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보궐로 점쳐보는 황태자 운명

  • 박형준 기자 ctzxp@ilyosisa.co.kr
  • 등록 2025.09.08 14:51:32
  • 호수 15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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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면초가’ 한동훈이 사는 법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당선 이후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최대 패배자로 인식됐다. 그의 최대 약점은 선출직 선거에 나서본 적이 없단 것이다. 내년 재보궐선거가 돌파구가 될 수 있지만, 이 역시 첩첩산중이다. 한 전 대표는 과연 사면초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지난달 26일 당선되자, 세간의 관심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에게로 집중됐다. 장 대표는 한 전 대표가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던 지난 2023년 12월 사무총장으로 임명됐던 친한(친 한동훈)계 핵심이었다가 결별했기 때문이다.

전대 출마
친한계 이견

한 전 대표와 장 대표는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소추가 진행되던 지난해 12월 결별했다. 장 대표가 입을 꾹 다문 채 국회 본관 소재 당 대표 비서실을 나가고, 한 전 대표가 웃으면서 문을 잡은 사진 한 장은 큰 화제가 됐다.

친한계 내부에선 한 전 대표의 대표 출마 여부를 놓고, 의견이 엇갈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친한계 일원인 정성국 의원은 지난 6월 <일요시사>와 만나 한 전 대표의 당 대표 출마 가능성을 두고 “한 전 대표가 나서야 한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고, 아직은 나설 시기가 아니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한 전 대표는 출마하지 않았다. ‘중도층 공략’을 강조한 당 대표 후보로는 조경태·안철수 의원이 있었다. 조 의원은 안 의원에게 단일화를 제안했지만, 안 의원은 답변하지 않았다. 당시 한 전 대표는 둘 중 누구도 지지하지 않았고, 단일화 조율에도 나서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전 대표가 목소리를 냈던 시기는 장 대표와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의 결선이 진행됐던 시기였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적극적으로 투표해서 국민의힘이 최악을 피하게 해달라”며 “민주주의는 최악을 피하기 위한 최선의 제도”라고 주장했다.

이는 김 전 장관에 대한 지지 호소로 해석됐다. 한 전 대표와 장 대표의 악연은 이미 세상이 다 알 정도로 널리 알려져 있고, 장 대표는 강경 보수 민심을 향해 지지를 호소했다. 한 전 대표와 강경 보수의 관계도 험악한 것으로 유명하다.

장 대표는 지난달 19일, 후보 토론회에서 “한 전 대표와 전한길씨 중 누구를 공천하겠느냐”는 질문을 받고, “전씨”라고 답변했다. 이어 “전씨는 탄핵 국면부터 국민의힘을 위해 열심히 싸운 분이고, 지금도 더불어민주당·이재명정권과 열심히 싸우고 있다”며 “열심히 싸운 분에게 공천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지난달 30일 공개된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도 “당심을 어기고 반대로 간 사람과 열심히 당과 함께 싸운 사람 중 후자를 택한 것”이라고 답변했다.

이는 한 전 대표의 최대 정치적 약점을 찌르고 들어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 전 대표는 선출직 선거에 아직 출마한 적이 없다. 선거 당선 경험이 없단 것은 결국 “정치적 역량을 검증받은 적이 없다”는 뜻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크다.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으로서 지난해 4월 총선을 지휘한 경험이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지난해 총선에서 불과 108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했다. 이어 지난해 7월엔 당 대표로 당선됐지만, 윤 전 대통령과의 갈등 관계를 해소하지 못했다.

‘마지막 카드’ 선출직도 어렵다?
재보선 지역구 모두 민주당 텃밭


이는 지난해 비상계엄 사태 당시 한 전 대표가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지정되는 계기가 됐다.

현재 국민의힘의 권력구도는 한 전 대표에게 대단히 불리하다. 친한계 의원은 10명 안팎에 불과하다. ▲윤 전 대통령 파면·구속 ▲특검 3개(내란·김건희·채 상병) 등은 국민의힘에 큰 위기감을 불어넣고 있다. 위기감을 공유하는 집단에선 강경파가 득세한다. 이 같은 경향은 조 의원과 안 의원이 당 대표 선거 결선 컷오프를 통해 확인됐다.

그렇다고 국민의힘을 탈당하기도 어렵다. 6선의 조 의원과 3선 송석준 의원 등 일부를 제외하면, 친한계 의원 대부분은 초선 의원 및 비례대표다. 특히 비례대표 의원은 탈당 즉시 의원직을 잃는다. 당이 제명하면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지만, 국민의힘이 그렇게 해줄 가능성은 매우 낮다.

탈당 후 신당을 창당한다고 하더라도,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또 제3당 창당 실험은 이회창 전 총리도 이미 실패했던 사례가 있다. 물론 안 의원이 국민의당을 창당해 돌풍을 일으켰고,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이 바른정당을 창당한 적도 있다.

두 사람은 합당해 바른미래당을 창당했지만, 끝내 실패로 끝났다. 개혁신당이 독자적인 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아직은 매우 미약하다. 한 전 대표가 감당하기엔 쉽지 않은 실험이다. 한 전 대표도 양당제가 굳건한 우리 정치 현실을 모를 리가 없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한 전 대표는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나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 등 보수 성향 정치 원로들의 지지를 얻었다. 이들은 한 전 대표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반대하고, 해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것을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지난해 12월 한덕수 당시 총리와 ‘당정 협력’ 체제를 발표한 후 순식간에 추락했다. 두 사람이 발표했던 체제의 골격은 ▲사실상 윤 전 대통령 직무 배제 ▲윤 전 대통령의 질서 있는 퇴진 ▲여당 대표와 총리의 주 1회 회동 ▲긴밀한 협의로 국정 공백 차단 등이었다.

이는 아직 대통령이 탄핵소추되지 않은 상황에서 총리를 국정 운영 주체로 내세우고, 여당 대표가 사실상 실권을 행사하는 체제로 해석됐다. 이는 곧 엄청난 논란으로 이어졌다. 여당 대표가 국정에 개입할 수 있는 근거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입꾹닫’
8개월 후…

헌법상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대통령을 국정에서 배제하는 방안 자체도 매우 어색하게 다가왔다. 홍준표 당시 대구시장은 한 전 대표를 ‘너’라고 호칭하면서 “네게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을 직무 배제할 권한이 있느냐”고 정면 비판했다.

한 전 대표는 훗날 저서 <국민이 먼저입니다>를 통해 “당시 선언은 대통령의 2선 후퇴로 국정을 맡은 총리의 국정 수행을 당이 철저히 지원한다는 정도의 상징적 의미가 있었다”며 “집중포화를 받을 거란 생각은 못했다”는 소회를 남겼다.

사실 당시 한 전 대표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장 대표는 친한계를 이탈했다. 당시 지도부였던 친한계 소속 장동혁·진종오 의원을 포함한 지도부 전원도 탄핵소추안 가결을 이유로 직에서 물러나면서 한 전 대표 체제는 한순간에 무너졌다.


그는 사퇴 후 대선후보 경선에도 출마했지만, 김 전 장관에게 밀려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되지 못했다. 이후엔 줄곧 야인으로 지내고 있다.

현 상황에선 한 전 대표가 돌파구를 찾기 어려워 보인다. 국민의힘을 이탈해 독자적인 세를 구축한 개혁신당이 있지만, 한 전 대표 측과 개혁신당은 대단한 앙숙으로 유명하다. 따라서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와 연대할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한 전 대표의 상황은 주변 모두가 적인 사면초가와 다름없다.

한 전 대표가 계속 정치를 하려면, 결국 선출직 선거에 출마해야 한다. 광역자치단체장은 중앙 정계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힘들다. 따라서 내년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지는 재보궐선거(이하 재보선)에 출마하는 게 가장 현실적이다. 장 대표는 “전씨에게 공천을 주겠다”면서 “한 전 대표에게 공천을 주지 않을 것”이란 취지로 발언했다.

하지만 당선 가능성이 극히 낮은 험지라면 사정이 달라진다.

현시점에서 재보선 진행이 확정된 지역구로는 이재명 대통령의 지역구였던 인천 계양을과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의 의원직 사퇴로 공석이 된 충남 아산을이 있다. 이어 민주당 박주민·장철민 의원의 지방선거 출마 가능성이 있는 서울 은평갑과 대전 동구가 공석이 될 수도 있다.

불가능한
3당 실험


또 의원이 형사재판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은 후 상급심을 진행하는 ▲인천 동구·미추홀구 갑 ▲경기 안산갑 ▲경기 평택을 ▲전북 군산·김제·부안 갑 등이 있다. 이 지역구는 전원 민주당 의원들의 지역구다.

이 중 인천 계양을은 민주당 대표를 지냈던 소나무당 송영길 대표가 5선을 지냈던 지역이다. 인천 계양갑에선 송 대표의 오랜 친구이기도 한 유동수 의원이 3선 고지에 올랐다. 즉, 인천 계양 지역은 민주당의 영향력이 매우 강하다. 송 대표 개인의 영향력도 매우 강했다고 볼 수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 2022년 6월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하면서 의원직에서 물러난 송 대표를 대신해 재보선에 출마했다. 당시 국민의힘에선 1997년 지역구 내에서 개원해 20여년 동안 병원을 운영한 윤형선 속편한내과 대표원장을 후보로 출마시켰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었다.

당시 윤 원장은 이 대통령을 상대로 상당한 선전을 했다. 당시 이 대통령은 55.24%를 득표해 44.75%를 득표한 윤 원장을 상대로 승리했다. 하지만 윤 원장의 선전은 이 대통령과 민주당을 긴장시켰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윤 원장의 선전을 염두에 두고 출마를 준비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시의 상황을 깊이 살펴봐야 한다.

당시 국민의힘 대표였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지역 밀착 후보를 공천하겠다”면서 윤 원장을 공천했다. 실제로 계양을 유권자들도 20여년 동안 지역에서 병원을 운영하면서 다양한 활동을 한 윤 원장을 주목했다. 한 전 대표가 국민의힘 텃밭도 아닌 곳에서 당시의 이 대통령과 같은 취급을 당해 저조한 득표를 할 가능성이 있다.

충남 아산을은 30~40대 유권자들이 밀집해 거주하는 신도시 지역이다. 즉, 민주당을 주로 지지하는 계층이 다수 거주하는 지역이다. 강 실장은 지난 20대 총선 당시 47.61%를 득표해 국회에 입성했고, 선거를 치르면서 ▲제21대 총선 59.71% ▲제22대 총선 60.35% 등 득표율이 높아지는 흐름을 보이고 있었다.

장·노년 여성 중심으로 개인 지지층을 형성한 한 전 대표에겐 최악의 지역구가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 전 대표는 주로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 세대와 2030 세대 여성을 상대로도 열세지만, 보수 성향이 강한 2030 남성 사이에서도 큰 지지세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의 정치 성향은 강경 보수·개혁신당 지지·민주당 지지 등으로 3등분 돼있다. 한 전 대표가 비집고 들어가기란 쉽지 않은 셈이다.

“전한길 줘도 한은 못 준다”
장동혁에게 공천장 받으려면…

인천 동구·미추홀구 갑은 지난 21대 총선 당시 신설된 지역구고, 민주당 허종식 의원은 이곳에서 2번 모두 승리한 재선 의원이다. 지난 총선 당시 득표율은 53.73%였다. 인천 동구엔 공단이 밀집해 있어서 노조 등 진보 진영에 속한 단체의 활동이 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보수 정당 후보로선 힘겨운 선거를 치러야 한다.

경기 안산갑은 선거구 획정 흐름 때문에 제15대·제16대·제22대 총선만 진행됐다. 3번 진행된 총선에선 모두 민주당계 후보가 당선됐다. 김영환 충북지사가 이곳에서 제15대·제16대 의원을 지냈고, 양문석 의원은 지난 총선에서 55.62%를 득표해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세월호 참사 당시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던 단원고가 이곳에 있다. 국민의힘 후보에겐 험지가 될 수밖에 없다.

경기 평택을은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 이병진 의원이 54.23%를 득표해 당선됐던 지역이다. 이 지역에선 자유민주연합·민주당계 정당·보수 정당 후보들이 교차로 당선됐다. 보수 정당에선 미래통합당 유의동 전 의원이 3선을 지내다가 이 의원에게 져서 낙선했다.

유 전 의원은 유승민계로 알려졌다가 한 전 대표의 당 대표 당선을 도왔다. 유 전 의원의 낙선은 한 전 대표가 이 지역에서의 당선 가능성을 가늠해볼 수 있는 잣대가 될 수 있다.

전북 군산·김제·부안 갑은 호남 지역 특성상 13대 총선부터 내리 민주당계 정당에서만 당선자를 배출했다. 지난 총선에선 오지성 군산 오직예수교회 담임목사가 국민의힘 후보로 출마해 13.26%를 득표한 후 낙선했다. 재보선이 확정되면, 당협위원장을 맡은 오 목사가 다시 출마할 가능성이 크다.

한 전 대표가 재보선에 출마하려면 눈앞과 등 뒤에 모두 적을 두고 싸워야 한다. 등 뒤에 있는 적이 한 전 대표에게 당선 가능성이 있는 지역구 공천을 줄 가능성이 크지 않다. 하지만 현재 국민의힘의 주인은 장 대표와 그를 대표로 당선시킨 언더 찐윤이다.

현실적으로 공천을 좌우하는 사람들은 이들이다. 결국 이들과의 타협이 우선이다.

따라서 한 전 대표로선 정치적 존재감을 확인하려면 ‘국민의힘에서 아무도 나서지 않을 가능성이 큰’ 지역구 선택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것이 공천을 받을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다. 이런 지역구에서 살아 나온다면, 김부겸 전 총리가 지난 2016년 제20대 총선 대구 수성갑에서 승리해 정치적 무게를 키운 것처럼 한 전 대표의 위상이 매우 높아질 것이다.

국민의힘 내 한 전 대표 거부 정서는 “한 전 대표가 국민의힘 내부에 적을 많이 만들었다”는 인상을 준다. 장 대표가 친한계에서 이탈하고, 진종오 의원이 최고위원직을 사퇴해 한동훈 체제 붕괴에 일조한 상황은 “포용력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준다.

앞으로도
첩첩산중

윤 전 대통령과의 갈등은 “정치력을 검증받지 못했다”는 인상을, 당 대표 선거 불출마 과정은 “제때 결단하지 못했다”는 인상을 준다. 한 전 대표의 현 상황은 여러 인상이 모인 결과물이다.

세간에선 이런 상황을 두고 ‘사면초가’라고 한다. 이 사자성어의 주인공 항우는 최후의 전투였던 해하의 싸움에서 여러 차례 포위망을 돌파했다. 하지만 그도 끝내 패배해 사망했다. ‘사면초가’ 상황을 만든 사람은 싸움은 잘하되 정치엔 무지했던 항우 자신이었다. 한 전 대표가 사면초가를 돌파할 방법은 무엇일까?

<ctzx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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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