 후보로 거론됐던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이 이번에는 서울시장 물망에 올랐다. 서울시장 출사표를 던진 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오 시장이 아닌 나 의원을 상대할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로 말하면서 이목이 쏠렸지만 정작 나 의원은 서울시장 도전 가능성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