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대선주자 3인 현미경 검증 (20)대외직함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2.10.26 09: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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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온 삶의 이력, 대외직함 속에 녹아있다"

[일요시사=김명일 기자] 오는 12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여야의 대선주자들이 치열한 대권레이스를 벌이고 있다. 상대를 이겨야 웃을 수 있는 레이스에서 최후에 웃게 될 자는 누가 될 것인지에 벌써부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여야 각 정당의 경선 이전부터 대선예비주자들을 검증해 온 <일요시사>는 새누리당의 대통령후보로 확정된 박근혜 후보와 야권단일후보 자리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문재인(민주통합당)-안철수(무소속) 후보의 면면을 세세히 검증 중이다. 이번호에서는 스무 번째 순서로 그들의 '대외직함'을 살펴봤다.

정치인들에게 다양한 대외직함은 필수다. 여러 단체에 소속된다는 것은 많은 지지자들을 손쉽게 모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대외직함은 또 자신의 인맥과 힘을 뽐낼 수 있는 무기가 되기도 한다. 대선이 50여 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각 후보들은 대선후보라는 대외직함을 제외한 대부분의 자리는 이미 사임한 상황. 하지만 대선후보가 되기까지 그들이 가졌던 대외직함들을 살펴보면 그들이 살아온 이력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박근혜 <봉사활동 치중>
"가는 곳마다 비리의혹에 난감"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는 세 후보 중 가장 화려한 대외직함을 자랑하지만 그 중 대부분이 비리와 연루되어 있어 대선정국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박 후보가 최초로 갖게 된 대외직함은 '대한민국 퍼스트레이디'다. 당시 박 후보의 나이는 고작 23살이었다. 박 후보는 어머니 육영수 여사가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행사에서 암살범에게 피살당한 후 1979년 10월까지 의전상 대한민국의 영부인 역할을 대행했다.

퍼스트레이디 시절 박 후보는 최태민 목사와 함께 구국여성봉사단과 새마음봉사단 총재, 걸스카우트 명예총재 등의 직함을 갖고 봉사 위주의 활발한 대외활동을 펼쳤다. 그러나 1979년 10월 26일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마저 피살 된 후엔 모든 활동을 중단했다.

박정희 후광?


다음해인 1980년 3월 당시 29살이었던 박 후보는 박 전 대통령이 설립한 영남대 이사로 사회활동에 복귀, 한 달 후에 이사장이 됐다. 1982년에는 육영재단 이사장도 맡았다. 육영재단은 어머니 육영수 여사가 어린이 복지사업을 목적으로 1969년 설립했던 재단이다. 1994년에는 역시 박 전 대통령이 부산지역 기업인 고 김지태씨에게 강제 기부 받아 설립한 정수장학회의 이사장으로도 취임했다.

이처럼 박 후보는 부모의 후광으로 손쉽고 화려하게 사회활동에 복귀 할 수 있었지만 그 후 과정은 무척 험난했다. 우선 영남대는 교육자나 경영자로의 경험이 전무했던 20대의 박 후보가 이사장직에 오르자 학내에서 큰 논란이 일었다. 특히 1980년 '민주화의 봄' 분위기 속에서 교수들과 학생들이 박 후보의 이사장 취임을 반대하고 학교민주화를 요구하자 박 후보는 결국 6개월 만에 이사장에서 물러나 평이사로 돌아갔다. 8년 뒤에는 이사직에서도 퇴진했다. 하지만 박 후보가 이사장직에서 물러난 후에도 영남대의 이사와 이사장직을 맡은 인사들이 대부분 박 후보의 측근들이라는 비판이 일었다.

육영재단을 놓고는 여동생 박근령과 운영권 다툼을 벌였다. 박근령 측은 앞서 거론한 최 목사가 박 후보를 배후에서 조종해 육영재단의 운영을 전횡했다고 주장했다. 결국 박 후보는 1990년 11월 육영재단 이사장에서 자진 사퇴했지만 끝까지 결백을 주장했다.

정수장학회는 지금까지도 박 후보의 발목을 잡는 걸림돌이다. 최근에는 국회 문방위에서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 증인채택을 놓고 여야가 대립해 국정감사가 파행되기도 했다.

화려한 대외활동

정치입문 후 박 후보의 대외직함은 더욱 화려해졌다. 지난 1998년 정치에 입문한 박 후보는 그 해 국회의원에 당당히 당선되어 지금까지 무려 5선의 고지에 올랐다. 이때부터 박 후보의 대외직함은 '국회의원'이 됐다. 국회의원으로 시작된 박 후보의 대외직함은 2004년 한나라당 대표, 2011년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 2012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 새누리당 제18대 대선후보로까지 이어졌다.

박 후보는 또 문화스포츠분야에 관심이 많아 1993년부터 지금까지 한국문화재단 이사장직을 맡고 있으며, 1994년에는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등록하기도 했다. 2011년에는 한나라당 평창동계올림픽 유치특별위원회 고문을 맡아 우리나라가 평창동계올림픽을 유치하는데 힘을 보탰다.



문재인 <사회활동 치중>
"민주주의 위해 헌신"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는 경희대학교 총학생회 총무부장을 자신의 자랑스러운 첫 대외직함으로 기억한다. 문 후보는 경희대 법과대학 재학시절 운동권으로서 당시 총학생회장이던 강삼재를 대신해 집회를 주도하기도 했다.

문 후보는 제22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수료했으나 학생운동 전력으로 판사 임용에 실패했다. 그 후 고향 부산으로 내려간 문 후보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사법시험 동기인 박정규의 소개로 노 전 대통령을 만나 법무법인 부산에 합류했다.

사서 고생한 인생

1983년 문 후보는 법무법인 부산 대표변호사라는 대외직함을 갖게 된다. 문 후보는 법무법인 부산에서 노 전 대통령과 인권변호사로 활동했는데 이 과정에서 부산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장,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부산지부 대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경남지부 대표 등의 대외직함도 추가했다.

약칭 '민변'으로 불리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인권을 옹호하고 민주사회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설립한 변호사들의 단체로 1970~1980년대 시국사건 변론을 맡아 활동하던 인권변호사들이 1986년 구로동맹파업 사건의 공동변론을 계기로 결성한 '정의실천법조인회'가 기반이 됐다.

1984년에는 한국해양대 해사법학과 강사로도 활동했으며 1988년에는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자유언론수호 투쟁 해직기자들과 정부의 언론통폐합 조치로 강제해직된 기자들이 모여 만든 <한겨레신문>의 창간위원을 맡아 창간에 힘을 보탰다. 이처럼 사회운동에 전념하던 문 후보는 2003년 노 전 대통령의 취임과 함께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으로 화려하게 중앙정치 무대에 등장한다.

2004년에는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수석비서관이라는 대외직함도 더했다. 그 후 1년 만에 녹내장과 고혈압 등 건강악화를 이유로 청와대를 떠났던 문 후보는 노 전 대통령의 탄핵 소식을 듣고 다시 청와대로 돌아와 2005년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 2007년 대통령비서실 실장, 2007년 제2차 남북정상회담 추진위원회 위원장 등의 직책을 맡았다.

참여정부 시절 문 후보의 화려한 대외직함은 '빛이자 그림자'다. 일각에선 그가 권력의 핵심에 있으면서도 청탁 등 이권개입을 멀리하고 자신의 권력을 남용하지 않았으며, 대통령의 지근거리에서 국정운영 경험을 쌓았다며 높이 평가한다. 반면 참여정부 실정에 일정부분 책임이 있고 비서실장으로서 결과적으로 노 전 대통령 측근의 비리를 막는데 실패했다고 비판하는 이들도 있다. 

승승장구 정치인생

문 후보는 노 전 대통령의 사후에는 2009년 사람사는 세상 노무현재단의 상임이사를 거쳐 2010년 이사장을 맡았다. 또 2011년에는 진보진영 야권 통합 추진기구인 '혁신과 통합'의 상임대표를 맡아 지금의 민주통합당 탄생에 일조하기도 했다.

수많은 사람들의 권유에도 정치입문 만은 거절하던 문 후보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정치입문을 결심하고 2012년 제19대 총선에서 부산 사상구에 출마해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지난 9월16일에는 정치신인임에도 경선을 통해 제1야당 민주통합당의 대선후보로 공식 선출됐다.



안철수 <재계활동 치중>
"착한 이미지 발목 잡는 대외활동"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는 의사, 프로그래머, 벤처 사업가, 교수이자 정치인이다. 다양한 직업만큼 대외직함 또한 다양하다. 1986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동대학원에서 의학 석·박사학위를 취득한 안 후보는 1990년 만 27세에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학과장이라는 대외직함을 따냈다. 당시로선 최연소 학과장이었다.

의대 교수로 일하면서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을 만들어온 안 후보는 '교수가 학생 몰래 다른 일을 하면 학생은 불행한 것'이라고 생각해 학과장을 그만두고 1995년 2월 안철수연구소를 설립한다. 안 후보는 이후 2005년 3월까지 안철수연구소의 대표이사로 재직했다. 안철수연구소의 이른바 '착한경영'은 지금의 안 후보를 있게 했다. 반면 대표이사직 사임 후의 행보는 안 후보의 발목을 잡고 있다.

최연소 학과장

안 후보는 2005년부터 6년 동안 포스코의 사외이사 및 이사회 의장을 맡았다. 그런데 포스코는 안 후보가 사외이사 및 이사회 의장을 맡은 기간 동안 자회사가 38개나 증가해 재벌 가운데 계열사 증가수 1위를 기록해 논란이 됐다. 또 안 후보가 2005년부터 2011년 이사회 의결안 235건 중 226건에 찬성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안 후보가 포스코 사외이사로 재직하면서 감시자 역할보다는 거수기 노릇을 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뒤따랐다.

이밖에도 안 후보는 벤처기업인 모임인 브이소사이어티의 회원으로 활동했는데 안 후보가 분식회계 혐의로 구속된 이 모임의 주선자 최태원 SK회장의 구명 탄원서에 서명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난이 쏟아지기도 했다. 안 후보 측은 브이소사이어티 40여명 전원이 서명했고 안 후보는 그중 한 명일뿐 특별한 관계는 없다고 해명했지만 재벌 개혁을 외치는 안 후보가 최 회장의 구명운동을 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그의 신뢰성은 치명상을 입었다.


2008년에는 카이스트 기술경영전문대학원의 석좌교수로 임명됐으나 이 과정에도 많은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심재철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지난 15일 안 후보의 카이스트 석좌교수 경력과 관련해 "석좌교수는 해당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가져야 하는데 이 분야의 논문 하나 쓰지 않은 안 후보가 석좌교수가 된 것은 이해할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특혜시비에 당혹

안 후보는 2011년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이 과정에서도 특혜 시비가 일었다. 특히 부인 김미경 서울대 교수의 동시임용과 관련해서는 "연구 논문 실적이 정교수 임용에 부족하고 채용 전공인 생명공학정책 관련 논문도 없다"며 채용의 불합리를 지적하고 임용 심사위원 1명이 사퇴를 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안 후보는 2008년부터 박원순 서울시장이 중심이 돼 창립한 비영리 공익재단인 아름다운 재단의 이사직을 맡았는데 아름다운재단이 불법모금 의혹으로 검찰에 고발을 당하면서 안 후보를 당혹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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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